어제는 내가 듣는 강좌의 마지막 시간이었다. 2월 강좌를 신청하지 않기로 결심했고, 어제만 들으면 내가 1월에 신청한 강좌가 끝..종강..마지막..이었다. 대학로까지 갔지만 아아, 수업 들어가기 싫어, 마침 같이 듣는 친구를 혜화역에서 만났다. 친구의 팔짱을 끼고 강의실을 향해 걸었다. 속으로는 계속 듣기 싫다, 놀자고 할까, 술이나 마시자고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주제가 주제인만큼 또 마지막이니만큼 듣자! 하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어제의 주제는 <섹슈얼리티:쾌락과 위험> 이었다.


크- 이 얼마나 재미있는 주제인가. 그러나 내 생각만큼 이 주제의 강좌가 막 재미있진 않았다. 사실 내가 기대한 건, 강좌 아닌 다른 무엇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모두가 자신만의 페티쉬를 고백한다든가, 어떤 변태행위를 연인이 했을 때 싫었다든가..하는 그런 경험의 교류..였던 것 같아.. 하하하하하. 그런 거 기대하고 강좌에 참석한 것 같아. 그렇지만 강좌에서 그런 얘기는 나오지 않았지. 나는 무얼 바랐던가...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성이 억압되어 있었고 그걸 해방하자고 부르짖고 행동으로 옮기는 등의 운동이 시작되면서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여기에도 부작용들이 생겨났다. 성이 단순히 성만으로 해방을 주장해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인종적인 것과 부딪치면서 '모두가 원하거나' 혹은 '아무도 원하지 않는' 일이 생겨버리기도 했던 것. 이런 역사를 얘기하면서 푸코의 [성의 역사]에 대한 언급도 나왔다. 푸코는 성이 억압됐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 성이 오히려 생산됐다고 말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예를 든 것 중에 하나가, '동성애'와 '동성애자' 였다.


동성애는 말 그대로 동성을 사랑하는, 동성과 연애하는 '행위'다. 그러나 '동성애자'는 그 행위를 하는 사람을 가리키며, 이렇게 동성애'자'가 발화되는 순간, 이 사람과 다른 사람들은 '동성애자가 아닌' 사람이 되어버린다는 것. 그렇게 '동성애자'로 자기가 규정되어져 버리면서 동시에 동성애자가 아닌 사람들이 규정된다는 거다. 동성애'자'라는 말이 없었을 때에는, 그냥 동성애가 있고 또 동성애를 하는 사람들이 모두 인간으로 함께 사는 사회였는데, 그것이 어떤 특별한 혹은 특이한 행위가 아니었는데 '동성애자'를 발화하는 순간 규정되어지고 또 구분되어진다는 것. 내가 설명을 잘한건지는 모르겠는데, 나는 강사쌤의 이 설명을 들으면서 뭔가 진짜 크게 깨달음이 와서 고개를 끄덕였다. 쌤이 이걸 설명하시면서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게 무슨 뜻인지 알겠냐'고 수강생들에게 물으셨고, 나는 진짜 완전 알겠고 깨달음이 뽝- 하고 와가지고, 


"네!"


하고 크게 대답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렇게 대답을 한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조용한 강의실에 나의 목소리만 크게 울렸고 ㅋㅋㅋㅋㅋㅋㅋㅋ다른 사람들도 웃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강사쌤 웃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도 이 상황 웃겨서 웃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강사쌤은 나를 보며 고맙다고 하셨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진짜 아는 것 같다며 고맙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근데 나는 진짜 저 부분에서 너무 깨달음이 온거다. 그러면서 페미니스트들이 너무나 부르짖는 '우리에겐 언어가 없다, 언어가 필요하다' 하는 걸 절실히 느꼈달까. 그러니까 언어가 없다는 것은 언어로 규정지어지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게 아닌가. 하나의 언어로 규정되어지고 그걸 설명하는 다른 언어가 없다면 우리는 그 안에 들어갈 수밖에 없잖아. 다른 식으로 나를 설명할 수 없게 되어버리잖아. 그러자 갑자기 언어라는 게 너무 궁금해지는 게 아닌가! 언어란 뭘까! 언어가 대체 뭐기에 발화되는 순간 집단으로 나뉘고 정체성이 규정되어지는 걸까. 언어란 뭐지? 아, 언어가 궁금하다, 언어를 알고싶어!! 나는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러자 머릿속에 갑자기 '촘스키' 가 떠올랐다. 그간 촘스키에 대한 저서를 읽어본 적이 없는데, 그러니까 몇 해전에 내가 방통대를 반학기 다니는 동안, 그때 봤던 교재에서 '촘스키-언어학자'를 본 것 같은 기억이 나는거다!! 그래서 프린트물에 까먹지 않으려고


언어, 촘스키


라고 써두었다. 촘스키 읽어봐야지, 그렇게 언어학을 공부해봐야지. 그런데 촘스키가 언어 맞나? 하고 오늘 아침에 와서 검색해보았더니 맞더라. 그는 언어학자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어떤 책을 읽어야할지 모르겠고, 그의 여러권의 저서 중에서 '언어'가 들어간 책들은 다 절판이더라.. 히융- 나는 촘스키 말고는 모르는데... 갑자기 또 앞길이 막혀버리네... 물론 집에 촘스키 책은 있다.


















위의 책들중에 1권을 가지고 있는데, 1권 다 읽고 2권 사야지..라고 생각했지만 아직 1권을 펼쳐보지도 못했어? 다른 많은 책들에 대해 그러했던 것처럼... 어쨌든 저것은 세상의 물음에 답하는 것이지, 내가 궁금한 언어학에 대한 것이 아니렸다. 자, 여기서 나는 알라디너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여러분, 제가 언어학이란 것에 대해 알고싶어졌어요. 언어란 게 대체 뭔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조금 공부를 해보고 싶어요. 혼자 책을 읽으면서 기초를 다져보고 싶습니다. 이런 제가 읽을만한 책은 어떤 게 있을까요? 여러분의 추천 부탁드립니다. 제가 이 분야에 대해서 진짜 아무것도 모르므로 지식이 전무하므로, 아주 쉬운, 기본적인, 기초적인 책으로 부탁드립니다. 네, 절판 아닌 책으로요....




요즘엔 공부란 게 무엇인가 계속 생각한다. 

















'엘리자베스 워런'의 《싸울 기회》를 나는 2016년의 책으로 꼽았었는데, 궁극적으로 공부는 이런 식으로 나아가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여러분, 이 책 아직 안읽었으면 어서 읽으세요. 어서 사요!) 내가 궁금하고 내가 알고 싶었고 그래서 내가 공부하지만, 그걸 단지 '나의 지식'을 풍부하게 하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것. 엘리자베스 워런은 그렇게 했다. 자기 혼자 똑똑해지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사회 현상과 문제점에 의문을 품고 거기에 대해 공부하고, '님들아, 님들 그렇게 고생하는 거 님들 탓이 아니야, 이건 이런 문제가 있는 거야, 우리 이거 이렇게 함께 해결해보자' 라고 하는 거다. 와- 진짜 짱멋지지 않나? 나는 궁극적으로 나의 공부가 이렇게 될 수 있기를 바라지만, 엘리자베스 워런처럼 저렇게 근사하게 살기엔 난 지독하게 변방의 사람이 아닌가. 그래도 한 명에게라도 혹은 두 명에게라도 나의 공부가 어떤 영향을 미치고 또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영향을 미치고 또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는 공부하는 내가 더 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여러번 한다. 지금만해도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내가 큰 회사의 경영자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건 회사내의 성교육 때문인데, 얼마전에 한 성인 남성이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성희롱 예방' 교육을 들으면서,


'술은 장모가 따라도 여자가 따라야 맛이지' 라는 말이 성희롱이라고 강사가 그랬는데, 그게 왜 성희롱인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닌가. 나는 듣자마자 빡치는 발언인데!! 



이런 식으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저런 교육을 듣는다면 그건 '암기'다. 이해가 아니다. 우리 모두 학창시절을 겪어봐서 알겠지만, 암기는 응용할 수 없다. 이해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해를 해야 한다면, 단순히 성희롱예방교육을 할 게 아니라, 페미니즘을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누누이 얘기하지만 사람들은 무식할 때 용감하고 더 크게 소리친다. 알면 그렇게 못한다. 알면알수록 내가 얼마나 모르는지를 알게 되고, 알면알수록 내가 이건 틀릴 수도 있으니까 더 조심하자 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러니까 내가 큰 회사의 경영자가 되어서, 정기적으로 페미니즘 교육을 받게 하는 거다. 페미니즘 강좌를 열어두고. 기초 페미니즘 이론 같은 것은 무조건 듣게 하는거지. 이건 외국어공부처럼 선택적이어서는 안되는 거니까. 이건 성평등에 대한 거니까, 성차별 금지에 대한 거니까, 무조건 듣게 하는 거다. 



주변 내 친구들도 그렇고 페미니즘을 공부하기 시작하는 사람들은, 덩달아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시선이 달라짐을 느낀다고 한다. 내가 얼마나 무지했고 또 성차별에 참여하고 있었는지를 알게 되는 거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순간 세상이 달리 보이고 시야가 넓어진다. 그리고 그렇게 한 번 달라지고나면 결코 옛날로는 돌아갈 수 없다. 그렇게 페미니즘을 알게 되는 순간 저절로 성희롱은 '해서는 안될 것'이라는 인식이 박히게 될 것이고, 그러면 성희롱 예방교육을 암기로 따로 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위에 예시로 든 저 발언이 성희롱이란 걸 이제 '이해는 못하지만', '암기' 했으니, 저 교육을 들은 남자들은 저 말은 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성희롱적인 다른 발언들은 또 숱하게 하게 되겠지. 중요한 건, 페미니즘이다. 페미니즘을 알고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순간, 아, 이런 식의 발언은 안돼, 하고 암기 대신 이해가 찾아온다. 


아아, 내가 좀 더 큰 인물이 되어야 하는데!1

Orz



공부로 세상을 바꿀 수도 있겠지만, 이건 굉장히 원대한 포부라는 걸 안다. 그렇지만 점점 더 아는 사람이 많아지면 좋지 않을까. 공부로 내가 세상을 바꾸지는 못한다면, 내가 한 공부를 사람들과 나눌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내 경우엔 이렇게 글로 쓰기도 하지만, 수업을 듣고 집에 들어갈 때는 내가 그날 무얼 배웠는지, 그래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를 망고남에게 조잘조잘 얘기하고, 다음날에는 회사 직원과 밥 먹으면서 얘기한다. 이런 걸 배웠고 그래서 이런 생각을 했어, 하고. 공부해서 알게 되는 걸 궁극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것도 내가 지향하는 바다. 우리는 결국 더 알고 공부하고 생각하고 깨닫고 그리고 나눠야 하는 게 아닐까?




강좌가 끝나고 친구와 둘이 닭볶음탕을 먹으러 가서 각자의 술잔에 소주를 따랐다. 건배하면서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서로를 다독여주었다. 회사 끝나고 공부하는 거 이거, 정말 쉽지 않은데, 그동안 8주동안 하느라 고생 많았다,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얘기했다. 나는 친구에게 '사실 오늘 공부하지 말고 놀자고 할까 많이 고민했어' 라고 말하니, 친구 역시 '나도 지하철역에서 널 만나니까 가지 말자고 말하고 싶었어' 라고 하더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나 우리 둘다 마지막 수업이니만큼 서로에게 그 말을 하진 않았다. 그리고 수업을 들었고, 그건 잘한 결정이었다. 그렇게 우린 공부의 후기를 나눴다. 확실히 들으니까 좋았어, 피곤했지만 좋았어, 라고. 나는 친구에게 공부해서 좋은 것도 있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꼭 너를 볼 수 있는 것도 좋았어, 라고 하니까 친구도 자기도 그랬다고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서 그동안의 얘기도 하고 그러니까 참 좋았다고. 그래서 우리는 만약 토요일 강좌가 열린다면 또 듣자, 라고 얘기했다. 퇴근하고 와서 듣고 집에 가고 다음날 출근하는 거 너무 힘드니까, 토요일이라면 꼭 다시 듣자고. 토요일 오후라면 뭔가 더 여유롭게 들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오늘 게시판에 토요일 강좌 개설해달라고 건의를 해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진짜 행동력 장난 아니야 짱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제 친구와 밥을 먹고 집에 가서 씻고 자려고 하니 밤 열두시였다. 진짜 겁나 피곤했어. 내가 아침 다섯시 반에 일어나 해 뜨기 전에 출근하는 사람인데, 이렇게 늦은 밤에 내 방 침대에 들 수 있었다. 아 겁나 피곤해. 주경야독은 정말 엄청 피곤한 일이구나. 지난 주에도 그랬는데 이번 주도 마찬가지. 공부한 수요일을 보낸 다음날 아침이면 목소리가 착 가라앉는다. 피곤에 쩐 목소리. 아 더 자고 싶다... 수요일 밤에는 다음날 아침까지 깨지 않고 잠든다. 딥슬립.....




오늘은 술약속이 있고, 몹시 피곤했던 나는 아아, 취소하고 싶다...하고 생각했는데, 취소하고 집에 가서 자고 싶다, 생각했는데, 또 회사 와서 사무실 책상에 앉고 컴퓨터를 켜고 보쓰 방에 한 번 들어갔다 나오니까 겁나 술먹고 싶어지네????????????????????????? 인생.....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제는 아침부터 밤까지 계속 무언가를 했던 하루여서 밤에 피곤하긴 했지만, 잠들기 전에 '아 충족된 하루였다', '풍족한 하루였어' 라고 생각했다. 일을 하고 밥을 먹고 이동하고 공부하고 소주를 한 잔 했지만, 그 틈틈이 좋아하는 사람과 꽁냥꽁냥 즐거운 수다를 지치지도 않고 떨었다. 하루종일 소중한 사람과 함께 있는 것 같은 느낌적 느낌 같은 게 들어서, 잠들기 전에 '아 좋은 하루였다, 풍족한 하루였어' 하고 미소지을 수 있었다. 물론 개피곤했어... 그 와중에 느끼는 풍족함! ♡




어쨌든 강좌를 듣는 공부는 이제 멈췄다. 그렇지만 언제고 다시 시작할거라고 생각한다. 좋은 시간들이었다. 여러분 주경야독 페이퍼는 이제 없어요..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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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7-02-09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쉬르는 어떨까... 생각하면서 찾아보다가 구 인문엠디님이 쓰신 페이퍼 발견
http://blog.aladin.co.kr/pop/3088090

다락방 2017-02-09 13:53   좋아요 0 | URL
어머! 심지어 ‘언어와 진화‘에 관해 책 추천해놓은 페이퍼네요. 완전 짱이다... 이런 맞춤한 추천이라뇨. 감사해요 ㅠㅠ

2017-02-14 09: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14 1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종이달 2022-03-19 0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동사의 맛 - 교정의 숙수가 알뜰살뜰 차려 낸 우리말 움직씨 밥상 한국어 품사 교양서 시리즈 1
김정선 지음 / 유유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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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치다

깁다



바늘과 실이 있다. 실을 바늘귀에 꿰고 옷감을 꿰맨다. 굵고 큰 바늘에 굵은 실을 꿰고 두꺼운 헝겊을 맞댄 뒤 이불 홑청을 호듯 듬성듬성 꿰매기도 하고, 가늘고 작은 바늘에 가는 실을 꿰고 바짓단을 접은 뒤 바늘땀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게 꿰매기도 한다. 옷감을 이어 붙인 뒤 바지 안쪽에 세로로 난 바늘땀처럼 안쪽에서 마치 용수철을 꿰듯 감아 꿰매기도 하고, 해진 자리에 다른 옷감을 대고 꿰매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천 사이에 솜을 넣고 죽죽 줄이 가게 박음질하드 ㅅ꿰맬 때도 있다. 순서대로 쓰면 시치고, 공그르고, 감치고, 깁고, 누빈 것이다. 시치는 일은 시침질, 공그르는 일은 공그르기, 감치는 일은 감침질, 깁는 일은 기움질, 누비는 일은 누비질이라고 한다. 

바늘과 실이 지난 자리엔 바늘땀과 함께 이렇듯 낱말도 남는다. 하물며 사람이 지난 자리야. 시친 듯 지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감친 듯 지난 사람도 있고, 공그른 듯 지나는가 하면 기운 듯 지나기도 하며, 때로는 온통 누비고 다니는 사람도 있으리라.

드물지만 바늘과 실이 사람 몸을 지난 자리도 있다.

어머니의 가슴과 왼쪽 종아리에는 각각 스무 땀과 서른 땀의 꿰맨 자국이 남아 있다. 꽉 막힌 관상 동맥 대신 다리의 혈관을 떼어 내 심장에 연결한 흔적이다.

"사람 몸을 이렇게 누더기처럼 만들어 놓고, 의사들은 참……." 하면서 어머니는 고개를 젓는다. 목숨을 건졌는데 그깟 바늘땀이 대수냐고 나는 무심히 대꾸해 버리지만, 생각해 보면 기가 막히기도 하다. 남이 입을 옷을 짓느라 평생 바느질을 해 온 양반이, 누군가 당신 몸에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하리라곤 상상도 못 했을 것 아닌가.

어머니 몸에 남은 바늘땀을 보고 "바느질 솜씨가 영 형편없네." 하고 내가 짓궂게 놀리면 "그러엄, 이게 누더기처럼 기운 거지 무슨 바느질이니. 이렇게 해 가지고는 밥 먹고 살기 힘들어야." 하며 어머니는 언제 시무룩했냐는 듯 깔깔 웃는다.

'감치다'는 '감쳐, 감치니, 감치는, 감친, 감칠, 감쳤다'로, '깁다'는 '기워, 기우니, 깁는, 기운, 기울, 기웠다'로 쓴다. (p.36-37)




총 302페이지의 책인데 62페이지까지만 읽고 쓰는 리뷰임을 먼저 밝힌다. 대체적으로 책을 읽을 때 앞부분이 좋아도 뒤로 갈수록 힘이 떨어지는 경우도 종종 보아왔으므로 이만큼만 읽고 리뷰를 쓰는 건 지양하는 편인데, 이 책에 대해서라면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는 확신이 든다. 제목 그대로 동사에 대해 마치 국어사전을 펼치듯 설명해 놓았는데, 거기에 대해 저자는 에세이와 또 (본인이 쓴)소설(이라기 보다는 가상의 이야기라고 해야할까-그는 도서관에서 만난 남자 얘기를 자주 풀어놓는다)로써 예를 든다. 동사의 뜻과 활용을 이렇게 맛깔스럽게 풀어놓다니, 이 책은 책장에 반드시 꽂아두고, 동사를 찾아보고 싶을 때 국어사전보다 먼저 꺼내들어야 할, 그런 책이다. 동사의 '맛'이라는 제목은 어찌나 적절한지! 다루는 동사마다 감칠맛나는 글을 덧붙여 두었는데, '감치다'와 '깁다' 편의 저 이야기는 특히나 좋았다. 어머니와의 대화가 완전 생생하지 않은가. 

이것은 사전이면서 동시에 에세이이며 소설이다! 게다가 글을 진짜 지독하게 잘썼어!! 아름다워!!



책 뒷편에 '서평가 로쟈 이현우'가 '바라건대 한국어의 모든 맛을 다시 일깨워 주기를!' 라고 추천사를 썼는데, 완전 공감한다. 나 역시 김정선이 한국어의 모든 맛을 다시 일깨워주기를 바란다. 

여러분, 이 책 진짜 좋다. 읽자. 그리고 책장에 꽂아두자. 동사의 활용이 헷갈릴 때 펴들면 유익할 것이고, 잔잔하고 차분하며 아름다운 글을 읽고 싶을 때 펴들면 또 그대로 만족할 것이다. 진짜 질투나게 글 잘 쓴다.



부르르(질투에 떨리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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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07 1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7-02-07 14:02   좋아요 0 | URL
아 저 아닙니다 ㅋㅋㅋㅋㅋ 다락방 이란 닉네임을 쓰는 다른분 인듯 합니다.

이진 2017-02-07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서 만난 남자 이야기가 궁금한데요, 왜 같이 소개를 안 해주셨나요 다락방님!!

다락방 2017-02-07 14:28   좋아요 1 | URL
소이진님, 안녕?

동사 하나하나에 대해서 짧은 에피소드들이 나오는데, 거기에 종종 도서관에서 만난 남자와의 대화가 들어가 있어요. 소이진님, 이 책 꼭 읽어보세요. 소이진님은 꼭 읽어보셔야 해요. 글 쓰는 분이시라, 이거 진짜 도움 많이 될 거예요!

아무개 2017-02-07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임호부님 글 참 좋죠?
저는 소설의 첫 문장을 읽고 있는데 왠지 소설 준비중이신게
아닐까 하는 느낌적인 느낌이. ㅎㅎ

다락방 2017-02-07 14:36   좋아요 0 | URL
글 정말 질투나게 잘 쓰시더라고요.
게다가 단어에 대해서도 이렇게 잘 알고 계시니, 이런 분이 소설을 쓰신다면 어떤 소설을 쓰실지 너무나 기대 됩니다. ㅎㅎ
소설의 첫문장도 좋은가요? 저도 봐야겠어요.
이 분이 [이모부의 서재]내신 후로 그냥 줄기차게 쭉쭉 책을 뽑으시네요. 본받아야 할 점입니다. ㅎㅎ
그렇지만 이 분에겐 기본기가 너무 탄탄해서...
정말 질투나고 기죽어요ㅠㅠ

2017-02-08 14: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08 14: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08 14: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심야 2017-02-16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옹 그렇군요!! 다락방님께서 질투까지 나실 정도면 정말 얼마나 글을 잘 쓰시는건지 궁금하네요!! 갑자기 읽고 싶다는 욕구가 샘솟는군요!! 장바구니에 넣어둬야겠어요 ㅎㅎ

다락방 2017-02-17 09:41   좋아요 0 | URL
심야님, 에피소드나 예문 자체도 가만가만 좋고요 동사에 대해 정리도 잘 되어 있습니다. 읽으시면 후회하지 않으실거예요! >.<
 
가족이라는 병 - 가장 가깝지만 가장 이해하기 힘든… 우리 시대의 가족을 다시 생각하다
시모주 아키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살림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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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는 십 년 전부터 꽃에 새롭게 눈을 떠, 우리 집 꽃도 그가 장식한다. 들꽃을 취급하는 꽃가게 주인과 친해지는 바람에, 자기 방식대로 자유롭게 꽃을 꽂는다. 그런데 의외로 감각이 좋다. 내가 말하자니 뭣하지만, 때로는 '우와!' 싶을 정도로 꽃들의 조화가 아름답다. 수반이나 꽃병 같은 것드은 내가 전에 취미로 모은 것이지만……. (p.167)




저자는 자신의 남편을 '반려'라 칭하며 시종일관 건조한 시선을 유지한다. 어느정도의 거리도 느껴지고 또 담백한데, 저렇게 꽃에 대해 관심을 가진 자신의 반려에 대해 칭찬한 게 이 책을 통틀어서 가장 친근한 부분이었을 것이다. 내가 만약 결혼이나 동거를 하게 된다면, 나도 나와 함께 사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렇게 건조한 시선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들 부부는 삼십년 이상을 함께 살았는데, 그렇다면 함께 사는 시간이 나쁘지 않았다는 것일텐데, 이렇게 글로 쓸 때는 건조함을 유지하는 게 신기하고 좋아 보였다. 내가 그럴 수 있을까? 난 이렇게까지 건조하진 못할 것 같아. 


자연스레 신형철이 자신의 책에서 낯뜨거운 감사를 했던 게 떠올랐다. 내가 그 부분 때문에 그 책을 안샀고 신형철에 대한 관심을 끊었더랬지... 



자신의 반려에 대한 건조한 시선이 독특했지만 이 책 자체는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고 재미있지도 않다. 각자가 자신의 몫을 잘 살아야 한다는 걸 일찍부터 깨달은 사람의 이야기이고 또 그런 주변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은 인상적이었지만, 확실히 제목이 제일 근사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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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7-02-06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이 느낀 그 지점이 겹쳐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지나친 칭찬, 헌사는 왠지 저도 거부감이...그냥 요새는 왠지 건조하고 좀 담백한 글들이 좋아지더라고요.

다락방 2017-02-07 08:34   좋아요 0 | URL
네, 그간 신형철을 좋아했었는데 자신의 책을 마치 청첩장인듯 쓴 걸 보고 정말 당황스러웠어요. 자신의 책이고 자신이 하고싶은 대로 하는거지만 어휴, 제 취향은 아니더라고요. 그런참에 이 책의 저자는 어찌나 건조하던지. 그 건조함이 나쁘지 않았던게, 건조하다고 해서 그들 사이가 심드렁하거나 무심한 사이는 아닌걸로 보였거든요. 긴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또 아이를 낳지 않기로 서로 얘기한 거라서 그렇게 서로에 대한 신뢰로 함께 오래 살아온 것 같았어요. 그렇지만 ‘반려‘라 표현하며 건조하다니, 참 좋더라고요.
 
여성혐오, 그 후 - 우리가 만난 비체들
이현재 지음 / 들녘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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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기서 모든 남성들이 젠더관계의 이데올로기적 인정을 하고 있다는 것을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지면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남성이라는 단어 앞에 '여성을 혐오하는' 이라는 수사를 붙여 혐오 집단을 제한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이 책을 읽는 남성 독자가 있다면, 나는 스스로 질문하라고 권하고 싶다. 여성의 자율성과 권리를 인정한다고 말하면서도 당신은 대학 내 압도적인 남성 전임교수 비율을 조정하거나, 여성에게 부과되는 양육과 돌봄의 책무를 시정하기 위한 제도를 마련하거나, 성폭력에 시달리는 여성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거나, 여성노동의 저임금화를 극복할 물질적 토대를 고민하는 일을 방기하거나 외면하고 있지 않은가? 제도적 물질적 변화를 강구하기보다 그러한 변화를 요구하는 여성들의 말하기 방법이 잘못되었다거나, 폭력적이라는 점만을 지적하고 있지 않은가? 남녀평등의 수사학을 쓰면서도, 페미니즘 연구 환경의 척박함을 개선하기보다 인용할 만한 수준을 가진 여성 철학자가 없다거나, 여성에서 출발하는 이론이 모두 파시즘적이라고 공격하고 있다면, 당신은 인정의 수사학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사용하는 여성혐오 집단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 p.101-102)

고백하건대 심경이 복잡해진 것은 남성들만이 아니었다. 일부 여성들, 아니 오랫동안 여성철학을 연구해온 내 마음도 복잡해졌다. 메갈리안이 하나의 통일된 집단이 아니라 내부적으로 차이를 보이는 메갈리안들이듯, 여성도 여성들이며 페미니스트도 페미니스트들이기 때문이다. (p.10)

그러던 내가 이제 글을 쓰기로 했다. ‘결국, 난 꼰대였던 거야‘라는 좌절에서 ‘그래, 이왕이면 제대로 꼰대질 하자‘로 마음을 바꾼 것이다. 그동안 궁리해온 페미니즘 철학과 이를 가능하게 해준 페미니즘의 계보들을 인용하는 가운데 내 목소리를 내기로 결심한 것이다. 누군가에게 들리지도 않은 채 소거될지라도 내 언어를 입 밖으로 꺼내보기로 했다.
내가 이러한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비체abject‘라는 개념을 재고하게 되면서였다. 다시 보니 ‘비a-체object‘, 즉 어떤 규정된 대상이 아니라는 말은 참 유용한 언어였다. 어떤 존재를 무엇이다(A) 라고 규정하기 않고, 무엇이 아니다(~A)라고 말하는 방식은 그 존재를 어떤 경계에 가두기보다 그 여분의 공간, 경계의 열림에 위치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페미니즘의 역사는 남성이 정해놓은 위치를 벗어나 경계를 넘나들었던 여성들, 항상 흐르고 있기에 개념적으로 잡힐 수 없는 ‘비-체‘가 되었던 여성들에 의해 쓰인 것이었다. 그녀들이 비판받거나 마년사냥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기존의 언어나 질서로는 파악되지 않는 ‘알 수 없는‘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p.12-13)

여기서 함께 아파함, 타자에 대한 연민, 즉 동정심에 주목해 보자. 기존의 도덕과 법에서 동정심은 매우 커다란 역할을 해왔다. 가령 "동정심은 사회복지 프로그램이나 전지구적 차원의 정의를 위한 해외 원조와 같은 노력을 뒷받침하는 중심적 지주가 될 수 있으며, 취약한 집단이 겪고 있는 억압과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사회변화의 동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동정심이 불평등을 전제로 하는 감정이라는 데 있다. 고통스러워하는 자들에게 동정심을 갖는다는 것은 내가 그들보다 우월하거나 혹은 그들의 수준은 우리의 수준보다 낮다는 믿음을 포함한다는 것이다. 고통스러워하는 자는 고통을 이겨내거나 고통받고 있지 않은 내가 도와줘야 하는 불쌍한 사람이다. 이런 의미에서 길리건과 위긴스는 동정이 사랑과 별 상관 없는 말이라고 한다. 오히려 누군가를 동정한다는 것은 그/녀를 진정 사랑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왜냐하면 동정은 대상에 대한 나의 우월성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p.96-97)

공감은 자아와 타자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공감은 서로 다른 사람들 간의 정서적 결합관계인 것이다. 여기서 다르다는 것은 우월이나 열등과 같은 불평등이 아니라 서로가 처한 사회적 상황과 경험이 잠정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기에 사람들은 공감 안에서 서로의 다름에 주목할 수 있게 된다. 나아가 공감은 내가 타인의 삶에 참여participate하는 태도이다. 공감은 타자를 "판단하거나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진정으로 누군가의 감정을 함께 느낀다는 것은 "그의 곁에with"서 나와 다른 그의 상황과 감정을 함께 경험한다는 의미이지, 그와 동일하게 느낀다거나 그의 옆에서 거리를 두며 그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공감을 통해 나는 나와는 다른 타자의 감정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p.131-132)

가령 누군가 고통스러워할 때, 나의 경험에 비추어 그/녀를 판단하기보다 그/녀가 처한 상황이나 조건, 경험들에 관심을 기울이는 가운데 그/녀의 고통에 참여한다면, 나는 이를 통해 경험의 폭을 확장시킬 수 있다. 타자의 차이를 경험하는 공감은 타자 속에서 자신의 동일성을 확인하는 동감과는 대조적이다. 자아와 타자가 서로 다르다는 생각에서 출발하는 공감은 타자의 곁에서 타자의 경험에 참여하는 가운데 타자의 다름을 경험한다. 따라서 공감은 경험의 확장 속에서 자아 자체를 변화 시킨다.
마지막으로 공감은 서로에게 정서적으로 반응하는 관계, 즉 "상호감응responsiveness to each other"하는 관계이다. (p.13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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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7-02-05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의 경험에 비추어 가 아니라 상대가 처한 상황 등에 관심을 기울여 상대의 고통에 참여하는 것이 공감이군요. 많은 생각 하고 갑니다.

블라디보스톡은 좋았나요?^^

다락방 2017-02-06 08:20   좋아요 0 | URL
동정이나 동감과는 다른, 상대와 같은 위치에 서고자 하는 마음인 것 같아서 참 좋더라고요. 역시 공감이 살 길이기구나 싶었어요. 그러고보면 많은 문제들이 공감하지 못해 일어난 일인 것 같고요.

블라디보스톡은 막 좋았던 건 아니고요 ㅎㅎㅎ 가서 추위를 제대로(!!) 느끼고 왔습니다. 볼 찢어질 것 같은 순간들은 어찌나 많던지요.. 하하하하하. 저는 러시아 찬바람 맞으러 다녀왔다 생각합니다. ㅋㅋㅋㅋㅋ

아무개 2017-02-06 0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하하 저도 딱 저 부분 강조해서 발췌했었는데요!!!

공감이 중요하죠. 그럼요 그럼. ‘독서공감‘ 처럼요 *^^*

내일이 첫강의시간인데 뭔가 긴장됩니다.
한개도 못알아 먹을꺼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ㅡ..ㅡ

다락방 2017-02-06 08:18   좋아요 0 | URL
책 내용이 좋긴 했는데 되게 학술적인 논문의 느낌이라 저는 만족스럽진 않았어요. 이렇게 안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좀 더 쉽게 어떻게 안될까? 라고 어제 책장을 덮고 고민하다가, 역시 내가 쓰자...라고 생각하다가...음 그렇지만 공부가 부족해, 갈 길이 멀다... 했어요. 아하하하하.

저는 내일 강의 신청 안했어요. 사실 안들을 생각이긴 한데, 아직까지 확 결정한 건 아닌것 같고... 하아- 몰라요. 어쨌든 잘 다녀와요!

아무개 2017-02-06 08:26   좋아요 0 | URL
저는 바로 그 학술적인 논문 느낌이라서 좋았거든요.
입문서 보다는 조금더 깊이 있게 하지만 그리 어렵지 않은 수준.
아마도 각자가 책에서 기대하는 바가 달라서 그런듯요.

넵. 근데 첫 강의부터 쥬디스 버틀러 라니 크흡.


다락방 2017-02-06 08:33   좋아요 1 | URL
저는 제가 듣지 않는 것에 대해 뭔가 스스로 변명을 만들고 있어요. ㅎㅎㅎ 2월달에 둘째주와 넷째주에 많이 늦을테니 안듣는게 낫다...라고 스스로 합리화 ㅋㅋㅋㅋㅋ 듣고 싶은데 정말 피곤하더라고요 ㅠㅠ 저는 봄이나 여름에 또 하면 그 때 노려보려고요.

이현재 선생님은 강의에서도 말씀하셨었는데, 본인이 온건파 페미니스트였다고 해요(책에도 나오지요?). 그런데 온건파로 있다보니 아무도 그 말을 안들어주는 것 같아서 극단적인 페미니스트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고요. 쎄게 주장해야 그나마 들어주는 척이라도 한다고... 이 책이 뭔가 확 새롭다기 보다는 기존의 우리가 알고 있던 흐름을 잘 정리해준 것 같은데, 메갈리안과 워마드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는 게 아니라서 뭔가 든든하고 좋더라고요. 게다가 이 분 강의가 저는 제일 좋았어요. 본인이 열정과 흥미를 갖고 계시고 잔뜩 흥분한 채로 설명하셔서 참 좋더라고요.

아무개님, 공부 화이팅!!
 
















어제 강의 주제는 <페미니즘과 정치경제학> 이었다. 가기전부터 나는 '정치경제학'은 정말 어려운데..하면서 징징거렸더랬다. 수업을 제끼고 싶었지만, 이미 지난주에 제끼고 돼지고기김치찌개를 먹으며 놀았기 때문에 이번 주는 어쨌든 꾸역꾸역 가기로 했다. 지난주에는 일도 많았고 해서 정말이지 '공부'를 하기 싫었다. 머리 쓰기를 그만하고 싶은 거다. 그런데 이번 주에는 '가기' 가 싫더라. 아... 멀어... 2월강의를 들어 말어 고민하다가 어제 아침에 '2월엔 듣지 않겠다' 딱 마음을 먹었더랬다. 나는 겨울에 밤에 집에 돌아가는 게 너무 싫고, 그러니 기회가 된다면 봄이나 여름쯤에 다시 강의를 듣는 걸로 하자..라고 결심하고 마음이 편해졌더랬다. 이미 신청해둔 강의는 다음주면 끝난다. 그러니까 어제 포함 두 번이 남은 상태. 회사 동료  e가 저녁 먹자고 했지만, 힘겹게 '안돼, 공부하러 가야돼' 하고 말하고는 공부하러 갔다. 가면서 계속 망고남에게 '정치경제학 어려운데' 하면서 징징댔다. 정치경제학이라니..



그런데!! 내가 듣기 시작한 이래로-한 주 빠지긴 했지만- 가장 재미있는 강의였다. 가르쳐주시는 이현재 쌤은 본인 스스로가 이 학문, 이 지식 자체를 너무 감탄하며 흥분해서 그 열정과 에너지가 고스란히 전해지는거다. 수시로 '여러분, 너무 놀랍지 않아요?' 하면서 손짓을 섞어서 나중엔 일어나서 설명하시는데, 와, 저절로 수업참여가 되는 거다. 정치경제는 나에게 정말 어려운 거였는데, 어제는 너무 재미있게 느껴지고, 이만큼을 살면서도 잘 알지 못했던 자본주의와 경제의 흐름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되어서 너무 짜릿한거다. 자꾸 흥분이 돼!!



어제 중심으로 설명한 교재가 저 책, 《그따위 자본주의는 벌써 끝났다》 였다. 이 책은 페미니스트 경제 지리학자 '줄리 그레엄(Julie Graham)과 캐서린 깁슨(Katherine Gibson)'의 합작품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필명은 이 둘의 이름을 따 '깁슨 그래엄' 이라는 거다. 이 둘은 이 필명으로 그 후에도 경제서를 낸다.



어제 한꺼번에 머리에 들어온 지식을 내가 잘 정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무릇 정리라는 건, 내가 확실히 알아야 가능한 것인데, 어제 받아들인 것만으로 밖으로 내보내는 게 가능할까. 내가 잘 알아야 밖으로 내보낼 수가 있는데. 어제 들은 것만으로는 그저 내 안에서 꿈틀댈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그러니까 그간 많은 경제학자들은 '경제=자본주의' 인것처럼 여겨왔다. 좌파들은 이런 자본주의를 없애야 할 것, 사회악으로 취급하다보니 자본주의는 어느 순간 어마어마한 괴물이 되었다는 거다. 자본주의를 경제의 유일한 언어로 생각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안을 마련할 수 없었다는 것. 이에 대해 깁슨-그래엄은 '다른 언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러면서 하나의 고유한 언어, '자본주의'를 '대문자 자본주의'라 표시했는데, 어제 받은 프린트물의 설명을 빌리자면, 


'대문자 자본주의는 동료나 대적자가 없다는 점, 그 자체가 하나의 범주로서 존재한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특정 사회 구성체 내에서 완벽하게 실현되었을 때 지배적이거나 단독으로 존재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점에서 단수성을 드러낸다. 하나의 독특한 경제 형식으로서, 대문자 자본주의에 필적하는 건 전혀 없다' (그따위 자본주의는 벌써 끝났다, p.256)


라는 거다. 그러면서 대안을 제시하고자 하고, 다른 언어를 드러내려하고, 유령을 불러내는 방법들이 시도되는데, 이 모든 과정들은 기존에 페미니즘으로부터 시작됐다는 거다. 자본주의를 대문자 자본주의로 명명하기 시작한 것부터, 하나의 언어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으므로 다른 언어를 찾아내려 한 것, 하나로만 규정되어진 것-그래서 다른 하나는 자연스레 결핍이 되는 것-에서 벗어나려 하는 것들이, 다 페미니즘적 방법과 시각으로 부터 나왔다는 거다. 그래서 자본주의 자체를 남근중심주의와 연결할 수 있다는 거다. 당연히 깁슨-그래엄은 이 연구를 발표한 후에 아주 많은 사람들로부터 미친년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쌤은 여성혐오에 대한 것을 곁들여 언급하셨다.



사람은 하나가 보이기 시작하면, 그 후의 세상은 그 전과 완전히 달라진다. 그 후에는 그 전과 같은 시각으로 볼 수가 없고 돌아갈 수가 없다는 것. 지금 우리가 여성혐오를 알고 페미니즘을 알고난 후에는 그전에 보지 못했던 것들이 다 보이기 시작한다는 거다. 이 과정에서 페미니즘을 여전히 모르는 사람들은 당연히 그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는 것. '이게 왜 여혐이냐' 부터 시작해서 페미니스트들을 향해 온갖 비난이 쏟아지는데, 이 모든 과정을 저 '대문자 자본주의'를 명명한 깁슨-그래엄이 고스란히 다 겪었다는 거다. 그렇지만 십년 후에 또다시 그들이 책을 냈을 때, 그 당시 그들을 미친년이라 불렀던 많은 사람들이 그 연구를 함께 하고 있다고 했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나 역시 느낀건, '몰랐을 때 그 목소리가 오히려 더 크고 당당하다'는 거다. 모르니까. 자신이 무얼 모르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공부할 시도조차 하지 않고, 모르기 때문에 폐쇄적으로 막혀 있어서 다른 이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경제에 있어서 시장-임금-자본주의가 표준 모델이 되어왔다. 그러나 깁슨-그래엄은 그외에 다른 것들이 분명히 경제 안에 존재함을, 경제를 그저 자본주의로만 퉁칠 수 없음을 증명하기 시작한다. 임금이 지불되지 않는 노동이 있고, 비자본주의적인 공동체 집단들이 있으며, 경제흐름 자체가 비시장적인 것들이 있다는 것. 국가적 배분, 이삭줍기, 사냥, 고기잡이, 가사노동, 친인척 돌보기, 공동체, 협동조합, 봉사활동 등등. 자본주의라는 것 안에 뭉뚱그려 넣을 수 없는 맣은 것들이 자본주의 밖에 있었던 거고, 그걸 빼놓고 경제를 설명하다 보니, 대안을 제시할 수 없었다는 거다. 여기서 다시 프린트물을 인용하자면,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비자본주의적 경제들의 유령을 불러 모아 놓고 보니 우리가 기존에 자본주의적이라고 알고 있던 것들이 사실상 순수한 자본주의가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프린트물, p.7)




그리고 남근중심주의를 설명하면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가져왔다. 프로이트가 인간을 설명할 때 기준을 남자(페니스)로 잡았다는 것. 그리고 여자를 설명할 때, 여성의 성기(보지)가 있다고 표현하는 게 아니라, '페니스가 없는' 존재로, 그 존재 자체를 결핍된 것으로 전제했다는 것. 이 점이 프로이트가 페미니스트들로부터 욕을 먹는 지점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양쪽이 다 존재한다는 설명을 하기 위해서라면,



남자에겐 자지가 있고 여자에겐 보지가 있다


로 설명해야 하는데, 


남자에겐 자지가 있고 여자에겐 자지가 없다


로 설명했다는 것.



이렇게 자본주의와 페미니즘을 연결해서 설명해주는데 너무 신나가지고, 막 흥분해가지고, 아아, 안되겠다 2월달에도 나는 이 강의를 듣겠어!! 라고 막 아침에 했던 결심을 바꾸게 된 것이었던 것이었다.



여태 들었던 강의 중에서 제일 흥분한채로 설명한 쌤이어서 나 역시 만족스럽게 흥분하며 들었는데, 아 글쎄 이분이, 저 책, 《그따위 자본주의는 벌써 끝났다》를 번역한 분이면서 동시에, 《여성혐오 그 후,》의 저자이기도 하신단다. 와우- 그래서 여성혐오까지 함께 설명해주시는데 막 흥분됐어!! >.<


















《그따위 자본주의는 벌써 끝났다》는 읽기에 좀 어려운 책이라고 하셨다. 그렇지만 어제 저렇게 맛보기 강의를 듣고나니 너무 읽고싶어졌다. 내가 다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마 그건 불가하겠지만, 아아, 도전하고 싶다. 그리고 《여성혐오 그 후》도 읽고싶고...



이렇게 맛보기 강의가 끝나고 질문과 대화 시간이 이어졌다. 한 수강생이 요즘 《아내가뭄》을 읽고 있다며 자기 의견을 얘기하더라. 그렇게 대화가 도는 중간에, 나도 덧붙였다. 나도 아내가뭄을 읽었다, 호주 작가가 쓴건데 거기에 보면 스웨덴 사례가 나온다, 스웨덴에서는 아빠들의 양육휴가를 의무화 한다고 했다, 우리는 기존에 양육이 엄마의 몫이어서 직장생활을 하다가도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엄마가 튀어가는 게 너무나 당연했는데, 그래서 직장에서도 여성들을 채용하지 않으려고 하는 현상들이 생겼는데, 아빠가 아이의 탄생때부터 저렇게 함께 육아를 하게 되면 직장에서 그런 일이 발생했을 때 아빠들이 아이에게 찾아가는 경우도 많고, 경력단절이란 것도 아빠와 엄마가 함께 겪게 된다, 좋은 해결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우리에겐 갈 길이 먼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라고 얘기했다. 내 얘길 듣고 쌤은, 그렇지만 우리는 강하게 주장해야 한다고 하셨다. 자기는 온건파 페미니스트였는데, 그렇게 온건파 페미니스트로 살아오면서 주장해봤자 아무것도 듣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최근에 생각이 바뀌었다는 거다. 쎄게, 아주 강하게 얘기해야 듣는 시늉이라도 하고 뭐라도 좀 바꿔보려고 하니, 아주 쎄게 강하게 주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거다. 그러면서 워마드까지 언급하셨는데, 아아, 강의가 너무나 재미있었어...

그 수업에 나 역시 적극적 참여를 할 수 있어서(아내가뭄을 내가 이미 읽었지!! 우하하하하) 신났고. 그렇지만...



질문과 토론이 이어지다보니 밤 열 시가 된것이야...집에 가고싶어...다음날 출근도 해야하는데.... 그래서 열시쯤 손을 들고, 저희는 먼저 가보겠다, 집이 멀다고 얘기했더니 이제 정리하자고 해서 정리를 했다. 그렇게 강의실에서 열 시에 나왔는데, 친구와 나는 배가 고팠고, 가까운 분식집에 들러 후다닥 그야말로 후다다닥 밥을 먹고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친구는 2월강의를 안듣겠다고 했고, 나 역시 어제 아침까지 그런 결정을 내려놓고 이제 편해지자 싶었는데, 어제 강의를 들으면서 또 흥분이 되고 공부하고 싶어져가지고... 난 들어야겠다고 결심했어, 라고 친구에게 말했는데,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역에서 환승을 하다가 술취한 아저씨를 보게된 거다. 술에 취해서는 역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아..싫다..피로해...피곤해...저런 꼴 보기 싫어...난 진짜 밤에, 특히 겨울 밤에 늦게 돌아다니는 거 너무 싫어... 안되겠어, 강의를 듣지 않겠어..로 다시 결정 번복... 


어제 집에가 씻고 자려고 누우니 열두시가 넘더라. 그리고 오늘 아침 다섯시 반에 알람이 울려도 일어나기 힘들었고, 결국 05:44에 엄마가 내 방에 들어와서 '너 왜 못일어나' 하면서 깨워가지고 일어났다. ㅠㅠ 그랬는데 목소리가 팍 잠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힘들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졸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나 졸리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그래서 또다시 결심했다. 안들어, 2월달에 안들어. 그냥 책보면서 혼자 공부할래 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러다가 여름쯤에 강의 생기면 그 때 다시 들을래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힘들어 ㅠㅠㅠㅠㅠ피곤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졸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런데 공부하는 거 진짜 너무 신난다. 신난다는 걸로는 이 감정이 제대로 전달이 안된다. 정말이지



씐나~



제기랄 ㅋㅋㅋㅋㅋㅋㅋ 중고등학교때 이렇게 공부했으면 대학을 잘갔을거고, 대학때 이렇게 공부했으면 제기랄 ㅋㅋㅋㅋㅋㅋㅋㅋ지금 국회의원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 국회의원이면 내가 세상을 어떻게 바꿔놨을지 모르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왜 하필 공부재미 이렇게 늦게 알아가지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인생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사람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구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난 늘 내가 완벽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얼굴도 예쁘고 성격도 좋고 그런 완벽함이 아니라, 혼자 생활할 수 있는 완벽. 나는 외로움도 심심함도 거의 느끼질 못한다. 그러니까 외롭다거나 심심하거나 이런 감정들이 잘 생기지 않는 거다. 혼자 있으면 그 혼자 있는 시간을 너무 좋아하고 친구를 만나면 친구를 만나 얘기나누는 걸 그대로 또 너무 좋아하는 거다. 그런데 이렇게 공부까지 하게 되니, 진짜 내가 앞으로 결혼 따위 하지 않고 혼자 지내게 된다고 해도 아무 부족함이 없을 것 같은 거다. 혼자서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공부도 하고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산책도 하고 여행도 다닐 수 있는데, 대체 나에게 부족한 게 뭐란 말인가! 공부를 하면서 내가 좀더 완전해지는 것 같다. 그래봤자 완전체, 완벽체라는 건 존재할 수 없겠지만... 내가 너무너무 좋은 거다!



이번 블라디보스톡 여행을 가면서도 그랬다. 그러니까 가기 전에 짐을 챙기고 옷을 입으면서, 아, 겨울여행을 다시는 하지 말아야지, 이거 원 옷도 껴입어야 하고 짐 부피도 늘어나고, 여행은 겨울에 할 게 아냐...라고 생각했던 거다. 그런데 막상 블라디보스톡에서 볼 찢어지는 바람을 맞으며 바닷물이 언 걸 보고, 어딜 둘러봐도 얼음이나 눈인 걸 보게 되고, 또 그 언 바다 위를 걷는 사람을 보노라니, 그 자체만으로 너무 신나는 거다! 악!! 너무 좋아!! 여기 왔더니 이런 풍경이 펼쳐지고, 겨울은 겨울대로 이렇게 추운 날씨는 추운 날씨대로 그대로의 생활 풍경을 맞닥뜨리게 돼, 좋아, 흥분돼!!! 막 이렇게 되는 거다. 그러면서 아, 나란 인간 별 수 없구나, 나란 인간, 세상을 행복하게 살기 위해 세팅되어 있는 사람이야...라는 생각이 드는 거다. 후훗. 참...완벽에 가까운 인간이야, 나란 인간은...



게다가 여행 친구가 너무 좋다! 물론 우리는 그간 여행을 다니면서 서로에게 최적화 된 것도 있지만, 친구는 여행 가기 전에 공부를 막 해오는 스타일이고, 나는 먹을 것만 찾아본 다음에 먹을 것만 계획하는 사람이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자, 이제 킹크랩 먹을 차례야' 라고 하면 친구는 지도를 찾고 방향을 가리킨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리고 '자 이제 에클레어 먹으러 가자' 하면 친구는 또 지도를 검색해서 이쪽으로 가야돼, 라고 하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다 나는 때가 되어 '자, 이제 샤슬릭 먹으러 가자' 하니까 또 친구는 '이제 아까 그쪽으로 다시 가야돼' 막 이러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지간에 블라디보스톡 바람이 진짜 너무 씨게 불어가지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와인 두 병 든 가방까지 휘청였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와인 두 병 안들고 있었다면 러시아 칼바람에 휩쓸려갈 뻔 했다!!!!!!!!!!!!!!!!!!!!! 와인이 무거워서 다행이었지 뭐야!!!!!!!!!!!!!!!!!!!!!!!!!!!!!!!!!!!!



여러분, 와인 두 병 덕에 저는 살아돌아올 수 있었어요!!!



자, 블라디보스톡의 풍경이다. 사실 사진을 더 많이 찍고 싶었지만, 진짜 손시려워 죽을 뻔해가지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찍을 수가 음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너무 손시려 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정말 손시려웠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날씨가 너무 추워서 핸펀 방전되기도 했다. 









방전된 핸드폰은 에클레어 먹으러 가서 녹여서 다시 킬 수 있었다.



이 예쁜 에클레어는 먹기 위해 곧 이렇게 초토화된다.



그리고 샤슬릭을 먹기 위해 들어갔던 레스토랑.



우리가 주문한 러시아 스프.






저 옆에 하얀 건 요거트인데 저걸 스프에 부어 먹는 거란다. 우리는 안에 beef 가 들어간 걸 시켜서 먹었는데, 따뜻한토마토스파게티국물맛+순대국 같았달까. 그런데 요거트 부었더니 못먹겠더라 ㅋㅋㅋㅋㅋㅋ일단 막 퍼먹은 다음에, 앞접시에 담아서 요거트 부었더니 ㅋㅋㅋㅋㅋㅋ 한 입 먹고 그건 못먹겠어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지만 샤슬릭은 맛있었다. 나에겐 킹크랩보다 확실히 이쪽이 나았다. 원래 킹크랩 먹을라고 간건데 ㅋㅋㅋㅋㅋㅋ 여행은 뭐 이렇지 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내가 흥분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게 몹시 좋다. 매우 기쁘다. 그러니까 낯선 곳에 가면 낯선 대로 흥분을 하고, 새로운 걸 알게 되면 너무 좋아서 또 흥분을 하고, 먹을 걸 보면 먹는다고 흥분하고..................(응?)



어쨌든 지금 너무 졸려가지고 ㅠㅠ 2월 강의는 안들을래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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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2017-02-02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벽한 다락방님!! 너무나 좋네요. ㅋㅋㅋㅋ 이현재선생님 기억해 뒀다가 저도 나중에 강의 들을래요. 봄에요 ^^ 소개해 주셔서 고마워요~

다락방 2017-02-02 10:31   좋아요 0 | URL
네 손짓까지 섞어서 강의를 해주시는 바람에 뭔가 이해가 잘 되더라고요. 게다가 선생님 본인이 갖고 계신 고유의 열정과 흥분이 그대로 다 드러났어요. 전 흥분 드러나는 거 진짜 좋거든요. 어제 강의는 좋았어요. 헤헷. 완벽한 저를 (응?) 좋다고 해주셔서 고맙습니다!1 >.<

아무개 2017-02-02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현재 선생님 강의 들었군요.
여성혐오, 그후 책이 굉장히 좋았어요. 다락님도 꼭 읽어 봤음 좋겠어요.

다락방 2017-02-02 10:31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어제 그 책 쓰셨다고 강의 중에 말씀하시길래, ‘어? 며칠전에 아무개님이 책 전체에 밑줄 긋고 싶다고 한 그 책이잖아?!‘ 하고 생각했더랬어요. 읽어보려고 장바구니에 담아뒀어요. 언제 살지는 모르겠지만 다음번 지름에 넣겠습니다!

비연 2017-02-02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라디보스톡... 가야겠다는 생각이 불끈 나네요.... 락방님. 멋지세요. 공부도 그렇고 여행도 그렇고^^

다락방 2017-02-02 10:46   좋아요 0 | URL
비연님. 책읽기도 좋고 글쓰기도 좋고 여행도 공부도 다 좋아요. 히힛. 다 좋아서 다 신나고 그래요. 매일 매일 새벽에 눈을 떠서 회사에 나오는 건 너무나 싫지만 ㅠㅠ 이걸 해야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면서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인생은 이런건가봅니다.... 휴우-

캐모마일 2017-02-02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다 읽고 댓글 남깁니다. 강의 걱정하셨는데 정작 내용 설명 읽고 고개를 끄덕 끄덕했어요. 제가 꼭 읽어봐야겠구나 의무감이 생길만큼요. 마무리는 블라디보스톡 먹방으로 끝났는데 어색하지가 않고 아 먹고 싶다 했네요. 홀린 기분이에요.ㅎㅎㅎ

다락방 2017-02-02 17:16   좋아요 0 | URL
저는 어제 강의 듣는데 뭔가 막 뇌가 깨어나는 느낌이었거든요. 어제 수업 당시에는 막 쑥쑥 빨아들일 것 같았는데, 돌아서면 다 까먹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그런데 오늘 프린트물 보고 생각해보니 전부는 아니지만 어느 부분 생각나면서 또 재미있더라고요. 점심시간에는 같이 밥먹는 동료에게도 설명해줬어요. 저 책은 그래서 저도 읽어보려고 해요. 어렵겠지만 도전해볼까 생각중입니다.

홀린 기분이라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글을 잘 쓴거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캐모마일님!! 히히히히히

단발머리 2017-02-06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자 이름으로는 추측하기 어려워서 검색해 봤더니 여자분이네요~~ 그 분 책들도 기억해두고 찾아 읽어봐야겠어요. ^^

블라디보스톡은 정말 근사하네요. 저도 추위가 질색이라 추운곳으로의 여행은 정말 별로지만 ㅠㅠ 얼음바다와 에클레어는~~ 아하... 샤슬릭~~~ 눈을 뗄수 없어...
사진 저장했어요.
언젠간 반드시 먹어주리라~~

주경야독 코너는 계속 되어야 합니다.
다락방님은 잠이 부족해 피곤하겠지만
매주 읽어가는 이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기에.. ㅎㅎㅎ

다락방 2017-02-06 13:26   좋아요 0 | URL
저도 겨울엔 여행가지 말아야지 결심에 결심을 했지만 막상 가서 언 바다 위를 걷는 사람들을 보는데 괜히 제가 막 신나더라고요. 저는 얼음 바다 위를 걷지도 않았는데 말예요. 여행은..참 묘한 것 같아요. ㅎㅎㅎ

으윽, 저 2월달부터는 안듣겠다고 마음 먹었는데(당장 내일부터 시작이에요), 단발머리님의 댓글을 읽으니 아아, 공부해야 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또 하게 되고요.. 아아 오늘 또 충분히 고민하고 갈등해봐야겠어요. 아니야, 안듣기로 했으니까 듣지 말아야 해...피곤해..... 아니야, 그렇지만 공부 재미있잖아, 하자.... 이러다가. 아아.

요즘엔 그런 생각해요. 공부를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도 있지만, 자기가 공부한 걸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은 것 같다, 공부의 궁극적 의의는 거기에 있는 게 아닌가..하는 거요.
저는 오늘 또다시 고민하겠습니다. 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