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간 책 - 오염된 세상에 맞서는 독서 생존기
서민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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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도 내공이 있다면 꼭 한 번 이렇게 사회와 제도를 비판하는 리뷰를 써보고 싶다. 내가 쓰는 책 감상이라는 것은 고작해야 나의 일상과 나의 생각과 나의 경험을 버무릴 뿐인데, 서민의 서평은 사회를 녹여낸달까. 거기에 부조리한 것에 대한 비판까지 놓치지 않으니 '날카로운' 독후감 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확실히 나보다 시야가 넓은 분이렸다. 읽는 내내 '나도 이렇게 쓰고 싶다' 하는 생각을 했다. 깔 거는 확실히 까면서 쓰는 글쓰기라니. 물론 아, 이러다 잡혀가시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들긴했지만...

 

아는만큼 보인다고 하는데, 서민의 독후감을 읽노라니 아, 이렇게 아는 게 많으면 책 읽으면서 생각이 쭉쭉 뻗어나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내가 아무리 소설을 좋아해서 소설을 읽는다고 해도 다른 쪽의 책들도 자꾸 들춰봐야 할 일이다. 신문도 더 많이 읽고. 그래야 내 책 읽기 또 거기에서 오는 글쓰기도 더 넓어지고 깊어질테니.

 

언제나 서민의 글은 읽으면서 '어렵지 않아' 좋다고 생각했는데, 정치와 과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어렵거나 못알아듣겠는 부분들이 없다는 것은 역시 그의 가장 큰 장점이다. 본인이 많이 알고 있다면 그것을 드러내기 위해 어려운 말로 포장하려고 하는 경우도 종종 보게되는데, 서민에겐 그런 게 없다. 처음부터 나는 서민의 그런 글쓰기를 높이 샀더랬다. '나만' 아는 글을 쓰는 게 아니라 모두가 읽을 글을 쓰는 것. 이 서평집은 그런 대표적인 예다.

 

서평집의 특징 답게, 나는 여러권의 책을 보관함에 넣었다. 책을 읽으면서 자꾸 스맛폰을 꺼내들고 북플에 들어가 '읽고싶어요'를 체크해야 했다. 내가 읽은 책들을 만났을 때는 반가웠고, 책 리스트중에 [정희진처럼 읽기]가 있었던 것도 무척 뿌듯했다. (내가 정희진인 것도 아닌데 그게 왜 뿌듯?)

 

이 서평집은 크게 세 부분, [사회], [일상], [학문] 으로 이루어져있다. 읽다보니 사회와 일상, 학문에 대한 통찰력 있는 글들이 가득한데, 후훗, '사랑'에 대한 글은 없더라. 옳지, 이거다. 내가 지금부터 아무리 노력해도 이만큼 사회와 제도를 비판하는 글을 쓰는 건 힘이 딸릴 터, 서평집의 양대 산맥을 이루기 위해 나는 사회와 학문을 포기하고, 그 자리에 사랑과 연애를 넣겠다!!! 그래서 정정당당히 서민과 승부를 겨루겠다!!!

 

음..결론이 왜 이렇게 났지?   (  ")

 

 

지난번 서민의 책도 엄마께 읽으시라 권해드렸는데, 이 책도 권해드려야겠다.

 

 

아,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꼭 한마디 하고 싶어 책 모퉁이를 접어두었던 부분이 있다.

 

 

"요즘 뭐, 어머니의 희생은 많이 회자되지만, 아버지의 희생에 대해 말하는 것은 좀 촌티가 나는 걸로 여기는 사람도 많잖아. 알코올중독 아버지, 폭력주의 아버지, 권력 지향 부정부패 아버지, 아버지 이미지는 이런 식이야. 아버지들이 만든 안락에 기대 살면서도 그래. ‥‥‥그 양반의 당신의 꿈을 버리고 치사해져버렸기 때문에, 그나마 내가 배우고 굶지 않았다는 거."( 책 속, '박범신의 [소금]' 인용부분)

이 말이 유난히 공감이 갔던 건, 어린 시절 맞고 자란 기억 때문에 내가 아버지를 제대로 보지 못한 건 아닌가 싶어서였다. 아버지 덕분에 내가 배우고 굶지 않았으면서. (p.174)

 


어떤 아버지였는지 내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을 한다는 것은 조심스럽지만, 이 말을 꼭 하고 싶다. '아버지 덕분에 내가 배우고 굶지 않았으면서' 라고 느끼는 심정은 잘 알지만, 그것은 아이가 아버지에게 당연히 받아야 하는 것이라고. 고맙고 감사해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나쁜 게 아니지만, 아이가 아이로서 부모에게 받아야할 것이 바로 그런 것이라고. 물론 그런 현실에 놓이지 못하는 많은 아이들이 있지만, 그게 잘못된 것이지 아이가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고 보살핌을 받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거란 사실을 꼭 말하고 싶었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이 잘 전달되지 않는 것 같아 답답한데, 음, 그러니까 이 책의 저자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은 당신은 받아야 할 것을 당연히 받은 것 뿐이라는 사실이다. 아이라면 그래야 했다.

 

또한 지금 당신에게 쏟아지는 관심과 애정도-그것이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누군가의 것이든 혹은 잘 알지 못하는 곳에 있는 팬의 것이든-, 당신이 다 당연하게 가져가야 하는 것이다. 당신의 말이나 행동 성격들이 그렇게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혹여라도 사랑해주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하다는 마음이 든다면, 그건 그대로 감사하면 되지만, 어쨌든 모두가 당신이 해낸 것이고, 당신이어서 가능한 것이었으므로 당신이 다 당연히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을 꼭 하고 싶었다.

 

 

 


 

(정희진처럼 읽기) 그분의 글이 늘 그렇듯이 이 책도 내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고, 나는 또다시 낙타가 된 채 그분의 말을 온몸으로 흡수했다. 이를테면 이런 구절. "권력 관계가 지배자의 성찰로 뒤바뀌는 경우는 없다."(91쪽) 남자들이 집안일을 하지 않는 것은, 안 해도 되었기 때문이다. 집에서 손 하나 까닥 안할 수 있는 권력, 남자들은 그걸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군대`, `나라의 특수성`, `임금격차`를 갖다 붙인 거였다. (p.91)

(콜레라는 어떻게 문명을 구했나)사후의 일이기는 하지만 스노가 바라던 안전한 물 공급은 결국 이루어졌고, 이제 웬만한 나라에서는 콜레라 환자를 찾아보기 힘들다. 국정원이 바라는 것처럼 유우성이 결국 간첩이라고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국정원에도 상하수도 시설을 만들어 국정원을 망치는 더러운 물을 차단해야 한다는 것. 하지만 결국 스노의 의견을 받아들인 빅토리아 여왕과 달리 우리나라 대통령은 국정원이 깨끗해지는 걸 바라지 않는 것 같아 걱정이다. 괜히 감첩으로 몰리지 않게 우리가 정신 차리고 살아야 하는 이유이다. (p.87)

(마음을 읽는다는 착각)현실에 이런 대통령이 만일 존재한다면, 그분이 자기중심성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른 사람과 끊임없이 만나 그들의 말을 경청하는 것, 이게 출발점이다. 물론 바쁜 일정에 수많은 사람을 만나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니, 대안을 제시하겠다. 『마음을 읽는다는 착각』을 반복해서 읽는 것. 최근 읽은 책 중 이만큼 내게 깨달음을 준 책은 없었고, 나 또한 스스로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책 읽기에도 시간이 없다고 투덜댈 것 같아 가사으이 그분에게 말씀드린다. "이 책 다 읽는 데 7시간 정도면 충분합니다. 아무리 바빠도 국가와 국민을 위해 그 정도 시간도 못내십니까?"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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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02 1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5-03 15: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transient-guest 2015-05-05 0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분의 책은 아직 한 권도 못봤어요. 그저 눈이 아주 작은 것이 기억하는데, 언젠가 만나면 누가 더 작은지 맞대기라도 한판 땡길 생각입니다.ㅎㅎ 다음에 책을 구매할 때 이 책으로 시작하는 것도 좋겠네요.ㅎ

다락방 2015-05-05 09:48   좋아요 1 | URL
엄마 읽으시라 드렸는데 엄마가 안좋아하시네요. 왜 그네누나 욕하냐고... 하아- 어지럽습니다. 하하하하하.

블랙겟타 2015-05-09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예약으로 샀었는데 며칠전부터 짬짬히 읽었었거든요. 그런데 다락방님 말 처럼 읽은 뒤 어느새 장바구니에 몇 권의 책이 담겨있는..(응?) ㅎㅎ;;; 태그에 이름이 나오신다길래.. 응? 무슨말인지.. 다락방님 책은 목차에 없는데?.. 라고 하는 찰나. 2..86쪽에서 발견!! 아 이거 였군요.. ㅎㅎ 책 읽다가 다락방님 나와서 반갑더라구요. ㅎㅎ

다락방 2015-05-11 10:07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저 만나서 반가우셨죠, 블랙겟타님! 책 속의 저를 보고 `안녕, 다락방?` 하고 인사 하셨습니까? ㅎㅎㅎㅎ 안녕, 블랙겟타님? 히히히히히

블랙겟타 2015-05-11 12:36   좋아요 0 | URL
저.. 사실 그때 인사는 못해드렸는데..
(뻔뻔하게 이제서야..)안녕하세욧! 다락방님? ㅎㅎㅎ^^;;

다락방 2015-05-11 16:23   좋아요 1 | URL
히히. 점심은 잘 드셨습니까? 벌써 저녁때가 다 되었어요, 블랙겟타님.
저녁 메뉴는 혹시 정해두셨습니까? 맛있는 거 많이 드세요! >.<
 

계속해서 세상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 나는 늘 감정적으로 대응할 것이다.

혼불7권을 다 읽지도 못했는데 이 책을 꺼내들었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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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2015-04-27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기,, 다락방님. 이런 어려운 말을 다 알아 들으세요?
전 밑줄 그어주신 몇 줄을 몇 번을 읽어도 이게 먼 말인가 싶으니 이를 어쩌죠? ㅠㅠㅠㅠㅠ

건, 글코, 즐점 하셨는지요? :)

다락방 2015-04-27 14:02   좋아요 0 | URL
아마도 제가 요즘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기 때문에 저는 밑줄을 그을 수 있었는가 봅니다, 무스탕님. ㅎㅎ

완전 즐점했지요, 무스탕님!
밥이 너무 맛있어서 같이 식사한 동료에게 `아 밥은 왜이렇게 맛있지?` 하고 물었다니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무스탕님은 식사 맛있게 하셨습니까?
날씨가 좋아요! >.<

여름 2015-05-19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저 기억나시나요? 김해 분성고 교사 고영아입니다. 작년에 담임할 때 학급문고를 운영한다고 하니 책을 보내주셨죠. 정말 감사했어요. ㅎ 허리디스크 수술로 인해서 요즘 휴직하고 책도 못읽고 서재 관리도 못하다 오늘 문득 들어와 살펴보는데 다락방님 서재 보고 반가워서 이렇게 글 남깁니다.
저도 이 책 정말 인상깊게 읽었어요. 그래서 두 번 읽고, 밑줄 긋고 읽고, 노트에 옮겨 적어가며 읽었는데 서평 쓸 엄두가 안나더라구요. 뭔가 좀 더 공부하고 써야할 느낌. 근데 허리가 안좋아 그러지도 못하고 있네요. ㅠㅠ
슬쩍 서재 둘러보니 좋아하는 책들에 관해 가득 적혀 있어서 너무 즐거웠습니다. 1월에 수술하고 재활한다고 책에 손도 못댔는데 이제 한 두권씩 읽고 있어요. 종종 책에 대해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건강하게 즐거운 독서 하시면서 보내시길 바랍니다. -멀리서 여름 드림-

다락방 2015-05-19 09:29   좋아요 0 | URL
기억하죠, 여름님! 학급문고에 맞는 책을 보낸다고 생각했는데 유용했는지요? 후훗.
그나저나 수술 받으셨군요. 몸조리 잘하세요. 몸조리 잘하시면서 책도 천천히 읽으시고, 말씀하신대로 종종 이야기 같이 나누어요. 언제나 환영하겠습니다! 헤헷 :)
 
까치가 물고 간 할머니의 기억 그림책 다락방 4
상드라 푸아로 셰리프 글.그림, 문지영 옮김 / 한겨레아이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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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이 jtbc 뉴스에 나와 손석희와 대화 하면서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앞으로는 이미 시작된 사랑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그 과정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다고. 정확한 문장은 기억나지 않지만, 보통이 말한 요지는, 이 세상에 사랑이 시작되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은 많지만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 그 사랑의 상태에 대해 말하는 이야기는 적다, 사람들이 별로 관심없어한다, 는 거였다. 그래서 그걸 자신이 해보겠노라고. 나는 그간 보통의 책을 여섯권 정도 읽었고, 그 여섯권들중 어떤 책에서도 보통의 매력을 느끼지 못해, 앞으로는 보통의 글을 안읽어도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그 인터뷰를 보며 앞으로 보통이 자신이 말한 바로 저 책을 쓰게 된다면, 그 책은 반드시 읽어보겠노라고 생각했다. 사랑이 시작되기 전의 그 설레임이 아닌, 이미 진행되고 있는, 혹은 아주 오래 진행되고 있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면, 나는 관심이 많다. 사실 그 관심은 '그게 정말 가능할까?' 라는 의심에서 시작됐다고 하는 게 솔직하며 정확할 것이다. 


사랑에는 유통기한이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물론 그 기한이 2년인지 3년인지는 모르겠다. 2개월인지 15년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설레임으로 시작된 사랑이 설레임으로 계속 지속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혹여 오래 지속된 사랑이 있다면, 그 사랑의 속성은 설레임이 아닌 무엇, 이를테면 익숙함이나 습관 같은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게 내 사랑이 늘 짧았던 이유였을런지도 모르겠다. 나는 오랜 시간을 함께 하고 있는 부모와 지내고 있으면서도, 실상 내 부모의 관계를 받치고 있는게 '이성간의 사랑' 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들의 의리, 정, 신뢰, 습관, 연결. 그런 것들이 내 부모를 지금에 이르게 한 게 아닐까. 물론 의리나 정, 신뢰등을 사랑의 또다른 이름이라 부른다면 그들의 바탕이 사랑이라고 해도 부인할 수 없겠지만, 여전히 내게는 사랑은 설레임이나 긴장이라는 생각이 강한 까닭이다. 나는 사랑은 지속될 수 없다는 현실성을 충분히 인식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사랑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는가보다. 아니, 그렇다. 그래서 나는 길고도 긴 사랑은 무섭다. 변질되는 감정일까봐 두렵다. 그런 것들이 내것이 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그런 한편, 길고 긴 관계를 유지하는 연인들 혹은 부부를 보는 것은 존경심을 자아낸다. 아, 어떻게 저렇게 지낼 수 있을까, 어떻게 저렇게 오래 함께하지? 관계를 유지하는 게 열정이라고 내가 믿는다면, 아직 내가 알지 못하는 어딘가에 열정이 아닌 다른 무엇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 책, [까치가 물고 간 할머니의 기억]을 보면, 내가 모르는 무엇이 있는 것 정도가 아니라,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란 생각마저 든다. 나는 어쩌면, 사랑이란 것에 대해 정말 쥐뿔도 모르는 걸지도 모르겠다. 

여기, 기억을 잃은 할머니가 있다. 오랜 시간 할아버지랑 함께 살아온 할머니. 피자를 먹고 싶으니 피자를 사오겠다고 했지만, 그 말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할머니, 자동차 열쇠가 어디있는지 통 찾을 수가 없는 할머니, 그래서 먼 길을 오랜 시간을 걸려 집까지 걸어가야 했던 할머니. 그리고 그런 할머니를 걱정스레 바라보는 할아버지가 있다. 결국 할머니가 언젠가 자기를, 그리고 그들의 자식에 대한 기억마저 잃을까 두려워하는 할아버지. 그녀를 위해 내가 무얼 할 수 있을까? 를 고심하는 할아버지. 그리고, 이런 문장.




정말이지 예쁘구나, 하고 할아버지는 생각합니다.



이건..뭐지? 잠든 아내의 모습을 보며 정말이지 예쁘구나, 하고 생각하는 할아버지라니. 이건 뭐지? 이건 사랑이잖아. 이건 애정이잖아. 그렇다면 사랑이란 게, 유통기한 따위, 없는 거 아니야? 정이나 신뢰 혹은 의리 같은 거 말고, 그런거 말고 더한 무엇이 거기 있는 거잖아. 오랜 시간을 함께 살아와도 질리지 않고 지치지 않는 거, 그게 사랑 안에 있는 거잖아. 그리고 이들은 지금, 그걸 하고 있는 거잖아.


이 사람을 위해서 무얼 할 수 있을까, 를 고민하는 할아버지라니. 이런 사람들이 하고 있는게 사랑이 아닐 리가 없잖아. 밤중에 잠을 못이루고 옆에 잠든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게 되는 거, 이게 사랑이 아닐 리가 없잖아? 



마흔다섯이 되고 일흔둘이 되어도 연애를 즐기며 살겠다고 생각했던 나는, 사랑이 일시적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어쩌면 그런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이제는 한다. 이미 나보다 더 오래 살아온 사람들이 내게 그렇다고 말한다. 줄리언 반스가 그랬고, 까치가 물고 간 할머니의 기억속,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그렇다고 말한다. 


돌이켜보면 언제나 그들의 말은 옳았던 것 같다. 나보다 더 오랜 시간을 살아왔던 사람들의 말. 그들이 사랑에 대해 하는 말 역시 옳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여든다섯 살이 되어, 나보다 훠어어얼씬 젊은 이들에게 말할런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지금도 서로를 사랑하고 있단다, 라고. 

사랑은 이토록 오래 지속되는 것이야, 라고.



이 책의 모든 책장은 덤덤하게 넘길 수 있다. 요란하지 않게 그저 묵묵히 넘길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의 맨 마지막장까지 그렇게 볼 수는 없다.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위해 손수 만든 것들을 펼쳐 보면서는 울컥, 하는 마음을 덤덤하게 누를 수가 없다. 그래서 이게 사랑인 것이다. 그들이 사랑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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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14 17: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5-04-14 17:32   좋아요 0 | URL
어디를 말하는지 몰라서 처음부터 다시 읽었네요. ㅋㅋㅋㅋㅋ 땡큐요!

웽스북스 2015-04-14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이 글 참 좋네요! :)

다락방 2015-04-14 17:33   좋아요 0 | URL
좋다니 다행입니다.
:)

레와 2015-04-14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한다고 말해줘. ^^

다락방 2015-04-14 17:33   좋아요 1 | URL
누구한테? 레와님한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nomadology 2015-04-14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린 사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풋내기들일 뿐이죠. 저는 보통은 좋아해요. 그 가장 보통의 존재라는 노래도 좋아하고.

다락방 2015-04-15 14:04   좋아요 0 | URL
크- 뭔가 술 한잔 하면서 읽어야 되는 댓글 같아요. 우린 사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풋내기들... 크- 뭔가 인생의 진리를 한 수 배운듯한 느낌입니다. 헤헷

cocomi 2015-04-15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마다 사랑에 대한 정의가 달라서 이건 사랑이고 이건 아니다라고 규정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에로스적인 사랑도 있고 자식을 향한 무한 사랑도 있고 생물학적 본능을 넘어서는 다른 종류나 차원의 사랑도 있는 거니까요. 그런데 전 개인적으로 한순간에 불타오르는 감정 보다 권태나 다른 삶/사랑의 굴곡을 이겨내거나 지나가고 난 후에도 이어지는 사랑, 상대의 모든 것들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용하며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사랑하는 것이 이 더 아름다운 것 같아요. 그게 쉽지 않으니까.. 그래서 노년의 사랑이 사람들에게 더 큰 감동을 주는 것 같아요.

다락방 2015-04-15 14:06   좋아요 1 | URL
네, 최근에야 저도 그런 생각을 합니다. 권태나 다른 삶의 굴곡을 이겨내고 지나간 후에 이어지는 사랑. 그런 사랑의 숭고함이랄까요. 그런 게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이제 나이 먹어가며 저도 해보게 되는 것 같아요. 오랫동안 함께 봐오고 겪어오며 서로에 대해 나만큼 잘 알 수 있게 된다는 것 말예요. 끄덕끄덕. 네, 그 쉽지 않은 것이 그래서 아름다운가 봅니다.

nomadology 2015-04-15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낮술 고고, 라고 적었더니 너무 체신머리 없이 보이네요. 오늘 날씨가 무척 좋아요.

다락방 2015-04-15 16:25   좋아요 0 | URL
오늘 날씨가 무척 좋아서 저도 낮술 고고, 하고 싶지만 일단 직딩이므로 꾹꾹꾸우우우우우우우욱 참았다가 퇴근후 슝- 술 마시러 갑니다! ㅎㅎ

salt23 2015-04-22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페북에 공유했습니다.

다락방 2015-04-22 09:37   좋아요 0 | URL
네~
 
시사IN 제395호 2015.04.11
시사IN 편집부 엮음 / 참언론(잡지)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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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부터 아팠는데 커버스토리 몇 장 읽지도 않고 줄줄 울다 덮었다. 또 울겠지만 다시 펼쳐 계속 읽을 것이다.
4월이다.

우리 같이 읽읍시다, 이번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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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5-04-07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식잃은 어미가 머리까지 깎아야하는 세상이라니... 다락방님 김영하가 책에서 이런 말을 해요. 요즘 젊은 세대는 자신의 부모만큼 살 자신이 없는 세대래요.. 우리도 딱하고 아이들도 딱하네요.

다락방 2015-04-07 14:57   좋아요 0 | URL
읽으면서 그들의 말을 들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들어줘야 할 사람이 그동안 들어주지 않았으니 듣고자 하는 사람들이 계속 열심히 들어주어야 하는 것 같아요. 우리는 어떤 나라에 살고 있는건가요, 휘모리님?

유부만두 2015-04-07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따 나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서 사야겠어요. 손수건도 준비해야겠죠? ㅠ ㅠ

다락방 2015-04-07 19:35   좋아요 0 | URL
네 ㅜㅜ 너무 울어서 코를 엄청 풀어가지고 코가 아파요 ㅜㅜ
 
혼불 4
최명희 지음 / 매안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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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다. 강모 이 새끼는 진짜 여러 여자 신세를 조져놨다. 강모가 너무 싫어서, 실제로 4권에는 강모가 그렇게 많이 나오지도 않는데, 강실이가 나올때마다 강모 생각에 부르르 떨었다. 이새끼..너무싫어.. 청암부인 얘기 나올때도 강모가 싫고, 효원 얘기 나올때도 강모가 싫다. 


강모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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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5-03-31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낯익은 이름!! 다락방님 읽고 계시는군요. 은근 나쁜 남자 캐릭터예요.

다락방 2015-03-31 09:38   좋아요 0 | URL
은근 나쁜 남자가 아니라 대놓고 찌질이에요. 형편이나 상황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주변 여자들에게(그 여성들 모두 자신들이 그렇게 태어나고 싶어 그렇게 태어난 게 아니라는 상황은 같은) 엉망진창 삶을 살게하죠. 아..싫어요, 진짜. ㅠㅠ

blanca 2015-03-31 09:54   좋아요 0 | URL
실시간 ㅋㅋ 다락방님 이거 완결이 아니잖아요. 마지막권 보면 정말ㅡㅡ 앞으로 어떻게 됐을 지를 알 수가 없으니 너무 마음이 괴롭더라고요. 황당한 기분이라고나 할까요. 작가의 죽음이 어찌나 안타깝던지요.

다락방 2015-03-31 09:55   좋아요 0 | URL
아 저 이거 3권까지 읽다 중단했었거든요. 그리고 엊그제부터 4권 읽기 시작한건데..강모 보니까 처음에 열받았던 그 감정이 다시 후르르 타올라요. 하아- 마지막권에선 대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ㅠㅠ
강모는 진짜 친구하기도 싫은 스타일이에요. 아우, 쥐어박고 싶어요. ㅠㅠ

무스탕 2015-03-31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랑 비슷한 삘로 읽고 계시는군요. 저도 강모를 없애고 다시 시작해야 해, 그러며 읽었었죠. ㅎㅎ

다락방 2015-03-31 09:48   좋아요 0 | URL
강모가 처한 상황, 입장이라는 것이 꽤 힘든 자리라는 걸 알아요. 그건 자기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것도 알고요. 시대를 잘못 만났다는 생각도 해요. 그렇지만 이해한다고 용서 되는 건 아니네요. 어휴, 정말 싫어요, 무스탕님. 혼사가 들어오지 않는 강실이를 보노라면 정말이지 부들부들해요. 강모 이새끼..하면서요. ㅠㅠ

무스탕 2015-03-31 09:51   좋아요 0 | URL
근데요, 나중에 보니 이게 다 소설이더라구요. 으하하하~~~

다락방 2015-03-31 09:54   좋아요 0 | URL
그쵸 소설이죠..
하아- 어머니 신분 따라 노예가 되고 귀족이 되고 .. 이런 계급사회인 게 너무 싫어요. ㅠㅠ

무스탕 2015-03-31 09:57   좋아요 0 | URL
갑자기 딴 얘기입니다만..
계급사회일때 어머니의 계급을 따라간게 아니고 낮은 계급을 따라 간거 아니었나요?
엄마가 양반이고 아빠가 상놈이라고 아이가 양반이 되진 못했을텐데..
아빠가 양반이고 엄마가 상놈이면 당연 아이도 상것이 되는데 이것이 엄마의 계급을 따랐다기 보다 낮은 계급으로 편입되는 제도 아니었나 해서요

다락방 2015-03-31 10:00   좋아요 0 | URL
아뇨. 엄마 계급을 따라가요. 그래서 노비인 춘복이가 강실이를 호시탐탐 노리죠. 속으로 생각해요. 나한테 양반 아들 하나 낳아주소, 라고 말이지요. ㅠㅠ 자기는 노비 자식을 낳을거라면 아예 안낳고 말겠다고 다짐하거든요. 그래서 강실이만 노립니다. ㅠㅠㅠ

Jeanne_Hebuterne 2015-03-31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모 이름조차 싫을만큼 머저리 상등신같아요. 제게 강모는 한국소설 찌질이 대망의 일 위의 아이콘입니다.

다락방 2015-03-31 15:10   좋아요 0 | URL
네. 찌질이 중에서도 상찌질이에요. 등신에 민폐쟁이. 아 너무 싫어요. 진짜 싫어요. ㅜㅜ

singri 2015-03-31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강모가 어떻길래싶어 혼불 읽어봐아되나 하는중 ㅋㄱㄷ

다락방 2015-03-31 15:50   좋아요 0 | URL
아주 썩을놈이에요, 그냥!!! 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