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나잇 선 Oslo 1970 Series 2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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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 온 스노우》를 읽어보았기에, 이 책의 주인공이 '킬러'라는 것도 너무 짜증났고, 시리즈라 당연하지만 '뱃사람'과 연관된 것도 싫었다. 읽는 내내, 어디 주인공 죽이기만 해봐, 요 네스뵈 다시는 안봐! 라고 몇 번이나 부르르 떨었는데.... 이런 결말일 줄은 몰랐네. 결정적인 순록 사체 장면은-스포일러가 될까봐 말할 순 없지만- 어딘가에서 이미 본 적이 있었는데(영화였나?) 잘 기억이 안나고, 사실 결말 자체도 완전히 새롭지 않지만, 그래도 이렇게 끝나서 좋다고 생각한다. 


완전히 다른 얘긴데, 2016년 12월 31일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이 책을 샀고, 1월 1일 남동생과 일자산에 오르면서,


"요 네스뵈 책 하나 샀어. 읽어봐." 라고 하자, 이런 대화가 오고 가게 됐다.



- 누난 왜 요 네스뵈처럼 못써?

- ...... 뭐?

- 요 네스뵈처럼 써봐. 그러면 책도 잘 팔리고 돈도 많이 벌 거 아냐.

- ......................



새해의 첫 아무말 되시겠다. -_-





나는 눈을 감고 햇빛에, 그리고 햇빛이 내 살갗을 달구는 느낌에 집중했다. 그것을 즐기는 데 집중했다. 헤도네. 그리스의 신. 혹은 우상. 왜냐하면 지금 나는 성지에 와 있으니까. 자기가 생각해낸 신을 제외한 다른 신을 모두 우상이라 부르는 건 꽤나 교만한 짓이다. 나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마라. 모든 독재자들이 국민에게 하는 말이다, 당연히. 하지만 우습게도 기독교인들은 그걸 보지 못한다. 그 메커니즘을 보지 못한다. 자기실현적이고 자기 강화적이고 재생적인 측면이 이런 미신을 2천 년이나 지속시켰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들의 믿음에서 가장 중요한 구원이란 인류 역사상 눈 깜짝할 정도로 짧은 특정 기간에 태어나, 그것도 우연히 십계명이 들리고 간략한 영업 문구("천국?")에 대한 의견을 내세울 수 있었던 지구의 어느 작은 영토에 살았던 행운아들에게만 국한되어 있다는 사실을. (p.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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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7-01-04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의 첫 아무말... 하하하 전 다락방님의 글이 참 좋습니다. 요 네스뵈보다 더 좋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라랜드 보고 저도 펑펑 울었습니다. 아.. 다락방님 생각이 절로 나는데..으앙
태그도 딱 다락방님만 걸었어요~

다락방 2017-01-04 11:42   좋아요 0 | URL
태그에 저 걸었다는 댓글 북플에서 봤는데, 제가 읽고 좋아서 친구에게 자랑만 했지 정작 답글 다는 건 깜빡했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펑펑 울지는 않았지만 진짜 가슴이 찢어졌어요. 어휴... 음, 그 엔딩은, 해피엔딩인듯 한데, 아아, 더이상 말하면 스포일러되고 ㅠㅠ 처음부터 좋았어요. 그러니까 여자와 남자가 서로 다른 사람들에겐 그냥 보통의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이지만, 각자에겐 너무나 특별한 사람이 되잖아요. 거기에만 빛이 환하게 비치는... 그렇지만...
좋은 영화였습니다.


제 글을 좋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꼬마요정님. 무려 요 네스뵈보다 좋다 해주시니 흙 ㅠㅠ
새해에도 열심히 읽고 열심히 쓰겠습니다!!

꼬마요정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singri 2017-01-04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글이 요네스뵈 되면 다락방님 글은 어디가서 읽습니까요;; ㅋㅋ근데 이책 이후에도 시리즈가 또 있는거에요?

다락방 2017-01-04 14:06   좋아요 0 | URL
이 책 이후는 아직 안나온 것 같은데 있는지도 잘은 모르겠어요. 시리즈라고 되어있으니 아마 또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ㅎㅎ

말씀 감사합니다, 싱그리님. 좋은 댓글이에요. 엉엉 ㅠㅠ

피오나 2017-01-04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 네스뵈의 오슬로1970시리즈는 <블러드 온 스노우>랑 <미드나잇 선>이 끝이에요ㅋㅋ 올해 하반기에 해리홀레 시리즈 중에 <리디머>랑 <팬텀>이 출간될 예정이구요ㅎㅎ
그나저나 다락방님 동생분 멋지십니다!! 왜 요 네스뵈처럼 못쓰냐니... 하하하... 뭔가 사랑스런 동생분ㅎㅎ
다락방님 글은 비록 요 네스뵈같지는 않더라도... 그 어느 작가도 흉내내지 못할 감성을 품고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알고 계시겠지만ㅋㅋ

다락방 2017-01-04 16:25   좋아요 0 | URL
아, 이 두 권이 끝이군요? 해리 홀레 는 아직 집에 읽지 않은 시리즈가 몇 권 있습니다. 요 네스뵈도 아직 다 못읽었고 잭 리처 시리즈도 다 못읽었어요. 저는 사실 잭 리처에게 더 끌립니다. ㅎㅎ

아니 저한테 요 네스뵈를 기대하면 대체 어떡한단 말입니까. 저는 ‘요 네스뵈는 요 네스뵈고 나는 이유경이야...‘ 라고 해주었습니다만... 하아- 나쁜 자식..아무말이나 던지는 자식.....

칭찬 감사합니다. 아니, 제가 칭찬과 위로와 격려를 받기 위해 저걸 쓴 건 아니었는데, 여러분들이 좋은 말씀들 해주셔서 제가 또 몸둘바를 모르겠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연 2017-01-05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블러드 온 스노우> 짜증나서 안 보고 있는데 봐야할까요?
동생분이 참 위트가 있으신 듯~ 락방님. 쓰시면 요 네스뵈보다 더 잘 쓰시죠.. 당연~^^

다락방 2017-01-05 08:32   좋아요 0 | URL
저도 처음엔 엄청 짜증났었거든요. 걍 팔아버릴까...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결말이 예기치 않은 쪽으로 가서 뭔가 ˝응?????˝ 하면서 읽었어요. 그러니까 ... 음...... 반전 같은 건 아니고요.......어..온순한 결말이랄까..... 그렇지만 새해 첫 책인데 이런 결말 나쁘지 않지, 뭐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하하하하.

고맙습니다, 비연님.
오늘도 출근하셨죠? 저도 했습니다. -0-

비연 2017-01-05 0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온순한 결말이라.. 흠. 급궁금해지네요. 한번 봐야겠어요.
오늘도... 출근... 했죠...............ㅜㅜ 아침에 나오면서, 아 퇴근하고 싶다 라고 생각하는 출근.

다락방 2017-01-05 09:38   좋아요 0 | URL
비연님, 새해에 읽을 책으로 맞춤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읽어보세요. ㅎㅎㅎㅎㅎ

저는 아침에 출근하면서 늘 퇴사를 꿈꿔요. 퇴사하고 싶다...... 그러나 여기 또 이렇게, 다니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혼자다 - 결혼한 독신녀 보부아르의 장편 에세이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박정자 옮김 / 꾸리에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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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철학에 완전히 무지한데 이 책에 철학용어가 계속 등장해서, 몇 개 안되는 용어임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이해하기가 벅찼다. 네이버 검색창 띄워놓고 용어 검색하면서 읽었지만, 그럼에도 다 따라잡기에는 역부족. 오늘 아침에 친구에게 이 책의 내용에 대해서 얘기해주려는데, 나 자체가 백프로 이해를 못해놓으니 친구에게 명징하게 설명을 할 수가 없더라. 약간 뜬구름 잡는 식으로 이해하고 또 맥락은 어느 정도 알 수 있었지만, 그 정도 이해로는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기가 힘들다. 내가 완전히 이해해야 상대에게 설명을 잘 할 수 있는데! 책의 끝에 옮긴이의 용어 해설이 친절하게 나오지만, 용어 해설도 쉽지가 않아...


어렵게 읽어내고 어휴, 다 읽었네, 하고는 저리 치워놨는데, 오늘 친구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내가 좀 답답해서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책들을 좀 더 읽어본 후에 다시 읽어 봐야겠다. 

그러나 고착되어 있는 순간은 결코 새롭지 않다. 과거와의 관계 속에서만 비로소 순간은 새로워진다. 바로 지금 출현한 형태는 그것을 지탱하고 있는 배경이 뚜렷하고 분명해야만 자신의 모습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나무 그늘의 시원함이 귀중한 것은 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대낮의 길가에서이다. 휴식은 고된 일과를 마친 뒤의 편안한 긴장 이완이다. 작은 산꼭대기에서 나는 내가 돌아다녔던 길을 바라본다. 내 성취감의 기쁨 속에 현존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 길 전체이다. 이 휴식을 가치 있게 하는 것은 보해이다. 그리고 이 한 잔의 물을 귀중하게 만드는 것은 나의 갈증이다.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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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모마일 2016-12-22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학용어는 잘 모르신다 하셔도 자유롭게 생각을 적고 펼치는 능력은 단연 뛰어나신 듯 합니다. 저는 통통 튀는 글쓰기 능력이 부럽습니다.

다락방 2016-12-22 13:57   좋아요 0 | URL
오, 지친 목요일의 깨알칭찬 감사합니다. 더욱 분발하겠습니다!!
철학 서적도 좀 읽어봐야겠어요. 천천히요.

사각양배추 2016-12-22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철학적, 인문학적 용어와 친하지 않아서, 네이버의 도움을 받으면서 봐요. 기초지식?을 조금이라고 쌓으려고 남경태의 개념어 사전을 한두 꼭지씩 봅니다. 아직 보지 않으신 책이라면, 추천!^^

다락방 2016-12-22 14:05   좋아요 0 | URL
우와- 전 이런 게 있는줄도 몰랐는데 지금 검색해보니 아주 좋을 것 같아요. 게다가 평들도 좋네요. 추천 감사합니다!! >.<
 
밤에 우리 영혼은
켄트 하루프 지음, 김재성 옮김 / 뮤진트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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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의 나의 가족이 아닌 타인과 함께 산다고 상상했을 때, 그러니까 이성애자인 내가 다른 성인 남성과 함께 일상을 공유하기로 결정한다면, 그때 나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때의 나는 어떤 삶을 살게될까. 그리고 그것은 어떤 장점을 줄 것인가를 가끔 생각해본다. 최근에 몇차례 뉴스를 볼 때마다 누군가랑 함께 하고 싶어진다고 얘기한 적이 있었는데, 이건 비교적 최근에 생각하게 된거고, 그 전에는 새벽에 잠에서 깼을 때 그런 생각을 가끔 했다. 나는 깊게 자지 못하는 타입이고 새벽에 수시로 깬다. 그럴 때 누군가 옆에 누워있다면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가끔 해보게 되는 것이다. 또한 악몽을 꿨을 때도 그렇다. 나는 꿈을 아주 자주 꾸는 편인데, 그러다보면 종종 무서운 꿈도 찾아온다. 그럴 때 몸부림치다 눈을 떠서 옆에 누군가 있다는 걸 확인한다면 안정이 찾아오지 않을까. 누군가와 같이 산다는 것은 아주 많은 불편함을 가져오겠지만, 때로는 혼자서는 결코 누리지 못할 안락함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밤에 잠들기전과 아침에 일어난 직후, 또 새벽에 잠에서 깨었거나 늦게까지 잠들지 못하는 어느 깊은 밤에, 누군가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면, 그 일상은 아름답지 않을까. 긍정적인 면들을 생각해보면 대체 왜 혼자 살아야하는건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리고 만다. 


누구에게나 외로운 순간은 찾아들 것이고, 또 그 외로움을 그 순간 자신이 어떻게든 견뎌내야 할 것이다. 이 외로움이 지긋지긋하고 싫다, 라고 생각한다면 자연스레 '이제는 누군가와 함께이고 싶다' 라고 생각하게 될테고. 



이 책, 《밤에 우리 영혼은》 속의 여자 '애디'는 남편과 사별한 지 오래되었고, 이제 혼자인 게 너무 싫은 일흔살 노인이다. 그녀는 이웃집 남자 노인 '루이스'를 찾아가, 우리가 함께 밤을 보내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그건 성적인 의미를 담은 게 아니다. 나랑 밤마다 섹스를 하자는 게 아니라, 나도 외롭고, 내 보기엔 너도 외로우니, 우리가 긴 밤 잠들기전에 서로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이야기상대가 되자는 뜻이었다. 


이 제안은 루이스에게 갑작스레 찾아온 것이었고, 그래서 루이스는 놀란다. 그렇지만 그 제안이 나쁘게 여겨지지 않아, 칫솔과 치약 그리고 잠옷을 챙겨들고는 옆 집 여자 애디에게로 찾아간다. 그리고 그들은 나란히 누워서, 처음이니까 당연히 어색하게, 조심스레 이야기를 나눈다. 


처음에는 할 이야기가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 밤들이 하루가 되고 이틀이 되고 또 여러 날이 되면서, 그들은 서로에 대해 점차로 알게 되고 또 더 다정해지게 되고, 그리고 그 밤을 기다리고 기대하게 된다. '좋다'고 생각한다, 이 밤들이. 이제는 외롭지 않고 좋다고.


그리고 이 둘에게 '애디'의 여섯살 손자가 찾아든다. 부모의 이혼으로 당분간 혼자가 된, 쓸쓸하고 상처받은 소년이 이 노인들 사이에 끼게 되고, 이들은 이제 어떤 낮에도 함께 하게 되며, 캠핑을 가고, 함께 살 개를 데려오고, 정원을 함께 가꾸면서 조금 더 단단해진다. 매 순간순간이 이 노인들에게도 또 아이에게도 차곡차곡 쌓여 정이 더해간다. 외로운 각자의 삶이 모여서 다정한 여럿의 삶이 된다. 



그러나 이들이 살고 있는 이 작은 마을과 또 이 노인들의 자식들은 이 삶을 부끄럽게 여긴다. 손가락질 받을 거라 여긴다. 왜 남부끄럽게 밤에 다른 이성을 만나냐, 아버지(혹은 어머니)가 살아계셨다면 뭐라 했겠냐, 며 이들이 부끄러운 짓을 하는 것처럼 여긴다. 정작 당사자들은 남들 눈 신경쓰지 않고 행복하게 잘 지내는데, 그 행복을 가지면 안되는 거라고,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이 말한다. 결국 애디의 아들은 '그와 이 관계를 당장 그만두지 않으면 다시는 손자를 볼 수 없을 줄 알라'며 협박하고, 이에 애디는 루이스에게, 살아 있는 동안 사랑하는 손자를 계속 보고 살고 싶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들은 헤어진다.



상황으로만 보자면 달라진 건 없다. 처음 혼자였던 그들이 '다시' 혼자가 됐을 뿐이다. 그러나 그 삶은 이전의 삶과 같지 않다. 혼자가 다시 혼자가 된 것은 그 사이에 누군가와 함께 였던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시간으로 다가온다. 그 다정했던 밤들을, 그 다정했던 순간들을, 그들은 도저히 잊을 수가 없다. 다시 서로의 옆에 머물고 싶다. 다시 서로의 곁에 찾아들고 싶고, 여전히 계속해서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다. 차라리 함께였던 그 행복을 몰랐으면 모를까, 그걸 알면서 혼자가 되는 삶은 지나치게 고통스럽다. 그 고통이 너무 아프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이별을 말하면서 상대가 고통스럽다 했을 때, '너 나 만나기 전에도 살았잖아' 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 그러자 상대는 '널 알기 전의 삶은 널 알고난 후의 삶과 다르다'고 했다. 나 역시 알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이와 헤어진다는 것은, 다시 예전처럼 혼자가 된다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우리가 함께했을 때 그것이 상대를 가졌다는 걸 의미하진 않지만, 그러나 우리가 헤어졌을 때 우리는 상대를 '잃는' 것이다. 혼자였던 시간이 누군가를 '잃고' 혼자가 되는 것과 같을 리가 없다. 그건 고통이고 아픔이다. 하루하루 어떻게 버텨야할지 모르겠는 시간들이 찾아오고, 그 시간 틈틈이 가슴을 치고 눈물을 흘리게 된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되어 저 바닥으로 떨어진다. 혼자가 자유롭고 마냥 신난다고 생각했지만, 구속은 싫다고 외쳤지만, 사랑을 '잃고' 혼자가 되면, 그럴 때조차 혼자라고 박수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익숙하고 다정한 상대가 내 곁을 떠나버리면, 그래서 내가 상대의 '부재'를 확인해버리면, 그 빈자리는, 이를 악물어도 참아내기가 몹시 힘들다. 나는 계속 혼자라 해도, 누군가 존재했다 부재하는 순간, 세상이 달라져버린다. 그건 함께 했던 시간이 정말 아름답고 다정했다는 걸 증명하는 것. 




그렇다면 아주 간단한 답이 있다. 존재했다면, 부재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일단 찾아들었다면 떠나지 않으면 된다. 함께 했다면, 헤어지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이 간단한 답이 가장 실행하기 어려운 답이 된다. 인간 사이에선 그렇다. 아니,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에게 그렇다. '헤어지지 않으면 돼'라고 간단히 말할 수 있지만, 그건 말처럼 쉬운 게 아니라서, 우리는 헤어지고 나서도 아프다고 고통스러워하고, 함께 할때도 혹여 헤어지게 되진 않을까 불안해한다. <scientist> 란 노래에서 그런 가사가 나오지 않았던가.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내가 너를 잊는 방법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고. 



나는 그렇게나 많은 책을 읽고 그렇게나 많은 영화를 보고 그렇게나 많은 음악을 듣고 또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을 만나 그렇게나 많은 대화를 나눴지만, 아직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지 않는 방법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다.



루이스와 애디는 서로에게 다시 닿고자 한다.

헤어지고 고통스러워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러한 것처럼.











마침내 그가 왔고 그녀는 그를 맞아들였다. 뭔가 달라 보였다. 무슨 일 있었어요? 그녀가 말했다.
곧 말할게요. 먼저 술 한 잔 해도 될까요?
물론이에요. (p.31)

고마워요. 하지만 그 사람들로 인해 나는 상처받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함께하는 밤들을 즐길 거예요. 그것들이 지속되는 한.
그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말해요? 일전에 내가 그랬듯 말하네요.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될 거라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기를 원해요. 그녀가 말했다. 이미 말했듯, 난 더이상 그렇게, 다른 사람들 눈치를 보며, 그들이 하는 말에 신경 쓰며 살고 싶지 않아요. 그건 잘 사는 길이 아니죠. 적어도 내겐 그래요.
좋아요. 내게도 당신 같은 분별력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당신 말이 옳아요, 물론.
이제 괜찮은 거죠?
뭐, 거의.
맥주 한 병 더 마실래요?
아니에요. 하지만 당신이 와인을 더 하고 싶다면 함게 앉아 있어줄게요. 그냥 당신을 보면서요. (p.33)

초콜릿은 안 먹는 게 좋다지만 이제 와서 뭐가 달라지겠어요? 먹고 싶은 건 다 먹고 죽을 거예요. (p.40)

벌써 보고 싶어요. 애디가 말했다. 우리는, 당신과 나는, 어찌될까요? (p.121)

하지만 당신도 내가 싫증나서 꺼져주기를 바라게 될지 모르죠.
그런 일이 생기면 몀추면 돼요. 그녀가 말했다. 그게 우리가 합의한 거잖아요. 정확히 말로 하진 않았지만요.
그래요. 내가 싫증나거든 말해요.
당신도요.
난 그럴 일 없을 것 같아요. 우리가 가진 이걸 다이앤은 한 번도 누리지 못했어요. 내가 모르는 다른 누가 있었다면 몰라도. 하지만 아니었을 거예요. 그런 생각을 했을 리가 없어요. (p.143)

난 그냥 하루하루 일상에 주의를 기울이며 단순하게 살고 싶어요. 그리고 밤에는 당신과 함께 잠들고요. (p.159)

내가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당신이 내게 얼마나 중요한지, 그건 알아요. 하지만 나도 당신에게 그런 의미일 것이라는 생각이 도저히 안 들어요.(p.163)

아, 이렇게 당신 옆에서 이야기를 나누니 벌써 기분이 좋아져요.
아직 별 이야기도 안 했는데요?
그래도 벌써 훨씬 좋아요. 당신 덕분이에요. 이 모든 것에 감사해요. 내가 아주 행복한 여자라는 느낌이 다시 들어요. (p.164-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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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6-12-21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로운 각자의 삶이 모여서 다정한 여럿의 삶이 된다.˝

이 구절이 특히 좋아요. 다락방.
내가 소망하는 미래의 삶이 바로 이 삶이에요.

다락방 2016-12-21 11:29   좋아요 1 | URL
우리 오래오래 다함께 다정한 삶을 유지하도록 합시다. 다정한 관계로 오래 지내요.

단발머리 2022-08-29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이 책을 이제 막 알게 되서요. 리뷰 찾아보는데.... 락방님 리뷰 2016년이네요.
어떤 원서읽기 모임에서 이 책을 같이 읽는다고 하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모르는 모임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2-08-29 16:24   좋아요 0 | URL
오오 이 책 두껍지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우리도 같이읽기 할 때 이 책 후보에 넣어봅시다! 나쁘지 않을것 같아요. ㅋㅋㅋ 리뷰 읽어보기 전까지 내용 기억도 안났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라라랜드 O.S.T
라이언 고슬링 외 노래, 저스틴 허위츠 (Justin Hurwitz) 작곡 / 유니버설(Universal)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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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동굴속에 들어간다. 영문도 모르는 채로. 그러니까 내가 왜, 어째서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동굴속으로' 들어간다. 그때의 나는 누구와도 어떤 말도 하고 싶지가 않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다. 아무것도 내 기분을 바꾸지 못하고 아무도 내 기분을 바꾸지 못한다. 주기를 알 수도 없어서 대비할 수도 없다. 아, 동굴속이다, 하고 내가 느낄 뿐이다.


일전에는 동굴 속에 들어와있다는 걸 깨달았는데, 그 날 저녁에 약속이 있었다. 너무나 취소하고 싶었지만, 당일에 취소하자니 너무 미안하지 않은가. 내 안에는 약속 취소를 싫어하는 내가 있다. 그래서 오늘 만나지 말자고 말하는 대신 꾸역꾸역 그 자리에 나가서는 억지로 말을 하고 억지로 웃어야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 평소의 나와 다름 없이 보여야한다고, 그렇게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상대는 이미 내가 평소의 나와 다르다는 걸 알아챘었다. 자리가 파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너 오늘 무섭고 조심스러웠다, 라는 얘기를 듣고, 아 그냥 약속을 취소할걸...했었더랬다. 


어제가 바로 그 동굴 속으로 들어간 날이었다. 나는 이 때, 금세 나올 수 있다는 걸, 나오게 된다는 걸 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노력이나 의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안다. 그저 시간이 가기를 기다려야 한다. 하룻밤이면 된다. 하룻밤. 오늘 밤만 자고나면 나는 다시 세상을 향해 나올 것이다, 라는 걸 나는 알고 있지만, 이조차도 다른 사람에게 이해시킬 의욕도 의지도 없었다. 


입을 꾹 다물고, 어제 퇴근 길에 라라랜드 앨범을 재생시켰다. 정말 입을 꾹 다물고.




라라랜드의 음악들은 영화를 보지 않은 자들이 그저 노래로써 들었을 때 좋아할 만한 곡들은 아니다. 만약 내가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이 앨범을 재생시킨 후에 좋다고 생각했을 리가 없다(그 전에 재생했을 리도 없지만). 아, John Legend 가 부른 <Start a Fire>는 좋아했을 것 같다. 그렇지만 다른 노래들에 대해서라면 '어?' 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를 봤다면 달라진다. 영화를 보면서도 나는 이 영화속의 음악들이 좋다고 생각하진 않았더랬다. 딱히 와닿는 곡들은 아니었달까. 그러나 영화를 다 보고 영화에 대한 감상이 채 지워지지 않은 채로 듣게 된 음악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쑥쑥 귀에 들어왔고 그렇게 나를 만져줬다. <Start a Fire>는 물론 노래 자체로 좋았고, 제일 처음에 나온 <Another Day of Sun>은 영화의 도입부가 생각나 흥겨웠다. 군중 속의 그저 한 사람에 불과한 미아가 파티에 가기 싫어 집에 처박혀 있으려다가 파란 드레스를 챙겨입고 밖으로 나와 친구들과 함께 부른 <Someone in the Crowd>를 듣는 것도 즐거웠고. 그렇지만,



<Epilogue>를 듣는 내 마음은 너무나 너무나 아팠다. 분명 흥겹고 신나는 노래들이 나오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영화를 보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슬펐는데, 에필로그가 나와버리면, 진짜 너무 슬픈 거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 이 곡은 진짜 너무 치명적인 것 같아 ㅠㅠ



어제 퇴근길에 그렇게 걸었다. 사무실에서 출발해 매봉역을 지나 도곡역, 대치역, 그리고 학여울역에 이르기까지 걸으면서 들었더니 앨범 전체가 한 번 재생이 되어 끝났다. 그 음악들을 들으며 한껏 슬퍼하고 그렇게 걸었다. 한시간이 채 안되는 시간이었는데, 누구와도 어떤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내 발로 걸으면서, 그렇게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면서 음악을 듣는 일은 마음에 평안을 가져다줬다. 그리고 동굴 속에서 곧 나갈거야, 라고 내가 나에게 말할 수 있었다. 나는 오늘 밤이 지나면 동굴 속에서 나갈 수 있어,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 번 더 들었다. 이번엔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엘에이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영화속 아름다운 풍경들이 생각났다. 그때, 미아와 세바스찬이 아직 연인이 되기 전에, 저녁해가 지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별 거 아니지 뭐' 라고 했던 장면이 떠올랐고, 아, 여름에 캘리포니아에 갈까, 라고 생각했던 것도 기억이 났다. 그러다가 미아와 세바스찬의 이야기가 생각나 울컥 슬퍼지고. 나는 그렇게 한껏 감상에 취했더랬다. 



길동역에 내려 집에 걸어가려는데, 아아, 무슨 퇴근 시간이 두 시간 가까이 걸리냐..물론 한 시간 정도는 내가 걷기로 선택한거지만...아니, 지치잖아.... 내일은 걷지 말아야지, 이건 뭐 퇴근하다 날 다 새겠네 ㅠㅠ 가도 가도 집이 안나오는 느낌적 느낌..




집에 돌아가 동생들과의 단톡방에서 여동생에게 라라랜드 꼭 보라고 했다. 너도 좋아할거라고. 어바웃 타임이, 뻔한 얘기인데도 뻔하지 않게 우리를 즐겁게 했잖아, 근데 라라랜드도 그래. 뻔한데도 뻔하지 않게 좋아, 날 믿고 보렴, 하고 추천했다. 그리고는 엘에이 엄청 예뻐, 라고 덧붙였는데, 이에 남동생이 이렇게 답했다. 



- 강동구가 젤 이쁨



ㅋㅋㅋㅋㅋㅋ 여동생하고 나는 빵터졌다. 오, 강동구여!




라라랜드 앨범을 두 번 반복해 들은 어젯밤, 나는 아홉시부터 잤다. 그리고 오늘 아침, 동굴 속에서 걸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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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6-12-13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제 동생에게 문자메시지를 받았어요. 언니 이 영화 꼭 보라고요. 그런데 엘에이 얘기는 없고 콜로라도 볼더가 나오니 꼭 보라고.
주말에 보려고 맘 먹고 있어요.

다락방 2016-12-13 13:27   좋아요 0 | URL
네, 나인님. 여자주인공의 고향이 볼더에요. 여자가 남자를 만나서 자신의 고향이 볼더라는 얘기도 하고, 또 여자가 상처 입고 볼더에 돌아가기도 하는 장면들이 나와요. 네, 볼더가 나옵니다! >.<
나인님은 보시고나서 어떠실지 궁금해요. 감상 적어주세요!

2016-12-13 15: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13 17: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몬스터 2016-12-14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매달 ( 꼬박꼬박 ) 생리 3-4일 전 즈음해서 정말 기분이 바닥을 쳐요. 이유없이 가라앉고 우울함에 쩔고 운전하다 울기도 하고 ㅎㅎㅎ. 그러다가 생리 시작되면 다시 괜찮아지고. ( 미칫나보아요 ). 시간이 해결하는게 참 많지요?




다락방 2016-12-14 08:19   좋아요 0 | URL
몬스터님, 저도 생리전증후군이 심해요. 이제는 아, 때가 됐구나, 하고는 미리 우먼스타이레놀을 먹어서 생리전증후군으로 찾아오는 우울증에 대비할 수가 있지요. 약 먹는다고 감쪽같이 없어지는 건 아닌데, 그래도 좀 나아요. 저도 생리전 증후군에 기분이 바닥을 치고, 술 마시다가 울기도 하고 그랬어요. 지금은 ‘다 지나갈 것이다‘ 하고 스스로를 다독다독해요. 말씀하셨듯이, 시간이 해결하지요. 생리 시작하면 또 나아지니 말예요.

그렇지만 동굴은 다른 문제에요. 이건 생리전에 찾아오는 것도 아니고 언제 어떻게 왜 찾아오는지를 몰라서 제가 대비할 수가 없어요. 어떤 약을 먹어야 할지도 모르고, 이도 저도 아무것도 소용이 없어요. 이거야말로 하룻밤 자고 나면 괜찮아지기 때문에, 그저 시간이 가기를 기다려야 한답니다. 때로 인간은 정말 무력한 존재인 것 같단 생각을 해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로버트 제임스 월러 지음, 공경희 옮김 / 시공사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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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곧잘 사랑에 빠지고 또 빠지는 사랑마다 뜨거워질 수도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연애를 반복하긴 하지만 활활 타오르지 않을 수도 있고. 연애를 할 때마다 백도씨까지 끓어오르는 사람도 있지만, 매번 육십도 이상으로만 타오르다 단 한 번만 백도씨까지 타올라, 그 기억을 평생 안고 가져가는 사람도 있고. 그러니까 나는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 다양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사실 어떻게 매번 백도씨까지 타오르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들은 말뿐이지, 사실은 정말 백도씨가 되어 활활 타올랐던 건, 단 한 번뿐이지 않을까? 누구나 평생 살면서 기억하게 되는 '가장' 사랑하는, '최고로' 사랑했던, '미친듯이' 뜨거웠던 연인은, 단 한 명 뿐이지 않을까? 물론 매순간 연애에 최선을 다하고, 또 매순간 자신의 연인을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죽기 전에 기억나는 '단 하나의' 사람 같은 게 존재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나는 로버트 킨케이드처럼, 이렇게 생각한다.


"할 이야기가 있소, 한 가지만. 다시는 말하지 않을 거요, 누구에게도. 그리고 당신이 기억해 줬으면 좋겠소. 애매함으로 둘러싸인 이 우주에서, 이런 확실한 감정은 단 한 번만 오는 거요. 몇 번을 다시 살더라도, 다시는 오지 않을 거요." (p.150)





로버트는 매디슨 카운티로 다리(bridge)의 사진을 찍으러 갔다. 길을 물으러 그 동네의 집에 들렀다가 프란체스카를 만나게 되고, 그들은 처음 본 순간부터 서로에게 강렬하게 이끌리고, 마침 프란체스카의 남편과 아이들이 집울 비웠기에, 나흘간 그녀의 집에서 뜨거운 사랑을 나눈다. 그 때 프란체스카의 나이는 마흔다섯이었고, 로버트의 나이는 쉰둘이었다.


나는 이런 사랑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스무살에도 오고 스물 일곱에도 오지만, 마흔 다섯에도 온다는 걸 믿는다. 그리고 마흔 다섯에 온 사랑이 온 삶을 통틀어 가장 뜨거울 수도 있다는 것을 믿는다. 대체적으로 사랑은 엇박자인지라, 나에게 가장 강한 영향을 미쳤던 나의 연인에게, 나 역시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다. 내가 그를 추억하는 만큼, 그는 다른 사람을 추억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프란체스카가 로버트를 추억하고 로버트가 프란체스카를 추억한다는 것을 그 둘은 안다. 아는 정도가 아니라 확신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아주 강렬한 사랑이었음을, 평생을 두고도 잊지 못할 사랑이었음을, 그 전과의 삶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강렬한 사건이었음을, 그들은 안다. 그리고 상대가 안다는 것 역시도 알고 있다. 그들은 나흘간 사랑을 나누고, 그 후에 이십년이상 서로의 목소리도 듣지 못하는 채로 살면서, 그러나 서로가 서로를 향해있다는 것을 안다. 나는 이것을 믿는다. 누군가에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세상에는 단 한 순간의 기억만으로 평생을 지탱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어쩌면 대부분이 그럴 지도 모르겠다. 


처음 본 순간부터의 강렬할 끌림, 서로가 서로를 이해한다는 믿음, 나흘간의 섹스, 그 후에 헤어짐을 받아들이는 것까지, 프란체스카는 그를 따라가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던 자신을 후회하지만, 그러나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머무는 것 뿐이었음을, 프란체스카도 그리고 로버트도 안다. 이들이 함께 있는 동안 사랑하고 또 헤어진 후에 어디에 있든 서로를 그리워하는 것까지, 순간적으로 내가 될 순 있었다. 응, 맞아, 한 순간의 기억으로 평생을 지탱할 수도 있지. 나는 당신을 향한 그리움으로 지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을 수도 있어. 그런데,


이 책으로 놓고 보면 이 사랑이야기는 좀 작위적이란 느낌을 준다. 평생을 그리워하는 거, 이거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인데, 작가가 너무 욕심을 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사랑을 좀 더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서 굳이 음악가의 인터뷰까지 실을 필요는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사랑이야기는 당연히 나에게 가장 특별한 것이지만, 뭐랄까, 이 사랑이 얼마나 특별한지를 말하기 위해 쓸데없이 군살을 붙인 느낌이랄까. 

게다가 이 사랑은 내가 좋아하는, 내가 무척 흥미를 가지는 사랑의 형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주인공들에 대해서는 매력을 느낄 수가 없다. 남자 작가의 한계일지 모르겠지만, 곧잘 그들은 주인공에 자신의 로망을 불어넣는 것 같다. 물론, 그게 작가가 가진 가장 큰 유리한 점이기도 하겠지만, 로버트는 누구에게도 구속 받지 않는 사람이며 일에 있어서는 엄청난 프로이다. 게다가 근육질이고, 어느 여자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으며 바람처럼 떠돈다. 이건 뭐랄까, 그냥 남자들의 로망 같다. 그렇게 떠돌다가 중년에 인생사랑 만나 그 사랑을 평생 간직하며 목걸이 메달로 사랑하는 여자의 이름을 달고 다니는 남자라니, 흐음, 로맨틱하긴 하지만, 있을 수도 있겠지만, 너무나 소설 같다. 게다가 프란체스카는 젊은 시절 남자만 기다리는 타입의 여자였으니, 그 또한 내 관심을 끌지 못한다. 조용한 시골마을에서 지루하다고 생각하고 여기서 빠져나가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계속 눌러붙어 있는 사람은 사실, 내 타입이 아니다. 물론 상황이란 게 있다는 것을 알고, 지금까지의 삶을 한 순간에 놓고 갈 수 없다는 것도 알지만, 나로서는 매력을 느낄 수 없는 타입의 여자랄까. 집에만 조용히 가만히 있는데 인생사랑이 제 발로 걸어들어오다니... 흠.. 뭐 어쨌든, 그렇게 외부로 발을 뻗어 나갈 수 없는 타입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 나흘간의 만남과 사랑이 인생사랑이 된 걸수도 있겠다.


나는 이들이 경험한 나흘간의 사랑은 충분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사랑을 내가 평가할 일은 아니지만, 사랑을 하지 못한 채로 사느니, 이 나흘간의 사랑을 겪고 평생을 그리움에 허덕이는 편이 낫겠다고도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로버트와 프란체스카가 주인공인 이 책이 좋다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언제부터인가 나는, 하오체를 읽는게 힘들어지고 말았어...



오랫동안 내가 당신을 향해, 당신이 나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는 것은 이제 분명하오. 우리가 만나기 전에는 서로를 몰랐지만, 분명히 우리가 함께 되리라는 확신이 우리가 모르는 가운데도 저 가슴 밑바닥에서 쾌활하게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던 것이오. 하늘의 부름을 받아 광활한 초원을 나는 외로운 두마리 새처럼, 그 모든 세월과 인생 동안 우리는 서로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던 거요. (p.40)



그녀는 추억했다. 추억하고 또 추억했다. 아이오와 92번 도로를 따라 빗속을 달리던 빨간 후미등의 이미지. 20년도 넘는 세월 동안 그 안개가 내리는 가운데 살았다. 그녀는 무심결에 자기 가슴을 어루만졌다. 그러자 그녀 위로 그의 가슴 근육이 스치고 지나가던 느낌이 그대로 살아났다. 맙소사, 그녀는 그를 너무나 사랑했다. 도저히 그렇게 사랑하기란 불가능하리라 생각될 만큼 그를 사랑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를 예전보다도 훨신 더 많이 사랑하고 있다.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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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6-12-06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오..체 읽는 것이 힘든 사람 추가요~^^ 자꾸 오그라들어요 ㅎㅎ 전 이 책 별 감흥 없이 읽었는데 그 이유를 다락방님 글을 읽고 알게 됐어요. 완벽한 남주와 수동적인 여주... ㅎㅎ

다락방 2016-12-06 16:02   좋아요 0 | URL
제가 한창 할리퀸을 읽던 시절에는 남자의 하오체를 낭만적이라고 생각했었는데요. 이젠 하오체를 견디기가 힘이 드네요. 하아-
작가가 자꾸 ‘이 사랑 완전 짱이지?‘ 이걸 강조하는 것 같아서 좀 짜증났어요. 가만 둬도 알아서 다 판단할 수 있는데 말이죠. 작가가 욕심을 너무 많이 부리면 좋지 않은 글이 나오는 것 같아요. ㅎㅎ

LAYLA 2016-12-07 01: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찬양하는 글만 봤는데 락방님 글을 읽으니
그렇지
맞아
그라췌!
막 공감하게 되고요...?
캐릭터 분석은 날카로운 지적인거 같아요.

다락방 2016-12-07 09:01   좋아요 0 | URL
그라췌! 라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소리내서 해보고 빵터졌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린 시절에 읽었을 때 재미없었거든요. 이제 프란체스카와 비슷한 나이가 되어 다시 읽으면 어떨까 싶어 읽은건데, 음, 찬양할만한 책은 아니에요. 책은 그대로인데 제가 변한거겠죠... 하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