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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로버트 제임스 월러 지음, 공경희 옮김 / 시공사 / 2002년 10월
평점 :
어떤 사람들은 곧잘 사랑에 빠지고 또 빠지는 사랑마다 뜨거워질 수도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연애를 반복하긴 하지만 활활 타오르지 않을 수도 있고. 연애를 할 때마다 백도씨까지 끓어오르는 사람도 있지만, 매번 육십도 이상으로만 타오르다 단 한 번만 백도씨까지 타올라, 그 기억을 평생 안고 가져가는 사람도 있고. 그러니까 나는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 다양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사실 어떻게 매번 백도씨까지 타오르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들은 말뿐이지, 사실은 정말 백도씨가 되어 활활 타올랐던 건, 단 한 번뿐이지 않을까? 누구나 평생 살면서 기억하게 되는 '가장' 사랑하는, '최고로' 사랑했던, '미친듯이' 뜨거웠던 연인은, 단 한 명 뿐이지 않을까? 물론 매순간 연애에 최선을 다하고, 또 매순간 자신의 연인을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죽기 전에 기억나는 '단 하나의' 사람 같은 게 존재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나는 로버트 킨케이드처럼, 이렇게 생각한다.
"할 이야기가 있소, 한 가지만. 다시는 말하지 않을 거요, 누구에게도. 그리고 당신이 기억해 줬으면 좋겠소. 애매함으로 둘러싸인 이 우주에서, 이런 확실한 감정은 단 한 번만 오는 거요. 몇 번을 다시 살더라도, 다시는 오지 않을 거요." (p.150)
로버트는 매디슨 카운티로 다리(bridge)의 사진을 찍으러 갔다. 길을 물으러 그 동네의 집에 들렀다가 프란체스카를 만나게 되고, 그들은 처음 본 순간부터 서로에게 강렬하게 이끌리고, 마침 프란체스카의 남편과 아이들이 집울 비웠기에, 나흘간 그녀의 집에서 뜨거운 사랑을 나눈다. 그 때 프란체스카의 나이는 마흔다섯이었고, 로버트의 나이는 쉰둘이었다.
나는 이런 사랑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스무살에도 오고 스물 일곱에도 오지만, 마흔 다섯에도 온다는 걸 믿는다. 그리고 마흔 다섯에 온 사랑이 온 삶을 통틀어 가장 뜨거울 수도 있다는 것을 믿는다. 대체적으로 사랑은 엇박자인지라, 나에게 가장 강한 영향을 미쳤던 나의 연인에게, 나 역시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다. 내가 그를 추억하는 만큼, 그는 다른 사람을 추억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프란체스카가 로버트를 추억하고 로버트가 프란체스카를 추억한다는 것을 그 둘은 안다. 아는 정도가 아니라 확신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아주 강렬한 사랑이었음을, 평생을 두고도 잊지 못할 사랑이었음을, 그 전과의 삶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강렬한 사건이었음을, 그들은 안다. 그리고 상대가 안다는 것 역시도 알고 있다. 그들은 나흘간 사랑을 나누고, 그 후에 이십년이상 서로의 목소리도 듣지 못하는 채로 살면서, 그러나 서로가 서로를 향해있다는 것을 안다. 나는 이것을 믿는다. 누군가에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세상에는 단 한 순간의 기억만으로 평생을 지탱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어쩌면 대부분이 그럴 지도 모르겠다.
처음 본 순간부터의 강렬할 끌림, 서로가 서로를 이해한다는 믿음, 나흘간의 섹스, 그 후에 헤어짐을 받아들이는 것까지, 프란체스카는 그를 따라가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던 자신을 후회하지만, 그러나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머무는 것 뿐이었음을, 프란체스카도 그리고 로버트도 안다. 이들이 함께 있는 동안 사랑하고 또 헤어진 후에 어디에 있든 서로를 그리워하는 것까지, 순간적으로 내가 될 순 있었다. 응, 맞아, 한 순간의 기억으로 평생을 지탱할 수도 있지. 나는 당신을 향한 그리움으로 지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을 수도 있어. 그런데,
이 책으로 놓고 보면 이 사랑이야기는 좀 작위적이란 느낌을 준다. 평생을 그리워하는 거, 이거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인데, 작가가 너무 욕심을 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사랑을 좀 더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서 굳이 음악가의 인터뷰까지 실을 필요는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사랑이야기는 당연히 나에게 가장 특별한 것이지만, 뭐랄까, 이 사랑이 얼마나 특별한지를 말하기 위해 쓸데없이 군살을 붙인 느낌이랄까.
게다가 이 사랑은 내가 좋아하는, 내가 무척 흥미를 가지는 사랑의 형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주인공들에 대해서는 매력을 느낄 수가 없다. 남자 작가의 한계일지 모르겠지만, 곧잘 그들은 주인공에 자신의 로망을 불어넣는 것 같다. 물론, 그게 작가가 가진 가장 큰 유리한 점이기도 하겠지만, 로버트는 누구에게도 구속 받지 않는 사람이며 일에 있어서는 엄청난 프로이다. 게다가 근육질이고, 어느 여자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으며 바람처럼 떠돈다. 이건 뭐랄까, 그냥 남자들의 로망 같다. 그렇게 떠돌다가 중년에 인생사랑 만나 그 사랑을 평생 간직하며 목걸이 메달로 사랑하는 여자의 이름을 달고 다니는 남자라니, 흐음, 로맨틱하긴 하지만, 있을 수도 있겠지만, 너무나 소설 같다. 게다가 프란체스카는 젊은 시절 남자만 기다리는 타입의 여자였으니, 그 또한 내 관심을 끌지 못한다. 조용한 시골마을에서 지루하다고 생각하고 여기서 빠져나가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계속 눌러붙어 있는 사람은 사실, 내 타입이 아니다. 물론 상황이란 게 있다는 것을 알고, 지금까지의 삶을 한 순간에 놓고 갈 수 없다는 것도 알지만, 나로서는 매력을 느낄 수 없는 타입의 여자랄까. 집에만 조용히 가만히 있는데 인생사랑이 제 발로 걸어들어오다니... 흠.. 뭐 어쨌든, 그렇게 외부로 발을 뻗어 나갈 수 없는 타입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 나흘간의 만남과 사랑이 인생사랑이 된 걸수도 있겠다.
나는 이들이 경험한 나흘간의 사랑은 충분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사랑을 내가 평가할 일은 아니지만, 사랑을 하지 못한 채로 사느니, 이 나흘간의 사랑을 겪고 평생을 그리움에 허덕이는 편이 낫겠다고도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로버트와 프란체스카가 주인공인 이 책이 좋다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언제부터인가 나는, 하오체를 읽는게 힘들어지고 말았어...
오랫동안 내가 당신을 향해, 당신이 나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는 것은 이제 분명하오. 우리가 만나기 전에는 서로를 몰랐지만, 분명히 우리가 함께 되리라는 확신이 우리가 모르는 가운데도 저 가슴 밑바닥에서 쾌활하게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던 것이오. 하늘의 부름을 받아 광활한 초원을 나는 외로운 두마리 새처럼, 그 모든 세월과 인생 동안 우리는 서로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던 거요. (p.40)
그녀는 추억했다. 추억하고 또 추억했다. 아이오와 92번 도로를 따라 빗속을 달리던 빨간 후미등의 이미지. 20년도 넘는 세월 동안 그 안개가 내리는 가운데 살았다. 그녀는 무심결에 자기 가슴을 어루만졌다. 그러자 그녀 위로 그의 가슴 근육이 스치고 지나가던 느낌이 그대로 살아났다. 맙소사, 그녀는 그를 너무나 사랑했다. 도저히 그렇게 사랑하기란 불가능하리라 생각될 만큼 그를 사랑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를 예전보다도 훨신 더 많이 사랑하고 있다.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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