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밤에 우리 영혼은
켄트 하루프 지음, 김재성 옮김 / 뮤진트리 / 2016년 10월
평점 :
내가 지금의 나의 가족이 아닌 타인과 함께 산다고 상상했을 때, 그러니까 이성애자인 내가 다른 성인 남성과 함께 일상을 공유하기로 결정한다면, 그때 나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때의 나는 어떤 삶을 살게될까. 그리고 그것은 어떤 장점을 줄 것인가를 가끔 생각해본다. 최근에 몇차례 뉴스를 볼 때마다 누군가랑 함께 하고 싶어진다고 얘기한 적이 있었는데, 이건 비교적 최근에 생각하게 된거고, 그 전에는 새벽에 잠에서 깼을 때 그런 생각을 가끔 했다. 나는 깊게 자지 못하는 타입이고 새벽에 수시로 깬다. 그럴 때 누군가 옆에 누워있다면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가끔 해보게 되는 것이다. 또한 악몽을 꿨을 때도 그렇다. 나는 꿈을 아주 자주 꾸는 편인데, 그러다보면 종종 무서운 꿈도 찾아온다. 그럴 때 몸부림치다 눈을 떠서 옆에 누군가 있다는 걸 확인한다면 안정이 찾아오지 않을까. 누군가와 같이 산다는 것은 아주 많은 불편함을 가져오겠지만, 때로는 혼자서는 결코 누리지 못할 안락함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밤에 잠들기전과 아침에 일어난 직후, 또 새벽에 잠에서 깨었거나 늦게까지 잠들지 못하는 어느 깊은 밤에, 누군가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면, 그 일상은 아름답지 않을까. 긍정적인 면들을 생각해보면 대체 왜 혼자 살아야하는건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리고 만다.
누구에게나 외로운 순간은 찾아들 것이고, 또 그 외로움을 그 순간 자신이 어떻게든 견뎌내야 할 것이다. 이 외로움이 지긋지긋하고 싫다, 라고 생각한다면 자연스레 '이제는 누군가와 함께이고 싶다' 라고 생각하게 될테고.
이 책, 《밤에 우리 영혼은》 속의 여자 '애디'는 남편과 사별한 지 오래되었고, 이제 혼자인 게 너무 싫은 일흔살 노인이다. 그녀는 이웃집 남자 노인 '루이스'를 찾아가, 우리가 함께 밤을 보내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그건 성적인 의미를 담은 게 아니다. 나랑 밤마다 섹스를 하자는 게 아니라, 나도 외롭고, 내 보기엔 너도 외로우니, 우리가 긴 밤 잠들기전에 서로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이야기상대가 되자는 뜻이었다.
이 제안은 루이스에게 갑작스레 찾아온 것이었고, 그래서 루이스는 놀란다. 그렇지만 그 제안이 나쁘게 여겨지지 않아, 칫솔과 치약 그리고 잠옷을 챙겨들고는 옆 집 여자 애디에게로 찾아간다. 그리고 그들은 나란히 누워서, 처음이니까 당연히 어색하게, 조심스레 이야기를 나눈다.
처음에는 할 이야기가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 밤들이 하루가 되고 이틀이 되고 또 여러 날이 되면서, 그들은 서로에 대해 점차로 알게 되고 또 더 다정해지게 되고, 그리고 그 밤을 기다리고 기대하게 된다. '좋다'고 생각한다, 이 밤들이. 이제는 외롭지 않고 좋다고.
그리고 이 둘에게 '애디'의 여섯살 손자가 찾아든다. 부모의 이혼으로 당분간 혼자가 된, 쓸쓸하고 상처받은 소년이 이 노인들 사이에 끼게 되고, 이들은 이제 어떤 낮에도 함께 하게 되며, 캠핑을 가고, 함께 살 개를 데려오고, 정원을 함께 가꾸면서 조금 더 단단해진다. 매 순간순간이 이 노인들에게도 또 아이에게도 차곡차곡 쌓여 정이 더해간다. 외로운 각자의 삶이 모여서 다정한 여럿의 삶이 된다.
그러나 이들이 살고 있는 이 작은 마을과 또 이 노인들의 자식들은 이 삶을 부끄럽게 여긴다. 손가락질 받을 거라 여긴다. 왜 남부끄럽게 밤에 다른 이성을 만나냐, 아버지(혹은 어머니)가 살아계셨다면 뭐라 했겠냐, 며 이들이 부끄러운 짓을 하는 것처럼 여긴다. 정작 당사자들은 남들 눈 신경쓰지 않고 행복하게 잘 지내는데, 그 행복을 가지면 안되는 거라고,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이 말한다. 결국 애디의 아들은 '그와 이 관계를 당장 그만두지 않으면 다시는 손자를 볼 수 없을 줄 알라'며 협박하고, 이에 애디는 루이스에게, 살아 있는 동안 사랑하는 손자를 계속 보고 살고 싶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들은 헤어진다.
상황으로만 보자면 달라진 건 없다. 처음 혼자였던 그들이 '다시' 혼자가 됐을 뿐이다. 그러나 그 삶은 이전의 삶과 같지 않다. 혼자가 다시 혼자가 된 것은 그 사이에 누군가와 함께 였던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시간으로 다가온다. 그 다정했던 밤들을, 그 다정했던 순간들을, 그들은 도저히 잊을 수가 없다. 다시 서로의 옆에 머물고 싶다. 다시 서로의 곁에 찾아들고 싶고, 여전히 계속해서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다. 차라리 함께였던 그 행복을 몰랐으면 모를까, 그걸 알면서 혼자가 되는 삶은 지나치게 고통스럽다. 그 고통이 너무 아프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이별을 말하면서 상대가 고통스럽다 했을 때, '너 나 만나기 전에도 살았잖아' 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 그러자 상대는 '널 알기 전의 삶은 널 알고난 후의 삶과 다르다'고 했다. 나 역시 알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이와 헤어진다는 것은, 다시 예전처럼 혼자가 된다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우리가 함께했을 때 그것이 상대를 가졌다는 걸 의미하진 않지만, 그러나 우리가 헤어졌을 때 우리는 상대를 '잃는' 것이다. 혼자였던 시간이 누군가를 '잃고' 혼자가 되는 것과 같을 리가 없다. 그건 고통이고 아픔이다. 하루하루 어떻게 버텨야할지 모르겠는 시간들이 찾아오고, 그 시간 틈틈이 가슴을 치고 눈물을 흘리게 된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되어 저 바닥으로 떨어진다. 혼자가 자유롭고 마냥 신난다고 생각했지만, 구속은 싫다고 외쳤지만, 사랑을 '잃고' 혼자가 되면, 그럴 때조차 혼자라고 박수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익숙하고 다정한 상대가 내 곁을 떠나버리면, 그래서 내가 상대의 '부재'를 확인해버리면, 그 빈자리는, 이를 악물어도 참아내기가 몹시 힘들다. 나는 계속 혼자라 해도, 누군가 존재했다 부재하는 순간, 세상이 달라져버린다. 그건 함께 했던 시간이 정말 아름답고 다정했다는 걸 증명하는 것.
그렇다면 아주 간단한 답이 있다. 존재했다면, 부재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일단 찾아들었다면 떠나지 않으면 된다. 함께 했다면, 헤어지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이 간단한 답이 가장 실행하기 어려운 답이 된다. 인간 사이에선 그렇다. 아니,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에게 그렇다. '헤어지지 않으면 돼'라고 간단히 말할 수 있지만, 그건 말처럼 쉬운 게 아니라서, 우리는 헤어지고 나서도 아프다고 고통스러워하고, 함께 할때도 혹여 헤어지게 되진 않을까 불안해한다. <scientist> 란 노래에서 그런 가사가 나오지 않았던가.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내가 너를 잊는 방법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고.
나는 그렇게나 많은 책을 읽고 그렇게나 많은 영화를 보고 그렇게나 많은 음악을 듣고 또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을 만나 그렇게나 많은 대화를 나눴지만, 아직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지 않는 방법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다.
루이스와 애디는 서로에게 다시 닿고자 한다.
헤어지고 고통스러워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러한 것처럼.
마침내 그가 왔고 그녀는 그를 맞아들였다. 뭔가 달라 보였다. 무슨 일 있었어요? 그녀가 말했다. 곧 말할게요. 먼저 술 한 잔 해도 될까요? 물론이에요. (p.31)
고마워요. 하지만 그 사람들로 인해 나는 상처받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함께하는 밤들을 즐길 거예요. 그것들이 지속되는 한. 그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말해요? 일전에 내가 그랬듯 말하네요.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될 거라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기를 원해요. 그녀가 말했다. 이미 말했듯, 난 더이상 그렇게, 다른 사람들 눈치를 보며, 그들이 하는 말에 신경 쓰며 살고 싶지 않아요. 그건 잘 사는 길이 아니죠. 적어도 내겐 그래요. 좋아요. 내게도 당신 같은 분별력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당신 말이 옳아요, 물론. 이제 괜찮은 거죠? 뭐, 거의. 맥주 한 병 더 마실래요? 아니에요. 하지만 당신이 와인을 더 하고 싶다면 함게 앉아 있어줄게요. 그냥 당신을 보면서요. (p.33)
초콜릿은 안 먹는 게 좋다지만 이제 와서 뭐가 달라지겠어요? 먹고 싶은 건 다 먹고 죽을 거예요. (p.40)
벌써 보고 싶어요. 애디가 말했다. 우리는, 당신과 나는, 어찌될까요? (p.121)
하지만 당신도 내가 싫증나서 꺼져주기를 바라게 될지 모르죠. 그런 일이 생기면 몀추면 돼요. 그녀가 말했다. 그게 우리가 합의한 거잖아요. 정확히 말로 하진 않았지만요. 그래요. 내가 싫증나거든 말해요. 당신도요. 난 그럴 일 없을 것 같아요. 우리가 가진 이걸 다이앤은 한 번도 누리지 못했어요. 내가 모르는 다른 누가 있었다면 몰라도. 하지만 아니었을 거예요. 그런 생각을 했을 리가 없어요. (p.143)
난 그냥 하루하루 일상에 주의를 기울이며 단순하게 살고 싶어요. 그리고 밤에는 당신과 함께 잠들고요. (p.159)
내가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당신이 내게 얼마나 중요한지, 그건 알아요. 하지만 나도 당신에게 그런 의미일 것이라는 생각이 도저히 안 들어요.(p.163)
아, 이렇게 당신 옆에서 이야기를 나누니 벌써 기분이 좋아져요. 아직 별 이야기도 안 했는데요? 그래도 벌써 훨씬 좋아요. 당신 덕분이에요. 이 모든 것에 감사해요. 내가 아주 행복한 여자라는 느낌이 다시 들어요. (p.164-16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