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자매 뚝딱뚝딱 누리책 13
조아나 에스트렐라 지음, 민찬기 옮김 / 그림책공작소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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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보는데 괜히 눈물이나고 여동생 생각 너무 나서, 다 읽은 책을 여동생에게 보내려다가, 이렇게 엽서를 썼다.




여동생에게.

이거 읽는데 괜히 눈물이 나.

사랑해.

네가 내 동생이어서 감사하고

내가 너의 언니라는 게 너무 행복해.


2017년 5월 24일

너의 언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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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7-05-24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 뭔데뭔데. 이 리뷰 때문에 저 책이 너무 궁금해요!!

다락방 2017-05-24 14:04   좋아요 1 | URL
응 그냥 평범한 어린 자매 이야기인데, 진짜 별 거 없는데 막 짠하네.
괜히 타미 화니 생각도 나고...
 
어린이책 읽는 법 - 남녀노소 누구나 땅콩문고
김소영 지음 / 유유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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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많이 읽어서 학교생활이 재미없어졌다면 독서가 생활의 질을 떨어뜨린 셈이다. 게임을 하고 연예인을 좋아하는 것은 요즘 어린이의 생활에서 일부분일 뿐 잘못이 아니다. 그런 어린이도 얼마든지 책을 좋아할 수 있다. (p.24)



아빠는 내게 자주 말씀하셨다. 보통 책을 좋아해서 책을 많이 읽는다면 술을 마시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떻게 너는 맨날 술을 마시면서 책을 좋아할 수 있냐, 그거 너무 신기하다, 고. 아니, 아빠는 술도 안마시고 책도 안읽으면서 뭘 내가 신기해... 아빠에게 술과 책은 같이가기엔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는가 본데, 우리의 작가 김소영 님은 자신의 책에서 게임을 하고 연예인을 좋아하고 그래도, 얼마든지 책을 좋아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크- 그러니까 여기에 어른을 대입하자면, 술을 좋아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책을 좋아할 수 있다, 뭐 이런 거 아니겠는가. 술과 책, 만세! 내가 여태 살아보니, 책과 술만한 게 없더라. 내가 책과 술과 남자를 사랑했지만, 남자란 언제든 왔다 가는 것..... 그러나 책과 술은 변함없이 내 곁에 있어!! 

라고 쓰면 '어린이책' 읽는 법, 이라는 책에 너무 불손한...감상인가...... (잠깐 시무룩)



책은 뭘까?


최근 3주간 나는 몹시도 우울했다. 몸도 마음도 완전히 지쳐있었다. 뭐가 먼저 찾아왔는지 모르겠다. 마음이 지쳐 몸이 지치게 된건지, 몸이 지쳐 마음이 지치게 된건지. 어쨌든 우울한 채로 한 2-3주를 지냈는데, 놀랍게도 이 책은 내 마음이 회복되는 데 도움을 줬다. 이 책이 대체 뭘 한건지는 모르겠지만, 내게 책은 좋은 치료법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정말 뭘 한 건지 모르겠다. 끝까지 다 읽어도 나에게 '기운내'라고 말하는 게 아닌데, 그런데 어쩌면 이렇게 쓰여진 평범한 문장들이 나를 위로하는걸까. 그러니까 내가 위로 받은 문장에는 이런 게 있다.



"그래도 『안 돼, 데이빗!』이랑 『괴물 그루팔로』는 추억으로 간직하기로 했어요."

'이 책만은 버리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드는 순간, 어린이와 책의 관계가 새로워진다. 이때 책이 갖는 특별한 의미는 더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런 책은 '명예의 전당'에 꽂아둔다. 책꽂이의 한두 칸을 비워 제일 좋아하는 책만 진열하는 것이다. (p.55)



여기 어디에 특별함이 있단 말인가. 어떤 특별한 단어가 없는데, 나는 이 부분이 진짜 너무 좋은 거다. 그러니까 내가 어쩌면 '나만의 명예의 전당'같은 걸 이미 갖고 있는 어른이어서일지도 모르겠다. 나에게도 그런 책장 한 칸이 있는데, 다른 많은 사람들이, 그러니까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어린이라도, 자신이 특별히 아끼는 책이 있고, 그렇게 책과의 특별한 관계를 만들어가며 자신의 명예의 전당에 꽂아둔다는 것이, 이상하게 마음에 위안이 되는 거다. 한창 우울해있을 때 이 부분을 읽는데 괜히 마음이 막 좋아져가지고, 아아, 이 책...뭐지, 내게 뭘한거지? 하게 된거다.



김소영 작가는 책의 처음에서, 부러 책의 문체를 건조하게 썼다고 했다. '어린이와 관련된 말과 글이 '어린' 취급을 받는 것이 싫어서(p.11)' 라면서. 읽을 때 그 건조함이 이 책을 재미없게 만들면 어떡하지, 읽기전부터 고민했는데, 아아, 바보 같은 고민이었다. 그동안 블로그에서 봐온 글에 비하면 확실히 건조한 문체이긴 하지만, 그렇지만 재미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 따뜻해!! 


자, 그리고 내가 주저앉아서 울고 싶었던 부분은 이런 부분이었다.



어린이도 청소년도 어른도 그림책 읽는 즐거움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 읽어서 즐겁다면 읽자. 말이 난 김에 짧게나마 꼭 강조하고 싶은데, 어린이가 초등학생이 되었어도 '읽어주는 것'은 여전히 좋다. 원한다면 어린이의 나이와 상관없이 언제까지나 읽어 주자. 듣기도 독서의 한 방법이다. (p.77-78)



엄마는 내게 책을 읽어줬었다고 하지만 나는 기억이 1도 나지 않고, 내가 기억을 가졌을 때부터는 누가 내게 책을 읽어준 기억이 없다. 3년 전이었나, 연애할 때 애인이 새벽 세시를 읽어준 적이 있었는데, 그때 진짜 여러가지 감정이 한꺼번에 몰려왔더랬다. 애인이란 넘나 좋은 것. 책을 읽어주고 노래도 불러주고.... 자, 다시 돌아가서, 책을 읽어주는 건, 진짜, 정말이지, 너무 좋은 것 같은데, 내게 그런 경험 너무 없고.... 어제 쓴 포틀랜드 책 리뷰에 포틀랜드 농장 가서 농장주의 아들과 연애 하라는 댓글 있었는데...아아, 농장주의 아들이라면 정말이지 건강할테고, 볕에 그을렸을테고, 여유로울 테고, 밤마다 포치에서 술을 마시면서 나랑 이야기를 나누다가 밤에는 같이 침대에 누워 나에게 책을 읽어주면..... 아아, 애인은 또 있을 때는 있는대로 좋고 그런 것이야....


이런 문장은 또 '어린이책 읽는 법' 같은 책의 리뷰에 쓰면 안되는 것이겠지? (시무룩..)


아무튼지간에 나에게도 책을 읽어주는 것이 아주 좋은 독서 방법이라고 저자가 말해줘서 뭔가 씐나는 기분이 되었던 거다. 아주 그냥 기회만 생겨봐라, 내가 책을 읽어달라고 조르겠어! 누구한테? 농장주의 젊은 아들한테!!!

음..그러면 원서로 읽어주려나?????

음.......그러면 내가 어떻게 알지?

아, 그림책 읽어달라고 하면 되겠다!

앗. 그럼 그림을 봐야 되나..

음..그건 닥치면 쇼부를 치도록 하자. 아직 닥치지 않은 미래잖아..

그렇지만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했어.....




나는 어린이가 동화책을 읽어야 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 '공감 능력 키우기'를 든다. 어린이에게 타인과 공감하는 능력이 필요한 이유는 따로 섦여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남을 도울 때뿐만 아니라, 자신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남에게 도움을 청하는 데도 '공감'에 대한 이해와 믿음이 필요하다는 점을 새삼 짚고 싶다. (p.100)



나는 이 세상 대부분의 문제들이 공감능력 부족 때문에 생긴다고 보는 사람이다. 그 문제들 모두에 공감을 대입해보면 쉽게 풀리는 것들이 많은 거다. 공감능력이 '능력'이라기 보다는 필수적인 삶의 태도로 자리 잡아야 할 것인데, 그러기 위해 독서는 충분한 수단이 된다고 믿고 있다. 그러므로 작가의 저 말에 깊이 동의를 하고, 조금 더 덧붙이자면, '마사 누스바움'이 그랬던것처럼, 책을 읽고 공감능력을 키우면 '너그러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강조하고 싶다. 나를 봐라, 책 많이 읽고 공감능력 열나 캡짱이니까 막 개구리가 되어보고 그러지 않나. 개구리도 되었다가, 빵도 되었다가...나는 오늘 아침 출근길에, 에스컬레이터 손잡이에 붙어 있던 달팽이도 되었었다!! 아아, 이 넓은 세상, 어딘지도 모르겠는데 나는 누구고 여긴 어딘가...하는 달팽이의 마음이 되었다고! 이렇게나 내가 너그러운 건, 다 공감능력 때문이고, 그것은 독서가 내게 준 것!!! 



이 책은 어린이가 어떻게 책을 읽으면 좋을지 방향 설정과 방법에 대한 유익한 길잡이가 된다. 그러므로 '내 아이에게 어떻게 책을 읽혀야 할까, 어떤 책을 읽혀야 할까' 하는 것이 도무지 답이 안나오는 사람이라면 기꺼이 읽어야 할 책이다. 또한 어른에게도 마찬가지. 책을 읽는 데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모른다면, 이 책이 답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미 책을 가까이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든든한 친구가 된다. 이 책에서는 내가 책을 읽으면서 하는 그 모든 행위들이, 지극히 당연하고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말해주고 있다. 그래서 나는 내 독서행위에 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내가 책을 사랑한다면, 책읽기를 사랑한다면, 그것은 내가 사랑하는 그 방법이 맞다!!! 그러니까 이 책은, 종합하자면,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모르는 어른과 이미 책을 좋아하는 어른 모두에게 유익한 책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아까도 말했지만, 왜그랬는지, 어디서 그런건지 잘 모르겠지만, 어떻게 무엇을 한건지 잘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위로가 돼!!! 



이 작은 책 한 권이 힘이 세다.




(어린이책 리뷰를 너무 성인여자 모드로 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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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29 1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1-04-29 13:19   좋아요 0 | URL
김소영 작가의 책은 무엇을 고르시든 후회하지 않으실겁니다!!

독서괭 2023-12-11 0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ㅋㅋㅋㅋㅋㅋ 이 책 예전에 읽고 지인 줬는데 다시 살까 해서 들어왔다가 다락방님 리뷰 보고 반가웠는데 ㅋㅋㅋ 어린이책 읽는 법 리뷰가 이래도 되는 건가요 ㅋㅋㅋㅋㅋ 아 너무 웃겨요🤣🤣🤣

다락방 2023-12-11 08:23   좋아요 1 | URL
으하하하 덕분에 저도 오래된 리뷰를 다시 읽었네요. 투비에 옮겨야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살아보고 싶다면, 포틀랜드 - 풍요로운 자연과 세련된 도시의 삶이 공존하는 곳 포틀랜드 라이프 스토리
이영래 지음 / 모요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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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몇 장을 읽었을 때는 어쩐지 글 타입이 나랑 맞지 않는 것 같아 사진만 후루룩 넘겨봐야지 싶었는데, 읽다보니 점점 빠져들게 됐다. 빠져들었다기 보다는 사실 흥분됐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인데, 와, 읽기 시작하면서 내내 얼마나 포틀랜드에 가보고 싶어졌는지, 수시로 비행기표를 검색해봤다. 같이 가고 싶다는 친구는 결혼준비 때문에 아무래도 안되겠다고 했고, 그래서 나는 '혼자 가자' 생각하게 되었는데, 비행기야 그렇다쳐도, 호텔비를 어떻게 감당하나, 생각하니 지금 머리가 아프다... (집에 가면서 로또를 사볼까...)


이게 단순히 포틀랜드 여행기였으면 나에게 크게 매력적이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러나 저자는 책 제목에서처럼 포틀랜드에서 '살고' 있다. 포틀랜드가 고향인 남자와 함께. 여자는 일본을 자주 드나들었었고 호주로 유학갈 준비중이었다가 한국에 와있던 미국 남자를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하면서 포틀랜드로 건너가게 된 것. 저자는 시종일관 삶에 대해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라서 포틀랜드의 삶에도 잘 적응하는데, 그걸 보는게 대단하고 또 감히 내가 대견하게 느꼈다. 컴플레인을 잘 거는 성격답게 아닌 건 아니라고 그자리에서 말하면서 자신의 유리한 위치를 가져가는 건, 파머스 마켓에서 베리를 팔 때 최정점을 찍었는데, 읽으면서 몇 번이나, 내가 이 저자와 같은 상황이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보니 나는 이 사람만큼 할 수 없을거다, 라는 생각이 드는 거다. 그녀는 남편과 사랑하며 잘 지내는것처럼 시댁 식구들과도 즐거이 잘 지내고 있다. 낯선 곳에서 적응하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잘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읽는 게 책장을 넘길수록 더 신났다. 게다가 남편이 맛집 찾아다니는 거 좋아해서 리스트 만들고 아내를 데려가는 거 너무 좋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포틀랜드에 살게 되면서 포틀랜드에 익숙해지고, 또 가끔은 여행자의 시선으로 포틀랜드를 보려는 저자는 삶에 있어서 꽤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사람 사귀는 것도 좋아하고, '내가 여기에서 무슨 일을 해볼 수 있을까?' 생각하는 것도 진짜 대단하고... 하고 싶은 건 반드시 하고야 말겠다는 사람인 것 같아서, 이런 저자라면 어디에 데려다놔도 잘 지내지 않을까. 포틀랜드에서 사람들과 까페와 레스토랑 그리고 숙박시설등을 비롯해 전체적으로 적응해 나가는 일상을 그려내길래, 아아, 그야말로 라이프 스토리구나 싶었는데, 끝에 가서는 숙박시설과 레스토랑등의 목록표도 만들어 두었으니, 오호라, 여행갈 때 들고가도 좋을 책이 되었다. 덕분에 큰 도움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자꾸만 아, 가고싶다, 가고싶다, 하면서 가슴이 뛰었다. 무엇보다 서울의 절반정도 되는 크기에 인구는 서울의 15프로라고 하니, 아아, 뭔가 아침에 일어나 늦은 아침을 먹고 어슬렁어슬렁 거리기 딱 좋은 곳일 것 같아. 이곳 특유의 슬로라이프를 내가 잘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또 여행할 때 특유의 조증이 발생하니까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작은 도시를 구석구석 누비고 싶다는 바람이 생긴다. 결혼하고 포틀랜드로 넘어가 남편이 데려갔다던 버거빌 이라는 버거집에 가서 버거도 먹고싶고... (  ")




저자는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데 남편은 맥주를 아주아주아주아주 좋아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남편을 아주 사랑스런 눈길로 바라보는 장면이 묘사되는데, 아, 이 책을 통틀어 가장 좋은 장면이었다. 내 눈앞에서도 그 장면이 그려지는 듯해서.



그가 유일하게 애지중지하는 맥주들을 꺼내 들고 나오는 시간이 있었다. 오후 5~6시. 그의 아버지가 농장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뒷마당의 포치에 앉아 저 멀리 들리는 기차 소리와 새소리만이 존재하는 평화로운 순간을 담배 한 모금으로 만끽하고 있을 때였다. 존은 언제나 맥주 한 병과 글라스 두 개를 들고 나와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와 함께 그 순간을 맞았다. 

(중략)

'저렇게 맥주 한 잔, 초콜릿 하나를 아버지와 나눠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삶을 이야기할 줄 아는 사람이 내 남편, 내 아이의 아빠가 된다면…….'

나는 그를 이해하려고 되지도 않는 노력을 하거나 시간이 지나면 저놈의 술을 끊게 해야지!라는 상상 같은 건 애초에 하지도 않았다. 그 역시 내가 싫어한다고 해서 일부러 그의 취미를 포기하거나 포기하는 척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 년 가까이 그의 맥주 사랑과 홈브루잉 취미생활을 지켜보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그의 취미를 존중할 수 있게 되었다. (p.205-206)




아아, 하루 일과가 끝나고 포치에서의 다정한 술 한 잔은 나의 오랜 로망이 아니던가. 여기엔 내가 바라는 모든게 다 있다. 다정한 사람과 이야기, 여유로운 분위기, 술.

술...

술.....

내가 진짜 포치에서 술 마시고 싶다고 글을 몇 번이나 썼는지!!!!



그리고 그런 광경을 바라보며 아, 저 남자 좋다...라고 생각하는 여자라니..........실로 애정이 뿜뿜하는 장면이 아닌가!




포틀랜드의 파머스 마켓에서 잼도 사보고, 숙소로 들어가는 길에 빵도 사서 여유롭게 빵에다 잼을 슥슥 발라 먹고 싶다. 느즈막히 책 한 권 들고 나가 맛있다는 커피집에도 가서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책도 보고. 그리고 기분 내키는 대로 이곳저곳 걸으면, 아아, 얼마나 좋을까. 읽는 내내 정말이지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어.... 베트남 국수여행 책 다음으로 나를 흥분시키고 말았다. 너무 좋아서, 막, 뭐할까, 이러면서 메모하면서 읽었다. 가게 되면 여기가서 이것도 먹어보고 이것도 마셔봐야지! 동네는 어디가 좋을까? 막 혼자 걷는 장면을 상상하면서.






그러다보니, 포스트잇을 여러군데 붙였다. 포틀랜드를 꼭 가보고 싶다던 친구가 있어서, 나중에 그 친구랑 함께 가자고 약속해 두었는데, 그 전에 나는 좀 미리 다녀와야겠다. 게다가 나의 다정한 오빠가 내가 포틀랜드에 오면 스테이크를 사주겠다고 했어.... 


내 영혼은 이미 거기에 가있다. 여기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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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7-05-23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같이 없어지려고 하네요, 영혼이. ㅜㅜ
포틀랜드 예전에 다녀왔었는데... 정감가는 곳이었어요. Saturday market도 좋았고. 아. 다시 가고 싶어욧!

다락방 2017-05-23 17:19   좋아요 1 | URL
비연님은 다녀오셨군요! 아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아무데나 막 돌아다니고 싶어요. 아아, 그렇지만 비용을 생각하니 잠깐 주춤하게 됩니다. 그래도 가고 싶으면 가야겠죠? 하하하하하

비연 2017-05-23 18:37   좋아요 0 | URL
그럼요 그럼요~ 가고 싶으면 가는 걸로. 비용은.... 어디선가 언제인가 메꿔지리라 믿으며 ㅡ.ㅡ;;

다락방 2017-05-24 08:09   좋아요 0 | URL
좀 저렴한 호텔을 알아보고 아무래도 떠나야겠어요...오늘 아침 출근길에도 계속 생각났거든요. 불끈!

transient-guest 2017-05-24 0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레건 주가 전체적으로 아름답죠. 저도 아주 어릴 때 가봤는데, 포틀랜드도 그렇고 유진도 그렇고 아주 예쁘다고 해요.ㅎㅎ 가서 멋진 농장주의 아들과 사랑에 빠져 눌러앉으실지도..ㅎㅎㅎ 포치에서 맥주와...등등...

다락방 2017-05-24 08:00   좋아요 1 | URL
아..... 멋진 농장주의 아들.....아아....포치에서 맥주.....멋진 농장주의 아들을 돈도 많고 볕에 그을려 구릿빛 피부를 가지고 있겠죠....농장에서 일하니 근육질의 단단한 몸.............일것이고, 아름다운 곳에서 살았으니 마음도 여유로울 것이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아 환상속의 남자네요. 네, 제가 포틀랜드로 가겠습니다. 멋진 농장주와 사랑에 빠져 포틀랜드에 눌러 살도록 하겠습니다. 아아 너무 멋져서 인생이 황홀해질 것 같아요..
>.<

웽스북스 2017-05-24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킨포크 스타일의 원조가 포틀랜드라고 들었는데, 역시 킨포크를 좋아하시던 다락방님은 이 책도 좋아하시는군요! ^^

다락방 2017-05-24 10:06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웽님. 여기에서 킨포크 본사 찾아가서 직원들 만나고 인터뷰 하는 것도 나와요. 이 저자도 킨포크를 엄청 좋아하더라고요. 후훗.
 
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 - 이다혜 기자의 페미니즘적 책 읽기
이다혜 지음 / 현암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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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디 웨스트'는 자신의 책, 《나는 당당한 페미니스트로 살기로 했다》에서 '어떤 면에서 보면 페미니즘은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이 우리를 미워한다는 사실을 천천히 깨달아가는 기나긴 과정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다' 라고 말한 바 있다. 나 역시 이문장에 동의하는 바,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이 나를 '사랑'했던 건 아니라는 사실을,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깨달았다. 그것을 미워한다고 표현하진 못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그것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혹독하게 깨달았달까. 나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라 생각하고 또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서라면 최대한 수용범위를 넓혀 상대를 받아들이고자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나 스스로 타인을 사랑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생각하고, 그래서 여태 많은 사람들-특히 '남자'란 성별을 가진 사람들'-을, '어? 이건 아닌 것 같은데...' 라고 생각하면서도 사랑해왔다. 그러나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내게는 '건드려서는 안될' 부분, '허락할 수 없는' 부분이 생겨버렸고, 그걸 건드린 사람에 대해서라면 아쉽게도 등을 돌리고 말았다. 내가 그토록 사랑한 사람인데, 하고 수시로 상대를 그리워하지만, 그러나 '그는 내게 그렇게 말해서는 안되는 거였어' 하며, 상황을 떠올리고 다시 고개를 젓는다. 그러니 린디 웨스트의 말처럼, 페미니즘은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이 우리를 미워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과정일 것이다.



이 과정을 이다혜 기자 역시 거쳤던 것 같고, 지금도 그러할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이다혜 기자와 내가 같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든 것을 깨닫고, 또 우리의 연배가 비슷하며, 우리가 페미니즘을 받아들이고 그동안의 자신의 말과 행동을 뼈저리게 반성한다는 것 역시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한다. 페미니짐은 내가 사랑하는 상대가 나를 미워한다는 걸 깨닫는 과정임과 동시에, 내가 얼마나 과거에 무지했는지, 또 지금도 여전히 어느 면에서 부족한지를 자꾸 들여다보려 노력하는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내가 얼마나 잘못된 말과 행동들을 했었는지 돌아보며 가슴 아파하는 그 과정을, 이다혜 기자 역시 겪어냈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되는 것이다.


페미니즘을 알고난 뒤에는 알기 전과 같을 수가 없다. 그리고 우리는 결코 몰랐던 때로 되돌아갈 수가 없다. 내가 보는 세상, 즉 내가 보는 영화나 드라마 혹은 개그 프로그램,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책까지, 내 모든 시선은 그전과 같을 수가 없다. 이다혜 기자 역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니만큼, 어떤 책에서 무엇이 불편했는지, 자신이 그동안 사랑해온 책들이 어떤 시선을 가졌는지, 그리고 지금 자신이 읽는 책들이 어떤지에 대해 얘기를 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이다혜 기자의 페미니즘적 책읽기를 함께 하고 싶으며 또 깊이 응원하게 된다. 나는 여기에 대해서, 내가 그동안 읽어왔던 책들, 좋다고 생각했던 책들을 지금 '다시' 읽게 되면, 그렇다면 어떤 다른 감상을 갖게 될까. 하나의 책이 읽을 때마다 다른 감상을 준다는 것은 당연한 얘기지만, 페미니즘을 알기 전과 후에 그 감상은 결을 달리하지 않나. 나는 그래서 예전에 읽었던 좋았던 책을 다시 만났을 때 크게 실망하거나 화가 나진 않을까 걱정되어 다시 펼쳐보지 말자, 고 생각하게 되는 책들이 있다(존 쿳시의 추락을 읽으면 나는 이제 어떤걸 느끼게 될까?). 물론, 그 다른 감상이 기대되어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이 있고(어슐리 르귄의 책이 그렇다).


이다혜 기자의 이 책을 읽어보니 나와 비슷한 후회, 나와 비슷한 깨달음, 나와 비슷한 슬픔을 겪어왔는데, 그렇다면 아마도 나와 비슷한 걱정을 가지고 있진 않을까. 계기는 모두 달랐지만 나와 비슷한 시기에 페미니스트를 선언하며 페미니즘 속으로 들어간 많은 사람들이 이다혜 기자의 이 책을 읽으면 모두들 저마다의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을 할 것이다. 우리가 그간 생각하고 느낀 것을 정리해준 책이라 보면 이 책에 대한 적합한 설명이 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는 참으로 딱 맞는 제목이라 하겠다. 그러나,



내용과 별개로 책 한 권을 두고 적잖이 실망하기도 했다. 일단 사이즈가 너무 작다. 내가 생각한 노멀한 책의 사이즈보다 작고, 책을 넘겨보면 행간도 넓고 글자도 크다. 그래서 한 페이지에 들어가는 글자가 적다. 빠른 시간 내에 후딱 읽힌다. 후딱 읽히는 게 나쁜 건 아니지만, 아니, 이 정도 분량으로 내다니 좀 너무하잖아?? 하는 기분이 되어버리는 거다. 이정도 분량으로 내기 보다는, 이 정도 분량에 곱하기 3은 해서 책 한권으로 만들어 내야 하는 거 아니냐!!! 하는, 그런 기분. 그 점이 실망스러워서 별은 3.5로 주고 싶은데, 아아, 알라딘에는 별점 반 개가 표시 되지 않으므로, 후하게 넷을 주기로 한다.


사이즈를 비교하고 있는 책은 마침 내 책상 위에 놓여있던 '로런 그로프'의 《운명과 분노》 이다.







마지막으로, '가스라이팅'의 유래를 알게 된 건 이 책을 읽고난 후의 가장 큰 수확이다.




조지 큐커 감독이 연출한 <가스등>(1944)의 주인공 폴라(잉그리드 버그먼)는 유명한 성악가의 조카로, 그로부터 큰 재산을 물려받은 상속녀다. 그레고리(샤를 부아예)는 폴라의 유산을 노리고 접근한 뒤 집에 숨겨진 보석을 찾아내려고 한다. 그레고리가 다락방을 뒤지기 위해 불을 켜면 그 때문에 폴라의 방에 있는 가스등 불빛이 흐릿해진다. 폴라가 그레고리에게 이유 없이 흐릿해지는 가스등에 대해 말을 꺼내면, 그레고리는 그녀가 미쳤기 때문에 환각을 본다고 말한다. 남편에게서 히스테리와 신경쇠약을 지속적으로 지적받은 폴라는 실제로도 무기력증에 빠진다.

로빈 스턴은 『가스등 이펙트』라는 책에서 이런 심리를 분석한 적 있는데, '가스라이팅' 혹은 '가스등 이펙트'는 상대를 심리적으로 조종하는 가해자와의 관계를 다룬다. 가까운 사람에게서 인정받고자 하는 소방이 잘못된 상대를 만나 빚는 비극으로, 일과 관련해서는 지적이고 독립적인 사람조차 자신을 하찮게 취급하는 배우자나 애인, 직장 상사나 부모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를 영화 <가스등>에 비유해 설명한다. 나의 의견을 기분으로 받아들이는 상대와 대화하기란 쉽지 않다. 큰 그림을 보지 그래? 생리 중이야? 왜 그렇게 예민해? 남들은 괜찮다는데. 대화를 꺼냈다가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으로 대화를 접어본 적 있다면, 가스라이팅이라는 것의 두려움을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그래서 일차적이고 궁극적인 해결책은 그런 상대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 이성적인 비판을 가장한, 반복적이고 집요한 공격을 하는 사람을 가까이 두지 않도록 조심하라. 만난 뒤 집에 돌아오면서 자기 자신을 반성하고 비판하는 시간을 길게 갖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면, 그 기분이 어디서 비롯하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누군가 당신의 판단을 오랫동안 불신하지 않았는지. 상대가 원하는 방향으로 당신이 끌려 다녀온 건 아닌지.

가스라이팅의 가장 대단한 부분이라면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게 만든다는 것이다. 보통 상황 조작을 통해 만들어지는데, 분명히 어두워지는 가스등을 정신적인 불안정 때문이라고 몰아가는 식이다. (p.256-258)



덧붙이자면, '분명히 어두워지는 가스등을 정신적인 불안정 때문이라고 몰아가는 식'이라는 문장을 읽노라니,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영원히 사랑해》가 생각난다.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같은, 세상 달콤한 책을 쓴 작가가, 글쎄, 《영원히 사랑해》같은 책도 썼다니깐?


또 덧붙이자면, 내 기분이 나쁘거나 내가 화가 나 있을 때 상대로부터 '생리중이야?' 라는 말을 듣는 것만큼 빡치는 게 없다. 내 기분을 '생리중이기 때문'이라고 탓해버리면, 내 화는 불필요하며 부조리하며 무의미한 것이 되는 게 아닌가. 나는 화가 나야할 상황이라서, 기분이 나쁜 상황에 맞닥뜨려서 기분이 나쁜 거다. 내가 나 자신을 돌아보며 '내가 지금 생리중이라 예민해졌나' 돌아볼 순 있지만, 자기에게 화냈다고 섣부르게 '생리중이야?' 라고 묻는 건, 무조건 참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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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17-05-22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받아보고 가격에 깜놀. 가성비랄까.. 너무한듯.

다락방 2017-05-22 11:04   좋아요 1 | URL
네, 저도 좀 너무하단 생각이 들었었어요. --;;
 
나 여기 있어요 - 봄처럼 찾아온 마법 같은 사랑 이야기
클레리 아비 지음, 이세진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세상에는 수많은 종류의 사랑이 있을테고 그중에는 내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관계의 시작도 있을 터이다. 이 책에서처럼 이미 혼수상태인 여자를 처음 맞닥뜨리고 나서 시작되는 사랑도 있을 것이고. 남자의 입장에선 혼수상태인 여자를 처음 만났지만, 혼수상태에서 청각만 살아 있는 여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병실에 우연히 들어온 얼굴도 모르는 남자의 음성과 목소리-모르는 여자에게 하는 이야기-로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 설정 자체가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그러나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포장한 것도 사실이다. 영화를 읽는 내내, 혼수상태의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그러나 다른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영혼 상태-, '마크 레비'의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당신은 믿을 수 없겠지만(개정판 제목은 '천국 같은')》이 생각났어야 이 말랑한 로맨스에 내가 빠져들 수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페도르 알모도바르' 감독의 《그녀에게》가 자꾸만 생각났다. 즉, 공감보다는 짜증이 더 컸다는 거다. 



우리는 실체가 없는 대상과 충분히 사랑에 빠질 수 있다. 그래서 '에미'와 '레오'처럼 이메일로 사랑에 빠지는 게 가능하고, 영화 《her》처럼 목소리로 사랑에 빠지는 것도 가능하다. 폰팅으로 데이트를 하던 시절도 누군가에겐 있지 않았던가. 그러니까 나는 눈 앞에 있는 대상, 재스민 향기가 은은하게 퍼지는 누워있는 여자에게 사랑이 생겨난다고 해서 그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의 병실에 들어가서 그녀의 침대에 눕고, 아무리 '두 시간 정도는 호흡이 가능하다'는 걸 알지만 제멋대로 호흡장치를 떼내는 것을, 사랑의 연장선상과 과정의 당연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낭만을 치덕치덕 발라대느라 상대의 의견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 이 책이 로맨스가 될 수 있었던 건, 다행스럽게도, 누워서 청각만 살아 있는 여자 역시 자신의 병실에 주기적으로 찾아드는 남자를 좋아하고, 기다리고, 사랑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그러나 이건 책을 읽어 여자가 그렇게 느끼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인데, 여자 역시 사랑이 싹트고 있었으므로 이게 괜찮아질까? 글쎄? 여자는 '나도 당신을 사랑해요, 내 옆에 누워요' 라고 말한 적이 단 한 순간도 없는데? 그러니 여자의 사랑 역시 시작되었다 할지라도 남자가 아무런 응답을 받지 못한 상황에서 행해지는 이 모든 일들은 낭만으로 포장되어서는 안되는 게 아닐까. 여자가 아무것도 못한다. 아무것도 못해서 누워있고 눈도 뜨지 못하고 기계에 의지해 숨만 쉬고 있다. 그런데 사랑하기 때문에, 너무 보고 싶고 그리워서, 기존에 사랑을 나누던 사이도 아닌데, 거기에 자꾸 가고 침대에 누워서 자??? 




'페도르 알모도바르' 감독의 《그녀에게》에서 남자는 여자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그래서 여자의 집에 몰래 따라가 여자가 샤워하는 틈을 타 여자의 방에 몰래 침입해 그녀의 머리핀 하나를 가지고 나온다. 그러다가 샤워가 끝난 여자와 마주쳐 여자를 겁먹게 한다. 그 여자가 교통사고를 당해 식물인간이 되고 그는 그녀의 간병인이 되는데, 그녀의 머리를 잘라주고 손톱을 다듬어주고 몸을 닦아주고 생리대를 갈아주는 모든 일을 도맡아 하며, 생전에 그녀가 좋아했던 무성영화를 보고 와서는 의식 없는 그녀에게 끊임없이 얘기해준다. 왜냐하면, 그녀를 사랑하니까. 그리고는 그녀와 결혼할거라 친구에게 말하며, 급기야 그녀를 임신시키고 만다. 이게 남자가 모두 '사랑해서' 한 일이다. 여자는 자신의 의견을 한 마디도 전달한 적이 없는데. 아무리 자기가 좋아하는 무성영화 얘기를 해준다해도, 여자가 그걸 바랐는지 바라지 않았는지 알 수 없다. 게다가 그 대상은 일전에 자신의 방에 몰래 침입했던 남성이었다. 그녀가 허락한 적 없는데 남자는 그녀와 결혼할거라 말하고, 그녀가 허락한 적 없는데 남자는 그녀를 임신시킨다. 그녀도 혼수상태에서 이 모든 과정에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겼고 허락하는 마음이 되었을지, 물론 모른다.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을 입 밖에 낸 적이 없고(낼 수 없었고!), 그러므로 남자는 '들은' 적이 없는데, 그런데 '우리는 서로 사랑해' 라면서 임신을 시켜?



자꾸 이 영화가 이 책을 읽는데 겹쳐져서, 나는 작가가 쳐발쳐발한 낭만을 도무지 느낄 수가 없는 거다. 나는 낭만보다 우선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하고, 설사 상대 역시 마음으로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한들, 그 사실을 들은 적이 없으면서, 허락을 받은 적이 없으면서 제멋대로 자신의 사랑을 '실행'에 옮겨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내게 이 소설의 낭만이 통하지 않는 이유다. 




아버지는 이제 화가 단단히 난 것 같다. "혼수 상태에 빠져도 다 들을 수 있고말고. 하지만 자명한 현실을 받아들이게. 엘자는 본인의 선택으로 우리를 떠나가는 거야."

"엘자는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았어요! 어떻게 본인 선택으로 이렇게 됐다고 하실 수 있어요?" (p.251)




생명 연장장치를 떼어내기로 결심한 가족들에게 남자가 나서서 반대를 하는 장면이다. 엘자는 청각이 있었고, 속으로 물론 자신이 죽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므로 남자가 '엘자가 선택한 게 아니다'라고 한 말은 아주 '정확한' 말이다. 그러나 이 사실을 그렇게 잘 알고 있는 그가, 그녀가 한 번도 선택한 적이 없는 '침대에 함께 눕기'를 계속해왔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당신, 이렇게나 잘 알고 있으면서 당신이 한 건 뭔데? 하고 반문하고 싶달까. 




이 책속에 그려진 '친구' 관계 만큼은 좋았다.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친구가 주인공들에게 있었다. 주인공들의 삶은 그래서 하루를 더 살게 되고 또 연장이 되고 할 수 있었다. 친구, 좋네.. 하는 생각을 책을 읽다 여러번 했다. 그러나 그것이 주인공들의 연애에 이르지는 못했다. 자기들이 좋다는 데 내가 뭐랄 수 있을까마는, 내가 읽고 싶은 연애 이야기는 이런 게 아니다.




아, 그리고 꼭 덧붙이고 싶은 것은, 이런 얘기, 아무리 친하고 다정하고 좋아하는 사이라고 해도 막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거다.


"너도 빨리 가족이 생기면 좋겠어." (p.150)



일전에 한 친구가 내게 '너도 빨리 연애해서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하고 말했던 게 생각난다. 아니 ... 내가 '비연애' 상태라고 해서 왜 행복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 내 연애를, 내 결혼을 니가 바라지 않아도 된다. 


할 말이 없다. 늘 이렇다. 이래서 쥘리앵을 제일 친한 친구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 1년 만에 처음으로 눈물이 왈칵 치밀어 오른다. 하지만 눈물을 보일 수는 없다. 하물며 이 자리에선. 사람으로 미어터지는 술집에서 질질 짤 수 있나. 수요일 저녁이란 말이다.
"그만 나갈까." 쥘리앵이 말한다.
"뭐?"
"너 울음 터질까봐."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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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2 13: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12 17: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와 2017-04-12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줄거리를 읽고 바로 [그녀에게]가 딱 떠올랐는데.. 역시.

전 패스!

다락방 2017-04-12 17:17   좋아요 0 | URL
친구에게 빌려 읽었는데 친구도 읽고 영 찜찜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녀에게 계속 생각나서 즐겁지 않은 독서였어요. -.-

2017-04-12 19: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13 09: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얼룩말 2017-04-12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미친년 ˝ 이란 말이 자동으로 나왔어요. 그 친구. 지금도 친구예요??^^

연애와 행복이 무슨 상관이죠? 저와 제 옆에 있는 그 분은 서로 ˝사랑해˝ ˝사랑해˝는 수만번 하지만, 제가 ˝ 행복해? ˝라고 물으면 ˝ 아니 ˝ 라고 대답하는 요즘입니다. 그 분의 ˝행복해?˝라는 질문에 저는 ˝참담해˝라는 대답이 나오더군요.

다락방 2017-04-13 09:48   좋아요 0 | URL
그 친구는 지금도 친구입니다. 그 당시에 니 기준을 나에게 적용하지 말라고 말했고요. 훗. 자기 딴에는 선의로 한 말이고 제가 한 말을 알아들었어요.
그나저나 얼룩말님, 옆에 누가 계시군요! 일상속에서도 행복을 찾고 또 서로에게서 행복을 찾으면서 건강하게 오래오래 다정하게 지내시길 바랄게요. 옆에 누군가 있다는 거 참 안정적인 기분을 줘요.
:)

moonnight 2017-04-13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읽지 않기로 합니다. ^^ 저도 영화 ‘그녀에게‘가 끔찍했어요ㅠㅠ;

다락방 2017-04-14 08:45   좋아요 0 | URL
네, 저는 그 영화가 정말 끔찍했어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로부터 호평을 받는 영화더라고요. 휴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