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달엔 단 한 권의 책밖에 사질 않았다. 책장에 꽂혀있는 읽지 않은 책들을 꺼내어 읽자고 다짐을 했던터라 당분간, 그러니까 올해가 지나가기 전까지는 새 책을 사지 말자고 결심했었다. 그러나 결심은 왜 늘 무너질까. 신간들이 나를 가만 두지 않을 작정인듯 하다. 그래서 어어, 9월달엔 죄다 지르자, 하고 장바구니에 차곡차곡 책들을 담았다.
『지상의 노래』는 이승우의 작품이다. 만약 내 책장에서 끝까지 살아남게 될 국내작가가 있다면 단연코 이승우가 될 터. 그의 새로운 책이라니 당연히 읽어봐야 되지 않겠는가. 『놓치고 싶지 않은 이별』은 '앤 타일러'의 작품이다. 아직 책장에 꽂힌 『종이시계』도 읽지 않았으면서 앤 타일러의 새 책을 욕심내고 있다. 『물밑 페스티벌』을 일본 작품이길래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줄거리를 읽어보니 연상의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가 나온단다. 갑자기..읽고 싶어지잖아! 『사랑하는 사람들의 비밀스런 삶』은 일전에 경향신문 북코너에서 보고 찜해둔 바 있었다.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책 한 권을 꽉 채우고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 『책에 쓰지 않은 이야기』는 '빅터 프랭클'의 책이다. 오, 빅터 프랭클이다. 나는 그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고 무척 좋았었기 때문에 그의 다른 책을 읽어야겠다고 늘 생각해오던 터였다. 그런참에 나온 신간이라니, 장바구니에 넣지 않을 수가 없잖은가!
그래, 나는 이 책들을 다 사려고 했었다. 그간 사용하지 않고 모아둔 적립금이 2만원이었다. 그러니 3만원쯤 더 보태서 이 책들을 살 예정이었단 말이다. 그랬단 말이다, 그랬다고. 그런데, 그런 내가, 아, 이 책을 시작해버렸다.
아!
1권의 절반 이상을 읽었는데, 아, 정말이지, 이 책은 대단하다. 나는 1권의 절반쯤을 퇴근길의 지하철에서 읽다가, 내려서는 흥분된 마음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이 책은 정말 짱이라고 열변을 토했다. 1권의 절반쯤에서 이 정도의 이야기들이 나오면 대체 2권부터 5권까지는 어떤 내용들이 어떻게 펼쳐지려는걸까? 흥분과 기대로 온 몸이 짜릿해진다. 포스트잇을 꺼내기가 귀찮아서 일단 책의 윗부분을 접었는데 그렇게 접히는 부분이 많다. 빅토르 위고는, 오, 정녕 천재였던거다.
어릴적에 장발장을 나는 책으로 읽었던 적이 있다. 집에 있던 전집중의 한 권이었는지, 피아노학원에 있던 책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책을 분명 읽었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건, 장발장이 빵을 훔쳐 교도소에 아주 오래 갇혀있었다는 것, 감옥에서 나와서는 좋은 신부를 만났다는 것, 돈을 많이 벌게 됐다는 것, 그리고 코제트를 맡아 키웠다는 것, 그 코제트에겐 나중에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장발장이 부당하게 너무나 오래 갇혀있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거기에 갇혀있던 장발장의 생각에 대해서야 내가 알 리 없었다. 내가 읽은 책에는 아마 감옥에 있던 장발장의 사색 같은건 다뤄지지 않았었을테니까. 그러다가 나는 이 책에서 이런 부분을 읽게 됐다.
그는 일단 자신의 죄를 시인한다.
그는 먼저 자신을 단죄하였다.
그는 자기가 부당하게 처벌을 받은 무고한 사람이 아님을 시인하였다. 그는 자기가 극단의 그리고 규탄받을 짓을 저질렀음을 스스로에게 고백하였다. 그리고, 만약 그가 간청했다면 그 빵을 아마 거절하지 않았을 거라고, 여하튼 자비심으로부터건 노동으로부터건 빵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나았다고, '배가 고픈데 기다릴 수 있단 말인가?' 하는 주장이 반박할 수 없을 만큼 정당한 이유는 되지 못한다고, 우선 배가 고파서만 죽는 일은 매우 드물다고, 그리고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모르지만 인간은 심정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오랜 기간 엄청난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죽지 않게끔 만들어졌다고, 따라서 참았어야 했다고, 가엾은 아이들을 위해서도 그것이 나았을 것이라고, 자기와 같이 가냘프고 불쌍한 사람이 사회 전체의 멱살을 사납게 움켜잡으면서 절도라는 수단으로 가난에서 벗어나려 생각한 것이 미친 짓이었다고, 어떠한 경우에도 비열한 짓 속으로 통하는 문이란 가난에서 빠져나오는 데 적합한 문이 아니라고, 결국 자기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자신에게 고백하였다.(p.142)
그러나 그는 그 후에 그 잘못이 단지 자신의 잘못이기만 한걸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런 다음 자신에게 물었다.
자기를 파멸로 이끈 그 사건에서 잘못을 범한 사람은 자기뿐이었을까? 우선, 노동자였던 자기에게 일거리가 없었고, 근면하였던 자기에게 빵이 없었다는 것이 중대한 일 아니었던가? 그다음, 잘못을 저질렀고 그것을 시인하였는데, 처벌이 무자비하고 지나치지 않았는가? 잘못을 저지른 범죄자의 잘못보다, 형벌을 가한 법률의 잘못이 더 크지는 않았는가? 두 저울판 중에서 속죄를 올려놓은 쪽의 무게가 심하게 초과하지는 않았는가? 형량의 과중함이 곧 죄의 말소는 아닌가? 또한 그것이 상황을 뒤엎고, 경범죄의 잘못을 탄압의 잘못으로 대체하고, 죄인을 희생자로 탈바꿈시키고, 채무자를 채권자로 만들어놓고, 권리를 유린한 사람에게 결정적으로 권리를 부여하는 등의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을까?일련의 탈출 시도 때문에 연속적으로 가중되어 복잡해진 그 형벌이, 결국에는 최강자의 최약자에 대한 일종의 위해, 개인에게 저지르는 사회의 범행, 매일 다시 시작되는 범행, 십구 년 동안 지속되던 그 범행으로 귀착되지 않는가? (p.143)
쟝 발쟝, 그는 누나의 아이들을 위해 일을 해야했고 돈을 벌어야했고 빵을 사야했다. 그는,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저지를 실수를 인정할 수 있었고, 그러나 부당한것을 부당하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는 사람이었던 거다. 책 속에서 주인공이 이토록 생각하는 장면을 만나는 것은 큰 기쁨이다. 나는 주인공의 생각을 읽으면서 함께 생각하게 된다. 그가, 빵을 훔쳐서 감옥에 갔던 그가, 단순히 부인하거나 억울해하기 보다는 깊게 생각을 해보려고 한다.
물론 이 책은 이 부분에서만 좋은게 아니다. 처음 책의 시작부터, 그러니까 쟝 발쟝을 손님으로 맞아들여주는 신부의 등장부터 이 책은 뛰어나다. 현재 읽은 부분까지 벌써 내가 아는 이야기는 다 들어가있는 것 같다. 아직 쟝 발쟝이 꼬제뜨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꼬제뜨는 이미 등장해있다. 그리고 어린 꼬제뜨가 학대를 당하고 있다. 그 학대를 당하는 부분을 지하철에서 읽었는데, 아, 정말 힘들어서, 아이를 학대하는 어른들은 지구상에서 다 휩쓸려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책은 쟝 발쟝에 대한 이야기만 하는게 아니다. 꼬제뜨의 엄마, 그녀가 꼬제뜨를 낳기전, 그 아름답고 정숙한 여자가 사랑에 빠지고 연애를 하는 이야기도 보여준다. 물론, 나중에야, 그녀가 한 사랑이 어리석었음을 알게됐지만, 그러나, 그 사랑으로 꼬제뜨가 생겼는걸.
그녀가 똘로미예스를 사랑하였다.
그에게는 심심풀이 사랑이었으되, 그녀에게는 뜨거운 정염이었다. 학생들과 헤픈 의상실 아가씨들이 우글거리는 까르띠에 라땡의 거리들이, 그녀의 그 꿈이 시작되는 것을 목격하였다. (pp.191-192)
그녀는 그로부터 버림받았다.
팡띤느도 다른 아가씨들처럼 웃었다.
한 시간 후, 자기의 방에 돌아왔을 때, 그녀는 울었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그녀의 첫사랑이었다. 그녀는 그 똘로미예스에게, 자신의 몸을 남편에게 하듯 내맡겼다. 그리하여 가엾은 아가씨에게는 아이 하나가 있었다. (p.224)
그리하여 가엾은 아가씨에게는 아이 하나가 있었다, 를 읽는데 가슴이 턱 막혀버리는 것 같았다. 주먹을 쥐고 아주 세게 내 가슴을 내리치고 싶었다. 아 젠장, 왜 그녀들은 늘 가엾어야 하는가. 왜 그녀에게는 사는 일 자체가 고행인데 이런일까지 생겨야 하는가. 이제 이 어린 여자는 대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하고.
아까 잠깐 꼬제뜨가 학대 당했다는 얘기를 했지만, 나는 자신도 아이를 낳은 부모면서, 자신의 아이들을 키우면서, 어떻게 함께 키우는 아이를 학대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자신의 어린 아이들이, 다른 어린 아이를 학대하는 걸 다 보고 있을텐데. 어떻게 그럴수가 있을까.
이 책에는 쟝 발쟝의 이야기가, 꼬제뜨의 이야기가, 신부의 이야기가, 그리고 다른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툭툭, 그들의 이야기와 뒤섞이지 않은, 아니 그 모두와 뒤섞였다고 보아야 할 문장들이 튀어나온다. 이 책이 쓰여진 1862년에도 그리고 지금에도 아주 유용한 문장들이.
그 짐수레의 앞부분이 왜 그자리에 있었을까? 우선 길을 혼잡스럽게 만들기 위해서였고, 그다음으로는 녹스는 과정을 완수하기 위해서였다. 낡은 사회질서 속에도, 그렇게 한데에 방치되어 통행을 방해하며, 존재 이유라고는 오직 그것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무수한 제도들이 있다. (p.226)
만약 내가 밑줄 그은 부분들을 죄다 옮겨온다면 이 페이퍼는 아주 길어질 것이다. 인용문들 만으로 가슴을 뻑뻑하게 만들 수 있다면 좋겠지만, 가슴이 뻑뻑해지는 건 이 책을 읽어야 가능할 터. 나는 이 책을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에게 추천한다. 나는 이 책을 부자들과 가난한 자들에게 추천한다. 아이가 있는 사람들과 없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남을 의심하는 사람과 도우려는 사람에게 추천하며, 잘못을 저지른 적이 있었던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과 빠졌던 사람들, 그리고 거기에서 이제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이 책은 이 세상 그 어느 누가 읽어도 좋을 책이다.
나는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던 다른 책들을 사는 대신, 이 책의 3,4,5 권을 살테다. 이 가슴 뻑뻑함은 어느책이나 줄 수 있는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