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모비딕을 다 읽었다.

다 읽어서 이렇게 나란히 두 권을 두니 하나의 그림이네? 고래와 포경선이 말이지.


모비딕을 읽기 전에는 그저 고래를 잡는 이야기로만 생각했다. 고래를 잡는데 이야기가 이렇게 길게 나와?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 싶으면서도 너무너무 지루할 것 같아서 읽기를 자꾸 미뤘더랬다. 모비딕이 좋다는 얘기도 들었고 스타벅스도 모비딕의 스타벅에서 가지고 왔다지않나, 게다가 모비딕을 읽어두면 두고두고 또 여기저기 다른 작품에서 언급되기도 하고, 여하튼 읽어보자, 하면서도 세상에 바다에서 고래 잡는 얘기가 재미있을게 뭐야? 라는 생각이 자꾸 드는겁니다. 그렇지만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도 청새치 잡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그걸로 끝나지. 아니, 생선 하나 잡는데 소설 한 권이 뚝딱 나오다니, 대단하지 않습니까, 작가들이란...


1권에서 우리의 주인공 이슈미얼은 포경선을 타기로 한다. 그렇게  피쿼드호에 올라 에이해브 선장의 지도 하에 향유고래를 잡는다. 나는 고래를 잡는게 먹기 위한건줄 알앗더니, 웬걸, 기름만 채취하고 사체는 버린다고 나온다. 중간에 스터브라는 작살잡이가 고래 스테이크를 먹는 장면이 나오지만, 그것이 일반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러니까 이런 부분이 나오는거다.



아마도 육지 사람들이 고래고기 먹는 걸 질색하는 이유가 전적으로 고래의 과도한 기름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어떤 면에서 앞에서도 언급한 사항, 즉 갓 살해한 바다 생물을 그것의 기름으로 밝힌 등불 옆에서 먹어야만 한다는 사실에서 빚어진 결과로도 보인다. 하지만 황소를 최초로 살해한 인간은 살인자나 다름없이 여겨졌을 게 틀림없고, 아마도 교수형에 처해졌을 것이며, 만일 황소들에 의해 재판에 회부되었다면 틀림없이 교수형을 당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여느 살인자의 경우나 마찬가지로 너무나도 당연한 처벌이었을 것이다. 토요일밤에 정육 시장에 가서 살아 있는 두발짐승 무리들이 죽은 네발짐승들이 길게 내걸린 모습을 올려다보고 있는 걸 좀 보라. 식인종도 입을 쩍벌리게 만들 광경이 아닌가? 식인종? 식인종이 아닌 자, 그 누구란 말인가? 다가올 기근에 대비해 야윈 선교사를 소금에 절여 지하실에 저장해둔 피지 사람들이 더 참아줄 만하다.

그리고 최후의 심판일이 닥쳐오면, 거위를 땅에 못으로 박아놓고 간이 터질 정도로 배불리 먹여 만든 파테드푸아그라르 포식하는 문명화되고 개화된 그대 대식가들보다 그 검약한 피지 사람들이 더 가벼운 벌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스터브는 고래기름으로 밝힌 등불 옆에서 고래를 먹고 있지 않나? 그러면 그건 고래를 해친데다 사체를 모욕하기까지 하는 상황, 즉 한술 더 뜨는 꼴 아닌가? 그렇다면 지금 로스트비프를 썰고 있는 문명화되고 개화된 대식가 친구여, 지금 그대가 든 나이프의 손잡이를 보라. 그 손잡이는 무엇으로 만들었나? 지금 그대가 먹고 있는 황소의 형제의 뼈로 만든 게 아니면 또 뭐란 말인가? 그리고 그대는 그 기름진 거위를 탐식한 후에 무엇으로 이를 쑤시는가? 바로 그 거위의 깃털이 아닌가. 또한 '거위학대방지법'의 서기는 전에 회람장을 작성할 때 어떤 깃펜을 사용했는가? 그 협회가 철제 펜 외에는 사용하지 않겠다는 결의안을 통과시킨 것이 불과 한두 달 전 일이다. -2권, p.40~41



허먼 멜빌은 이 책에서 이렇게 직접적으로 인간의 모순을 지적하기도 하지만 고래라는 은유를 통해 인간세계를 까발리기도 한다. 허먼 멜빌이 지적하는 미국 사회, 신에 대한 믿음, 그리고 우월성을 느끼는 인간이라는 것에 대해 동의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나는 고래를 잡는 일에 대해 아는 것이 전무한 상황이라 경뇌유-말 그대로 고래뇌에 들어있는 기름이다-를 위해 사람들이 포경을 하고 그 기름으로 그 당시 램프의 불을 밝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고래의 배설물 중 일부인 용연향 은 그 향기가 너무 좋아서 향수의 원료가 되기도 했단다. 아니 사람들, 도대체 바닷속에 있는 고래로부터 기름을 가져오고 향수도 만들 수 있다는 걸 어떻게 알게된거야. 인간이란 ...

그런데, 고래..를 잡지 않으면 램프에 불을 켤 수가 없었나요? 굳이 고래에게 작살을 던져 잡아야만 했나요? (라고 육식하는 인간이 말합니다. 허먼 멜빌이 지적하는 사람, 바로 나다..)



자, 그런데 나는 이 포경선을 타고 바다에 나가는 것을 일로 맞이하는 것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1권 초반에도 이슈미얼은 포경선을 한 번 타면 짧게3년까지 바다에서 있다가 돌아온다고 한다. 지금 에이해브 선장이 이끄는 포경선도 이 바다 저 바다 적도까지 갔다가 일본에 갔다가 하여간 난리 난리 그 와중에 고래를 몇 마리나 잡게 되고 대왕오징어도 잡고 그러는데, 이렇게 배를 타고 바다 위를 항해하는 시간이 3년정도라니, 도대체 이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 배를 탄걸까 싶은거다. 게다가 그 배에는 당연하게도 이 선원들의 밥을 해줘야하는 요리사도 있고, 작살을 만드는 등의 일을 위해 목수가 있고, 대장장이가 있고, 또 너무나 당연하게 의사도 있는거다. 그 모두 포경선을 타고 이동하다가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병이 나면 치료도 받고 필요에 의하면 도구도 만들다가 저어어기 돛대 위에서 망을 보던 선원이 고래가 나타났다! 하면 우르르 보트를 타고 내려가서 작살을 던져 고래를 잡는 일을 하는것이다. 에이해브 선장은 이 일을 40년간 해왔다고 한다.



열여덟 살 먹은 소년 작살잡이였지! 사십년, 사십 년, 사십 년 전 일이야! 사십 년 전이라고! 사십 년 동안계속해서 고래를 잡아왔어! 사십 년 동안이나 궁핍과 위험과 폭풍우이는 시간을 보내왔지! 무자비한 바다에서 무려 사십 년을 보냈다고!

나 에이해브는 사십 년 동안이나 평화로운 육지를 저버렸고, 사십 년동안이나 심해의 공포와 싸움을 벌여왔다네! 그래 맞아, 스타벅. 내가 지난 사십 년 동안 육지에서 보낸 시간은 채 삼 년도 되지 않아. 지금껏 살아온 삶을 돌이켜보면 그건 고독한 황야나 다름 없었다는 생각이 들어. 선장 특유의 배타적 성격이란 쌓아올린 성벽에 둘러싸인 작은 도시와도 같아서, 바깥의 초록빛 시골에서 동정심 같은 게 들어올 틈은 거의 없다네-오오, 피로여! 중압감이여! -기니 해안의 노예만큼이나 고되고 외로운 선장의 일이여! 이제 와서 이 모든 것들, 예전에는 살짝 의심스럽고 그렇게 강렬히 와닿진 않던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니 그리고 어떻게 지난 사십 년 동안 말리거나 소금에 절인 음식만을 먹어왔는지를 생각해보니 그건 내 토양의 메마른 자양분에 딱 들어맞는 상징이었다는 생각이 드네! 육지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도 매일같이 신선한 과일을 손에 쥐고 이 세상의 신선한 빵으로 식사를 해왔는데, 나는 곰팡이가 핀 빵 껍데기나 먹어왔다니 나는 오십 넘어 결혼해 어린 소녀 같은 부인을 바다 아주 저멀리 남겨둔 채, 결혼 첫날밤에만 베개를 움푹 파이게 하고 바로 다음날 혼곳을 향해 출항했지-부인? 부인이라고?-차라리 생과부라고 하는 게 옳을 거야! 그래, 스타벅, 나는 나와 결혼한 그 불쌍한 소녀를 과부로 만들어버렸네. -2권, p.457



바다 위에 있는 시간이 육지에 있는 시간보다 길다는 것은 대체 어떤것일까. 저기 육지 위에 누군가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데 이 배에서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일을 한다는 것은 어떤것일까. 사람은 모두 다르니 어쩌면 누군가는 바다 위에 있는 시간이 더 평안하거나 편안할지도 모르겠다. 그 마음에 대하여 나는 모르겠다. 같이 읽는 친구와 이야기하는데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었던 거 아니겠느냐, 라고 하는데, 나는 그것에 대해서도 참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그 취지는 알겠다.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가족을 먹여살릴 수 있다는 거, 그래, 맞지, 그건 맞지. 그런데 가족들과 떨어져 살면서 얼굴도 보지 못한채로 돈을 버는 것은, 그렇기 때문에 받아들이기에는 좀 서럽지 않나. 물론 현재에 그런 직업이 선장뿐만은 아니다. 외국에 노동자로 나가 일하고 있는 사람도 고향땅에 가족들에게 돈을 보내주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 보지 않는 시간이 길어 그들중 아주 많은 사람들은 자기 아이가 자라는 과정을 눈으로 볼 수가 없다. 이런 삶이, 돈을 벌기 때문에, 먹고 살기 때문에 감당해야 하는 것이라면, 역시 뭔가 다른 방법이 필요한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드는거다. 

발레로 유명했던 '세르게이 폴루닌'은 어릴적부터 가족과 떨어져 살았다. 부모님은 모두 그를 멀리 다른 나라에 보내 발레 교육을 받게하고 그 아이의 뒷바라지를 하기 위해 각자 떨어져 다른 나라에 살았다. 덕분에 세르게이 폴루닌은 일류 발레리노가 되어 <댄서>라는 영화도 찍을 수 있게 되었지만, 어릴적부터 하염없이 외로웠던 그는 정작 자신이 발레로 주연을 맡게 되었을 때 자신의 부모를 초대하지 않는다. 그의 성공을 누구보다 바란 가족이지만 그러나 정작 그의 성공에 함께할 수 없었던거다. 물론 이런 일에 있어서 내가 '가족과 떨어지지 말고 어떻게든 힘겹게라도 함께 견뎌내야지' 라고 말할 순 없다. 내가 감히 뭐라고 그런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또 그것이 절대 가치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에이해브 선장을 비롯해 그 배에 탄 사람들, 이 배 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포경선들에 합류한 사람들, 밥벌이로 이걸 선택했다고 생각하고 탑승한 사람들의 그 마음가짐과 견딤에 대해 자꾸 생각해보게 된다. 그건 무얼까. 그 배 안에 혼자만 있는건 아니지만, 늘 자신외에 다른 사람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쑥불쑥 외로움이 찾아들 것 같은거다. 물론, 배에 타지 않은 사람들도 그렇지만 말이다.


그리고 육지에 남겨진 사람들을 생각한다. 몸조심하고 돈 잘 벌어와, 라고 인사를 건넨후부터 시작되는 그 기다림에 대해 생각한다. 지금이야 스맛폰이 있고 노트북도 있고, 잘은 모르지만 항해를 한다고 해도 연락은 하며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슈미얼이 고래를 잡으려고 포경선을 타고 바다로 나갔던 그 때에는 그것 자체가 불가했잖아. 육지에서 하염없이 오늘 오려나, 내일은 오려나, 하며 먼 바다를 바라보았을 가족들에 대해 생각한다. 그렇게 1년이 2년이 되고 3년이 되고, 어느날 저기 멀리에서 돛대가 보였을때, 그래서 기쁨으로 기다리던 가족을 맞이했을 때, 그러나, 얼마후 다시 또 오래 나갈거라는 걸 알았을 때, 그 때의 가족들의 마음이란 어떤것일까. 이게 뭘까, 이건 뭐지, 라는 생각이, 어쩔 수 없이 들어버린다.  언제 돌아올지 안다면, 기약이 있다면, 그러면 오히려 기다리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자유로웠을텐데, 그런데 언제 올지 전혀 알 수가 없다면, 기다리는 사람에게도 역시 자유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이 포경선은 가족과의 이별만을 나타내는 공간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러니까 가진 게 없고 식구도 없고, 그러니까 내 이 한 몸 쉴 곳도 없는 자에겐 구원의 장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슈미얼만 하더라도 낡은 모텔에서 낯선 사람과 동침을 하면서 숙박을 해야했지 않은가. 1가구 1주택이 모두에게 보장된다면 좋겠지만 예로부터 지금까지, 토지가 사유재산이 되고부터 지금까지 모두에게 공평한 분배라는건 일어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방 한 칸 얻을 수 없고, 어떤 사람들은 의지할 사람 하나 없을 수도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포경선은 그야말로 구원이 되어줄 수 있지 않았을까. 먹고 자고 다른 사람들과 교류도 하고, 바다 위에 떠있는 내내 끼니에 대한 걱정이 사라지는 곳. 그곳이야말로 나를 받아주는 유일한 곳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러고보면 이슈미얼에게도 딸린 가족이 없었다. 목수에게도 그랬다. 누구나 다 기다리는 사람을 가지고 있는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세상에 정말 나만 홀로 있는, 그런 시간을 살아가기도 한다. 배운것도 가진것도 의지할것도 없었던 사람에게, 이 세상은 그저 황무지이고 고독한 곳이기만 했던 사람에게 포경선은 그야말로 위로가 아니었을까. 결국 자기의 삶은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 내에서 자기의 선택을 따라 흐르기 마련인것 같다. 



주말엔 샤인머스켓 농사를 짓고 있는 이모가 직접 만들어온 샤인머스캣 와인을 맛봤다. ㅋㅋㅋㅋㅋ



이모가 그냥 한 번 만들어봤다는데 와인 병이 없던 이모는 여기에 와인을 담아옵니다.




ㅋㅋ 내가 이거 찍으니까 엄마랑 이모랑 난리난리 그건 찍지마!! 하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왜, 나는 당당하다, 이게 뭐, 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여간 기다리고 있다.

약속된 것을, 그리고 약속되지 않은 것도.


더없이 고결한 떡갈나무도 바닥에 쓰러지고 나면 그 옹이 구멍에 이상하게 자라난 덩어리들이 뭉치듯, 한때 고래의 눈이 있던 곳에는 이제 앞을 보지 못하게 된 안구만이 끔찍하고도 안쓰러운 모습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하지만 동정의 여지는 없었다. 나이도 많고 팔도 하나이고 눈도 멀었지만, 녀석은 인간들의 즐거운 결혼식과 또다른 떠들썩한 축제를 밝혀주기 위해, 또한 그 누구도 다른 누구에게 절대 해를 입혀서는 안된다고 설교하는 엄숙한 교회를 환히 비추기 위해 처형당하고 살해당해야만했다.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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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5-04-29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다수 와인!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나저나 저 배가 일터라고 생각하면.... 3년 동안 한배에 회사 사람들하고 같이 있는 거잖아요? 으아......... 끔찍하네;; 싫은 사람이라도 있으면 배에서 뛰어내리고 싶을 거 같습니다...;;

락방아, 율리시스가 널 기다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레이스 2025-04-29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열린책들하고 작가정신으로 읽었습니다.
이 책이 왜 문학으로 분류가 안됐었는지 알것 같아요. ㅎㅎ

건수하 2025-04-29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꺼운데 금방 다 읽으셨네요!

가끔 배를 타는 사람으로서 읽어봐야 할 책인 것 같은데... 재미없을 것 같아서 시작 못하고 있습니다 ^^;

관찰자 2025-04-29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아.
저도 <모비딕> 있는데,
이슈미얼이 아직 포경선도 못탔는데 읽기를 멈춘지 오래.......
하아.
다시 시도해야 하나? 다락방님 리뷰 보니까 또 시도하고 싶어지기도 하고, 엄두가 안나기도 하고.. 뭐 그렇습니다.>.<

단발머리 2025-04-29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족 문제의 핵심은 너무 가까워서,라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또 가족이라면 너무 멀리 살아도 안 될 거 같고요. 너무 오래 떨어져 있다가 만나면 가족이라도 어색하잖아요. 멀리 떠난 사람도, 기다리는 사람도.... 힘든 시간이구요.
이모님에게 엄청한 심리적 친밀감을 느낍니다. 완벽 자동 엄마 소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