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많은 말은 뒤로 하고,
사람은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타인에게 상처를 입힐 수도 있다. 그리고 상처를 입혔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할 수도 있다. 어제의 하이킥이 그랬다. 박하선과 윤계상이 선을 봤다. 박하선과 윤계상은 서로가 서로를 선자리에서 만날 생각은 전혀 없었으나 차마 거절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 나가게 됐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서지석과 백진희는 충격을 받는다. 서지석과 백진희는 윤계상과 박하선의 선자리에 뒤늦게 찾아가보지만, 그들은 이미 2차를 향한 후다. 그래서 서지석과 백진희는 포장마차로 가서 소주를 마신다. 그들은 속상하고 안타깝고 서운하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상대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과 연인이 될 지도 모를 계기를 가졌다는 사실 때문에. 그러나 윤계상과 박하선은 정말이지 그럴 의도가 없었을 뿐더러, 백희진과 서지석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있다. 윤계성과 박하선은 악의가 전혀 없이, 그리고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데, 그런데 서지석과 백진희는 취하고, 울고, 소리지른다. 그들은 가슴이 아프다. 게다가 그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못한다. 혼자만 앓는다.
나는 어제 닭볶음탕에 와인을 마시며 하이킥을 봤다. 그러면서 내 앞에 앉아 같이 와인을 마셔주는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쟤네들은 저럴 의도도 없었고 알지도 못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쟤네땜에 울어, 세상 참 이상하지? 라고 말했다. 그러자 엄마는 그런게 어디 한둘이니, 라고 했다. 그래, 정말 그렇다. 어쩌면 나도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누군가의 눈에서 눈물나게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상대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갔듯이. 상대가 내게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는데 나는 심장이 조각난적이 있었던것처럼, 나도 전혀 의도하지 못했는데 나 때문에 누군가는 어떤 이유로든 무너진적도 있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니, 새삼 인간 관계란 서로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지 않았다한들 얼마나 얽혀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묘하게, 우리는 서로 얽혀있다.
2011년은 내게 아주 다이나믹하고 파란만장한 해였다. 2011년에 나는 평생 한 번도 해본적이 없었던 일들을 했었고 그래서인지 가장 많은 눈물을 흘린 해이기도 했다. 봄에도 몇 날을 울었고 여름에도 몇 날을 울었다. 어떻게 그 고통에서 빠져나와야 할지 몰라서 높은 굽을 신고 한참을 걷기도 며칠을 했다. 나는 어떤것들을 시도했었고 그리고 실패했으며 포기했다. 나는 평생을 곁에 두고 싶은 사람을 내치기로 결심했으며 그리했다. 나는 라식수술을 했고, 유리벽에 부딪쳐서 피를 흘리기도 했고, 세균감염으로 얼굴이 늑대인간처럼 변하기도 했다. 어깨를 수술한 엄마의 병원에서 잠을 자기도 했고, 나를 그냥 나인채로 좋아해주는 남자를 연인으로 곁에 두게 되었고, 그래서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이번 해에 더 잘 알게 되었다. 내가 모르는 나에 대해 알아가는 것은 그 과정이 어렵고 험난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새롭기도 하다. 나에게 이런면이 있었다고? 하는.
상반기는 한번 정리한 적이 있으니 하반기를 정리해야겠다. 1년을 정리하자니 상반기 정리 페이퍼와 중복될 것들이 많을것 같아서... 자, 시작.
* 한국어로 쓰여진 그토록 아름다웠던 이야기들.
이승우를 읽는 것은 내게 마치 필립 베송을 읽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었다. 오로지 본인의 내면에 충실한 글, 그리고 그것들을 풀어낸 아름다운 문장들. 앞으로 더 찾아볼 이승우의 소설이 있다는 것은 내게 기쁨이다. 나는 또 한권의 이승우의 소설을 준비해두었다. 신형철도 마찬가지. 문학평론 이라는 분야를 내가 읽어낼 수 있을거라고는 생각해본 적도 없는데, 신형철의 글을 읽노라니 나는 신형철의 글이라면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시를 쓰고 소설을 쓰고 신형철의 평을 받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강의 [희랍어 시간]은 다소 아쉬운 책이었다. 며칠전에 이 책을 읽은 B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우리가 별을 넷을 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얘기했는데, 우리는 표현은 달랐지만 느끼는바가 비슷했다. 한강의 [희랍어 시간], 그 책에는 '아름다운 문장들이 가득하지만 미처 완성되지 못한 텍스트' 라는 표현을 나는 하고 싶었는데, 문장에만 너무 집중한 나머지 이야기를 놓쳐버린 기분이다. 문장만은 가히 아름다웠다.
* 당신이 거장인 이유, 필립 로스
필립 로스를 읽었다고 하는 많은 사람들의 글을 보고난 뒤에야 나는 필립 로스를 읽게 됐는데, 모두들 한결같이 [에브리맨]을 칭송하고 있었다. [울분]은 그 뒤였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울분]쪽이 [에브리맨]보다 훨씬 좋았다. '돈 드릴로'의 소설 [화이트 노이즈]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사람이 나오고, 그 두려움을 몰아내줄 약이 판매되는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그때 꽤 위안을 받았더랬다.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는 것이 나 뿐만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 때문에. 나는 내가 죽게 될까봐 두렵다. 내가 어떻게 죽을지도 알 수가 없다. 그 순간이 언젠가는 반드시 '온다'는 것 때문에 침대에서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러나 지인들과 이런 이야기를 하면 '너가 누리고 사는게 많아서 아쉬운가 보다'라는 멍청한 이야기들을 해대서 더이상 말하고 싶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필립 로스는 돈 드릴로보다 더, 내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에브리맨]도 늙어감과 죽음에 대해 얘기하지만, 막연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 결국은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죽게되는 청년의 이야기인 [울분]은 내게 정말 정말 인상 깊은 소설이었다. 그 소설에서 주인공인 청년이 언급했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버트런트 러셀'의 책까지 사서 읽었다니깐. 지금 검색해보니 필립 로스의 책은 [휴먼 스테인 1,2]가 더 나와있다. 내년에는 저 책들도 읽어봐야겠다.
* 여전히 당신들은 최고
코맥 매카시와 존 쿳시는 이제 내게 어떤 식으로도 흠을 찾아낼 수 없는 작가이다. 상반기에 그들의 작품을 한 권씩 읽어보고 멍했었는데, 하반기에 다시 만난 그들의 작품은 여전히, 그대로 빛났다. 아니, 더했다. 그래서 나는 코맥 매카시의 다른 책들을 두 권 더 준비해 두었고, 존 쿳시의 다른 책도 꽂아두었다. 내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나는 내년에도 여전히 내 책장에서 꺼내어 읽을 수 있다. 이런게 행복이 아닐까. 문장과 이야기, 그 모두에서 만족감을 얻고 싶다면 나는 코맥 매카시를 망설이지 않고 추천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 존 쿳시가 내게 들려주게 될 그 모든 이야기들이 궁금하다.
* 결국은 눈물을 쏟아내게 될
한 편의 영화같은 느낌을 주는 존 카첸버그의 [어느 미친 사내의 고백]을 처음 펼쳤을 때, 이 책은 내가 그다지 사랑할 수 없는 종류의 책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신병동에 갇힌 그 모두가 하나가 되어 '아폴로'를 외칠 때, 이건 너무 뻔한 영화같잖아, 하면서도 나는 눈물을 흘렸고, 주인공이 친구를 잃었을 때, 그에게 이제 더 누가 있어야 하나 하는 상실감 때문에 눈물을 흘렸다. 눈물을 흘리다가 콧물까지 흘린 소설이 [어느 미친 사내의 고백]. 그래서 나는 그의 또다른 작품인 [하트의 전쟁]을 준비해 두었다. 언제 읽을지는 모르겠지만;;
[라스트 차일드]도 놀랍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 비극적인 이야기들 속에서, 그러나 나는 사랑을 말하는 그 짧은 부분에 눈물을 흘렸다. 내가 왔다갔다고 하지말고 지금 여기있다고 말해달라고 하는 아버지의 대사를 읽다가, 그래, 정말 전해야 할 것은 지금 너랑 여기 함께 있다는 거야, 하는 마음이 몽글몽글 피어올라서, 이 슬프도록 아름답고 처절한 이야기를 읽으며 눈물을 흘렸다.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것은 바람이 아닌 해가 하는 일, 눈물을 뽑아내는 건 결국 분노나 슬픔보다도 사랑인 것 같다.
* 당신의 놀라운 데뷔작, 그토록 아름다운.
이 책은 영화화 되기로 결정되었다고 하는데, 영화로 어떻게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무엇보다 이것이 작가 '버네사 디펜보'의 데뷔작이라는 사실이 놀랍다. 어쩌면 그래서 작가는 더 부담을 느끼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문득, 수키 김이 [통역사] 한 권만 낸 채로 더이상 다른 작품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게 떠오르면서, 만약 버네사 디펜보도 다른 작품을 더이상 쓰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때문에 조금 겁나기는 하지만, 겁내면서 기다려보고 싶다. 버네사 디펜보가 앞으로 하게 될 이야기들이 어떤건지 무척 궁금하다. 꽃으로 대화를 나누는 소녀를 그려내고, 그 소녀가 사랑하고 사랑받게 되는 일들을 그려내고, 엄마가 되어가는 것을 그려가는 그녀가, 앞으로 또 하게 될 이야기는 무엇일까. 작가가 아직 젊고, 나와 동시대를 살고 있고, 그래서 어쩌면 내 기대보다 더 많은 혹은 더 아름다운 혹은 더 훌륭한 이야기들을 써낼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나는 신난다. 두렵고 신나는 기대, 그것을 버네사 디펜보가 올 해 말, 내게 줬다.
*굳이 쓸 필요는 없지만 별로였던 하반기의 책들은 아래와 같다. ([당신도 나도 아닌]은 읽다가 포기 ;;)
포기와 실패의 순간, 그리고 눈물 흘렸던 기억들은 모두 다 지나갔고, 유리벽에 부딪쳤던 상처도 나았으며 세균 감염도 자취를 감추어가고 있다. 나는 지금, 충만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다. 더 바라는 것도 없다.
어제 와인 한 병을 혼자 다 비우고 sbs 가요대전을 보는데 히융..팔뚝 근육이 울룩불룩한 최강창민이 나오는데 막 좋은거다. 아 좋아 ㅠㅠ 어떡해 ㅠㅠ 와인으로 붉어진 얼굴, 뜨거워진 몸, 굵은 팔뚝의 최강창민..하아- 게다가 엠블랙은 떼거지로 나와서 강한 댄스를...히융 ㅠㅠ 난 정말 술과 남자를 좋아하나보다. 새삼 느껴 새삼 ㅠㅠ 인피니티의 내꺼하자~~ 를 듣는데 또 막 좋아서 여동생에게 지금 sbs 가요대전 보냐? 남자들 떼거지로 나온다 좋아..이러고 문자메세지를 보냈다. 남자는 팔뚝에 근육이 있어야 해. 그게 진짜야.
단 하나, 유감스러운 일이라면
오늘 기모스타킹을 신지 않아서 아침 출근길에 무릎이 시렸다는 거. 미쳤나...왜 안신었지..이따 집에 갈 때는 또 어쩐담. 왜 가끔가다 이렇게 어이없는 또라이짓을 하는거지?
1월1일이 일요일이라는 슬픈 현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 왜이렇게 연휴같은 기분이 들까. 해피 뉴 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