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난해하다고 말하기엔 좋고 좋다고 말하기엔 난해하다. 어쨌든 난해한것 보다는 좋다는 쪽에 더 점수를 주고 싶긴 한데, 그렇다면 그 '좋다'는 것은 대체 어떤 종류의 단어들로 표현할 수 있을것인가 하면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이 영화가 좋은 이유를 명확한 단어로 설명할 수가 없는것이다. 슬픈가? 아름다운가? 안타까운가? 잘 모르겠다. 그런데 좋고, 그래서 난해하다.
우스개소리로 친구들과 지인들과 혹은 식구들과, 부자로 살기 위해서는 부자로 태어나거나 사기를 쳐야만 한다고 대화하곤 했었는데, 이건 그저 웃자고 하는 말이 아님은 틀림없다. 회사를 다니면서 월급을 받고, 그것들을 차곡차곡 모아서 집을 사고 재산을 불리고 넉넉한 돈을 쌓아두는 일이 가능할까? 아니, 그것은 가능하지 않다. 월급이 오르면 물가는 더 올라있다. 내 월급은 십년전에 비해 두배가 되었지만, 그렇다면 지금 월급에서 십년전 월급을 뺀 차액을 모으고 있는가 하면 천만의 말씀이다.
아프리카에서도 중국에서도, 그곳의 가난한 사람들은 그 가난이 지긋지긋해서 그 삶을 피해보자고 스페인에 왔지만, 여기서도 그들은 끊임없이 가난하다. 지하실의 창고 하나에 열명도 넘는 사람이 다같이 함께 모여서 잠들고, 그들은 하루중 열여섯시간을 일한다. 그렇게 몸이 부서져라 일하는데 그들이 조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돈이 모이게 될까? 아니, 그렇지 않다. 그들은 게다가 그 지하실 창고에서 자신들이 죽는지도 모르는채로 죽음을 맞게된다. 그들은 가난하게 태어났고 가난하게 살다가 가난하게 죽는다. 게다가 그 죽음에는 어떤 애도도 없었고 제대로 된 장례조차 없었다. 그들의 시신은 스페인의 파도를 맞으며 쓸쓸하게 떠 있을 뿐이다.
이 영화속의 또 하나의 이야기는 '죽은 영혼과 대화하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것인데, 이 영화를 다 보고나서 아니, 사실은 그 전부터 나는 어떤이들에게 그것은 가능할 것이라고 믿어왔다. 누군가는 할 것 같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간에 죽은자의 영혼이 하늘로 가기전 내뱉는 말들을,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듣고 있지 않을까?
사실 다른 책들을 읽다가 자꾸만 멈춰서, 그것들을 다 읽기전까지는 하루키를 집어들지 말자고 내심 혼자 아무도 모르는 결심 따위를 해보았는데, 어쩔수 없겠더라, 나는 일요일 오후, 조카를 집에 보내고 낮잠을 잔 후 일어나서 이 책을 펼쳤다. 그리고 조금, 아주 조금 읽었다.
얼마전, 마노아님의 영화 [도가니] 리뷰에서, 마노아님의 친구는 (내가 제대로 기억하는게 맞다면)왜 그 소설은 영화보다 힘이 없었는가, 왜 그정도밖에 하지 못했는가 하는 뉘앙스로 얘기를 하셨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문학의 힘은 모두를 혹은 세상을 바꾸는데서 나타나는 건 아니라고 보여진다. 각자의 매체가 가진 힘은 저마다의 위치에서 하게 되는 일이 다를텐데, [도가니]를 예로 들자면, 그 영화의 파급 효과는 분명 책보다 컸지만, 그 영화 자체가 책에서 나온 것임은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독자나 관객이 그것을 접하고 받아들이는 데 무리가 없다면, 그것들은 저마다의 자리에서 제 할일을 하고 있다. 내가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이 부분에 대해서, 내가 사랑해마지 않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아주 제대로 써줬다. 역시 하루키로구나.
문학은 대부분의 경우 현실적인 도움은 되지 않는다. 일례로 전쟁이나 학살이나 사기나 편견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제지하지는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문학은 무력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역사적인 즉효성은 거의 없다. 그러나 적어도 문학은 전쟁이나 학살이나 사기나 편견을 만들어내지는 않았다. 거꾸로 그런 것들에 대항하는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위해 지치지 않고 꾸준한 노력을 계속해왔다. 물론 거기에는 시행착오가 있고, 자기모순이 있고, 내분이 있고, 이단이나 탈선도 있었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문학은 인간 존재의 존엄의 핵을 희구해왔다. 문학이라는 것 안에는 그렇게 계속성 안에서(그 안에서만)언급되어야 할 강력한 특질이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pp.29-30)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고, 그의 소설 대부분을 두번 이상씩 읽었지만, 노벨문학상에 하루키가 거론될 때마다 갸웃했었다. 그의 소설이 '노벨문학상'을 받을만큼(그것의 권위가 절대적이든 아니든) 그정도의 어떤 문학성을 하루키가 가지고 있는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런것을 어떻게 명확하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그동안 읽은 책들과 그것들에 대한 느낌만으로 판단하자면 내가 보기에는 코맥 매카시는 문학상에 근접하고 하루키는 그렇지 못하다,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하루키의 이 잡문집을 읽으면서 나는 내 생각이 잘못되있음을, 적어도 나는 내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며서 나름대로 판단해왔음을 느꼈다. 하루키는 하루키대로 (왜 아니겠는가!) 문학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고 그리고 글을 쓰고 있었다. 그의 '잡문집'에서 그것을 확인하는 것은 새삼 놀랍고 또 믿음직스러웠다. 아, 물론 아직 나는 하루키의 잡문집을 50페이지도 채 읽지 않았고, 그러면서 생각한거긴 하지만.
금요일에는 종로에 있는 알라딘 중고서점 앞에서 약속이 있었다. 나는 '자난 탄'의 『내 이름은 피라예』와 '티에리 종케'의 『독거미』를 들고 가서 팔았다. 꺄울. 퇴근길의 만원버스에 시달리면 책들을 들고 가는건 정말 오바이트 쏠리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내가 들고 간 책을 팔고 돈을 받는 일은 무척 신났다. 흐흐. 재미있어. 온라인으로 팔 때도 재미있었는데, 오프라인에서 바로바로 결제가 되는것도 재미있다. 게다가 『독거미』는 무려 4,900원! 움화화핫.
그리고 약속시간이 아직 조금 남아있어서 당연히 나는 또 알라딘 중고서점을 구경했는데...하다가 '크리스 클리브'의 『리틀비』와 '레베카 밀러'의 『피파 리의 특별한 로맨스』를 샀다. 앞의 것은 5,400원, 뒤의것은 무려,무려,무려,무려 2,000원이었다!!!!! 상태 완전 양호한데 단돈 2,000원!!!!!
그걸 들고 돌아다녔기 때문인걸까, 오늘 조카를 안으려는데 팔이 너무 아팠다. ㅠㅠ
움화화핫. 토요일 극장에서 만난 예고편. 12월 개봉이란다.
우리 재이슨의 영화가 자꾸 개봉하는구나. 이러다 너무 유명해지는건 아닐까. 너무 유명해져도 좋아하는 사람은 나 뿐이었으면 좋겠다. 아직 내 주변에 재이슨 스태덤 좋다고 말하는 사람은 나 밖에 없으니까. 훗.
그리고 또 본 예고편 하나가 탐 크루즈 주연의 『미션 임파서블 4』였는데,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두바이의 빌딩에서 그가 대역없이 액션촬영하는 장면이었다. 아..진짜..눈돌아가..완전 멋있어. ㅠㅠ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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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19일 토요일 대학로의 한 술집, 내 앞에 앚아있던 남자가 찍은 사진.
나는 그의 수첩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4월의 어느 해맑은 아침,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를 만나는 일에 대하여』를 적어주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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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벌써 일요일 밤 열시야. ㅜㅜ 나는 또 초조하고 안절부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