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On Writing]를 일종의 바이블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렇게(혹은 이런 것을) 쓰고 싶다'는 기분에서 비롯됩니다. 이 책은 소설을, 좀 더 나아가서는 장르소설을 쓰려고 마음먹고 있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을 가르쳐 주는 좋은 책입니다. 물론 이 책은 어디까지나 에세이지, 소설 창작 강좌의 강의록 그 자체가 아니기 때문에-교재로 사용되는 일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정말로 '이렇게 써라' 라는 가르침보다는 '나는 이렇게 쓴다' 에 더 가깝습니다. 하지만 가끔은 내가 사랑하는 작가가 이렇게 쓰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도 힘이 됩니다. :]

 저는 척 팔라닉의 오피셜 사이트-그의 오피셜 사이트는 그 자체로 팬클럽 홈페이지이기도 한데-에서 종종 그의 창작론을 훔쳐보며 감탄하거나 피식 웃거나 했습니다. 왜 웃었느냐, 그의 창작론이 정말로 너무나 그 자체였던 거예요. 문제의 에세이에서 그는 제가 그의 소설을 보면서 늘 감탄했던 그 너무 꼼꼼해서 현란하기까지 한 디테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왜 그런 방식을 쓰는지, 어떻게 그것의 유용함을 깨닫게 되었는지를, 바로 그 풍부한 디테일을 사용해 말해 주고 있었던 거예요. 척이 그 에세이에서 자신의 주장을 부연하기 위해 사용한 에피소드의 디테일들은, 정확히 그가 말했던 대로 제 머리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레이몬드 카버의 [On Writing]을 읽으면 저는 반대로 주눅이 들고 맙니다. 저는 카버를 좋아합니다만 그처럼 되고 싶다거나 그처럼 쓰고 싶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합니다. 아니, 카버에 의하자면 애초에 '누군가처럼 쓰고 싶다'를 바라는 것이 불순합니다. 그 작가의 '눈'은 세상에 단 하나 뿐이니까요. 세상에는 도널드 바셀미도 존 어빙도 하나밖에 없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척 팔라닉도 하나밖에 없지요. '순수하고 정확할 것'-이것을 작가들에게 요구하는 카버의 태도는 흔들리지 않고, 신경질적이면서 다소 고압적입니다. 잔재주와 장치가 가득한 하찮은 글의 불량한 맛도 사랑하는 저는 "나는 잔재주를 좋아하지 않소. " 라고 말하는 이 작가의 고결함을 존경조차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저라도, 그저 결과에 대해 "불평도, 설명도 하지 말라"는 말 정도는 머리 속에 담아 둘 수 있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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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9-02-17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같은 사람 없겠지요? 저는 이 <유혹하는 글쓰기> 사서는 1/3쯤 읽다가 더이상 못 읽고 다시 책꽂이에 꽂아놓은 사람이거든요. 이번 기회에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락방 2009-02-17 23:13   좋아요 0 | URL
저는 아직 [유혹하는 글쓰기]읽어보지도 아니, 사지도 못했는데요, hnine님. ㅎㅎ
저는 이번 기회에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해요. 불끈!!

eppie 2009-02-19 09:50   좋아요 0 | URL
엇, 그러고보니 저도 처음 시도에는 어째서인지 실패했다는 기억이 나요!
두 번째 잡았을 때는 마지막에 거의 엉엉 울면서 읽었지만요. 전에 언젠가 한번 밝혔듯이, 이게 싫네 저게 싫네 궁시렁궁시렁 말이 많아도 저는 어쩔 수 없는 스티븐 킹 빠순이라...:)

카스피 2009-02-17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책 아주 오래전에 발간된것을 갖고 있는것 같은데 한번 확인해 봐야겠네요.

eppie 2009-02-19 09:52   좋아요 0 | URL
그러고보니 읽은 게 언제였더라...
킹의 교통사고(1999) 이후에 씌어진 책이니 아무리 일찍 나왔다 해도 2000년이 아닐까 싶습니다. ^^
 
The William Monk Mysteries: The First Three Novels (Paperback) - The First Three Novels : The Face of a Stranger/A Dangerous Mourning/Defend and Betray
Perry, Anne / Ballantine Books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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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고향과 가장 가까운 대륙에서, 모래바람과 자개색 구름에 둘러싸여.

(예전에, 이 소설 이야기를 페이퍼에 올릴 때는 알라딘에 외서 코너가 없었지요. 이 책이 알라딘 외국도서에 들어와 있기에 페이퍼에 올렸던 내용을 리뷰로 올려 봅니다. 개인적인 취향과 관련된 잡다한 이야기들은 페이퍼 버전에는 남아 있습니다만, 여기서는 삭제했습니다 :D)  

 솔직히 인정합니다. 이 작가의 소설에 흥미를 가진 것은 그녀가 피터 잭슨의 영화 [천상의 피조물]의 모델, 실제 그 사건의 주인공이라는 불순한 이유에서였습니다. 원체 스캔들과 가십에 약한 저입니다만, 변명하자면, 일부러 저걸 찾아 검색한 건 아닙니다. TV 시리즈 [MONK] 관련해서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걸려든 거예요- '그' 앤 페리가 Monk라는 이름의 탐정이 등장하는 빅토리안 디텍티브 스토리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 그래서 냉큼 주문했습니다.

 그런데 사 놓고서도 어쩐지 한동안은 읽을 기분이 안 나서...읽기 시작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읽기 시작했을 때, 이것은 흥미 위주로 슬쩍 건드려 보고 말기에는 너무나 매력적인 소설임을 깨닫게 됐지요. 주인공 윌리엄 몽크의 캐릭터에는 작품이 씌어진 시대를 초월하는 독보적인 맛이 있습니다. 자기 손으로 정의를 실현하는 것에 이상할 정도로 집착하는 오만하고 자존심 강한, 한편으로는 권력욕을 숨기지 못하고 젠틀맨처럼 옷을 입는 경찰관이라니, 대다수의 현대 작가들은 시대물을 쓴다 해도 부끄러워서라도 등장시키지 못할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감히 말하는데 작가는 한 걸음 더 나갔습니다.

 이야기의 첫머리에서 윌리엄 몽크는, 사고로 기억을 잃고 자신의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깨어납니다. 그리고 그 기억상실은 이 책 내내 계속됩니다. 그는 자신이 경찰이라는 것도, 어떤 사건을 쫓고 있었는지도, 그 사건의 얼마만큼을 밝혀냈는지도, 누가 적이고 누가 친구인지도 모두 잊었어요. 그 상황에서 그는, 자신이 기억을 잃었다는 사실을 숨깁니다. 그에게 대뜸 조셀린 그레이 소령의 살인사건을 떠맡긴 상관에게도, 부하에게도, 피해자 가족에게도. 그야말로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더듬어 사건을 해결해야 합니다. 자기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모르는 상태로 온갖 종류의 사람들과 맞닥뜨리는 동안 조금씩 그의 기술(기억이 아닌)이 돌아오고, 상관이 뭐라 하든 그는 훌륭한 전략을 가지고 사건을 뒤쫓고 있었어요. 새로 배치된 부하인 존 에번의 존경심이 그것을 증명해 주지요.

 사건 이전에 자신에 대한 탐색이라는 점에서 이 소설은 물론 발란더 시리즈와 비슷하고, 그래서 마음이 끌리기도 했지만...백지의 탐정이라니 지나치게 공평합니다. 독자와 탐정이 똑같이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출발하는 겁니다. 몽크가 어떻게 사건을 해결할 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습니다. 그는 꼼꼼한 조사를 통해 사건의 윤곽을 파악하는 탐정일 수도 있고,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만에 하나의 가능성을 짚어내는 탐정일 수도 있고, 정보원들에게 찔러 주는 돈과 적당한 폭력을 통해 자신만의 열쇠를 얻어내는 탐정일 수도 있는 겁니다. 시대가 시대니만큼, 결과적으로 셋 다 하기는 하지만요. :] 수수께끼의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났을 때 그녀가(그녀 쪽은 명백히 몽크를 알고 있습니다) 적일지 친구일지 어떤 비밀을 가지고 있을지 알 수 없고, 상관이 그를 신뢰하고 있을지 아니면 죽도록 미워하고 있을지도 알 수 없습니다. '나는 기억을 잃었소' 라는 카드를 펼지 펴지 않을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야만 합니다. 도저히 기억할 수 없는 정보를 다시 얻기 위해서는 기억을 잃었다고 실토해야 하지만, 그건 곧 자신의 약점을 노출하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어떻게 보면 윌리엄 몽크는 이 기억상실을 통해 엄청난 기회를 잡은 셈입니다. 그는 군데군데서 엿보이는 '(오만하고 이기적이고 출세에 눈먼)원래의 자신'에 대해 혐오를 감추지 못하면서도 온갖 인간군상을 대할 때 그야말로 꼴리는 대로 내뱉습니다!

 사건의 진상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다소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당혹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소재를 다룬 수없이 많은 미디어를 봐 왔기도 하지요. 살해당한 조셀린 그레이가 어떤 인물인가, 윌리엄 몽크가 어떤 인물인가 더듬어가는 과정에서 둘의 자연스러운 대조가 두드러집니다. 현명한 배치였어요. 모두에게 사랑받았던 조셀린 그레이는 윌리엄 몽크에게조차 부러움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겁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자신이기를 선택하고,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최후에 증명하게 됩니다. 온갖 장식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나면 몽크는 결국 닥터 그레고리 하우스 류의 고집스런 히어로입니다만, 역시 시대가 시대인만큼 그 온갖 장식적인 요소가 실은 더 재미있는 거지요. 세면대라든지 온갖 의무적인 자선 이벤트들, 살림이 쪼그라들면서 메이드 규모를 축소하는 양상, 전쟁에서 부상당한 그레이 소령의 지팡이 목록... :]

 작품은 긴장감에 차 있고 400페이지가 지겹지 않았습니다. 몽크의 게임은 훌륭했어요. 그러나, 물론 더 잘 한 것은 작가입니다. 이런 소설을 바로 시리즈의 첫 번째로 내놓을 생각을 한 작가의 악마같은 솜씨입니다. 앤 페리가 실제로 시리즈를 만들 의도로 이 작품을 썼는지 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럴 의도가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저는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어요. 이것은 최소의 설명으로 캐릭터에 더없이 강렬한 존재감을 부여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본 아이덴티티] 가 그랬듯이.   

Dedicated to Ellis Peters
-엘리스 피터스 추모 단편집 [독살에의 초대Past Poisons]을 통해, 
 저는 수많은 다른 작가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 책도 그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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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02-16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ㄷㄷㄷ 예삐님 원서를 읽으시나요?

eppie 2009-02-17 09:24   좋아요 0 | URL
네, 하염없이 목을 빼고 기다릴 수 없다고 여겨지는 것들이나...도저히 번역될 것 같지 않은 것은 읽어요. 그냥 재미있을 거 같은 것도 읽고요. :]
 
다이디타운
F. 폴 윌슨 지음, 김상훈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사진은 이 소설의 히로인(?) 진 할로우Jean Harlow. :)

 다른 걸 떠나서 '재미'의 강도가 좀 경이로운 책 중 하나였습니다. 셰리 홀먼의 [도둑맞은 혀]나 헤닝 만켈의 [리가의 개들] 정도의 빠르기로 페이지가 휙휙 넘어갑니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확실히 아는 작가란 정말이지 보물 같은 존재입니다. 장르를 넘나드는 것도 좋고, 장르에 속하지 않으려 애쓰는 것도 좋고, 장르 규칙 안에서 독창성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도 좋지만...온갖 장르 클리셰를 빠삭하게 꿰고서, 줄거리 요약의 첫 문장을 읊는 것만으로 팬들을 데굴데굴 구르게 만들 수 있는 것 역시도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책처럼 재미있다면! 실제로 제 주위 사람들은, '미래거대도시의슬럼에있는허름한빌딩사무실에서아내에게버림받은탐정이진할로우의클론을만나' 까지만 말했더니 전부 배를 잡고(혹은 미간을 부여잡고) 쓰러지며 "나 그 책!" 이라고 외치던데요. 관계자 분에게 책을 얻어, 덕분에 무척 재미있게 봤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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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02-16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 재미있지요.사진속 인물이 진 할로우군요.미인이긴 한데 요즘분은 아니시군요.

eppie 2009-02-17 09:22   좋아요 0 | URL
1911년생이래요. :] 플래티나 블론드의, 30년대의 섹스심볼이었었지요. 안타깝게도 스물 여섯에 갑작스레 병사했답니다. ㅠ_ㅠ
그 시대를 그린 영화 [애비에이터The Aviator]에서는 그웬 스테파니가 진 할로우 역으로 출연했지요. 케이트 블란쳇의 캐서린 헵번과는 달리 별로 그럴듯하지가 않았지만요...

다락방 2009-02-16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보관함에 넣어야겠어요. 후훗.

eppie 2009-02-17 09:23   좋아요 0 | URL
저는 어젯밤에 어째서인지 다이디타운 페이퍼백과 다이디타운 2권이 출간되는 꿈을 꾸었지 뭐예요. 읽은 지도 한참인데...ㅜ.ㅠ
 
메이즈 - 간바라 메구미의 첫 번째 모험 간바라 메구미 (노블마인) 1
온다 리쿠 지음, 박수지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젠가 친구 아무개가 말했습니다. "온다 리쿠는 독서광 낚는 법을 알아. " 그 말을 듣고서 제가 그간 당해 온 것이 무엇인지 깨달은 저는...온다 리쿠에게 더 이상 낚이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 사람의 존재 자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낚시작가라고 정의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낚시는 성공적일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어서, 어떨 때는 기분좋게 낚이기도 하고 어떨 때는 낚이고서 기분이 더러워지기도 하며, 또 어떨 때는 낚이지 않으려고 거리를 두고 도망치기도 합니다. 독자에게 이런 경험을 선사한다면 그렇게까지 좋은 작가라고 볼 수는 없지 않을까 하는 게 제 생각이지만, 어떻게든 안간힘을 써서 변명을 해 보자면 '꿈'의 속성이란 원래 자신에게서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것이니까, 라는 얘기까지는 해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메이즈]는...처음부터 칸바라 메구미神原惠弥라는 캐릭터에 낚이느냐가 이 작품의 전부를 결정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예측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저는 이 칸바라 메구미라는 캐릭터가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아 심통이 났고, 작품의 다른 부분-'두부'에 대한 미츠루의 가설-은 상당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처음 칸바라 메구미의 설정을 듣고, 저는 그런 커다랗고 인상 나쁜 중년 아저씨가 여자 말투를 쓴다면 나름 매력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만...비록 또다른 친구는 이 '여자말투' 설정을 듣고 "야, pathetic 하다" 라고 말했지만...여튼, 간단히 말해-별로 좋지 않은 비유 같기는 한데-상상한 건 무밍파파인데 나온 건 D백작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한 마디로, 이 칸바라 메구미 너무 징그러워요! 

...곤란합니다. 이래서는. 다음 권을 봐 낼 자신이 없습니다. 아무튼 마음에 든 캐릭터는 중간에 잠시 언급된 미츠루의 아자부 출신 할머니밖에 없습니다. 문장마저 이래서야 헌책방밖에 갈 곳이 없습니다. 이게 작가 탓인지 번역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프로 작가가 '공포에 떨며 말했다' 같은 문장을 써도 되는 겁니까? ;ㅁ; 처음 본 순간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On Writing]에 샘플로 나왔던 문장 같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요! 심지어 '저런' 문장이 아니라 '바로 저 문장' 이 나왔던 것 같은 착각마저 들더라니까요.

 그리고 이건 작가의 단순한 착각인지 번역오류인지 제가 알 수 없는 문화적 배경이 있는 사실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엄청난 명문가 출신에 곧 무시무시하게 높은 지위에 오를 쉰 살의 남자'라는 건 대체 뭘 말하는 겁니까? 현대에 와서야 왕족이 아닌 이상 50살까지 높은 지위에 못 올랐으면 그 다음에도 못 오르는 거 아닙니까? OTL

여담이지만 아마존 재팬에서 발견한 [메이즈]의 표지는 너무 흉악해서 여기 올려놓고 싶지도 않습니다. 번역본의 모양이 원서와 비교해서 이 정도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느낀 건 오랜만입니다. 책끈 색깔도 표지와 맞췄고, 예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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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9-02-16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는 이 글을 읽고 나니 대체 얼마나 징그러운지 한번 읽어보고 싶어지잖아요!! 저야 온다 리쿠를 진즉에 내쳤지만 말입니다. -_-

eppie 2009-02-17 09:35   좋아요 0 | URL
징그러울 거라고 기대하고 보시면 그렇게까지 안 징그러울 거예요...=_=;
이제는 정말로 끊었기 때문에 마음이 평온합니다. 핫핫핫...

하이드 2009-02-16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제는 '공포에 떨며 말했다' 와 같은 문장이 무한반복 된다는 거;;
저도 온다 리쿠한테는 질릴만큼 질렸지만, 이번에 읽은 <코끼리와 귀울음>은 재미있더군요. 그러니깐, 단편꺼리들을 장편으로 늘여 놓는게 문제였던거 아닐까. 생각했더랬습니다.

eppie 2009-02-17 09:44   좋아요 0 | URL
우, 맞아요. 저도 [삼월은 붉은 구렁을]에서 그냥 그만 뒀더라면 좋았을 텐데...아니, 하다 못해 [네버랜드]를 밟았을 때만 그만 뒀더라도!

무해한모리군 2009-02-16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온다리쿠는 매력있지만 좀 반복적인 분위기랑 내가 이걸 왜 읽고 있지 하는 허무감이 있는거 같아요. 그래도 제겐 메이즈는 매력이 있는 쪽이었어요.

eppie 2009-02-17 09:47   좋아요 0 | URL
네, 실은 칸바라 메구미 말고 다른 부분은 좀 솔깃한 데도 있더라고요. 위에도 썼다시피 '두부'에 대한 미츠루의 가설(인지 몽상인지...)이라든지...
그리고 저는 여기서 멈추지 못하고 그 후에 [초콜릿 코스모스]를 또 보았던 거예요. 아아아...ㅠㅁㅠ

하양물감 2009-02-17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온다리쿠를 끊임없이 읽고 있는 사람 중에 하나인데요, 저는 나름대로 괜찮았던 것 같아요. 온다리쿠의 책을 연달아 쭈욱 읽을 때(한동안 줄줄이 출판되었잖아요)는 식상해져서 그만 읽어야지했는데 오랜만에 나오면 또 읽게 되더라구요. 저야, 온다리쿠 외에는 특별히 미스터리 비슷한 책들을 많이 읽지 않는 편이라 나름대로는 신선함을 느끼며 읽었어요. 저 역시 장편보다는 단편에 점수를 더 후하게 주고 싶네요.

eppie 2009-02-17 10:49   좋아요 0 | URL
끊는 데 한번(실은 두 번)만에 성공한 걸로 봐서, 제게는 그렇게까지 절실하지 않았나봐요. :< 한 편이라도 무척 마음에 들었던 적이 있다면 아마 지금도 미련을 못 버리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 사람의 경우 더 읽게 되는 동인이-제 경우에는-늘 지난번 책으로 인한 기대가 아니라 지난번 책으로 인한 실망이었거든요. 그것도 아주 큰 실망이었으면 끊기라도 쉬웠을 텐데(^^;) 아주 조금, 매번 아주 조금씩 아쉬움이 느껴져서 이번에는 어떠려나 하고 계속 보게 되는 거지요. :]
 
비잔티움의 첩자 행복한책읽기 SF 총서 8
해리 터틀도브 지음, 김상훈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처음 저는 이 책에 꽤 실망했었습니다만(이 책의 소년스러움과 증류주의 역사적 팩트가 부실한 점에 각별히), 이 책을 다시 읽고 나서 그냥 버리기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에 대한 기존의 견해를 철회한 것은 아닙니다. 다시 읽어도 이 책은 제 취향에는 지나치게 소년 지향으로 느껴지고, 그 점이 좀 우스꽝스러울 때도, 견디기 힘들 때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이디타운]을 '자신이 무엇을 쓰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장르에 빠삭한 작가의 매력' 이 있다고 평가한다면 이 [비잔티움의 첩자]에 대해서도 같은 평가를 해 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 뿐입니다. 역사의 그 중요한 모든 장면에 주인공(혹은 '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소년스러움, 주인공을 고독하고 슬픔에 찬 에이전트 B로 만들기 위해 갓 생긴 가족을 가차없이 없애 버리는 등의 소년스러움, 이 모든 것은 사실 냉철하고 유능하고 미남은 아니지만 성적 매력이 있는 스파이가 '실은 아직도 장난끼 있는, 소년 같은 남자'로 그려지는 첩보소설의 전통에 입각한 걸로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여전히 좀 괴롭지만 A. J. 퀸넬의 소설들을 줄줄이 읽어제낀 저같은 놈이 이걸 못 견딘다면 말이 안 되긴 합니다. 저는 이런 종류의-[비잔티움의 첩자]나 [Man on Fire]같은-, 겉으로 크게 드러나는 허풍스러운 남자다움은 차라리 좋아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느 정도까지는. 작가가 어느 정도 진지하게 쓰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사태가 유머를 잃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이걸 다시 읽으면서 제가 다아시 경 이야기들보다 이 쪽을 더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는데, 일단 이 소설에 등장하는 비잔티움-콘스탄티노플이, 저의 순진한 코스모폴리탄적 환상을 부추기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소설 속의 비잔티움도, 우리 세상의 비잔티움도, 부끄러워하면서도 도저히 좋아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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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02-12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색다른 견해시네요.저도 이책을 읽었지만 그 정도까지는 생각하지 못하고 그냥 단순한 대체 역사 소설이구나하고 생각했거든요.그리고 이책 판매가 안되서인지 행복한 책읽기에서 절판한다고 하니 그냥 가지고 계세요.sf는 시장이 작아서 절판되면 그만이거든요.
그리고 A. J. 퀸넬의 크리시(?)를 읽으신 분이 계시네요.불타는 사나이정도는 읽은 분이 계신데 시공사의 시리즈 5권을 다 읽으신 분은 별로 못뵙거든요.내용이 좀 마초스럽긴 하지요.
어디서 읽은 기억이 나는데 A. J. 퀸넬는 필명으로 어디서 숨어서 이런 소설을 쓴다고 하네요^^

eppie 2009-02-16 14:01   좋아요 0 | URL
^^; 언제부터인가 그냥 원서를 구해 읽으면 된다는 생각에, 책꽂이 공간이 모자라면 절판된 지 오래된 책도 덥석덥석 버리거나 누군가 줘버리게 되었어요. [토탈호러]나 [코스믹 러브]도 그런 식으로 남에게 줬던 것 같은 기억이 나네요.

실은 단편집이 까다롭지요. 한 편이라도 좋아하는 게 들어 있으면 내놓기가 어려워지니...제 경우엔 미스터리 취향은 배배 꼬였는데 비해 SF 취향은 비교적 단순하고 솔직해서 SF는 그렇게까지 구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 같아요.

[크리시] 시리즈는, 앞의 두 권 [Man On Fire]와 [The Perfect Kill]이 [퍼펙트 맨], [퍼펙트 킬] 이라는 제목으로 나왔을 때 처음 봤어요. 그 후에 시공사에서 크리시 시리즈 다섯 권이 다 나와서 재미있게 봤지요. :] 이 정도로 대놓고 마초짓을 하는 건 유쾌하게 볼 수 있어요. 물론 이 시리즈도 뒤로 갈 수록 완전 막장에 대체 왜 이러지 싶은 전개가 되었지만...처음 두 편은 확실히 걸작이었다고 생각해요.

퀴넬은 실제로 크리시 시리즈에 나왔던 고조gozo 섬에 살고 있다고 하지 않나요? 찾아보니 본명은 Philip Nicholson이라는군요.

카스피 2009-02-16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