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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합니다, 실은 이미 읽었거나, 읽을 생각이 없었음에도 오로지 표지가 아름답거나 마음에 들어서 사고 만 책들에 대해 쓰려고 했는데, 내용 삽화를 제외하고 '표지' 만을 대상으로 하려니 또 의외로 적더군요. :] 이런 식의 파렴치한 컬렉팅을 꽤 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나 의외로 성실하잖아 하는 생각이 들어, 표지 때문에 구매 예정인 책들 역시 포함시키기로 했습니다. 

 
이전 판, 색칠한 목각인형 표지는 굳이 살 생각이 없었거든요.  
하지만 저 당당한 긴 털 고양이가 너무 탐나서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T^T  

 
아, 정말이지 가장 죄가 큰 책은 이겁니다.
저 표지가 아니었더라면 안 샀을 거예요! [Chocolat]는 저 작가 작품 중에서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축도 아니라고요! 제가 좋아하는 건 [오렌지 다섯 조각Five Quarters of the Orange]인데, 물론 이 책도 마음에 드는 판본이 있었습니다. 이거예요. 
 
저 벗겨진 오렌지 껍질의 멋진 동세에 혹했지만, 직접 만져보고 표지 재질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짜식었습니다. 저 껍질 부분이 반질반질한 코팅이 되어 있더라고요.  

 
이 책도 죄가 큽니다. 빌려 읽어도 될 것을 표지 때문에 사 버렸어요. 표지가 각별히 아름답다기보다 제가 테마리手鞠(저 이야기에 나오는 공놀이의 '공')의 생김새나 테마리 모티프를 사용한 다른 공예품들을 워낙 좋아해서요. v_v  

 
첫째 권은 읽고 싶어서 샀지만, 둘째 권은 그냥 저 그림을 손에 넣고 싶어서 산 것 같습니다.
역대 앤티 메임 일러스트레이터들 중에서 저 사람이 최고예요.  

 
존 란체스터의 [The Debt to Pleasure]. 저는 [아주 특별한 요리 이야기]라는 번역제가 싫어요. 
이 책이야말로 왠지 '이 표지가 아니면 의미가 없어' 라는 생각이 들어, 이걸로 했습니다. 

 
에드워드 고리의 작품집인 [Amphigorey] 시리즈는 좋은 책이지만, 심각한 단점이 있습니다. [Amphigorey]를 가지고 있어도 또 작품들의 단행본을 따로따로 다 가지고 싶어져요. -_-; [The Curious Sofa]도, 괜히 단행본을 또 사 버린 예입니다. 후회는 안 해요. 예쁘니까요...영문판을 샀는데, 아마 그 후에 번역이 되었던 것 같네요. 번역본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어차피 고리가 손으로 쓴 본문 글씨는 다 들어가니까요. 한국에 번역된 에드워드 고리의 그림책 중에서는 [현 없는 하프The Unstring Harp]를 제외하고는 그렇게까지 퀄리티가 끔찍한 건 못 봤습니다. 저건 인쇄의 질이 눈 뜨고 못 봐줄 정도더군요. 

 
같은 예죠. :] 에드워드 고리의 [The Pious Infant]입니다만, [Amphigorey Too]에 실린 걸 이미 가지고 있음에도 일본판 표지의 저 당당한 한자 폰트에 반해 사 버렸습니다. 저 미칠 듯한 모단 간지...단언하는데 영문판은 절대 저 표지를 따라올 수 없을 겁니다.  


고양이입니다. :]
[고양이가 맞이하는 여관]이라는 제목의 (온천)여관 안내서인데 진짜로 '붙임성 좋은 고양이가 유명한 여관 소개' 가 내용입니다. 사실 이것도 내용보다는 저 표지의 고양이가 너무 미묘라서 그만...저 친구 외에도 멋진 고양이 사진이 많이 나옵니다. 번역될 가능성이 제로인 책이라서 안타까워요. -_-;   

 

 아래는 혹하기만 하고, 살 예정이되, 아직 사지 않은 책.  

  
반했습니다. 왜 이 책을 이제야 보게 된 걸까요?


얼마 전 저를 개인적인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새 퍼핀 북스 표지들.
펭귄과 퍼핀이라...저 네이밍 센스는 생각할 때마다 입가에 웃음을 띠게 합니다. :]
아, 앤도 새로 나온 버전이 있는데 알라딘에 없네...

아아, 귀여워라.  


이 책의 정체는, 타니자키 준이치로의 [치인의 사랑痴人の愛]입니다. :] 
작품 중에 제가 좋아하는 것은 [春琴抄]와 [陰翳禮讚]이지만 영문판의 표지 중에서는 이게 제일 좋군요. 두 작품 다 번역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아요. [눈먼 연인들]과 [그늘에 대하여] 중 어느 쪽이 더 후지다고 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아직 못 읽어본 [미식클럽美食俱樂部]의 영문판 표지가 몹시 훌륭하던데...그걸로 끝맺음을 할까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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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9-02-19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아서인지 고양이 표지에는 전혀 끌리지 않는데 말이죠, 저기 저 위에 조앤 해리스의 초콜릿과 오렌지의 책 표지는 정말 예쁜데요! 원서를 읽지도 못하면서 사고 싶어져요. 전 그다지 표지에 끌리는 타입은 아닌데 말입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의 책, 여자 다리가 보여지는 표지, 멋져요!

eppie 2009-02-24 13:35   좋아요 0 | URL
[오렌지 다섯 조각]의 표지는 실제로 보면 만듦새가 약간 조잡해요. ㅠ_ㅠ
아...이왕 하는 거 좀 어떻게 안 되나...ㅠㅁㅠ 외서 표지 중에는 이렇게 마음에 드는 것들이 많이 있는데, 정말 조금, 아주 조금 아쉬운 것들도 많아요.

마지막의 [미식구락부] 영문판 표지는...처음에 썸네일로 보고 응? 손? 하고 클릭해봤다가 몹시 뿜었답니다. 아무래도 저걸로 사야 하려나...

하이드 2009-02-19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나가야 하는데, 계속 붙어서 댓글 달고 있었는데, 이 페이퍼 다시 와서 천천히 볼래요! 고양이 문화사 표지의 고양이는 고양이종 중에 가장 큰 메이쿤정도일까요? 악! 꼭 안고 부비부비하고 싶어요~~

eppie 2009-02-24 13:50   좋아요 0 | URL
이 책의 독일어 표지도 심금을 울리는군요;_;
( http://www.libri.de/shop/action/productDetails/cover?artiId=5165356 )

저도 큰 고양이가 좋아요! 저 녀석은 메인쿤 아니면 노르웨이 숲고양이가 아닐까 해요. 얼굴이 메인쿤 같기도 한데 매우 전형적인 노르웨이 숲고양이 배색이기도 하고... 저런 양인의 털 길고 긴 고양이를 데리고 사냥(...)나가는 게 제 꿈 중 하나죠 v_v

eppie 2009-02-24 13:54   좋아요 0 | URL


근사한 노르웨이 숲 고양이...

eppie 2009-02-24 13:54   좋아요 0 | URL


제대로 당당한 메인 쿤...

보석 2009-02-19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핀 북스 표지들 마음에 듭니다..^^ 다른 것들도 다 좋고요.

eppie 2009-02-24 14:26   좋아요 0 | URL
제 친구는 저 퍼핀 북스 표지를 가리켜 '그린 사람의 더러운 욕망이 잘 드러나 있다' 고 말하더군요. [작은 아씨들] 표지 그린 사람의 다른 그림도 찾아봤는데 그게 글쎄 [롤리타]인 거예요, 그것도 엄청 귀여운!

카스피 2009-02-19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책들을 다 구매하셨다니 대단하시네요^^

eppie 2009-02-24 14:02   좋아요 0 | URL
아뇨, 위에도 썼다시피 다는 아니에요. 아마도 사게 되지 않을까 하는 책들도 있어요. :]

mooni 2009-02-19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츠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표지는 표지만 봐서는 그야말로 내용을 짐작도 할 수 없겠군요. 졸고 있는 고양이 귀엽습니다...^^ 펭귄네 표지는 어느거나 할 것없이 통일감있으면서도 내용과도 연관이 되고, 이쁘기도 이쁘고 그런거 같애요. 앤은 특별히 귀엽군요.

저는 예전에 하루키 댄스댄스댄스 들고다니다가 친구가 표지를 보더니 댄스교본이냐? 그래서 당황한 적이 있는데요 ^^ 표지로 책을 판단하지 마라, 뭐 그딴말들을 하긴 하지만, 표지랑 제목이랑 주인공 이름같은게 책 고를때 정말 한 반은 좌우하는것 같아요. ^^

eppie 2009-02-24 14:01   좋아요 0 | URL
혹시 저 고양이 그림의 원작이 있지 않을까 하고 검색을 했었던 과거가...ㅠ_ㅠ 하필 저런 곳에 자리를 잡은 것도 그렇고, 정말 고양이 귀엽게 잘 그렸죠.

네, 표지는 중요합니다. 단지 '읽는' 것뿐만이 아니라 '사는' 물건이잖아요! 저는 [핑거스미스]를 원서로 읽기가 피곤할 듯해서 번역본의 존재를 무척 반겼지만 그 흉악한 표지를 절대로 집에 두고 싶지가 않았어요. ㅠ_ㅠ

하이드 2009-02-19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브로 갔다가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리스트 보고 생각난건데요, 우리나라에 소개되는 작가와는 비교도 안되게 많은 작가들이 소개되는 외국이어서, '표지'가 그만큼 중요한게 아닐까. 하는 당연한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저도 표지에 대한 집착이 강한편인데, 요즘은 만듦새도 보고 있어서, 자꾸 눈만 높아지고 있습니다.

저는 CD 도 쟈켓에 나온 가수 얼굴만 보고 산 적 있습니다. 고등학교때 좋아하던 밴드 보컬 오빠와 닮았다며 샀던 해리코닉 주니어와 ^^; 홍콩 줄장 갔다가, 티비에 너무 멋진 남자가 나와서 노래 하길래 디카로 찍어서 음반매장 들고가서 샀던 가렛 게이츠.. 카자흐스탄에서 역시 얼굴만 보고 샀던 타르칸 등등

eppie 2009-02-24 14:25   좋아요 0 | URL
역시 1차적으로는 물량이겠지요? 한국에서도 북 디자인만으로 먹고살 수 있는 사람이 많이많이 늘어났으면 하고...v_v 요즘은 국내도서의 전반적인 퀄리티가 올라간 것 같지만 가끔씩 경악할 정도로 못 만드는 물건이 있어서 심심치 않게 서가에 뿜고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장르문학 쪽은 여전히 어둡기도 하고요. ㅠ_ㅠ

해리 코닉 주니어는 제게는 배우예요! :] 악평이 쏟아지는 영화지만 전 [카피캣]을 진짜로 좋아하고, 시고니 위버를 좋아하고, 그 커다란 여자가 빨간 투피스 입고 화장실 벽에 목매달리는 것도 엄청 좋아하고, 해리 코닉 주니어도 좋아합니다. (...) 며칠 전에 이런 얘길 했더니 친구가 엄청 한심하다는 눈으로 쳐다보더군요. 큽...

하양물감 2009-02-24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콜릿이랑 오렌지 다섯조각의 표지가 저렇게 생겼군요.

eppie 2009-02-24 14:24   좋아요 0 | URL
네, [오렌지 다섯 조각] 표지 중에는 저 [Chocolat] 표지랑 같은 시리즈인 것도 있어요. 그것도 예쁘죠. ^^


하양물감 2009-02-24 21:08   좋아요 0 | URL
이렇게 예쁜 표지인데 한국어판은 표지가 너무 단순해요.

eppie 2009-02-25 09:42   좋아요 0 | URL
[초콜릿]의 영화 포스터 이용한 표지는 너무 싫어요. ㅠ_ㅠ

다락방 2009-03-15 19:34   좋아요 0 | URL
오와~ 이 표지도 무척 예쁜데요!!!!

라로 2009-02-25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어떻게 댓글에 사진을 올릴 수 있나요????와
처음 인사드려요~.^^;;;;지금까진 그냥 훔쳐만 봤는데
이제 모습을 드러내도 되겠지요???^^;;;
반갑습니다.저 아주 자주 옵니다, 님 서재에,,,^^(아~ 어색,,,=^^=)

eppie 2009-02-25 09:45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 실은 저도 nabi 님 서재에 자주 들렀었어요.
에...사실 제 서재에 이런저런 것들 쓰기 전부터...그때도 다른 서재에 올라오는 글들은 보고 있었거든요 ^^;;;

댓글에 사진은, 다른 홈페이지나 게시판과 마찬가지로 HTML의 img 태그로 집어넣었는데 이게 알라딘 측에서 허용해 주는 일인지 몰라서 좀 불안해 하고는 있답니다. ^^;;; 댓글 태그 금지인 홈페이지들도 많잖아요.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On Writing]를 일종의 바이블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렇게(혹은 이런 것을) 쓰고 싶다'는 기분에서 비롯됩니다. 이 책은 소설을, 좀 더 나아가서는 장르소설을 쓰려고 마음먹고 있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을 가르쳐 주는 좋은 책입니다. 물론 이 책은 어디까지나 에세이지, 소설 창작 강좌의 강의록 그 자체가 아니기 때문에-교재로 사용되는 일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정말로 '이렇게 써라' 라는 가르침보다는 '나는 이렇게 쓴다' 에 더 가깝습니다. 하지만 가끔은 내가 사랑하는 작가가 이렇게 쓰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도 힘이 됩니다. :]

 저는 척 팔라닉의 오피셜 사이트-그의 오피셜 사이트는 그 자체로 팬클럽 홈페이지이기도 한데-에서 종종 그의 창작론을 훔쳐보며 감탄하거나 피식 웃거나 했습니다. 왜 웃었느냐, 그의 창작론이 정말로 너무나 그 자체였던 거예요. 문제의 에세이에서 그는 제가 그의 소설을 보면서 늘 감탄했던 그 너무 꼼꼼해서 현란하기까지 한 디테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왜 그런 방식을 쓰는지, 어떻게 그것의 유용함을 깨닫게 되었는지를, 바로 그 풍부한 디테일을 사용해 말해 주고 있었던 거예요. 척이 그 에세이에서 자신의 주장을 부연하기 위해 사용한 에피소드의 디테일들은, 정확히 그가 말했던 대로 제 머리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레이몬드 카버의 [On Writing]을 읽으면 저는 반대로 주눅이 들고 맙니다. 저는 카버를 좋아합니다만 그처럼 되고 싶다거나 그처럼 쓰고 싶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합니다. 아니, 카버에 의하자면 애초에 '누군가처럼 쓰고 싶다'를 바라는 것이 불순합니다. 그 작가의 '눈'은 세상에 단 하나 뿐이니까요. 세상에는 도널드 바셀미도 존 어빙도 하나밖에 없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척 팔라닉도 하나밖에 없지요. '순수하고 정확할 것'-이것을 작가들에게 요구하는 카버의 태도는 흔들리지 않고, 신경질적이면서 다소 고압적입니다. 잔재주와 장치가 가득한 하찮은 글의 불량한 맛도 사랑하는 저는 "나는 잔재주를 좋아하지 않소. " 라고 말하는 이 작가의 고결함을 존경조차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저라도, 그저 결과에 대해 "불평도, 설명도 하지 말라"는 말 정도는 머리 속에 담아 둘 수 있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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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9-02-17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같은 사람 없겠지요? 저는 이 <유혹하는 글쓰기> 사서는 1/3쯤 읽다가 더이상 못 읽고 다시 책꽂이에 꽂아놓은 사람이거든요. 이번 기회에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락방 2009-02-17 23:13   좋아요 0 | URL
저는 아직 [유혹하는 글쓰기]읽어보지도 아니, 사지도 못했는데요, hnine님. ㅎㅎ
저는 이번 기회에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해요. 불끈!!

eppie 2009-02-19 09:50   좋아요 0 | URL
엇, 그러고보니 저도 처음 시도에는 어째서인지 실패했다는 기억이 나요!
두 번째 잡았을 때는 마지막에 거의 엉엉 울면서 읽었지만요. 전에 언젠가 한번 밝혔듯이, 이게 싫네 저게 싫네 궁시렁궁시렁 말이 많아도 저는 어쩔 수 없는 스티븐 킹 빠순이라...:)

카스피 2009-02-17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책 아주 오래전에 발간된것을 갖고 있는것 같은데 한번 확인해 봐야겠네요.

eppie 2009-02-19 09:52   좋아요 0 | URL
그러고보니 읽은 게 언제였더라...
킹의 교통사고(1999) 이후에 씌어진 책이니 아무리 일찍 나왔다 해도 2000년이 아닐까 싶습니다. ^^
 

 
(원본사진 : royblumenthal@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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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로 좋아하지만 따로 리뷰를 쓴 적은 없는 작품이에요. 겨울이 다 가기 전에 올리고 싶었습니다. 언제부턴가 이 [은가면]의 이야기는 꼭 겨울에 하자고 마음 먹은 바 있었으니까요. 셜리 잭슨의 [악의 가능성The Possibility of Evil] 이야기를 꼭 화사한 봄에 하고 싶었던 것과 비슷합니다. :]  


(원본사진 : royblumenthal@Flickr)
Creative Commons License  

 미스터리 장르에서 노부인은 상당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들은 육체적으로 연약한 대신 오랜 연륜에서 우러나오는 직관의 소유자이기에 탐정 역으로 종종 등장합니다(마플 양, 스퀴데리 양, 휘슬러 부인, '어머니'). 그들은 가끔 그 육체적 연약함과, 여린 마음과, 여러 가지 이유로 가지고 있을 지 모르는 금전적 풍요로움 때문에 살인이나 강도의 피해자가 되기도 합니다(너무 많고 사소하게 다루어지는 경우 또한 많아서 열거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또 가끔은 온화하고 부드러운 외양을 가졌으나 내용물은 완전히 미쳐 있는 위험한 인물로 등장하기도 하지요(이것은 캐릭터의 성격상 언급하는 순간 스포일러가 되는 경우가 많아서...).

 두 번째 항목을 좀 발전시킨 것이 [은가면]의 기초가 됩니다. 이 짧은 소설의 도입부에서 소냐 헤리스Sonia Herries 양은 머리가 새하얗고 심장에 문제가 약간 있기는 하지만, 강인한 턱과 바라지고 탄탄한 몸을 가진 '누군가가 위협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존재로 그려집니다. 통상의 연약한 노부인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지만, 이런 헤리스 양이 아름답고 사악한 피조물들에게 생활을 침략당한 끝에 결국 삶 자체를 잃어버리고 자신의 집 다락방에 유폐되는 찜찜한 비극이 이 [은가면]의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구조를 가진 단편이 제가 아는 것만 해도 둘 이상 있습니다만, [은가면]이 그 단편들과 비교해 탁월한 점은 역시 그 '아름답고 사악한 피조물들'의 캐릭터가 너무나 말끔하게 설정된 점, 그와 더불어 아름다운 악마를 밤중에 집 안에 들여놓은 후 변화하는 소냐 헤리스의 심리상태를 은가면이라는 예술품에 맞대어 서술하는 솜씨가 넋이 빠질 정도로 훌륭한 점입니다.

 게다가 그 '아름다운 악마' 헨리 애봇Henry Abbott은 '키가 크고, 머리카락이 검고, 창백하고, 호리호리하고, 기품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의, 예술 작품을 보는 안목은 가졌지만 재능은 없는 화가의 모습으로 제시됩니다. 그는 처음 소냐 헤리스의 집에 왔을 때 벽에 걸려 있는 은으로 만든 광대의 가면(소라트Sorat의 작품이라고 나오는데, 검색을 이리저리 해 봤지만 이 작가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아니면 월폴의 창작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혹시 아시는 분이 계시면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을 발견하고 그 아름다움을 예찬합니다. - "은(銀)은 저 광대의 얼굴에 꼭 어울리는 소재예요. " 

 
(원본사진 : Yannic Meyer@Flickr)
Creative Commons License 

 천천히 흔들리고, 설레고, 기대하고, 뭐라고 말해야 할까요? 소냐 헤리스의 감정을? 이 소설의 전개에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불편하게 몸을 움직이고, 낯을 붉히고, 쓴웃음을 짓고, 과거를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소냐 헤리스는 자신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녀는 문득 달이 차오르듯, 지금까지보다 한층 더 아름답게 빛나는 광대의 은빛 웃음을 돌아봅니다.

 이 이야기의 결말은 냉혹하고 불쾌합니다. 소냐 헤리스는 모든 것을 잃고 광대의 웃음 속에 유폐됩니다. 그녀의 모든 아름다운 수집품들은 금전적인 가치로 환산되고 헨리 애봇은 마지막에 그녀의 작은 감옥으로 은가면을 가져옵니다. 그의 마지막 말은 모든 가능성을 박살내는 선언이고요. 아, 정말로 찝찝합니다. 그리고 정말로 훌륭해요! 아직 안 읽으신 분께는, '굳이 찝찝한 이야기를 어째서 찾아 읽어야 하느냐'는 취향의 분이 아니시라면, 일독을 권하고 싶습니다.  

Trivia
1. 번역된 휴 월폴의 소설은 좀처럼 찾기가 힘들었습니다만, 이 단편 [은가면]은 일단 동서미스터리북스의 [백모살인사건]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여전히 일본어 중역인 것 같지만요. 그 외에 예전에 삼천리에서 나온 [이것이 완전범죄다:사건편]에도 수록되어 있었습니다. 알라딘에 이미지가 없어서 곤란하네요-어느 책인가 하면, 표지에 '귀'가 그려져 있고 첫 번째 단편이 로드 던세이니의 "두 개의 양념병Two bottles of relish" 인 책입니다. 하서출판사의 [세계추리명작단편선]에도 수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2. 원래 이 작품은 휴 월폴의 단편집인 [All Souls' Night](1933)에 수록되어 있었다고 합니다만...이 단편집은 구하기가 상당히 힘듭니다. 아마존에서는 어느 셀러가 중고를 $70.97에 팔고 있군요. 대략 이런 실정이라, 저는 원문을 여기서 읽었습니다.

3. 저 단편집의 제목 [만령절의 밤All Souls' Night]은 W.B. 예이츠의 시에서 따온 겁니다.

Midnight has come and the great Christ Church bell
And many a lesser bell sound through the room;
And it is All Souls' Night.
And two long glasses brimmed with muscatel
Bubble upon the table. A ghost may come;

단편집 서두의 인용문이 단편집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네요. :]

4. 이것저것 가면 사진을 올렸지만 이 작품 속에 등장한 가면은 저런 것(어느 것이든)은 아니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_^;  

5. Aunt Violet's Book MuseumHugh Walpole Bibliography에 [The Silver Mask]가 실려 있는 앤솔로지 목록이 있네요: 

-Blanche Colton Williams & Maxim Leiber's Panorama of Modern Literature (Heath, 1929)
-his collection All Souls' Night (Macmillan, 1933; Doubleday Doran, 1933)
-Dennis Wheatley's A Century of Horror Stories (Hutchinson, 1935)
-Ellery Queen's 101 Years' Entertainment (Little Brown, 1941)
-Boris Karloff's And the Darkness Falls (World Publishing, 1946)
-Herbert van Thal's Told in the Dark (Pan, 1950 wraps)
-Thomas Bertram Costain & John Beecrof's More Stories to Remember (Doubleday, 1958)
-Jack Sullivan's Lost Souls: A Collection of English Ghost Stories (Ohio University Press,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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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02-04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은가면이 번역되었군요.백모살인사건은 구 동서판이 있어 구매 안했는데 이걸 읽으려면 사야될지 고민되네요..

eppie 2009-02-06 14:15   좋아요 0 | URL
번역 자체는 제가 읽은지 15년이 되었으니, 아마도 그 전에 되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만...어라, "은가면"이 이번에 새로 나오면서 포함된 거였나요? [백모살인사건]은 한 권이 되기에는 살짝 짧은 분량이니까 구 동서판에서 들어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위에 썼듯이, 삼천리의 [이것이 완전범죄다:사건편]이나 하서출판사의 [세계추리명작단편선]을 가지고 계시다면 "은가면"을 위해서 또 [백모살인사건]을 구매하실 필요는 없으실 듯합니다. ^^

카스피 2009-02-16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삼천리는 어딘가 있을텐데 한번 찾아봐야 겠네요^^

eppie 2009-02-17 09:50   좋아요 0 | URL
카스피 님 수집품 정도의 분량이 되면, 뭔가 생각날 때 찾아보는 것도 큰일이겠어요 ;ㅁ;
 

 우선, 저는 꼬꼬마 시절부터 아토다 타카시阿刀田高의 "취미를 가진 여인趣味を持つ女"의 열렬한 지지자였기도 하고, 이 작가를 기본적으로는 싫어하지 않습니다. 제가 호시 신이치를 싫어하는 데 비하자면 지나칠 정도로 좋아한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단편집 [나폴레옹광]은 재난이었어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사 버린 게 화근이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한동안 만나는 사람마다 이 책을 들이밀며 내 기분을 좀 알아달라고 울부짖어야 했습니다.  

 제가 싫어하는 호시 신이치 식 실없음으로 꽉 차 있는 이 단편집은, 일단 표제작인 "나폴레옹광ナポレオン狂"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결말이 뻔히 예측 가능한 것은 그렇다치고-저는 이제 이 점에 대해서는 문제삼지 않기로 했습니다-거기까지 이야기를 끌어가는 솜씨가 너무나도 둔합니다. 재치 있는 서술과는 거리가 멀어요. 이 부분에 있어서는 비슷한 종류의 문제점을 가진 다음 수록작 "뻔뻔한 방문자來訪者(알라딘 서재 에디터에는 '來'의 일본식 글자가 찍히지 않아서 대신 한국식 한자로 표기했습니다)"가 차라리 나을 정도예요.  

 사실 '~부터가' 라고 말하려면, "나폴레옹광" 이전에 표지의 문제를 얘기해야 하겠지만...저 유치한 표지에 대해서는 심지어 말하고 싶지도 않아요. 아뇨, 일러스트 얘기 아닙니다. 띠지의 컨셉 얘기하는 거예요.   

 나머지 단편들 중 "밧줄-편집자에게 보내는 편지繩-編集者への手紙-('繩' 역시 한국식 한자로 표기했습니다)"은 이전에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나쁘지 않습니다. 톤이 완전히 다르지만, 에도가와 란포의 [인간의자人間椅子]를 연상케 하는 부분도 있고요. :] 마음에 들었던 것은 "뒤틀린 밤"捩れた夜과 "그것의 이면裏側"의 2편입니다. " 광폭한 사자 凶暴なライオン"의 경우 완전히 좋아한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서술의 힘이 딸린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영상물로 개작되었을 경우에는 한번쯤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시나 긴 건 말고, 뮤직비디오 같은 형식이 좋겠네요. "생 제르망 백작 소고 サン· ジェルマン伯爵考"는 대체 뭘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라기 보다는, 뭘 하고 싶은 건지는 알겠는데 거기 한참 못 미쳤다는 편이 맞겠습니다) "사랑은 생각 밖의 것戀は思案の外('戀'을 한국식 한자로 표기했습니다)"은 이야기가 너무 뭐랄까...'늙었습니다'. 그런데, [나폴레옹광]이 1979년에 출간된 단편집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적극적으로 늙어보이는 이야기가 이 한 편 뿐이라는 점은 사실 좀 놀랍습니다. 가장 의외였던 부분이라고 할까요...:]

 "골프의 기원ゴルフ事始め" 역시 이전에 본 기억이 있습니다만 이쪽은 뭐랄까 아저씨 개그. 싫어요. "투명 물고기透明魚", "창공蒼空"은 실없고, 역시 "생 제르망 백작 소고" 레벨. "이白い齒('齒'를 한국식 한자로 표기했습니다)"는 그냥 도시전설 수준, 혹은 표제작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아토다 타카시라는 작가에 대한 호오라기보다는 [나폴레옹광] 이라는 단편집에 대한 호오에 가깝겠습니다. 단편집에는 장편과는 다른 단편집만의 '분위기' 라는 것이 있고, "취미를 가진 여인"을 그렇게 좋아했던 것도, 실은 그 단편을 처음 발견한 [일본 서스펜스 걸작선](고려원, 1993) 이라는 단편집 전체의 분위기를 마음에 들어 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취미를 가진 여인"은 단편집 [냉장고에 사랑을 담아冷藏庫より愛をこめて](1978)에 처음 수록되었습니다. 이것이 아토다 타카시의 첫 번째 단편집이라고 하니까 어쩌면 저는 이쪽을 읽는 게 나을지도 모르죠.  

 
 ◁ 참고로, [나폴레옹광]의 초판(講談社, 1979) 표지는 이렇습니다. 귀엽네요. 이쪽이 현재 아마존에서 팔고 있는 버전 표지(▷)보다 나은 듯. 



 

 

 

 그러면, [나폴레옹광]에서 이제는 뭐가 남죠? ...물론, 복어의 미림보시가 남습니다. :] 미림의 '림'은 (酉+林)으로 쓰는 한자인데, 역시 안 찍히네요. ^^; 참고로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미림'의 한자 표기를 味淋, 味(酉+林) 양쪽으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미림보시는 흔한 요리법이기는 한데, 복어로 만든 것은 먹어본 적이 없어서 'ふぐの味(酉+林)干し'를 검색해 보았습니다. 이런 곳(클릭)에서 팔고 있는데...과연, 본문에 언급된 대로 아름다운 물엿 색, 혹은 호박빛이네요. 저 홈페이지의 설명에 의하자면 녹아내릴 듯이 보드라운 폭신폭신찰랑찰랑한 식감이라는군요. 먹어보고 싶어라...하지만 재료가 재료니만큼, 몹시 비쌉니다. 큰 것이 긴 쪽 길이 13cm 정도로 아마 어른 손바닥 정도 크기일 텐데요. 2~3장이 100g이 되고, 100g이 500엔이니, 저 단편에 나온 대로 이거 좋아하는 사람이 한 상자 선물받으면 매우 기쁘지 않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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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er heart was melted now, and she determined to win aunt Miranda's approval by some desperate means, and to try and forget the one thing that rankled worst, the scornful mention of her father, of whom she thought with the greatest admiration, and whom she had not yet heard criticised; for such sorrows and disappointments as Aurelia Randall had suffered had never been communicated to her child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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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12-31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에는 복 많이 받아요. 예삐님. 하하


eppie 2009-01-09 13:39   좋아요 0 | URL
인사가 늦었습니다. 아무 데도 새해 인사를 드리지 못했네요. ㅠ_ㅠ
Hansa님께서도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바라요!

Marvel 2009-01-02 0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즐겨찾는 서재 링크 신고드립니다^^ 서재 스킨을 참 예쁘게 잘 꾸며 놓으셨네요. 전 스킨 꾸미는 재주가 없어서 부러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ppie 2009-01-09 13:41   좋아요 0 | URL
헉, 서재 즐찾 추가하면 보통 알려드리는 건가요! 지금껏 그냥 추가해 왔는데...양키두들 님께서도 새해 늘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스킨은...그냥 이미지들만 바꾼 겁니다. 감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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