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가 연주하는 음악 1.2 세트 - 전2권
우루야 우사마루 지음 / 애니북스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별로 성공적이지 못한 책정리의 와중에 다시 읽고 나서, 블로그에 썼던 글입니다. 이 만화에 대해 그렇게까지 애정이 있는 것도, 할 말이 많은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짚고 넘어가 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요. [마리가 연주하는 음악]은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마스터피스가 아닌 것은 분명하고, '우연히 알게 되어 읽었더니 무지무지 재미있는' 작품, 즉 숨은 걸작이 되기에도 뭣할 겁니다. 그래도 일단 읽어버린 사람의 마음 속에 잠시 착잡한 감상이 들 정도는 됩니다. 이것만 해도 어딘가요? :]
 
 같은 작가의 [최강여고생 마이]를 보고 머리가 띵해졌던 기억이 있거니와, 엄청난 톱니바퀴물(그런 게 있습니다)이라는 얘기에 솔깃해서 보게 되었는데,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흥미로운 경험이었어요.  

(이 작품에 대해 스포일러 없이 이야기하기는 거의 불가능한고로,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은 살짝 감추도록 하겠습니다. )  

 다 읽고 나서, 아마존 재팬에서 이 책의 정보를 찾아보았습니다-저는 이 만화가 원래도 두 권이었는지 궁금했습니다. 만화책의 권 구성이 원작과 달라지는 일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요. 아니라면 저는 좀 실망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만, 다행히도 아마존에 올라와 있는 [마리가 연주하는 음악Marieの奏でる音樂]은 상하 2권으로 나누어진 같은 구성이었습니다. 표지 일러스트도 한국판과 같고요. 같은 일러스트를 사용한 주제에 일본어판이 좀 더 예뻐 보인다는 점이 꽤 약오르기는 하지만...
 두 권의 표지를 나란히 놓고 보면, 하나의 그림이 보입니다. 오른쪽을 향해 '달걀' 을 내밀고 있는 피피와, 왼쪽을 바라보고 앉아 그 달걀을 받아 들려는 듯이 손을 내밀고 있는 카이. 카이의 손바닥에는 여전히 그 표식이 그려져 있고요. 이 표지는 이 만화의 모든 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만화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대칭성' 입니다.

 이 만화의 '반전'에 대해서는 주로, 없었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의견이 많이 있지요. 저는 오히려, 이 만화를 다 읽고서 모처럼 소위 '반전'에 긍정적인 기분이 되었습니다. ^_^; 그 반전이 없으면 이 만화의 대칭성은 완성되지 않습니다! 평소 같으면 형식에 구애되는 것은 좀 곤란한 습관이라고 생각했을 테지만, 이런 세계관의 이야기이니 형식미에 집착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무엇보다 그 반전이 없으면 그냥 '꿈을 좇아 떠난 소년과 그 소년을 사랑하는 소녀의, 슬픈 청춘의 한 페이지' 가 되지 않습니까. 제가 싫어하는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게 바로 청춘이라고요. 

 (스포일러) 작가는 본문 중에서 '현자' 구울 씨의 입을 빌어, 사랑과 신앙은 기본적으로 같은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카이는 마리를 여신으로 섬기다가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피피는 카이를 사랑한 끝에 신앙하게 되었습니다. 둘의 믿음은 같은 층위의 것입니다. 문제의 반전을 제외하면 이 이야기는 '카이가 믿었던 것' 에 온통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만 그 반전이 있음으로 해서, 앞의 모든 이야기가 '또한, 피피가 믿었던 것' 으로도 바뀌게 됩니다. 게다가 그녀는, 자신을 비롯해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 '카이' 의 존재를 믿게 만들었습니다. 여신조차도 기계장치의 모습을 한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에게, 간접적인 증거만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게 만든 거라고요! 둘 중에 누가 더 성공적인 포교자냐 하면, 피피 쪽의 압승입니다. :]

 그런데,  피피가 카이를 보고 있다는 것은 결국, 그녀 역시 '마리' 를 보고 있다는 뜻입니다. 카이는 명실상부한 '신의 도구' 이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존재인 그의 말이 피피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는 거니까요. 끝부분에서 구울 씨는 또다른 재능을 가지고 또다른 모습의 마리를 보고 있을 존재에 대해 지나가는 말처럼 언급합니다만...실은 눈 앞에 그 존재가 있으니까요. 독을 토하는 꽃이나 요부 대신, '소년'의 모습으로 나타난 '마리'를, 피피는 보고 있었던 겁니다. 우리는 이 세계의 수많은 섬들에 각각 다른 형태의 마리-종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마리는 실재합니다. 피피의 사랑은 그 자체로 마리-종교의 또다른 분파이고, 세계는 마리의 뜻 안에서 닫혀 있습니다. 피리토의 기계장치 세계관은 이런 의미에서 정확합니다.
 
 그러니까 저는 이 이야기가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습니다. 이 작가는 이야기를 풀어놓는 확실한 자기만의 스타일을 가지고 있고, 그건 대부분의 경우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와 이 스타일이 어울리는가...는 약간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피리토의 기계장치 세계관이나, 풍속을 묘사하는 아름다운 그림은 좋지만 어딘가 뻣뻣합니다. 거의 매 컷 '이런 걸 그려도 좋을까나' '어디서 본 듯하지 않은 걸 그려야 할 텐데' 하고 망설이는 듯한 분위기가 있어요. 이건 일차적으로 읽어나가기가 쉽지 않다는 느낌을 줍니다.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먹히지 않을 거예요. 저는 어느 정도까지 이 만화의 편을 들어 줄 수 있지만, 저런 부분을 지적한다면 할 말이 없어지겠지요.

Trivia
차라리 이런 것을 믿으라고 요구하는 종교이면 마음이 갈 지도 모르겠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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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남 2009-02-26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겠지만 그럼 순수한 카이로의사랑이 아니라 마리종교의 새로운분파라는거라면 카이에대한사랑이 본래는 마리로의 신앙심이었단 건가요?
왠지 혼란스러워지네요 그냥 저는 단순히 피피의눈에만(구울도?)보이는 카이가 나중에 임무를 수행한뒤 사라졌다, 로 이해할라 했는데 또 피피가 쓰여있지 않은 편지를 읽는것이 마음에 걸리고 그럼 다시 그냥 피피가 카이가 죽은게 믿겨지지않아서 피피야말로 모든걸 지어낸건 아닐까했는데 아 너무 어렵네요 카이는 사라졌는데 그 빈편지는 대체 뭔지

eppie 2009-02-26 14:51   좋아요 0 | URL
마리에 대한 카이의 마음 역시 '사랑' 이었지요.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세요, 이건 제가 그 세계를 이해하려 애쓰다가 내린 결론일 뿐이니까요. ^^; 저는 피리토의 세계관이 '마리' 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이 이야기를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로 보고 싶어하시는 분들은 결말을 매우 마음에 안 들어하시더라고요. 다른 분들께 스포일러가 될까봐 자세히는 쓸 수 없지만 그 사고 이후 카이는 피리토라는 세계, 시스템의 일부가 되었고 결국 마리의 일부가 된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피피에게 다가왔던 카이의 기척이나 그 모든 것은 피리토, 세계, 혹은 마리가 준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고요. 환타지나 동화의 껍질을 쓰고 있지만 사실은 [매트릭스]랑 더 비슷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김계남 2009-02-27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에 '사람이 사람을 이렇게까지 사랑할수도 있는거군요' '이건 기적의 이야기입니다' 하고 전 그때 좀 감동적이라 그래도 중후반엔 그런 세계관얘기하다 마지막엔 뭐냐 아름다운 피피의 사랑 이런얘긴줄 알았는데 저런 해석도 있군요 제가 좀 집요해서 그런지 참 그 피피가 보던 편지가 마음에 거슬리네요
한번만 읽어봐서 그런가 님말씀 듣고 보니까 다시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