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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티움의 첩자 ㅣ 행복한책읽기 SF 총서 8
해리 터틀도브 지음, 김상훈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처음 저는 이 책에 꽤 실망했었습니다만(이 책의 소년스러움과 증류주의 역사적 팩트가 부실한 점에 각별히), 이 책을 다시 읽고 나서 그냥 버리기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에 대한 기존의 견해를 철회한 것은 아닙니다. 다시 읽어도 이 책은 제 취향에는 지나치게 소년 지향으로 느껴지고, 그 점이 좀 우스꽝스러울 때도, 견디기 힘들 때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이디타운]을 '자신이 무엇을 쓰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장르에 빠삭한 작가의 매력' 이 있다고 평가한다면 이 [비잔티움의 첩자]에 대해서도 같은 평가를 해 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 뿐입니다. 역사의 그 중요한 모든 장면에 주인공(혹은 '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소년스러움, 주인공을 고독하고 슬픔에 찬 에이전트 B로 만들기 위해 갓 생긴 가족을 가차없이 없애 버리는 등의 소년스러움, 이 모든 것은 사실 냉철하고 유능하고 미남은 아니지만 성적 매력이 있는 스파이가 '실은 아직도 장난끼 있는, 소년 같은 남자'로 그려지는 첩보소설의 전통에 입각한 걸로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여전히 좀 괴롭지만 A. J. 퀸넬의 소설들을 줄줄이 읽어제낀 저같은 놈이 이걸 못 견딘다면 말이 안 되긴 합니다. 저는 이런 종류의-[비잔티움의 첩자]나 [Man on Fire]같은-, 겉으로 크게 드러나는 허풍스러운 남자다움은 차라리 좋아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느 정도까지는. 작가가 어느 정도 진지하게 쓰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사태가 유머를 잃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이걸 다시 읽으면서 제가 다아시 경 이야기들보다 이 쪽을 더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는데, 일단 이 소설에 등장하는 비잔티움-콘스탄티노플이, 저의 순진한 코스모폴리탄적 환상을 부추기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소설 속의 비잔티움도, 우리 세상의 비잔티움도, 부끄러워하면서도 도저히 좋아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