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즈 - 간바라 메구미의 첫 번째 모험 간바라 메구미 (노블마인) 1
온다 리쿠 지음, 박수지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젠가 친구 아무개가 말했습니다. "온다 리쿠는 독서광 낚는 법을 알아. " 그 말을 듣고서 제가 그간 당해 온 것이 무엇인지 깨달은 저는...온다 리쿠에게 더 이상 낚이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 사람의 존재 자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낚시작가라고 정의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낚시는 성공적일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어서, 어떨 때는 기분좋게 낚이기도 하고 어떨 때는 낚이고서 기분이 더러워지기도 하며, 또 어떨 때는 낚이지 않으려고 거리를 두고 도망치기도 합니다. 독자에게 이런 경험을 선사한다면 그렇게까지 좋은 작가라고 볼 수는 없지 않을까 하는 게 제 생각이지만, 어떻게든 안간힘을 써서 변명을 해 보자면 '꿈'의 속성이란 원래 자신에게서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것이니까, 라는 얘기까지는 해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메이즈]는...처음부터 칸바라 메구미神原惠弥라는 캐릭터에 낚이느냐가 이 작품의 전부를 결정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예측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저는 이 칸바라 메구미라는 캐릭터가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아 심통이 났고, 작품의 다른 부분-'두부'에 대한 미츠루의 가설-은 상당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처음 칸바라 메구미의 설정을 듣고, 저는 그런 커다랗고 인상 나쁜 중년 아저씨가 여자 말투를 쓴다면 나름 매력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만...비록 또다른 친구는 이 '여자말투' 설정을 듣고 "야, pathetic 하다" 라고 말했지만...여튼, 간단히 말해-별로 좋지 않은 비유 같기는 한데-상상한 건 무밍파파인데 나온 건 D백작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한 마디로, 이 칸바라 메구미 너무 징그러워요! 

...곤란합니다. 이래서는. 다음 권을 봐 낼 자신이 없습니다. 아무튼 마음에 든 캐릭터는 중간에 잠시 언급된 미츠루의 아자부 출신 할머니밖에 없습니다. 문장마저 이래서야 헌책방밖에 갈 곳이 없습니다. 이게 작가 탓인지 번역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프로 작가가 '공포에 떨며 말했다' 같은 문장을 써도 되는 겁니까? ;ㅁ; 처음 본 순간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On Writing]에 샘플로 나왔던 문장 같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요! 심지어 '저런' 문장이 아니라 '바로 저 문장' 이 나왔던 것 같은 착각마저 들더라니까요.

 그리고 이건 작가의 단순한 착각인지 번역오류인지 제가 알 수 없는 문화적 배경이 있는 사실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엄청난 명문가 출신에 곧 무시무시하게 높은 지위에 오를 쉰 살의 남자'라는 건 대체 뭘 말하는 겁니까? 현대에 와서야 왕족이 아닌 이상 50살까지 높은 지위에 못 올랐으면 그 다음에도 못 오르는 거 아닙니까? OTL

여담이지만 아마존 재팬에서 발견한 [메이즈]의 표지는 너무 흉악해서 여기 올려놓고 싶지도 않습니다. 번역본의 모양이 원서와 비교해서 이 정도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느낀 건 오랜만입니다. 책끈 색깔도 표지와 맞췄고, 예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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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9-02-16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는 이 글을 읽고 나니 대체 얼마나 징그러운지 한번 읽어보고 싶어지잖아요!! 저야 온다 리쿠를 진즉에 내쳤지만 말입니다. -_-

eppie 2009-02-17 09:35   좋아요 0 | URL
징그러울 거라고 기대하고 보시면 그렇게까지 안 징그러울 거예요...=_=;
이제는 정말로 끊었기 때문에 마음이 평온합니다. 핫핫핫...

하이드 2009-02-16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제는 '공포에 떨며 말했다' 와 같은 문장이 무한반복 된다는 거;;
저도 온다 리쿠한테는 질릴만큼 질렸지만, 이번에 읽은 <코끼리와 귀울음>은 재미있더군요. 그러니깐, 단편꺼리들을 장편으로 늘여 놓는게 문제였던거 아닐까. 생각했더랬습니다.

eppie 2009-02-17 09:44   좋아요 0 | URL
우, 맞아요. 저도 [삼월은 붉은 구렁을]에서 그냥 그만 뒀더라면 좋았을 텐데...아니, 하다 못해 [네버랜드]를 밟았을 때만 그만 뒀더라도!

무해한모리군 2009-02-16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온다리쿠는 매력있지만 좀 반복적인 분위기랑 내가 이걸 왜 읽고 있지 하는 허무감이 있는거 같아요. 그래도 제겐 메이즈는 매력이 있는 쪽이었어요.

eppie 2009-02-17 09:47   좋아요 0 | URL
네, 실은 칸바라 메구미 말고 다른 부분은 좀 솔깃한 데도 있더라고요. 위에도 썼다시피 '두부'에 대한 미츠루의 가설(인지 몽상인지...)이라든지...
그리고 저는 여기서 멈추지 못하고 그 후에 [초콜릿 코스모스]를 또 보았던 거예요. 아아아...ㅠㅁㅠ

하양물감 2009-02-17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온다리쿠를 끊임없이 읽고 있는 사람 중에 하나인데요, 저는 나름대로 괜찮았던 것 같아요. 온다리쿠의 책을 연달아 쭈욱 읽을 때(한동안 줄줄이 출판되었잖아요)는 식상해져서 그만 읽어야지했는데 오랜만에 나오면 또 읽게 되더라구요. 저야, 온다리쿠 외에는 특별히 미스터리 비슷한 책들을 많이 읽지 않는 편이라 나름대로는 신선함을 느끼며 읽었어요. 저 역시 장편보다는 단편에 점수를 더 후하게 주고 싶네요.

eppie 2009-02-17 10:49   좋아요 0 | URL
끊는 데 한번(실은 두 번)만에 성공한 걸로 봐서, 제게는 그렇게까지 절실하지 않았나봐요. :< 한 편이라도 무척 마음에 들었던 적이 있다면 아마 지금도 미련을 못 버리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 사람의 경우 더 읽게 되는 동인이-제 경우에는-늘 지난번 책으로 인한 기대가 아니라 지난번 책으로 인한 실망이었거든요. 그것도 아주 큰 실망이었으면 끊기라도 쉬웠을 텐데(^^;) 아주 조금, 매번 아주 조금씩 아쉬움이 느껴져서 이번에는 어떠려나 하고 계속 보게 되는 거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