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집에 키스하기
조너선 캐럴 지음, 최내현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2007년 5월 글입니다) 

   
  "촌스럽게. 제임스 본드라니. "
 "그땐 안 촌스러웠어. 세상에서 제일 멋있는 사람이었어. "
 
   

 폴린 오스트로바는 죽었습니다-살해당한 여자의 망령에 사로잡힌 사람의 이야기라면 여러 장르에 걸친 여러 편이 존재하고,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을 겁니다. [블랙 다알리아]부터 [자루 속의 뼈]까지. 이 이야기는 [블랙 다알리아]를 물에 아주 엷게 탄 것 같기도 하고, 살짝 현실과 비현실의 갈피를 잡지 못하게 한다는 점에서는 스티븐 킹 이야기 같기도 합니다. 애초에 작가 이야기를 스티븐 킹만큼 많이 쓴 사람이 또 있겠어요?

 중년의 작가 샘 베이어는 문득 자신이 10대였을때 시체로 발견된 여자에 관한 소설을 쓰기로 합니다. 정확히는 그가 '시체를 발견한 여자' 입니다. 파블리나 '폴린' 오스트로바는 크레인스뷰의 아이돌이었습니다. 빨간 머리의 사랑스러운 그녀는 똑똑하고, 정열적이고, 독립적이고 분방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녀를 걸레라는 카테고리에 넣을 수 없어서 당황했습니다. 때는 50년대.  

   
   요컨대 오십 년대 미국의 자그마한 소도시에서 자라났던 것이다. 어린 시절에 대해 그다지 할 말이 없는 것도 당연했다. 별다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머리를 기르는 사람도 없었고, 반항이라고 해 봐야 고작 쇠고기 찜을 꾸역꾸역 한 번 더 먹는 정도였으며, 마약은 은밀한 루머로만 존재했고, 남들과 다르게 행동하면 당장 호모라고 낙인찍혔다. 우리는 잘하든 못하든 스포츠를 많이 했다. 친구들은 조, 앤서니, 존 같은 이름이었다. 우리가 꿈꾸거나 열심히 작업을 걸던 여자애들은 대부분 열일곱에 신체적 정점에 올랐다가 결혼하는 순간부터 자기 엄마랑 똑같아 보이기 시작하는 여자들이었다.   
   

 아아.
 잘 아는 것도 같고 모르는 것도 같은 사실의 안개에 섞여, 픽션의 단맛이 쫙 스며듭니다. 이야기는 달콤했습니다. 가끔 샘의 딸 카산드라 베이어(아무리 생각해도 이 캐릭터는 없어도 좋았습니다.)의 존재와, 샘 베이어가 베로니카와 주고받는 대화가 읽는 사람의 인내심을 시험하는데, 베로니카 레이크의 캐릭터에 이르면 그냥 읽는 사람의 인내심의 한계를 부수고 이제는 무슨 짓을 해도 좋다는 묘한 평정상태를 가져다 줍니다. 이 작가의 여자 캐릭터에는 좀 문제가 있어요. 


 

 본문의 묘사를 보면 저렇게 생겼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힘들지만 아니라고도 단정 못 짓겠습니다.실제로 샘 베이어는 닮았다고 한 마디 하기는 하는데, 입에 발린 말인지 농담인지 알 수가 없어요. 이 소설이 [블랙 다알리아]를 물에 엷게 탄 것 같다면, 이 소설의 히로인 베로니카 레이크는 '척 팔라닉 식 미친년'을 물에 엷게 탄 것 같습니다. 더 솔직히는 척 팔라닉 식 미친년을 소심한 오타쿠가 잘못 꿈꾸면 나올 것 같은 타입이라고 말하고 싶군요. 프래니 맥케이브의 캐릭터를 보면 작가는 남자가 어떡하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사랑스러운지, 그 아슬아슬한 경계를 잘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여자에 대해서는 그 경계가 어딘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뜯어보면 세부사항이 엄청나게 찌질한데도 이렇게 재미있다는 것은, 단순히 취향이라고 하기도 좀 그렇고 이게 작가의 실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조금 염려되는 것은 이 작가에게서 일종의 온다 리쿠가느껴진다는 점입니다. 이 점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크레인스뷰 3부작의 나머지 둘을 아무쪼록 빨리 보고 싶군요. 특히 프래니 맥케이브가 주인공이라는 [The Wooden Sea] 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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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즌 빈스 블랙 캣(Black Cat) 12
제스 월터 지음, 이선혜 옮김 / 영림카디널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 작년 4월 글입니다. 이제 와서 이 소설의 내용을 생각하면 정말로 우울해집니다. 이제는 그들이 갖고 있고 우리가 갖지 못한 것을 머리에서 지울 수가 없어요. )

 그야말로 핥듯이 탐독. 블랙 캣 시리즈가 저를 실망시킨 적이 있던가요? 말장난 같지만, 썩 마음에 안 들었던 [돌 속의 거미] 조차도 실망시키지는 않았어요-아무 기대 없이 집은 책이니까. [윈터 앤 나이트]며 [폭스 이블], 그리고 무엇보다 [부활하는 남자들]...저 쯤 되면 굉장한 적중률입니다. 그 결정판이 [시티즌 빈스].  

 주인공의 일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다소 건조하고 (곧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이) 불길한 문장을 읽다 보면 그 페이지 중반쯤에 풉-하고 입 안에 든 것을 뿜으면서 데굴거리게 됩니다. 흠, [유리가면]에서 츠키카게 선생님이 말했던 긴장과 완화가 바로 이것이로군...하고 읽다 보면 숨돌릴 틈 없이 벌어지는 사건(이랄까). 

 ...사실은 이 소설 전편을 통틀어 별 사건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도넛 가게에서 일하던 빈스 캠든이 잠시 '고향' 에 갔다가 돌아온다, 그뿐이에요. 물론 그 기간 동안 우리 세상에서 가장 큰 이벤트 중 하나인 미국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고 있긴 하지요. :]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저는 제 기억이 맞나 궁금해져서 1980년의 미국 대선 결과를 찾아봤습니다.

 흐음. :(

 다시금 이 소설 내의 애절하게 순진한 시각에 가슴이 미어집니다. 그 때와 지금, 1980년과 2004년. 만약을 말하는 것은 덧없는 일이며 이 책에 나오는 가끔 꼰대같은 문장을 인용하자면 "역사는 우리가 아직 갖지 못한 기억" 이지요. 우리가 왜 늘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는지도 알 수 없고-개인으로건 집단으로건-일이 벌어진 후에야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거지요. 그래서 어쨌든 지금은 할 수 있는 일을 합니다. 아프네요.

 그러나 어쨌든 이 소설은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인물 묘사나 뭐나 하나도 빠질 게 없어요. 처음에는 뭔가 공허하고 불안하고 제정신이 아닌 것 같던 빈스의 묘사도 읽다 보면 그 타당성을 찾게 되고요. 캐릭터들도 하나같이 흥미롭게 잘 세워져 있고, 특히...음...프란시스 포드 코폴라가 [대부] 시리즈를 통해 마피아를 미화했다는 비판을 받는다면 이 소설도 그런 소리를 들어 마땅할 것 같습니다만...  

 진지하게 읽다가 처음 뿜었던 구절은 이렇습니다 : 

   
   빈스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지만 이 세상은 마리화나를 피우는 경찰관, 십일조를 내는 도둑, 스타킹 고정용 벨트를 사용하는 상류사회 여성, 곰 인형을 안고 자는 부랑자, 도넛을 만드는 범죄자, 부동산업을 하는 매춘부 같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했다.  
   

 정치가에게는 이런 야유를 할 수 있습니다 :   

   
  "당신이 하는 말은 다 포츈쿠키에 씌어 있는 말 같아요. "   
   

 시골로 떨려난 이탈리아계 마피아는 이런 자랑을 할 수 있습니다 :   

   
   "난 이제 두꺼운 피자도 먹을 수 있어! "  
   

 사람들이 대통령에게 첫 번째로 원하는 것은 용기이고-그래서 카터는 안 된답니다. 두 번째로 원하는 것은 머리카락이랍니다-그래서 다마토는 대통령이 될 수 없답니다. 과연...미국은 그렇군요. (한국은...음... ......) 

 그럭저럭 걸릴 데 없는 번역이었는데 번역자가 마피아 영화 한 편도 안 봤는지 '파밀리아famiglia' 를 '파미글리아' 라고 쓰고 있더군요.  이런 소리를 했더니 마피아 광인 친구가 마피아 영화 자막들에도 파미글리아라고 나온다고...이런.  

 어쨌든 읽으세요. 이것은 굉장히 훌륭한 소설입니다. 빈스는 일종의 '정원사 챈스' 입니다만, 그렇게까지 명백한 의도가 읽히지는 않고, 상황도 우화라기보다는 현실적이에요. 저의 극추천과 블랙 캣 시리즈의 셀렉션을 믿지 않으신다면 이것이 2006년 에드가상 장편부문 수상작이라는 사실도 살짝 언급하겠습니다. :] 영화화하기에 참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했더니, 작가는 실제로 영화 시나리오를 염두에 뒀고 영화화 판권이 최근 팔렸다고 합니다. 혹시 영화화된다면 빈스가 브래드 피트만 아니면 보러 갈 생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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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8-12-27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 위에 조너선 캐럴의 책도 방금 리뷰읽고 보관함에 넣었는데 이 책도 넣어야 겠군요. 그런데 우리도 대통령에게 원하는게...머리카락.....이어야 했던걸까요?

eppie 2008-12-29 12:15   좋아요 0 | URL
영 딴 소리지만 클린턴도 몇 년 사이 확 늙었더군요. 슬퍼요...;ㅁ;
그리고 생각해 보니 대머리는 애초에 투표를 통해 대통령이 된 것도 아니었죠. ㅠ_ㅠ 소용 없나...
 
돌아보지 마
카린 포숨 지음, 김승욱 옮김 / 들녘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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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작년 여름 글입니다)

 -아...정말 좋습니다. 요 몇 주간은 그야말로 승승장구로, 취향에 맞는 책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레이븐 블랙],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 [샤바케]의 3권과 [바로크 사이클]. 이건 물론 나온 지 좀 된 몇몇 책들을, 재미있을 걸 뻔히 알면서도 '재미있는 것만 사긴 좀 그래...' 라는 되도 않은 기분으로 무시하고 지나갔기 때문입니다. 이쯤에서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대체 재미있는 걸 안 하면 뭘 할 거냐?

 카린 포숨의 1997년 Glass Key award(*) 수상작 [돌아보지 마]는...
 음.
 또 '안 쓰느니만 못한, 뻔한 수식어'를 좀 쓰겠습니다. '특이한 긴장감과 묘한 여운'의 소설입니다.  발란더 시리즈나 아날두르 인드리다손의 소설 두 편과 유사한 정서를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가장 유사한 느낌을 주는 소설을 고르라면 역시 [레이븐 블랙] 이네요. 분위기와 전개, 안도하지 못할 결말까지 상당히 닮아 있어요. 혹은, 배경과 인물을 모두 털어낸 이야기 자체의 속성이라면 [벌집에 키스하기]와도 비슷하겠네요. 즉, 이런 겁니다-'비밀을 가진 소녀가 살해당했다'.

 동기가 중요하지 않은 살인사건이 실제로 증가하고 있다고는 합니다만 추리소설의 세계에서는 '왜' 란 여전히 필수적인 질문입니다(***). 금전적 이득이든 충동적 살인이든 '왜'를 배제하면 글쎄요, 저는 좀 긴장감이 떨어지고 마는 편이라서요. 그리고 여기서 지금까지 수많은 추리소설의 범행동기 중 하나였던 '비밀' 이 등장합니다. 올 상반기에 읽은 것 중에서만 해도 꽤 되는 것 같군요. 숨기고 싶은 것은 어떤 '사실' 일 때도 있고 '자신' 일 때도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 높은 확률로 '어디까지 들여다볼 것인가' 라는 도덕적 질문을 내포하고 있지요. 우리는 어디까지 자신을 내보이거나 타인을 들여다봐도 되는 걸까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행동은 어디까지가 법적, 도덕적으로 과잉방어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걸까요? 단, 고민의 깊이와 시간이 결행의 쉽고 어려움과 비례하는 것은 결코 아니어서 선을 넘는 것은 순식간이며 그 결과는 당연히 법에 저촉됩니다. 법은 수많은 사람을 지켜 주거든요. -ㅅ-

 제목의 '돌아보지 마'의 출전은 피요르드에 전해 오는 바다뱀 전설입니다. 바다에서 노를 젓다 보면 배 뒤에서 첨벙거리며 따라오는 바다뱀의 소리를 듣게 되는데, 그럴 때는 절대로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는군요. 바다뱀을 계속 무시하면 아무 일 없지만, 뒤를 돌아보다가 바다뱀과 눈을 마주치면 사람을 끌고 깊은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고 합니다.

 후회에 가득차서, 혹은 필사적으로 자신의 성(城)을 지키기 위해. 내가 무너졌던 순간을 지우기 위해. 우리는 모두 약합니다. 지켜야 할 것이라는 유혹에 넘어가기는 너무도 쉬우며...너무 쉬워서 생명이라는 가치에 대한 감각을 잠깐 잃고는 하지요. :] 잠깐 뒤를 돌아보면 금방 그렇게, 바다뱀의 새빨간 눈이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 Glass Key Award라면 1992년에 시작되어 그 첫번째 수상작이 헤닝 만켈의 [얼굴 없는 살인자들Mördare utan ansikte]였던 북유럽 범죄문학상이죠. 진짜로 유리 열쇠를 준다고 합니다. (저 상 이름의 출전은 대쉴 해미트.) 대상은 덴마크, 핀란드,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작가에 한합니다. 1993년 수상작은 한국에서도 유명한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Frøken Smillas fornemmelse for sne], 그리고 2002, 2003년에 아날두르 인드리다손이 두 번 연속으로 수상. 그 두 권 모두 한국어 번역본이 나와 있지요. 두 권 다 읽었고 썩 만족했습니다. 이쯤되면 지금 제 취향과 감성이라면 가장 믿을 수 있는 추천(혹은 선택) 기준이 될 수 있는 상이 아닌가 하는 기분이 듭니다! (즉, 아부 한 번 하자면, 한국 안에서라면 영림카디널의 Black Cat 시리즈의 셀렉션이 가장 믿음직하다고 해야겠습니다. :] )

(**) 이게 소위 '북유럽삘' 일지도 모르죠. 이제 겨우 약간 깨닫고 있는 것 같습니다. ^^;

(***) 유일하게 '왜' 를 붙일 수 없는 것은 사건이 가진 폭력성의 수위밖에 없지 않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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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븐 블랙 블랙 캣(Black Cat) 14
앤 클리브스 지음, 이주혜 옮김 / 영림카디널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작년 여름 글입니다)

-몇 주 전 한동안, 두꺼운 추리소설에 코를 박고 정신없이 읽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힌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저것 사들였지만 [잔학기]는 너무 얇았고, [벤슨 살인사건]은 좀 방향이 달랐고, [검은 집]은 가벼웠고 [I, Claudius]는...추리소설이 아니잖아요. 그리하여 또 Black Cat시리즈로 돌아왔고 소재로 보나 뭘로 보나 야한 센세이셔널리즘으로 가득할 듯한 이 책을 집어들었지요. [프렌즈]에 나오듯이 한 손을 주머니에 넣고 변태라고 선언...아니, 야한 센세이셔널리즘을 미치도록 좋아한다고 선언까지 했습니다만 이번에 저는 완전히 헛짚었습니다. 이 [레이븐 블랙]의 배경이 셰틀랜드Shetland만 아니었어도 대강 맞았을 지도 모르는데...다 읽고 나서 아득한 기분으로 셰틀랜드가 어딘지 찾아봤습니다.



(지도 출처 : Wikipedia)


...이래서야 발란더가 사는 스코네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납득. 실제로 한발짝만 더 가면 노르웨이잖아요!

 이 소설의 인물 설정은 정말 탁월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데, 특히 바이킹 왕자(...) 금발 거구 청년과 살해당한 소녀, 표현력 떨어지는 헨리 다거(...)쯤 되는 village idiot의 캐릭터는 비명이 나올 정도로 그럴듯합니다. 물론 가장 골때리는 것은 형사의 라스트 네임이지만요.

 이쯤에서 해명을 하자면, 이 책에서 제가 좋아하는 야한 센세이셔널리즘에 해당하는 것은 '미소녀의 시체가 눈밭에서 발견되었다' 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앞뒤에 붙을 가능성이 있는 문장인 '사람들이 비밀 없이 서로 모든 것을 알고 지내는 작은 마을에서' 지요. :] 제가 가장 몸서리치는 상황이면서 또 가장 좋아하는 소재들 중 하나입니다. 프랑스 까르띠니의 노래가사에서 말하듯이, '새장 속에 갇힌 새처럼/놀라움도, 비밀도 없이/그녀는 흘러가는 시간을 바라봅니다.' 소름끼칩니다. 그리고 좋아요.

 결국 이 이야기는 비밀 속의 비밀, 혹은 '우리는 모두 이방인이다' 같은 주제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타인의 마음의 수면을 흔들어 그 아래 무엇이 있는가를 들여다보는 행동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도 포함해서. 양파도 인간도 언젠가는 마지막이 보이겠지만 함부로 까려 들면 안 되지요. 네, 재미있는 소설이었어요. 황량한 배경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면이 헤닝 만켈의 발란더 시리즈랑 상당히 닮아 있네요.

Trivia
1. 업 헬리 아Up Helly Aa 축제라는 건 이런 느낌이로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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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븐 블랙]에도 등장했던, 배를 불태우는 광경인데 나름 장관이네요. 한번쯤 보고 싶기도...나머지 사진들도 Wikipedia에 있습니다.

2. 종종 언급되는 페어 섬 뜨개질 문양이라는 건 이렇게(링크 : Shetland Museum and Archives) 생겼습니다.
3. 작중에서 언급되는 이방인들의 행태 : A) 이 동네가 너무 싫어서 외투를 잔뜩 뒤집어쓴 채 본토로 돌아갈 날만 꿈꾼다. B) 페어 섬 문양으로 스웨터 떠 입고 이 동네 방언 배워 떠들고 모여서 민요 부른다. 원래 살던 사람들 입장에서 정녕 더 꼴보기 싫은 건 과연 어느 쪽일까 잠깐 의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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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8-12-18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여기에 막 뜬금없이 이런 댓글 달면 안되는것 같긴 한데말이죠,


eppie님 막 좋아요. ㅎㅎ

eppie 2008-12-19 10:53   좋아요 0 | URL
헉, 감사합니다. ㅜ.ㅠ
(저 페어 섬 관광객 험담이 마음에 드신 걸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어요. )

eppie 2008-12-19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나름 공감하는 바 있어서 댓글 달려고 왔더니만 그새 원래 댓글이 실종...어쨌든 원래 달려고 했던 내용을 달아 놓습니다.)
전 이 책에 상당히 열광했지만 재미 없거나 밋밋하다고 본 분들도 이해는 가요. 제가 평소 갖고 있는 뭐랄까...이를테면 '시골 혐오' 같은, 이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소재에 대한 매혹이 없으면 그렇게까지 재미있게는 볼 수 없는 내용이라고 생각해요. ^^;;; 저는 셔틀랜드 4부작의 나머지 책들도 볼 생각이 있었는데, [White Nights]는...안 나오는군요. 환율하락과 번역 중 과연 어느 쪽이 먼저일지...^_T
 
광골의 꿈 - 전2권 세트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 손안의책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역시 예전 글입니다. 재작년 이맘때 글이로군요)

-이것 참, 난감합니다. 전체적으로는 '그냥 그렇다' 는 평을 내려야 할 판인데, 또 재미가 없는 건 아니거든요. 쿄고쿠도 시리즈답게 도처에 맥거핀이 드글드글하고(실은 지금까지 한국에 나온 이 시리즈의 정확한 장르는 '맥거핀물', 좀 예의없는 말로 하자면 '낚시물'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민속학적 인용이나 괴담도 다수 등장하고, 썩 좋습니다. 앞의 두 편에 비해 스케일도 크고 추리소설적으로 깔끔하다고 생각되지만 또 그만큼 확 당기는 매력이 줄어들었어요. 하지만 여성 캐릭터의 묘사는 아주 좋습니다. 지금 시간이 좀 지나서 어느 쪽을 먼저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비슷한 때 읽었던 아베 코보의 [모래의 여자] 속의 여성 캐릭터와 비교가 되어 강렬한 인상이 남았어요.

 문제는 추리소설로서 깔끔해진 덕분에 이야기가 또 예측 가능한 범위 내로 깊이 들어와 버렸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이번에도 중반까지 가기 전에 사건의 진상은 대강 '...일 수밖에 없지 않나' 하는 식으로 깨달아 버렸고요. 하지만 이것은 저 개인의 문제이니 큰 흠이 되지는 않을 겁니다.

 저는 쿄고쿠도 시리즈라면 얼마든지 '반칙을 해도 된다' 고 허용하고 있어요. 추리소설의 역사는 룰과의 투쟁의 역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는 추리소설을 읽을 때 룰을 얼마나 지키느냐에 꽤 큰 비중을 둡니다. 하지만 쿄고쿠도 시리즈라면 괜찮아요. 얼마든지 밝히지 않은 정보가 있어도 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게, 그렇게까지 효과적이지가 못했어요. 반칙은 있었지만 그 감미로운 매력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어째서일까...

 스케일이 너무 커졌던 탓도, 그래서 특유의 쌔벼파는 미학이 사라진 탓도 있겠지요. 하지만 결정적으로는, 지금까지 투덜거려 오긴 했지만 쿄고쿠도가 장광설을 늘어놓는 부분이 확 줄어들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네, 저 지금까지 불평했던 걸 후회하고 있어요. 아무리 말이 너무 많아도 이 시리즈를 지탱하는 건 교고쿠도입니다. 잘못했어요. 앞으로는 아무리 말이 많아도 불평하지 않겠습니다. T_T;

 그 밖에...제가 사랑하는 에노 씨는 이번에 너무 미모가 강조돼서 좀 부담스러웠습니다. 그야 예쁘겠지만...에노키즈 레이지로라는 이름을 가진 그런 남자가 예쁘지도 않으면 어쩌란 말이냐...

표지 이미지는 지금까지 번역돼 나온 이 사람 책 중 어쩌면 가장 성의없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그래도 전 저 표지가 주는 인상을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세 권 중 계속해서 멍하니 바라보게 되는 건 이 책 뿐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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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8-12-18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부메의 여름]도 재미있었는데 [망량의 상자]는 더 재미있더군요. 교고쿠도가 말하는 부분은 저도 넋을 놓고 읽는 것 같아요. 그가 하는 말들에 곧 빠져들고 말지요.

[광골의 꿈]은 아직 비닐도 안 벗겼는데 벌써부터 막 기대가 되요. 그런데 장광설을 늘어놓는 부분이 확 줄었다니. 어째 좀 슬퍼요 ㅠㅠ

eppie 2008-12-19 10:57   좋아요 0 | URL
개인적으로는 [망량의 상자]>>>>>[광골의 꿈], [우부메의 여름]
[백기도연대]는...아예 장르가 달라서 논외. ㅜ.ㅠ [백기도연대]의 쿄코쿠도는 좀 다른 사람 같기도 합니다. 근데 좋아요. ^^;

저 소설들 중에 유일하게 한 번만 읽었던 것이 [광골의 꿈]인데...저도 괜히 한 번 더 봐야겠어요.

아, 전에 친구가 [망량의 상자]에 대해 못된 농담을 한 적이 있는데, 글쎄 "만약에 그 시대에 테트리스가 있었더라면 그는 죽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라더군요. 너무해...

비로그인 2008-12-31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노키즈 레이지로라는 이름을 가진 그런 남자가 예쁘지도 않으면 어쩌란 말이냐..
-> 므흐흐
교코쿠 나츠히코, 아무래도 한 번 더 시도해봐야 할까 싶네요. '망량의 상자' 읽으면서 상당히 악취미라 느꼈는데...

eppie 2009-01-09 13:50   좋아요 0 | URL
새해부터 앓느라고 덧글이 대폭 늦어졌네요. 들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ㅠ_ㅠ
어떤 의미로나 악취미인 것은 분명해요, 하지만 또 발을 들여놓으면 빠져나가지 못하는 사람들도 꽤 있는 모양이에요, 저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