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라이히 음반을 듣다 보면 숨이 가빠지는데 오늘도 《Music for 18 Musicians》을 듣다가 재즈에서 친근하게 느껴지는 marimba와 xylophone이 이 음반에서는 긴장감을 한껏 조성한다. 왜 이런 걸까 찾아보게 됐다.


 

˝미니멀리즘이란 단일한 음에 관한 것이기보다는 연결의 사슬에 관한 것이다. 쇤베르크는 12음렬을 발명했다. 안톤 베베른은 그 패턴 속에 있는 비밀스러운 고요함을 찾아냈다. 존 케이지와 모턴 펠드먼은 음렬을 표기하고 고요함에 방점을 찍었다. 라 몬테 영은 음렬의 속도를 늦추고 최면술같이 만들었다. 테리 라일리는 롱톤을 조성주의 쪽으로 이끌었다. 스티브 라이히는 그 과정을 체계화하고 장(field)의 깊이를 부여했다. 필립 글래스는 거기에 동력화된 모멘텀을 주었다.”
- 알렉스 로스, 나머지는 소음이다, 21세기북스, 2010

“스티브 라이히가 리듬 변화에 집중한 반면, 필립 글래스는 점진적 선율 변화를 중시한다. 그는 쉽게 기억할 수 있는 온음계적이며 간결한 짧은 선율 조각을 조금씩 바꾸어 반복하는 방식으로 미니멀 음악에 접근했다.”
- 임지선, 영화로 보는 현대음악, 수문당, 2014

 

 

 

 


※ 모든 인용은 나무위키 참조 : https://namu.wiki/w/%ED%95%84%EB%A6%BD%20%EA%B8%80%EB%9E%98%EC%8A%A4


임지선 씨는 스티브 라이히와 필립 글래스 비교를 가장 간명하게 표현했다.
스티브 라이히 음악에서 내가 자주 받는 인상은 리듬 변화가 맥놀이 현상(소리가 중첩되어 주기적으로 강해졌다가 약해지는 현상), 페이즈 프로세스(phase process, 여러 소리들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반복하거나 가속을 시켜 엇갈리게 하는 효과)를 뛰어넘어 초과 상태가 된다는 거다. 그래서 스티브 라이히 음악은 경계를 뚫고 나가려는 포지티브로 느껴지는 반면 클래식의 자장을 아우르는 필립 글래스 음악은 소용돌이처럼 안으로 파고드는 네거티브로 느껴진다. 두 사람 다 점진적인 반복의 구조를 추구하는 스타일이지만 이게 내가 두 사람에게서 느끼는 가장 큰 차이다. 이러한 특징은 스티브 라이히가 필립 글래스에 대해 구식 관습을 고수하는 걸로 비판하고, 필립 글래스가 스티브 라이히에 대해 청중을 간과한 자기도취적 음악이라고 비판하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몇몇 나의 동료들은 구식(Old-fashioned) 작품들을 쓰는 데 만족한다. 그리고 그런 작품이 필요한 곳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작곡가가 아니다. 내 최고의 작품들은 언제나 관습에 의문을 던진다.” 즉, 필립 글래스는 낡아빠진 음악에 투항한 것에 불과하다는 조소.
- 스티브 라이히

“이런 질문이 있다. ‘숲에서 나무가 쓰러질 때 그 소리를 들은 사람이 없다면 그 나무는 소리를 낸 것인가?‘ 나는 물론 아니라고 생각한다. 음악에는 청중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스티브 라이히의 음악은 좀처럼 연주되지 않는다. 그에 반해, 필립 글래스의 음악은 세계 곳곳에서 자주 연주된다. 즉, 필립 글래스는 ‘관객 없는 음악‘은 썩어 문드러진 음악에 불과하다고 반박한 것.
- 필립 글래스

 

 

 

미니멀리즘 음악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는 스티브 라이히와 필립 글래스의 적대는 일견 재밌다. 줄리아드 음대 동문이기도 하면서 철학을 공부한 학업 경력이나 택시 운전, 같이 이삿짐센터를 운영할 정도로 가난한 예술인이었던 점. 심지어 같은 여자친구를 사귈 정도로 악연의 인연; 필립 글래스가 미니멀리즘에서 맥시멀리즘(Maximalism)으로 확대된 건 스티브 라이히와 라이벌 관계로 미니멀리즘 음악으로 묶이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것도 있지 않았을까.

어쨌든 나는 11월 LG 아트에서 크로노스 콰르텟이 연주할 스티브 라이히 Different train을 기다리고 있다.
http://m.lgart.com/Home/Azine/AzineView.aspx?Id=56071


스티브 라이히와 필립 글래스에 대해 떠들었지만 오늘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네덜란드 음악가 Joep Beving(윱 베빙).
Olafur Arnalds(올라퍼 아르날즈)와 비슷한 느낌인데 두 사람 다 네오 클래시컬로 분류할 수 있다. 두 사람은 영화음악에서도 돋보이는데 아르날즈가 메탈, 일렉트로닉 등을 가미하는 실험성이 강한 스타일이라면 베빙은 좀 더 대중적인 클래시컬함을 보여준다. 스티브 라이히와 필립 글래스처럼 서로의 음악을 디스 하진 않을 거 같다.

 

Joep Beving - Solipsism - Midwayer - Album launch - Amsterdam - March 2015

https://youtu.be/2ls_LTGBT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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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알라딘 굿즈 ‘자기만의 방‘ 스테인리스 컵 입수 기념. 혹시 아십니까. 스테인리스 컵으로 맥주를 마시면 유리잔보다 더 시원하고 오래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이것은 탁월한 선택~
그러고 보니 10월엔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을 읽어야겠군. 아, 나의 무한한 즉흥성이여. 내 독서 전개는 대개 이렇다;;

˝과학과 종교에 대한 논쟁들에서 쟁점이 되는 것은 표면상으로는, 특정한 종교적 믿음과 과학 지식의 특정한 측면이 지적으로 양립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이다. 내세에 대한 믿음은 현대 뇌과학의 연구 결과들과 충돌하는가? 성서에 대한 믿음은 인간과 침팬지가 공통조상에서 진화했다는 믿음과 양립할 수 없는가? 기적에 대한 믿음은 물리학이 밝혀낸 엄밀하게 법칙의 지배를 받는 세계와 충돌하는가? 아니면 반대로, 자유의지와 신의 행동에 대한 믿음이 양자역학의 이론들에 의해 뒷받침되고 입증될 수 있는가? 이 장의 제목ㅡ 과학과 종교의 논쟁에서 실제로 쟁점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ㅡ이기도 한 질문의 한 가지 대답은 이러한 지적 양립 가능성의 문제들이다.˝
ㅡ토머스 딕슨 《과학과 종교》, 1. ‘과학과 종교의 논쟁에서 실제로 쟁점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 중


 

토마스 딕슨의 실증적인(?) 접근과 발화 방식이 맘에 든다. 이 편도 저 편도 아니요 하면서 애매모호하면서도 편파적인 책이 많아서다. 이 책을 다 읽으면 좀 더 사나울(?) ‘ ‘악마의 사도‘, ‘다윈의 로트와일러‘라 불리는 리처드 도킨스  《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를 읽을 것이다. 이 일련의 행보는 한국의 한 장관 후보자가 지구 나이 6천 년이란 창조과학에 빠져 있는 걸 목격한 충격 때문일 수도 있다.


간밤에 한병철  《선불교의 철학》을 다 읽었다. 역자도 그런 경험을 말했지만, 한병철 저자 책의 장점은 앉은 자리에서 다 읽게 만드는 책의 형식이다. 이 책도 호불호가 극명할 수 있다. 한병철 저자를 서양 철학에 경도되어 그걸 한국에 퍼트리는 책팔이쯤으로 보는 것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한계라고 말할 순 있겠지만 잘못이라고 하긴 어렵다. 앎에 대한 우리의 방편은 각자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평가의 저자인지라 선불교에 대해 어떤 말을 하는지 더 궁금했다. 저자는 짧은 분량이지만 이 책에서 플라톤, 하이데거, 에크하르트, 니체, 라이프니츠, 헤겔, 부버 등을 거론하며 서양 인식의 틀과 한계를 선불교의 핵심 개념들(무, 공, 무아, 무주, 입적, 자비)과 비교해 잘 짚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동양인이고 서양 철학을 공부했기에 이런 책이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어떤 이에겐 어렵거나 가볍거나 할 테지만 최소한 내겐 울림이 큰 책이다. 선불교 책은 내게 언제나 그랬다. 머릿속을 헹궈준다.


 

'삶'과 '죽음'을 분리하기 이전에는 사람들이 전체적으로 [온전하게] 살고, 전체적으로 죽습니다. 판단 작용에도 들어 있는 구분에서 걱정이 생깁니다. 사람들은 '삶'을 '죽음'과 전혀 다른 것으로 만들기 위해 삶의 너머를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것[죽음과 삶의 관계]은 겨울과 봄의 관계와 같습니다. 우리는 겨울이 봄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봄이 여름이 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런 정신 태도는 독특한 시간 경험과 상관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현재에 전체적으로 머무릅니다. 이렇게 충만하면서 태연한 현재는 이전과 이후로 흩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런 현재는 자기 너머를 보지 않고, 오히려 자기 속에서 머무릅니다[쉽니다]. 이렇게 태연한 시간은 걱정의 시간을 뒤로합니다. 더 나아가 멈춰 선 현재는 다른 시간으로부터 벗어나거나 솟아오른 특수한 시점인 '순간'과 다릅니다. 그런 현재는 익숙한[일상적] 시간입니다. 거기에는 강조가 전혀 없습니다.

ㅡ 한병철 《선불교의 철학》, 죽음 중


 

《콜럼바인》 읽을 생각하니 맘은 무겁지만 반갑고,  파스칼 키냐르 《부테스》를 제쳐두고 왜《롤랑 바르트, 마지막 강의》를 지금 샀는가 음미하며 읽어나갈 시간이 기다린다. 도서관에서 이 무거운 걸 안 빌려와서 일단 좋고ㅎ 날이 서늘해서 아무래도 바닷속에 뛰어드는 부테스가 꺼려졌는갑다; 독서쟁이들도 계절 많이 타는 거 아는 사람은 알지ㅎ 책의 톤도 표지도 어두컴컴해지고 있다ㅎㅎ
《파리의 우울》도 보자마자 읽고 싶었는데 쬐그만 게 내용이 엄청 꽉꽉 차 있어서 머리 배탈 날까 봐 먹을 순서를 분주히 짜고 있다. 내 독서 산책은 늘 이렇게 우연적이고 우스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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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09-21 18: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금 있으면 A님은 굿즈를 보관할 케이스를 필요로 하실 것입니다.
아마도.
A님, 즐거운 저녁시간 보내세요.^^

AgalmA 2017-09-21 23:02   좋아요 1 | URL
어떤 분은 아예 장식장을 따로 마련해 두셨던데 저는 직접 쓰는 걸 더 선호해서ㅎ; 스텐컵 스크레치 날까봐 가장 티 안나는 ‘자기만의 방‘ 샀는데 생각보다 예뻐서 앨리스 스텐컵도....하면서 또 탐을 내고 있어요ㅎ;;;

레삭매냐 2017-09-21 18: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옷 오늘 저도 콜럼바인 사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더 빈갑네요.

AgalmA 2017-09-22 03:04   좋아요 1 | URL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 나오는 첫 장부터 몰입도가! 눈물날 뻔 했어요; 하루키가 쓴 <언더 그라운드>에서 바란 게 바로 이건데!

북다이제스터 2017-09-21 19: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고 싶은 책이 기다린다는 건 정말 행복한 거 같습니다. ^^
특정 행복이 영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저도 요즘 감사한 마음으로 책을 읽습니다. ㅎㅎ

AgalmA 2017-09-21 23:49   좋아요 0 | URL
읽고 싶은 책이 많이 기다리고 있음 복이 터진 걸까요-ㅅ-; 올해가 얼마 남지 않아 마무리하고 싶은 책이 산더미인데 이러고 있네요ㅜㅜ 읽고 싶은 책이 많아 감사해야겠죠.네네... 흑흑. 사랑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게 더 의미있으니까;_;

단발머리 2017-09-21 19: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키햐~~~ 세상에 부러울게 없는 완벽한 구성이네요~

AgalmA 2017-09-21 23:48   좋아요 0 | URL
언제나 새 책 만나면 그런 기분이죠^^ 며칠 지나면 어서 날 읽어라! 애증과 불효령의 소리없는 아우성ㅎ;;;

겨울호랑이 2017-09-22 05: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느 때처럼 다양한 분야의 책으로 계획을 세우셨네요^^: 케인즈의 말처럼 ‘장기에는 모두 죽는다‘고 하니 단기 계획을 세우고 시대 흐름에따라 책을 읽는 AgalmA님의 독서법이 멋지네요. AgalmA님은 케인즈 학파? ㅋㅋ

AgalmA 2017-09-22 06:44   좋아요 1 | URL
^^ 10월 계획으로 보려고 한 책들인데 벌써 읽어나가고 있네요. <콜럼바인>은 너무 궁금했는데, 한참을 읽어도 아직 3분의2가 남았고ㅎ;; 비슷한 두께와 방대한 정보들로 괴롭히던 <신의 입자>에 비하면 그나마 낫지만 이 사건도 워낙 복잡하다보니 리뷰 쓰기 만만찮아 보입니다; 여러가지로 세월호와 참 겹치는 게 많네요.

겨울호랑이님은 언제나 ˝꿈보다 해몽˝이 더 좋은 해석을 해주시네요ㅎㄱㅎ 저 두서없는 나열을 보고 ‘시대의 흐름‘까지 붙여주시고ㅎ;
케인즈 반파라도 됐으면 주식 반부자는 됐겠죠ㅋㅎ)) 케인즈 멋져서 <고용, 이자 및 화폐이론> 펼쳤다가 조용히 닫았어요ㅎㅎ;;;

겨울호랑이 2017-09-22 06:57   좋아요 1 | URL
^^: 케인즈의 「고용, 이자 및 화폐이론」도 좋지만, 아마도 케인즈는 그의 예술철학이 경제철학보다 높이 평가받기를 원했을 것 같아요.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보다 「도덕감정론」을 아낀 것처럼요. 그런 면에서도 예술감성이 풍부한 AgalmA님은 케인즈학파, 저는 합리적기대학파? ㅋ

AgalmA 2017-09-22 07:05   좋아요 1 | URL
<도덕감정론> 여기저기 하도 인용이 많이 되어서 읽어보고 싶더라고요. 오, 케인즈에 대해선 거기까진 몰랐는데 참고할께요^^!
합리적기대학파는 뭐에요ㅋㅋ 잘못보고 합리적기상학파로 봤네ㅋ;;;

겨울호랑이 2017-09-22 07: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제가 알기론 케인즈, 버지니아 울프, 버트런트 러셀, 비트겐슈타인, 바이런 등이 그란체스터 그룹을 통해 예술, 철학과 관련한 교류를 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케인즈는 자신이 예술가라 생각했다는 ㅋ. ‘합리적기대학파‘는 케인즈 사상을 계승한 ‘신케인즈 학파‘와는 상대되는 시카고 학파를 계승한 학파에요. 모든 경제 주체가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가정하에 모든 정책의 무력성을 강조하는 학파입니다. ‘단기‘보다는 ‘장기‘를 중시한다는 면에서 저는 합리적 기대(?)학파라고 써봤네요. 물론 그들은 저를 받아들이지 않겠지만요.ㅋ 꺼져! 겨울호랑이.ㅋ

AgalmA 2017-09-22 07:24   좋아요 1 | URL
아, 그들이 교류한 건 알았는데 케인즈가 예술가까지 노린 건 몰랐네요ㅎㅎ!
오, ‘합리적기대학파‘에 그런 뜻이~ 겨울호랑이님한테 아침 5분 특강듣는 기분! 좋아요!

겨울호랑이 2017-09-22 07:27   좋아요 1 | URL
^^: 특강이라고 하긴 그렇고, 저도 AgalmA님과 아침에 커피 한 잔의 여유 좋았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ㅋ AgalmA님 행복한 아침을 ‘김어준의 뉴스공장‘과 함께 여세요!^^:

다락방 2017-09-22 0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컵은 많으니까 괜찮아! 하고 넘겼었는데... 이렇게 보니까....엄청 예쁘네요? 음..... 이러면 또 얘기가 달라지죠. 음.... (해당도서 알아보러 가겠습니다.)

AgalmA 2017-09-22 09:49   좋아요 0 | URL
싼티 안 나고 적당히 무게감도 있으면서 안 깨지는 게 맘에 들어요. 오자마자 발로 차서 엄므낙@0@했는데 멀쩡해서 넘 좋아용ㅎ
저는 또 지를 거 같아 내적 분열상태요- _)))))) 황금색 앨리스 토끼냐 블랙파워 셜록이냐 하며;;;; 아아....

독서괭 2017-09-22 19: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AgalmA님 덕에 몰랐던 스텐리스머그 굿즈를 알게 되어 지르고야 말았습니다...OTL

AgalmA 2017-09-22 20:16   좋아요 0 | URL
죄송합니다ㅜㅜ;;
 
[세트] 할란 엘리슨 걸작선 세트 - 전3권 할란 엘리슨 걸작선
할란 엘리슨 지음, 신해경.이수현 옮김 / 아작 / 2017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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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만난 최고의 책은 할란 엘리슨 걸작선. 3권이나 되는데 대항마가 있을 리가ㅎ 혹 도선생 3권 짜리가...하반기는 부지런히 안 읽어야 하나; 암튼, 뭐라고! 이걸 50년 전에! 40년 전에! 30년 전에! 20년 전에 썼다고! 매 권마다 감탄이. ※ 내가 최고로 점수 주는 건 치밀한 상상력~너나 좀 치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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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모임 때 자리에서 일어나 제가 딜런 클레볼드의 어머니예요하며 나를 소개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모릅니다.” 그녀는 훗날 이렇게 말했다. “딜런은 내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자녀들을 죽였을 수도 있잖아요.”(콜럼바인》, p529)

 

1999420일에 일어난 콜럼바인 총기 난사 사건의 가해자 중 하나인 딜런 클레볼드 어머니는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책을 썼다.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2003년 작 케빈에 대하여와 린 램지 감독, 틸다 스윈튼 주연의 영화 케빈에 대하여》가 떠오른다. 틸다 스윈튼이 아들 케빈이 죽인 아이 부모의 분풀이에 아무 저항하지 않고 받아내던 게 충격적이기도 했다.

세기말 징후 같은 이 섬뜩한 사건 이후 우리는 이 실타래를 몹시 풀고 싶어했다. 마이클 무어 볼링 포 콜럼바인(Bowling for Columbine, 2002, 다큐, 75회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 구스 반 산트 엘리펀트(Elephant, 2003, 극영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감독상 수상)도 있었다. 아직도 우리가 눈여겨보지 못한 것들이 무궁무진하다는 듯이 최근 2016년에도 피해자였던 여학생 레이첼 조이 스콧을 주인공으로 한 브라이언 보프 아임 낫 어쉐임(I'm Not Ashamed, 2016, 극 영화)이 개봉했다.

 

 

 

1995320일 일어난 옴진리교 지하철 사린 사건 피해자를 하루키가 인터뷰해서 쓴 언더 그라운드》생각이 스쳐간. 그는 19961월 초부터 12월 말까지 일 년여 동안 인터뷰와 취재 작업을 했고, 신문이나 잡지 지상에 이름이 밝혀진 700여 명의 피해자 리스트를 작성한 후 신원이 파악된 140여 명에게 연락을 취해 인터뷰를 요청하는 것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내가 이 책을 읽었던 건 사건의 심각성보다 하루키 팬이었던 게 컸다. 그가 다룰 정도면 분명 남다른 게 있을 거라 싶었다. 아주 오래전에 읽어 내용은 가물가물하다. 그러나 한 사람 한 사람 인터뷰가 끝날 때마다 전해오는 저마다의 슬픔은 아련히 남아 있다. 옴진리교 사건 이후는 정부의 신속한 조치와 여러 인물의 적극적인 대응, 하루키 같은 작가가 뛰어들어 심도 깊은 기록을 남길 정도로 일사불란하게 이뤄졌다.

데이브 컬런 콜럼바인은 취재부터 집필까지 10년이 걸려 2009년에 이 책을 냈고, 한국엔 사건 이후 18년 만에 도착했다. 미국엔 학교 총기 난사 사건이 여전하다. 문제아들이 일으키는 단순 사고로 볼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들은 구조적인 걸 바꿀 의지가 없다. 그러는 사이 문제의 경향은 사회 전반에 더 넓게 퍼져 나갔다.

세월호는 얼마나 걸릴까. 과연 낱낱이 드러나게 될까. 우리는 1980년 5월 21일 광주에서 누가 최초 발포 명령을 내렸는지에 대해서도 37년째 씨름 중이다. 내년이면 38년째가 될 테고, 내후년이면 39년째가 될 테고...

콜럼바인책을 본 순간부터 나는 어딘가 붙잡힌 기분이다.

 

 

콜럼바인리뷰대회는 내가 이 책을 꼼꼼히 읽으며 미처 하지 못한 많은 생각할 기회가 될 거 같다. 당신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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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09-17 20: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는 아직 읽지는 않았지만
왠지 케빈에 대하여와 겹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 영화는 뭔가 모를 약간의 섬찟함과 자녀를 키우는 것에 대한
무기력함...? 뭐 그런 걸 느끼게 해 줬던 영화로 기억합니다.
그러니 내 아이 사랑으로 키운다는 건 얼마나 교과서적이고
동화 같은 이야기일까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가끔은 가족도 섬찟할 때가 있는데 말입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 전 거의 안 믿습니다.
분명 부모도 영이 있어서 어떤 자식은 잘 통하는데
어떤 자식은 정말 안 맞아 고생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AgalmA 2017-09-17 20:22   좋아요 1 | URL
아이를 원했던 것도 아니었는데 그 아이가 나랑 코드가 안 맞는다면 평생 고통스럽겠죠. 케빈의 엄마는 그랬던 거 같아요. 그런데 케빈은 관심을 받으려고 더더 악행을 저지르기도 했단 말이죠. 그 관계가 접점을 찾지 못하고 계속 일그러지기만 하던 게 참 맘 아팠죠.
<케빈에 대하여>가 가족간 관계, 사람 사이의 이해 불가능 그런 걸 제시했다면 <콜롬바인>은 사회 구조망으로 더 넓혀서 보게 만드는 것 같아요. 간과하는 것들이 총체적으로 모여 결국은 모두에게 상처가 되는 광경을.

나와같다면 2017-09-18 0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근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콜럼바인》을 읽으면서 내가 가졌던 생각의 뒤틀림도 경험하고, 많을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예요..

책장을 넘기는 것이 고통스러웠는데..
같이 읽고 있는 AgalmA님이 있어서 외롭지 않습니다..

AgalmA 2017-09-18 10:44   좋아요 1 | URL
먼저 읽고 계신 거 봤지요. 괴로우실 거라 싶었어요.
평생 자기 생각을 돌아보고 돌아봐도 끝이 없지요...

겨울호랑이 2017-09-18 20: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국에서 ‘총기 소유의 합법화‘문제는 그들의 역사적인 문제와 연계시키는 논리가 강하기에 총기를 금지하기가 어려워 보입니다. 그토록 많은 문제가 총기 소지에서 발생하는데 그 많은 희생을 치르면서도 지켜야할 아메리카의 가치가 무엇인지 그들에게 물어보고 싶네요. 영어로

AgalmA 2017-09-18 20:57   좋아요 1 | URL
개척시대부터 역사가 깊죠. 무기 파는 시장도 워낙 탄탄하니 한국에서 친일파 솎아내기 어려운 것처럼 그렇지 않겠나요.
겨울호랑이님이 영어로 물어보신다니 제가 참 안심이 됩니다ㅎㅎ

겨울호랑이 2017-09-18 21:10   좋아요 1 | URL
^^: 우리에겐 구글이 있잖아요? ㅋ

AgalmA 2017-09-18 21:15   좋아요 0 | URL
기술 좀 빨리 개발돼서 머리에 칩 붙이고 언어 소통 만사 오케이 좀 되고 싶네요ㅎ 저 같은 사람 땜에 인공지능 시장을 더 활발하게 만드는 지도ㅋ 결국 나 죽기 전에 그건 안될 거 같은데ㅎ;;
오늘도 그리스어 사전 열심히 찾다가 잘 안 되어서 또 한 번 좌절감ㅜ

레삭매냐 2017-09-22 09: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콜럼바인 저자가 책에서는 집필에 9년이 걸렸다고 기술하고 있는데, 광고에는 십년으로 바뀌었네요. 아무래도 9년보다는 10년의 무게가 더 느껴져서 일까요?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어제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대단한 기록이네요. 우리의 세월호 사건에 대해서도 누군가 이런 기록 을 남겨줬으면...

AgalmA 2017-09-22 09:44   좋아요 0 | URL
9년 몇 개월 해서 사사오입한 거 아닐까요ㅎ; 저도 어제 펼치기 시작해서 손을 뗄 수가 없더라고요... 일을 해야 하는데 나참;
저도 읽으면서 세월호를 이렇게 기록하는 사람이 있어야 된다 싶었어요. 이 파편들을 정교하게 짜야 돼요. 토막들로 소설로 쓸 게 아니라. 이 책 다 읽으면 그간 섣불리 보지 못하겠던 세월호 관련 탐사책들을 읽어 볼 생각입니다. 그러고 싶어서 이 책을 더 보고 싶었죠.
 
악스트 Axt 2017.9.10 - no.014 악스트 Axt
악스트 편집부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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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9.3~9.5매 원고를 쓴다는 황정은. 롤랑 바르트의 《마지막 강의》를 두고 바르트 사랑스럽지 않냐 말하는 하이쿠와도 닮은 당신. ˝소설가가 소설로 하는 일은 세계감의 확장 정도˝ 인터뷰 좋았다. 방송댄스
추는 황 작가 상상 안 됨ㅎ; 우리는 ˝낙담˝에서 언제쯤 자유로울까. 사은품도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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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7-09-13 18: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매일 또는 매주 규칙적으로 일정한 분량의 글을 쓴다는 사람들이 존경스러워요.
재능과 노력의 결합 결과겠지요?

AgalmA 2017-09-15 19:33   좋아요 1 | URL
5년 지나니 직업병 와서 방송댄스까지 출 정도로 운동에도 신경써야 했다고 하니 결국 재능도 두루두루 노력이 필요하죠^^ 글은 참 1인 중노동ㅎ;;

[그장소] 2017-11-02 20: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이쿠 에 물소리텀벙˝ ㅎㅎㅎ 느낌 좋았어요.

AgalmA 2017-11-02 20:17   좋아요 1 | URL
그래서 제가 롤랑 바르트 마지막 강의 바로 질렀잖습니까ㅎ; 근데 언제 읽냐ㅜ;

[그장소] 2017-11-02 20:19   좋아요 1 | URL
ㅋㅋㅋ인터뷰를 읽으면서 옮겨놓고 싶은곳이 많기는 또 첨이라는 ..^^ 롤랑 바르트 나올때 바로 알아모셨다는 ..누군갈 떠올리면서..아니나다를까~~^^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