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라이히 음반을 듣다 보면 숨이 가빠지는데 오늘도 《Music for 18 Musicians》을 듣다가 재즈에서 친근하게 느껴지는 marimba와 xylophone이 이 음반에서는 긴장감을 한껏 조성한다. 왜 이런 걸까 찾아보게 됐다.


 

˝미니멀리즘이란 단일한 음에 관한 것이기보다는 연결의 사슬에 관한 것이다. 쇤베르크는 12음렬을 발명했다. 안톤 베베른은 그 패턴 속에 있는 비밀스러운 고요함을 찾아냈다. 존 케이지와 모턴 펠드먼은 음렬을 표기하고 고요함에 방점을 찍었다. 라 몬테 영은 음렬의 속도를 늦추고 최면술같이 만들었다. 테리 라일리는 롱톤을 조성주의 쪽으로 이끌었다. 스티브 라이히는 그 과정을 체계화하고 장(field)의 깊이를 부여했다. 필립 글래스는 거기에 동력화된 모멘텀을 주었다.”
- 알렉스 로스, 나머지는 소음이다, 21세기북스, 2010

“스티브 라이히가 리듬 변화에 집중한 반면, 필립 글래스는 점진적 선율 변화를 중시한다. 그는 쉽게 기억할 수 있는 온음계적이며 간결한 짧은 선율 조각을 조금씩 바꾸어 반복하는 방식으로 미니멀 음악에 접근했다.”
- 임지선, 영화로 보는 현대음악, 수문당, 2014

 

 

 

 


※ 모든 인용은 나무위키 참조 : https://namu.wiki/w/%ED%95%84%EB%A6%BD%20%EA%B8%80%EB%9E%98%EC%8A%A4


임지선 씨는 스티브 라이히와 필립 글래스 비교를 가장 간명하게 표현했다.
스티브 라이히 음악에서 내가 자주 받는 인상은 리듬 변화가 맥놀이 현상(소리가 중첩되어 주기적으로 강해졌다가 약해지는 현상), 페이즈 프로세스(phase process, 여러 소리들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반복하거나 가속을 시켜 엇갈리게 하는 효과)를 뛰어넘어 초과 상태가 된다는 거다. 그래서 스티브 라이히 음악은 경계를 뚫고 나가려는 포지티브로 느껴지는 반면 클래식의 자장을 아우르는 필립 글래스 음악은 소용돌이처럼 안으로 파고드는 네거티브로 느껴진다. 두 사람 다 점진적인 반복의 구조를 추구하는 스타일이지만 이게 내가 두 사람에게서 느끼는 가장 큰 차이다. 이러한 특징은 스티브 라이히가 필립 글래스에 대해 구식 관습을 고수하는 걸로 비판하고, 필립 글래스가 스티브 라이히에 대해 청중을 간과한 자기도취적 음악이라고 비판하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몇몇 나의 동료들은 구식(Old-fashioned) 작품들을 쓰는 데 만족한다. 그리고 그런 작품이 필요한 곳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작곡가가 아니다. 내 최고의 작품들은 언제나 관습에 의문을 던진다.” 즉, 필립 글래스는 낡아빠진 음악에 투항한 것에 불과하다는 조소.
- 스티브 라이히

“이런 질문이 있다. ‘숲에서 나무가 쓰러질 때 그 소리를 들은 사람이 없다면 그 나무는 소리를 낸 것인가?‘ 나는 물론 아니라고 생각한다. 음악에는 청중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스티브 라이히의 음악은 좀처럼 연주되지 않는다. 그에 반해, 필립 글래스의 음악은 세계 곳곳에서 자주 연주된다. 즉, 필립 글래스는 ‘관객 없는 음악‘은 썩어 문드러진 음악에 불과하다고 반박한 것.
- 필립 글래스

 

 

 

미니멀리즘 음악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는 스티브 라이히와 필립 글래스의 적대는 일견 재밌다. 줄리아드 음대 동문이기도 하면서 철학을 공부한 학업 경력이나 택시 운전, 같이 이삿짐센터를 운영할 정도로 가난한 예술인이었던 점. 심지어 같은 여자친구를 사귈 정도로 악연의 인연; 필립 글래스가 미니멀리즘에서 맥시멀리즘(Maximalism)으로 확대된 건 스티브 라이히와 라이벌 관계로 미니멀리즘 음악으로 묶이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것도 있지 않았을까.

어쨌든 나는 11월 LG 아트에서 크로노스 콰르텟이 연주할 스티브 라이히 Different train을 기다리고 있다.
http://m.lgart.com/Home/Azine/AzineView.aspx?Id=56071


스티브 라이히와 필립 글래스에 대해 떠들었지만 오늘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네덜란드 음악가 Joep Beving(윱 베빙).
Olafur Arnalds(올라퍼 아르날즈)와 비슷한 느낌인데 두 사람 다 네오 클래시컬로 분류할 수 있다. 두 사람은 영화음악에서도 돋보이는데 아르날즈가 메탈, 일렉트로닉 등을 가미하는 실험성이 강한 스타일이라면 베빙은 좀 더 대중적인 클래시컬함을 보여준다. 스티브 라이히와 필립 글래스처럼 서로의 음악을 디스 하진 않을 거 같다.

 

Joep Beving - Solipsism - Midwayer - Album launch - Amsterdam - March 2015

https://youtu.be/2ls_LTGBT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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