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모임 때 자리에서 일어나 제가 딜런 클레볼드의 어머니예요하며 나를 소개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모릅니다.” 그녀는 훗날 이렇게 말했다. “딜런은 내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자녀들을 죽였을 수도 있잖아요.”(콜럼바인》, p529)

 

1999420일에 일어난 콜럼바인 총기 난사 사건의 가해자 중 하나인 딜런 클레볼드 어머니는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책을 썼다.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2003년 작 케빈에 대하여와 린 램지 감독, 틸다 스윈튼 주연의 영화 케빈에 대하여》가 떠오른다. 틸다 스윈튼이 아들 케빈이 죽인 아이 부모의 분풀이에 아무 저항하지 않고 받아내던 게 충격적이기도 했다.

세기말 징후 같은 이 섬뜩한 사건 이후 우리는 이 실타래를 몹시 풀고 싶어했다. 마이클 무어 볼링 포 콜럼바인(Bowling for Columbine, 2002, 다큐, 75회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 구스 반 산트 엘리펀트(Elephant, 2003, 극영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감독상 수상)도 있었다. 아직도 우리가 눈여겨보지 못한 것들이 무궁무진하다는 듯이 최근 2016년에도 피해자였던 여학생 레이첼 조이 스콧을 주인공으로 한 브라이언 보프 아임 낫 어쉐임(I'm Not Ashamed, 2016, 극 영화)이 개봉했다.

 

 

 

1995320일 일어난 옴진리교 지하철 사린 사건 피해자를 하루키가 인터뷰해서 쓴 언더 그라운드》생각이 스쳐간. 그는 19961월 초부터 12월 말까지 일 년여 동안 인터뷰와 취재 작업을 했고, 신문이나 잡지 지상에 이름이 밝혀진 700여 명의 피해자 리스트를 작성한 후 신원이 파악된 140여 명에게 연락을 취해 인터뷰를 요청하는 것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내가 이 책을 읽었던 건 사건의 심각성보다 하루키 팬이었던 게 컸다. 그가 다룰 정도면 분명 남다른 게 있을 거라 싶었다. 아주 오래전에 읽어 내용은 가물가물하다. 그러나 한 사람 한 사람 인터뷰가 끝날 때마다 전해오는 저마다의 슬픔은 아련히 남아 있다. 옴진리교 사건 이후는 정부의 신속한 조치와 여러 인물의 적극적인 대응, 하루키 같은 작가가 뛰어들어 심도 깊은 기록을 남길 정도로 일사불란하게 이뤄졌다.

데이브 컬런 콜럼바인은 취재부터 집필까지 10년이 걸려 2009년에 이 책을 냈고, 한국엔 사건 이후 18년 만에 도착했다. 미국엔 학교 총기 난사 사건이 여전하다. 문제아들이 일으키는 단순 사고로 볼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들은 구조적인 걸 바꿀 의지가 없다. 그러는 사이 문제의 경향은 사회 전반에 더 넓게 퍼져 나갔다.

세월호는 얼마나 걸릴까. 과연 낱낱이 드러나게 될까. 우리는 1980년 5월 21일 광주에서 누가 최초 발포 명령을 내렸는지에 대해서도 37년째 씨름 중이다. 내년이면 38년째가 될 테고, 내후년이면 39년째가 될 테고...

콜럼바인책을 본 순간부터 나는 어딘가 붙잡힌 기분이다.

 

 

콜럼바인리뷰대회는 내가 이 책을 꼼꼼히 읽으며 미처 하지 못한 많은 생각할 기회가 될 거 같다. 당신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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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09-17 20: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는 아직 읽지는 않았지만
왠지 케빈에 대하여와 겹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 영화는 뭔가 모를 약간의 섬찟함과 자녀를 키우는 것에 대한
무기력함...? 뭐 그런 걸 느끼게 해 줬던 영화로 기억합니다.
그러니 내 아이 사랑으로 키운다는 건 얼마나 교과서적이고
동화 같은 이야기일까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가끔은 가족도 섬찟할 때가 있는데 말입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 전 거의 안 믿습니다.
분명 부모도 영이 있어서 어떤 자식은 잘 통하는데
어떤 자식은 정말 안 맞아 고생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AgalmA 2017-09-17 20:22   좋아요 1 | URL
아이를 원했던 것도 아니었는데 그 아이가 나랑 코드가 안 맞는다면 평생 고통스럽겠죠. 케빈의 엄마는 그랬던 거 같아요. 그런데 케빈은 관심을 받으려고 더더 악행을 저지르기도 했단 말이죠. 그 관계가 접점을 찾지 못하고 계속 일그러지기만 하던 게 참 맘 아팠죠.
<케빈에 대하여>가 가족간 관계, 사람 사이의 이해 불가능 그런 걸 제시했다면 <콜롬바인>은 사회 구조망으로 더 넓혀서 보게 만드는 것 같아요. 간과하는 것들이 총체적으로 모여 결국은 모두에게 상처가 되는 광경을.

나와같다면 2017-09-18 0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근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콜럼바인》을 읽으면서 내가 가졌던 생각의 뒤틀림도 경험하고, 많을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예요..

책장을 넘기는 것이 고통스러웠는데..
같이 읽고 있는 AgalmA님이 있어서 외롭지 않습니다..

AgalmA 2017-09-18 10:44   좋아요 1 | URL
먼저 읽고 계신 거 봤지요. 괴로우실 거라 싶었어요.
평생 자기 생각을 돌아보고 돌아봐도 끝이 없지요...

겨울호랑이 2017-09-18 20: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국에서 ‘총기 소유의 합법화‘문제는 그들의 역사적인 문제와 연계시키는 논리가 강하기에 총기를 금지하기가 어려워 보입니다. 그토록 많은 문제가 총기 소지에서 발생하는데 그 많은 희생을 치르면서도 지켜야할 아메리카의 가치가 무엇인지 그들에게 물어보고 싶네요. 영어로

AgalmA 2017-09-18 20:57   좋아요 1 | URL
개척시대부터 역사가 깊죠. 무기 파는 시장도 워낙 탄탄하니 한국에서 친일파 솎아내기 어려운 것처럼 그렇지 않겠나요.
겨울호랑이님이 영어로 물어보신다니 제가 참 안심이 됩니다ㅎㅎ

겨울호랑이 2017-09-18 21:10   좋아요 1 | URL
^^: 우리에겐 구글이 있잖아요? ㅋ

AgalmA 2017-09-18 21:15   좋아요 0 | URL
기술 좀 빨리 개발돼서 머리에 칩 붙이고 언어 소통 만사 오케이 좀 되고 싶네요ㅎ 저 같은 사람 땜에 인공지능 시장을 더 활발하게 만드는 지도ㅋ 결국 나 죽기 전에 그건 안될 거 같은데ㅎ;;
오늘도 그리스어 사전 열심히 찾다가 잘 안 되어서 또 한 번 좌절감ㅜ

레삭매냐 2017-09-22 09: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콜럼바인 저자가 책에서는 집필에 9년이 걸렸다고 기술하고 있는데, 광고에는 십년으로 바뀌었네요. 아무래도 9년보다는 10년의 무게가 더 느껴져서 일까요?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어제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대단한 기록이네요. 우리의 세월호 사건에 대해서도 누군가 이런 기록 을 남겨줬으면...

AgalmA 2017-09-22 09:44   좋아요 0 | URL
9년 몇 개월 해서 사사오입한 거 아닐까요ㅎ; 저도 어제 펼치기 시작해서 손을 뗄 수가 없더라고요... 일을 해야 하는데 나참;
저도 읽으면서 세월호를 이렇게 기록하는 사람이 있어야 된다 싶었어요. 이 파편들을 정교하게 짜야 돼요. 토막들로 소설로 쓸 게 아니라. 이 책 다 읽으면 그간 섣불리 보지 못하겠던 세월호 관련 탐사책들을 읽어 볼 생각입니다. 그러고 싶어서 이 책을 더 보고 싶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