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인 시선



안녕하세요. 신지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난데없이 등장하셔서 또 생각거릴 잔뜩 주시네요^^;

신지-한수철 vs 곰곰발 구도는 알라딘 서재가 사라지지 않는 한 영원할 대결구도일 거 같아 안타깝습니다. 세 분이 만나실 거 같지도 않으니.... 제가 뭔가 말을 해도 이 분쟁은 나아질 거 같지 않아 잘 풀리길 바란다 정도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쓰게 된 건 서민 교수-문빠에 대한 님의 의견을 보고 생각해 볼 것이 있어서입니다. 제 깜냥에서 할 수 있는 말만 하는 점 이해 바랍니다^^;

문빠 현상은 아주 복잡한 것들이 모여있는 에너지 場이지요.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그에 대한 미안함과 부채의식, 10년간의 정치 퇴행, 이명박근혜 정권이 양산한 많은 문제에 대한 분노와 다시 정상화하고 싶은 희망, 억눌려왔던 자들이 드디어 현실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기회의 도래 등등등이요.

서민 교수의 "문빠는 미쳤다"는 발언의 제일 큰 문제는 일반화입니다. 주장이 늘 가지는 딜레마이자 한계죠.
어느 세력이든 단일 이데올로기와 목표로 모이지 않습니다. 위에 제가 언급한 것처럼 문빠의 場도 그것들의 취합이 보여주는 형성그림이지 단일체가 아닙니다. 서민 교수의 발언은 어떤 부정도 용납지 않는 문빠에겐 그자체로 공격이 됐을 거고, 그 정도 문빠는 아닌 사람들에겐 싸잡아서 비난을 듣는 듯한 불쾌감을, 문빠를 공격하고 싶은 사람들에겐  문빠 내부 분열을 부추길 좋은 떡밥 제공 등이 됐지요. 어떤 문제에서 이들의 이 점이 문제다가 되어야지 이들은 모든 걸 잘못되게 만든다가 되어서는 안 되지요. 그런 식으로는 해결은 커녕 분풀이나 공격 밖에 되지 않습니다.

신지님의 논지에서도 비슷한 소지가 보이는데요. 님이 말하는 군중, 대중은 님의 종합화이지 단일화할 수 있는 실체가 아닙니다. 손 의원이 말한 '문빠는 표준 지성'도 허상에 불과합니다. 세분화하면 우리는 비슷한 사람이 아니니까요. 님의 논리 구도 : 다수-소수(약자), 악-선도 너무 이분법적이며 일반화가 느껴집니다. 상대만큼 자신의 합리화가 느껴지며 세심하지 못해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계속 이합집산하는데 대체로 힘 있는 쪽, 성공률이 높은 쪽에 사람들이 몰려가지요. '힘의 이동'이라고 봐야 할 텐데 그걸 '다수'라고 통칭하죠. 이번 경우는 '문빠'가 그렇게 보인 거죠. 정말 이 정부의 지지자들이 모두 문제적인 문빠이며 파시즘적으로만 움직입니까. 이건 같고 저건 다르지만 더 강하게 드러내는 사람들이 있는 거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게 집중 조명된다면 더 크게 부각되겠죠.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면 더더더요. 이런 역학에서 이 정부의 지지자들이 모두 사회악 같은 문빠라거나 곰발님이 다수로 통칭 될 게 아니란 말입니다. 이런 대결구도, 구별짓기는 끊임없이 만들어집니다. 인간 삶의 지긋지긋한 특성이죠. 

서민 교수의 두 번째 문제는 '문빠'의 부정적인 특정 현상만 손가락질한 일종의 엘리트주의 행동입니다. 넓은 시각에서 인간의 이 독특한 심리, 행동에 대해 기생충을 연구하듯 합리적이고 종합적인 분석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서 그도 이런 프레임에 오염된 시각만 재생산했을 뿐이며 그것을 소비한 것 이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가 소위 지식인이고 공인 위치이기 때문에 더 그렇게 됐지만 또 그걸로 설득 논리 하나 없이 자기 발언에 공신력이 있다는 듯이 말하고 있으니 실망감과 비웃음, 공격을 받게 된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조기숙 교수가 <왕따의 정치학> 을 쓴 것처럼 당신도 그 정도 보여줘야지 뜻이 아니라 최소한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논거들을 댔어야 했어요. 이런 분쟁에서 늘 그렇듯 자기 주장을 위해 확증편향적 자료들을 가져와도 그만이겠죠. 박근혜 추종자들처럼 행동한 문빠들의 실태 1. 2. 3..... 무수히 가져올 수 있으니까요. 결국 문제가 점점 본질에서 멀어지는 이런 상황들 때문에 삶이 참 비루하게 느껴지고는 합니다. 대화와 논쟁의 무의미를 느끼게 되고요.

소수 의견이 늘 다수의 맹시를 지적하는 촌철살인의 지성이지 않습니다. 신지님은 소수 의견을 가질 권리에 대해 말씀하시는 거란 건 숙지하고 있습니다. 다수이든 소수이든 합리적 논리와 근거를 제시해야지(이게 있어도 힘든 일이지만;) 요즘은 현상 열거, 손가락질로 넘쳐나죠. 아니면 그만이라는 식도 결과도 너무 많고요. 모두가 피곤해지고 외면하게 되며 해결은 요원해집니다. '사실'은 늘 주관적 사실이기 일쑤이니까요. 신이 있다-없다도 믿는 사람은 믿고 안 믿는 사람은 안 믿는 채 수 천년 동안 그렇게 이어져 오지 않았습니까.

새해 벽두부터 갑자기 머릴 써서 더 이상은 좀 무리일 거 같군요.
신지님이 너무 위축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새해인데 이렇게 시작하시게 되어 맘이 안 좋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11. 우리들은 "나는 안다"의 쓰임이 얼마나 심하게 특수화되어 있는지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

12. ㅡ왜냐하면 "나는 ...... 안다"는 알려진 것을 사실로서 보증해 주는 사태를 기술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항상 "나는 내가 안다고 믿었다"라는 표현을 망각한다.

15. 어떤 오류도 가능하지 않았다는 것은 실증되어야 한다. "나는 그것을 안다"란 단언은 충분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지 나는 (거기서) 오류를 범할 수 없다는 단언일 뿐이며, 내가 그 점에 있어서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는 것은 객관적으로 확립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확실성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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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2 16: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8-01-02 16:25   좋아요 1 | URL
^^ 어찌 되었든 제 주관적 생각이겠지만 최대한 객관적으로 생각하려 했습니다/

2018-01-02 2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02 2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