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blog.aladin.co.kr/kimwook/8913647

먼댓글, 댓글 허용이 안 되어 있어 부득이 제 서재에서 이렇게 글을 씁니다.
탄핵에 대한 절차상의 문제들은 하나도 짚으신 게 없으시면서 ‘탄핵‘이 먼저고 ‘저항권‘이 최후라고 하셔서 아래 글을 참고하시라고 가져왔습니다.
저도 이 문제가 터졌을 때 제일 먼저 탄핵을 생각했지만 여러 제반 사항을 살펴보니 난관이 무수히 보였습니다.
많은 내용을 인용하면 알라딘 규정에 저촉돼 링크 인용인 걸 감안하시고 읽어 주세요.

[현재 탄핵소추가 어려운 상황 개요 정리 글 펌]

1. http://media.daum.net/v/20161116164602162?f=m

2. http://transproms.tistory.com/212


헌법재판소까지 어렵게 간다 해도 ˝헌법재판관 9명 가운데 6명이 여당의 추천을 받았거나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된 보수 성향의 법관˝인데다 내년 초에 퇴임하는 헌법재판관 중 진보성향 재판관까지 있어 탄핵 인용될 여건이 더 어렵습니다. 지금처럼 검찰이 수사에 적극적이지 않고, 박 대통령이 여성인 걸 감안해 달라는 식으로 수사에 비협조적인 데다, 특검에서도 제대로 된 증거!(헌법 위반 사유는 해석의 빈틈을 이용해 빠져나갈 여지가 있으니 중대한 실정법률 위반 증거가 필수라 생각)가 안 나오면 박 대통령은 다시 직무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무사히 임기를 마치겠죠. 저항권을 발휘할 시간도 없다는 겁니다. 곧 대선 정국이 될 테고 야권에 반사 이익? 지금 이걸 제대로 못 잡고서 그때 상황이 어찌 될지 누가 장담합니까.

지금의 촛불집회와 저항은 이 모든 과정을 압박하기 위한 국민인 우리의 유일한 수단이자 최후까지 가져가야 할 용기입니다. 그렇게 모인 이 여론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더 많은 사람들이 노력할 힘이 되었습니다. 탄핵 소추 과정 속에서 국민의 무력감, 노 대통령 탄핵 때 이미 겪은 바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더 신중하고 치밀해야 합니다. 저도 민주주의 욕이 나올 만큼 이런 과정이 피곤하지만 어쩔 수 없는 과정입니다. 김욱 님이 말씀하신 ˝저항권˝은 최후에 발휘되는 게 아니라 이 모든 순간에 필요한 에너지입니다.

아무리 대권주자 1순위라지만 탄핵소추 의결 결정권자가 문재인 의원입니까. 문재인 의원에게만 그렇게 주목하니 ‘문재인 엘시티 관련설‘ 같은 흑색선전이 계속 터지는 거 아닙니까. 제게 김욱 님의 글은 탄핵을 위한 건설적인 논의가 아니라 내부 분열만 키우는 화풀이로만 보였습니다. 그럴 정도의 시국이고 문재인 의원에게 거는 기대감 이해합니다만 그 화살의 방향이 안타까웠습니다.

저는 검찰의 협조와 특검 수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상황은 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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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리는 건 때론 말할 수 없이 사물을 사랑하는 것. 말할 수 없는 것에 말없이 표현할 수 있는 멋진 방법.
그림은 처음부터 나를 투영하는 것이 아니다. 사물의 웃음부터 울음까지 오랫동안 들여다보기. 그것은 사람에게도 자연스레 향한다. 확장된 세계에서 내게 다시 오는 물음. 이러한 소통 과정이 있어 그림은 기술로 끝나지 않는다. 요즘 문학이나 현대 미술의 난해함에 대해 사람들이 화를 내는 이유도 소통에 대한 근본적인 지향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추위에 떨고 있던 화분들을 안으로 들이며,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은 아주 작고 간단한 것에서부터 그리고 아주 많다는 걸 생각해보는 아침이다.
그림으로 다른 사람을 웃게 할 수도 있다는 걸 나는 한동안 잊고 있었다.

 

※ 아래 그림은 서니데이님이 올리신 사진에서 출발했다.

http://blog.aladin.co.kr/759692133/8869159

 

 

 

&

 

 

어제 추운 거리, 추운 마음을 걸으며 무심히 내 어깨를 두드리던 음악.

나를 찾은 건 아니었지만 너는 왔다. 너 외에도 많은 것들이.

 

 

 

Carpenters는 겨울 군고구마 같은 온기와 향이 음악에서 묻어난다.

(물개 고구마를 그려서 이런 표현을 하는 건 아니다;)

그건 참 닮고 싶은 것이기도 하여서...

많은 이들이 Carpenters의 음악을 듣고 따라 부른다. 그림을 보고 따라 그리듯.

거리를 걸으며 나도 Carpenters - Close to you를 흥얼거려 보았다. 조금 따뜻했다.
그래, 이 정도도 나쁘지 않아.

 

 

 

 

 

 

 

 

 Sonic Youth - Superstar를 처음 들었을 때도 지금처럼 춥고 스산했다.

그렇게 같은 것들이 계속해서 스치고 지나가며 또 만난다.

나는 얼마나 달라진 걸까. 그림을 그리는 연필선만큼? 그건 나빠진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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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6-11-01 07: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유쾌하고 재밌는 그림 감사합니다 Agalma님 상쾌한 하루 여세요!

AgalmA 2016-11-01 07:20   좋아요 2 | URL
^^ 겨울호랑이님이 떠올리셨다는 오리도 그려볼까 했는데 칸이 비좁아서ㅎㅎ;
날이 쌀쌀하네요. 감기 안 걸리시게 따듯하게/

겨울호랑이 2016-11-01 07: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자나 고구마의 자연스러운 모습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 같아요^^: 물개고구마는 물개 고구마 저금통이 `삼위일체`가 된 것 같아 즐겁게 감상했습니다. 좋은 그림 감사합니다^^

AgalmA 2016-11-01 08:34   좋아요 2 | URL
사물을 탐구한 아리스토텔레스도 그림의 비밀에 대해 잘 알았더군요. 사물을 통해 우리가 형상을 이 세계에 가지고 온다는 것을.....그래서 세계에 이토록 많은 이미지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겨울호랑이 2016-11-01 08: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요즘 아리스토텔레스의「형이상학」을 읽고 있는데, Agalma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eidos에 관한 내용인 것 같네요. Agalma님 덕분에 지루한 책이 조금은 재밌어지려고 하네요. 감사합니다^^:

AgalmA 2016-11-01 09:05   좋아요 3 | URL
겨울호랑이님 책읽기의 폭 정말 대단하십니다^^ 저는 올해 플라톤 <국가> 완독하고 싶었는데, 책 줄이 너무 길어서 내년으로 가야될 참ㅜㅜ....모두 화이팅!

moonnight 2016-11-01 09: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동전 먹으면 물개고구마가 요구르트에게 돌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요구르트가 두려워하고 있네요. 선인장화분도 움찔^^; 귀여운 그림 잘 봤습니다. ^^
저도 카펜터스 무척 좋아합니다. 바람이 쌀쌀해지면 생각나는 목소리예요.^^

AgalmA 2016-11-01 09:08   좋아요 0 | URL
요구르트 다음은 선인장 차례가 될 테니까요ㅋㅋ 동전 먹고 물개 고구마가 돌진하는 시스템인 줄은 저도 몰랐는데! 신이 인간을 만든 이후 스토리와 부합하는군욧ㅎ!
말씀처럼 카펜터스는 가을에서 겨울 넘어가는 때에 멋진 초빙 대상이죠^^

커피소년 2016-11-01 1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혹시.. 이 그림.. 서니데이님이 올리신 고구마를 보고서 그리신 것 인가요?ㅎㅎ

대단한 상상력과 표현력입니다..ㅎㅎㅎ

AgalmA 2016-11-01 10:53   좋아요 1 | URL
네^^ 그 글에 쓴 먼댓글이지요. 저 이러다 알라딘 먼댓글 마니아 되겠어요ㅎ;; 요즘 계속 이웃글에 먼댓글 릴레이;;

작은 표현력에 큰 칭찬주셔서 부끄럽네요^^;; 감사드립니다. 꾸벅

커피소년 2016-11-01 11:05   좋아요 1 | URL
알라딘 이웃들의 글을 읽고 영감을 얻어 글을 쓰는 것 좋더군요..ㅎㅎ

자신이 쓴 글의 가치가 올라가는 것 같고 보람과 뿌듯함을 느끼고

서로 생각을 공유하면서 친분을 돈독하게 하고 장점이 많더군요..^^

그래서 그런지 요즘 그런 분들이 많이 보는 것 같습니다..ㅎㅎ



고구마를 보고 물개를 상상해내시다니..ㅎㅎ

저는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 못 했으니..

대단하게 보일 수밖에요..ㅎㅎ


AgalmA 2016-11-01 11:19   좋아요 1 | URL
실재가 가지는 풍부함보다 제 표현이 부족한 거 같아 늘 아쉽죠. 그래서 다른 사람의 표현에도 관심이 많아요^^

서니데이 2016-11-01 1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구르트가 너무 커요. 고구마가 작게 나오잖아요.^^; 물개닮았다는 건 이런 의미였군요. 재미있게 잘 봤어요.^^

AgalmA 2016-11-01 12:31   좋아요 2 | URL
저도 다 그리고 나서 그 생각했어요ㅎ 만국 공통어로 몸짓이 있다지만 여행서에 사진이랑 그림이 많은 이유가 말이 잘 안 통하는 현지에서 그걸 보여주면 사람들이 바로 알기 때문인 이유도 있죠^^

2016-11-01 12: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01 1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11-01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 분 전에 단 ‘동파육’ (아재) 개그 댓글도 다른 사람을 웃게 할 수도 있고, 화나게 할 수도 있습니다. ㅎㅎㅎ

AgalmA 2016-11-01 18:58   좋아요 0 | URL
동파 때문에 바로 연상되던데 화나는 농담으로까지 해석된다면 세상 참 깝깝할 듯;; 문맥을 안보고 표현만 보는 게 문제죠...

cyrus 2016-11-01 19:09   좋아요 0 | URL
아재 개그를 좋아하는 사람들 만나기 힘들어요. 가벼운 유머를 살짝만 웃고 넘기면 되는 일을 인상 찌푸리면서 면박 주는 사람들이 있어요. ^^;

2016-11-01 2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양이라디오 2016-11-04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 레이아웃이 저랑 같네요ㅎ 서재가 깔끔하고 너무 멋집니다!

음악이 있어서 더욱 좋습니다. 음악 잘 듣겠습니다^^

AgalmA 2016-11-04 09:48   좋아요 1 | URL
서재 초반엔 레이아웃 꾸미기도 재밌었죠. 요즘은 북플이 대세라 서재 꾸미기는 자기만족에 더 가까워졌지만^^
고양이라디오님 리뷰도 잘 보고 있습니다. 상당한 양을 올리셔서 제가 다 소화를 못 시키고 있지요ㅎ;
리뷰 행진을 위해서라도 건강 잘 챙기시길 바라며ㅎ/
 
악몽

이 혹독한 2월에 어찌 춥지 않았을까? 나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말했다. "얘야, 나 좀 볼래, 착하지. 아저씨가 눈이 안 좋단다. 지독한 근시라서 편지 넣는 구멍을 못 찾을 것 같구나. 저기 있는 우체통에 나 대신 편지 좀 넣어줄래." 쪼그리고 있던 아이가 나를 보더니 일어섰다. 투명하리만치 창백한, 보기 드물게 예쁜 작은 얼굴이었다. 아이는 편지를 받아 들고 긴 속눈썹을 꿈틀하더니 경이로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우체통으로 달려 갔다. 나는 끝까지 지켜보지 않고 길을 가로질러 갔다. 정말로 눈이 나쁜 척 실눈을 떴다. (이건 언급해야 한다.) 그 행동은 예술을 위한 예술이었다. 나는 이미 멀리 벗어나 있었으니까. 다음 광장 모퉁이에서 유리로 된 공중전화 부스에 들어가 아르달리온에게 전화했다. 그에 관한 조치를 반드시 취해야만 했다. 바로 이 꼰질꼰질한 초상화가야말로 조심해야 할 유일한 사람이라는 판단이 오래 전에 섰기 때문이다. 근시인 척한 것이 아르달리온과 관련하여 오래전에 했던 구상을 실행에 옮기라고 부추긴 것일까. 아니면 반대로 그의 위험한 시선이 부단히 떠올랐던 탓에 근시를 가장할 생각을 하게 된 것일까? 그건 심리학자들이 해명할 문제다. 아, 그런데, 그런데...... 그녀는 자라날 것이다. 그 소녀 말이다. 예쁠 것이고 아마 행복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어떤 괴상하고 무시무시한 일에 매개자로 개입되었는지 그녀는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다른 가능성도 있다. 그런 의도하지 않은 순진한 매개 행위를 참지 못하는 운명이, 쓴맛 단맛 다 본 운명이, 비열한 사기 행각은 스스로 능숙하게 알아내는 운명이, 질투하는 운명이 일에 끼어든 죄목으로 소녀를 잔혹하게 벌할 수도 있다. 그러면 그녀는 놀라게 되리라. 왜 나는 이토록 불행한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그리고 결코, 결코, 결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리라. 하지만 내 양심은 깨끗하다. 펠릭스에게 편지한 건 내가 아니다. 편지를 보낸 건 그다. 답장을 보낸 건 내가 아니다. 모르는 아이가 보낸 거다.


ㅡ 라디미르 나보코프 《절망》

* 뷰티풀말미잘님 페이퍼 <악몽>에 대한 먼댓글로 인용 : http://blog.aladin.co.kr/Escargo/8869875

 

 

 


§
나는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를 100% 좋아할 수 없는데, 그는 인간의 비열함에 대한 온갖 색깔의 실로 소설을 직조한다. 진실은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고 생각해야 할까. 불편한 것이 꼭 진실이다 라고 할 수 없어 나는 더 불편해진다. 광대한 표현의 영역에서 표현된 것과 표현하는 자까지 끼어 있는 상황 속에 우리가 진실과 거짓(악의)을 제대로 알아볼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언제나 내게 큰 의문이다. 확신을 담고 있는 "쓰기"는 더 무시무시해진다. 쓰는 일에 대한 무게감. 살짝 미쳐야 쓰는 게 가능하다. 그래서 영감(靈感) 타령을 하는 건지도 모른다. 요즘 한국 문단의 성폭력 문제처럼 가장 골칫거리는 창작과 성적(性的)인 것의 연결과 관계인 거 같다. 나보코프가 《롤리타》를 쓰고 질타와 환호를 동시에 받았던 것처럼 아주 어려운 문제다. 우리는 늘 이 줄타기 속에 있다. 문장 뒤에 숨어 타락하기 얼마나 쉬운지 이미 여러 번 목격되었다. 차라리 악몽이 더 아름답고 진실같아 우리는 그토록 꿈을 불러 오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고백 성사라 하더라도 꿈 속에서 우리는 죄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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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리풀말미잘 2016-10-31 10: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갈마님! 인용하신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문장을 몇 번이나 읽었습니다. 제가 이 소설을 읽었더라면, 아마 무의식적인 영향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풀어내는 솜씨야 비할 바가 되지 않으나,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결이네요. 또 하나 경탄스러운 것은 그 많은 독서목록에서 이 책, 몇 줄을 찾아낸 아갈마님의 매의 눈!

밤에 꿈 얘기를 쓰느냐 마느냐를 고민했는데, 쓰기를 잘 한 것 같아요. 저는 책에 밑줄 긋는 걸 극혐하는 편인데, 이런 문장을 만나면 어쩔 수 없이 긋고 말 듯.

“불편한 것이 꼭 진실이다 라고 할 수 없어 나는 더 불편해진다. 광대한 표현의 영역에서 우리가 진실과 거짓(악의)을 제대로 알아볼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언제나 내게 큰 의문이다.”

하도 진실이 불편한 시대라, 불편해야 진실처럼 생각하기도 하죠. 간혹 편안한 진실이 주어지더라도 그럴 리 없다고 의심부터 하게 됩니다. 결국 제대로 된 진실 하나 건질 수 없어 우리는 늘 화가 나 있고, 이런 시절에 말빨만 조금 따라준다면, 정치하기도, 글쓰기도 참 쉽겠죠.

“문장 뒤에 숨어 타락하기 얼마나 쉬운지 이미 여러 번 목격되었다. 차라리 악몽이 더 아름답고 진실되어서 우리는 그토록 꿈을 불러 오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꿈 속에서 우리는 죄가 없으니까.”

이 문장은 마음에 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AgalmA 2016-10-31 10:22   좋아요 2 | URL
뷰티풀말미잘님이 이 소설을 안 읽었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알았다면 자기 검열이 문장 속에 나타났을 테니까요. 그래서 이 페이퍼 제목을 ˝우리는 악몽처럼 연결된˝이라고 썼죠. 신기하죠. 네, 정말 신기해요....

2016-10-31 2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01 09: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01 17: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01 18: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 쉽게 쓰여진 시

 

 

 

 

 

 

 

 

 

 

 

 

 

 

조약돌


 
 

조약돌은 정의하기에 쉬운 사물이 아니다.
단순한 묘사로 만족한다면 우리는 우선 조약돌이 바위와 자갈 사이의 돌의 형태나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말은 이미 돌에 대해서 증명되어야 하는 하나의 개념을 의미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 노아의 홍수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나를 비판하지 말 것이다.
  
*
 
모든 바위덩이들은 엄청나게 큰 하나의 선조로부터 분열되어 나왔다. 전설적인 이 몸체에 대해 한가지밖에 말할 수 없다. 저 세상을 벗어나면 허황한 얘기라는 것이다.
최후의 끈적끈적한 솟구침 사이에 무정형으로 퍼져 있는 그것을 이성이 잡는다. 이성은 세상만한 크기의 영웅의 세례식을 위해 잠을 깨고 죽음의 침상의 무시무시한 반죽통을 발견한다.
여기서 독자는 너무 빨리 지나치지 말아야 하고, 두껍고 음울한 표현 대신에 그 표현들을 조금이라도 투명하게 해주고 그 표현들로 완전히 흐려지지 않을 수 있는 진리의 위대함과 영광을 찬미해야 한다.
이처럼, 이미 광채를 잃고 차가운 위성 위에 지금은 태양이 빛난다. 그를 향해서 타오르던 어떤 위성도 더 이상 속이지 않는다. 모든 영광과 모든 삶, 보게 해주고, 살게 해주는 객관적 외양의 모든 원천이 태양에게로 되돌아갔다. 그로부터 나와서 그의 주변을 맴돌던 영웅들은 스스로 빛을 잃었다. 그들이 그 근원 자체를 위하여 그 영광을 마다하는 진리가 관중과 또 죽어버렸거나 죽어 가는 대상들을 유지하도록, 그들은 진리 주위를 맴돌고, 관객의 역할을 하기를 계속한다.
그런 희생, 이전에 그토록 영광스럽고 뜨겁던 자연 밖으로의 생명의 축출이 드라마틱한 내적 전복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우리의 소박하고도 멋진 거주지 지구의 회색 빛 혼돈의 기원이 있다.
이처럼, 이불 밑에서 요동치며 잠자는 육체와 같은 비틀림과 기복의 기간이 지난 후에 엄청난 구속의 힘에 의한 것처럼 자신의 의식에 굴복당한 우리의 영웅은 점점 더 드물어지는 내적 폭발로 점점 더 무거워지고 차거워지는 껍질을 부술 뿐이다.
죽어버린 영웅과 혼돈스런 지구가 오늘날 뒤섞여 있다.
 
*
 
감동하는 능력과 더불어 하나의 온전한 개체로 다시 만들어지는 능력을 영원히 잃어버린 이 몸으로부터, 냉각의 느린 재앙 이래로 역사는 영속적인 붕괴의 역사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때 다른 일들이 벌어진다. 위대함은 죽어버렸고, 생명은 위대함과는 전연 상관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내 수많은 자원으로.
그런 것이 오늘날 지구의 겉모양이다. 세계만한 크기의 존재의 조각난 시체는 그보다 더 작고 더 덧없는 수없이 많은 존재들의 생명에 장식으로 쓰일 뿐이다. 그 무리들은 곳에 따라 너무 밀집해 있어서 자신들의 유일한 지주 역할을 해온 성스런 뼈대를 완전히 가린다. 그때부터 돌의 밀도를 본따는 데 성공하여 그 시체들에게 바위에 조금도 의지하지 않고 식물성 토양이라는 것을 통해 스스로 자신들을 복제하게 하는 것은 그 시체의 무한함이다.
게다가 내가 지금 다루고 있는 것만큼이나 오래 된 기원의 액체적 요소들은 상당히 넓은 지역에서 결합하여 그것을 덮고, 스치고, 계속적인 타격으로 그것의 침식을 활성화한다.
그래서 나는 산재하고 있고, 세상에 의해 천대받는 돌이 우리 눈에 보여주는 몇몇 형태들을 묘사하겠다.
 
*
 
종교적으로나 다른 이유들로 거기에 뿌리를 내려 움켜쥐고 있는 식물들 아래로 거의 보이지 않는 포석들은 가장 큰 조각들로서 지구의 골격을 구성한다.
거기가 진정 사원들이다. 땅 위에 아무렇게나 올라간 건축물들이 아니라 세상에 그전에 진짜로 존재했고 옛날 영웅의 무심한 잔해들인 것이다.
이 신비로운 덩어리들을 뒤덮고 있는 숲의 어두움과 향기 사이에서 위대한 것들을 상상하는 인간은 정신으로만 그 아래에 그들의 연속성을 짐작한다.
같은 자리의 조금 더 작은 많은 덩이들이 그의 관심을 끈다. 그 신의 더러워진 손가락으로 반죽된 여러 다른 크기의 돌조각들은 시간에 의해 숲 속에 흩뿌려져 있고.
그들의 까마득한 선조의 폭발 이래로, 그리고 기력 없이 쇠잔한 하늘로 쏘아 올려진 이래로 바위들은 침묵했다.
더 이상 면도하지 않는 사람처럼 싹이 돋아 올라 침범당하고 부서지고 파헤쳐지나 움직이는 흙이 그 자리를 메워주어 어떤 반응도 보일 수 없게 된 그들 중 어느 하나도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들의 형상들과 그들의 육체에는 금이 간다. 경륜의 주름살 속에 순진함이 찾아와 깃들인다. 장미가 그들의 무릎 위에 와서 앉고 그들에게 순진한 독설을 가한다. 그래도 그들은 그것을 받아들인다. 이전에는 엄청난 우박이 그들의 숲을 간벌해 주었고, 혼미와 체념 속에 그들의 지속은 영원하다.
그들은 주변에 수많은 꽃의 세대들, 그들의 살색보다 조금 더 생기 있는 살색을 띠고 있고, 그들의 회색만큼이나 창백하고 시든 장미색의 꽃의 세대들이 생겨났다가 스러져 가는 것을 보고 웃는다. 그들은 (말하는 수고를 하지 않으려는 입상들처럼) 이 색깔들이 지는 해의 하늘빛, 한결 더 눈부신 한 화재를 기념하여 매일 밤 시도되는 빛에서 그 색조를 빌려오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 굉장한 격변의 순간에 공중에 격렬하게 내던져진 그들은 놀라운 경악으로 마감되는 한 시간의 멋진 자유를 맛보았다. 거기서부터 머지 않은 곳에, 그들의 지친 여인들의 거품 이는 노력의 가장자리에서 거인 관객의 바위투성이 무릎을 한 바다는 자신이 간직한 덩어리를 몸에 꼭 껴안고 팔 속에서 떼어내고, 껴안고, 흔들어주고, 애지중지하고, 거듭하고, 짓이기고, 쓰다듬고, 윤을 내거나, 사탕처럼 입 안 한구석에 밀어두었다가, 입에서 꺼내어, 나지막한 경사의 다정스런 가장자리에 자신의 손에 닿는 거리에 이미 많은 무리 가운데 내려놓는다. 이는 이내 그곳에서 그것을 다시 취해 한층 더 큰 애정을 가지고 정열적으로 다루기 위함이다.
그렇지만 바람이 분다. 바람은 모래를 날려보낸다. 그리고 만일 우리를 사로잡는 대상의 최후의 가장 미세한 형태인 이 입자들 중의 하나가 우리들의 눈 속에 실제로 들어가게 된다면, 돌은 자신만의 특별한 눈부시게 하는 방법을 통해 벌하고 우리들의 명상을 끝나게 한다.
오랜 명상이 거기에 쌓은 지식들이 몇몇 원칙들을 이미 그에게 제공하지 않았다면 자연은 기억의 내부로 탐구해가는 순간이 올 때 우리의 눈을 감기게 한다.
 
*
 
그런 외양에서 자양분을 얻어 개념을 찾아내고 싶어하는 정신에게 자연은 돌에 관해서는, 아마도 너무 간단히, 마치 하나의 동력에 의해 움직이긴 하나 매우 불규칙한 속도로 도는 바퀴들로 이루어지는 원리를 가진 시계처럼 보인다. 
식물, 동물, 기체, 액체는 죽어가고 되살아나면서 조금 빠르게 또는 덜 빠르게 돌아간다. 돌의 큰 바퀴는 우리에게는 실제로 움직이지 않는 것 같고, 비록 이론적으로라도 우리는 그것의 오랜 풍화의 단계의 한 부분만을 상상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돌을 인간의 눈에 지속과 무감동의 상징으로 삼는 일반적 의견과는 반대로, 돌이 실제 자연 속에서는 스스로를 다시 형성해 나가지 않고, 끊임없이 죽어가는 유일한 사물이라고 우리는 말할 수 있다.
그래서 계속적으로 생명을 받아들이는 존재의 입을 통해서, 그리고 상당히 짧은 기탁 기간 동안 돌이 자신이 깃들이고 있는 장식의 파괴할 수 없는 단단함을 부러워한다고 믿게 할 때라도 실제로 그 돌은 이 장식의 계속되는 풍화에 동참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그에게 드라마틱해 보이는 행동의 통일성이 있다. 돌은 스스로 영원히 부활할 수 있다고 느끼면서도 그의 지주가 어느 날 없어질 수 있다고 혼돈스레 생각한다. 살아 움직이기를 포기하고 폐허로 변할 것만을 생각하는 장식 속에서 그 생명은 부활만을 생각하며 염려하고 불안해한다.
돌 자체가 때로 불안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조약돌, 자갈, 모래, 먼지의 돌의 마지막 상태 때에, 돌은 용기의 역할, 생명이 있는 사물들의 지주 역할을 더 이상 할 수 없다. 근원적 덩어리로부터 떨어져 나와 돌은 구르고, 나르고, 지면에 자신의 자리를 요구하고, 일생 동안 절망의 광란이 그를 흩었다가 다시 모으는 넓은 언덕으로부터 점점 멀어져간다.
모두 돌의 진화의 어느 상태를 표현하는 그 모든 형태들이 동시에 세계에 존재한다는 것을 나는 매우 중요한 원칙으로 지적한다. 여기에는 세대들도 없고, 멸종된 것들도 없다. 사원들, 반신(半神)들, 경이들, 맘모스들, 영웅들, 선조들이 매일 그들의 손자들과 이웃한다. 인간은 자기 정원에서 이 세상의 모든 가능성을 직접 만져볼 수 있다. 개념은 없고 모든 것이 존재한다. 또는 차라리 천국에서처럼 모든 개념이 존재한다.
 
*
 
지금 내가 좀더 주의깊게 돌의 특이한 형태들 가운데 하나를 검사하기를 원한다면, 그 형태의 완전성과 내가 쥘 수 있고 내 손에서 뒤집을 수 있다는 사실이 조약돌을 선택하게 한다.
또한 조약돌은 바로 개체의 시대, 개인의 시대, 즉 말의 시대가 시작하는 시기의 돌이다.
그가 직접 유래하는 바위층과 비교했을 때, 조약돌은 이미 조각난 돌이며, 거의 비슷한 수많은 사람들로 갈고 닦인 돌이다. 한결 작은 자갈과 비교했을 때, 조약돌은 인간이 그것을 실용화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발견되는 장소에 의해, 야생적인 돌이며, 적어도 길이 든 돌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의 실용적인 질서 속에서는 어떤 의미도 갖지 못하는 채 남아 있는 며칠 동안이라도, 이 이점을 살리도록 하자.
 
*
 
어느 날 수많은 물결 중의 하나에 의해 운반된 조약돌, 그 후 물결들은 빈 화물을 부리는 소리만 내고 있는데, 조약돌은 그의 과거의 형태 더미와 미래의 형태 더미 위에 쉬고 있다.
풀이 난 땅이 그의 오랜 선조들을 아직 덮고 있는 장소에서 머지않은 곳에, 그의 바로 위 부모들의 사랑의 행위가 벌어지는 바위덩이 아래에 그는 같은 것들의 낱알로 형성되어 있는 땅, 토목장이 물결이 그를 찾고 그를 잃어버리는 곳에 자신의 보금자리를 틀고 있다.
그러나 바다가 일상적으로 쫓아보내는 이 장소들은 공인 받기에 가장 부적합한 장소들이다. 그 인구들은 그 지역만 알고 있는 가운데 그 곳에 산다. 각자는 그 곳에서 잊혀졌다고 여긴다. 왜냐면 그는 번호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자기를 고려해주기에는 너무 맹목적인 힘들만을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래서, 그런 무리가 쉬는 곳 어디에서나, 그들은 실제로 모든 바닥을 덮고 있으며, 그들의 등은 발을 딛기에 그리고 정신을 딛기에 불편한 바닥을 형성한다.
새도 없다. 그들 사이로 풀잎이 삐죽 나온다. 도마뱀들이 그들을 헤집고 다니고, 함부로 돌아다닌다. 메뚜기들은 팔짝팔짝 뛰면서 조약돌들을 재기보다는 서로들을 재어본다. 인간들은 때로 그들 중의 하나를 멀찌감치 집어던진다.
그러나 마지막 조금 남은 이 대상들은, 마른 풀들, 해초들, 낡은 병 뚜껑들, 인간의 생필품의 온갖 쓰레기들로 인해 손상된 고독의 한복판에서 무질서하게 버려진 채, 대기의 엄청난 소용돌이 가운데서도 꼼짝 않고 있으면서, 맹목적으로 숨을 헐떡이며 모든 이성을 저버리고 모든 것을 쫓아가는 이 힘들의 광경에 말없이 참관하고 있다.
어디에도 매이지 않았지만, 그들은 그 지역 어느 곳엔가에 남아 있다. 나무를 뿌리채 뽑아내고 건물을 파괴할 만큼 힘센 바랍도 조약돌을 옮길 수는 없다. 그러나 바람이 주변의 먼지를 날려보내기 때문에, 때로는 태풍의 손길이 수세기 전부터 모래의 두텁고 한시적인 층 아래의 어느 한 자리로부터 우연히 그 돌들 중의 하나를 파내기도 한다.
그러나 반면에 미끌미끌하게 하고, 자신이 완전히 감쌀 수 있는 모든 것에 액체의 성격을 전파하는 물은 때때로 조약돌들을 유혹하고 끌어당긴다. 왜냐하면 조약돌은 무정형의 돌의 괴물 위에 가해진 무정형의 이 괴물의 노력으로 그가 태어났다는 것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개체는 아직도 액체가 수차례 발라져야만 완성될 수 있기 때문에, 조약돌은 본래 영원히 물에는 유순하다.
밤에 비해 낮이 밋밋하듯이 땅에서는 밋밋한 조약돌을 파도가 다시 뒤덮는 순간, 물은 그를 반짝이게 한다. 그리고 물이 내부에 작용할 수 없지만, 그리고 매우 섬세하고 밀집된 돌덩이를 가까스로 침투할 뿐이지만, 액체의 매우 활발하나 가냘플 접착성은 돌의 표면에 눈에 띄는 변화를 야기한다. 물이 돌을 다시 윤을 내고, 그들의 이전의 사랑으로 입은 상처들에 붕대를 감아주는 것 같다. 그래서 잠시 조약돌의 외면은 그 내면과 닮는다--조약돌은 그 육체 위에 젊음의 눈을 가진다.
그렇지만 완전에 이른 그의 형태는 두 가지 환경을 견딘다. 그 형태는 바다의 무질서 속에서는 태연자약하다. 그러나 물에서 나올 때는 좀더 작아져서, 그러나 흠 없이 나온다. 그리고 또한 크게라고 말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돌의 크기는 양으로 결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에서 나온 조약돌은 이내 마른다. 그에게 가해졌던 엄청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액체의 흔적은 그 표면에 남을 수 없다. 조약돌은 아무런 수고 없이 그 흔적을 날려버린다.
마침내 매일매일 조금씩 적어지나 늘 자신의 형태에 대해 자신만만하고, 맹목적이고, 단단하고, 메마른 내면의 조약돌의 성격은 그래서 뒤섞이게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물로 자신을 줄여나가는 것이다. 또한 굴복하여 모래가 되었을 때에도 물은 먼지에 파고들 듯 모래에 파고들지는 않는다. 모래 위에 다른 것들이 새겨놓는 흔적들을 지우는데 머무는 액체의 흔적을 제외하고 모든 흔적들을 간직하면서, 모래는 모래를 가지고 진흙을 만들 수 없어 그 깊이 속에서 스스로를 잃어버리는 온 바다가 그 사이로 지나가게 한다.
 
*
 
나는 더 이상은 말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기호들의 사라짐에 대한 이 생각은 너무 말에 의존하는 문체의 결점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다만 시작으로 조약돌을 선택해서 너무 행복할 뿐. 왜냐하면 현명한 사람이라면 미소짓지 않을 수 없을 것이나, 나의 비평가들이 "돌에 대한 묘사를 쓰려고 시도해놓고, 그는 스스로를 옭매고 말았다"고 말할 때 그는 충격을 받을 것이다.






ㅡ프랑시스 퐁주


 


 

 

 

 

 

 

 

 

 

 

 

 

 

 

 

 



§
하이데거가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다죠. 신전을 만드는 재료가 아닌 돌로 인해 만들어진 저 詩의 신전은 무어라 말해야 좋을까요.
프랑시스 퐁주가 제시한 돌을 보고 돌 하나가 구성하는 우주를 생각하며 아득했습니다.
프란시스 퐁주는 다른 시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시인은 결코 사고를 제시해서는 안되고 대상을 제시하여야만 한다. 다시 말하면 사고조차도 대상의 모습을 띠도록 해야 한다.
시는 특별히 인간을 위해 만들어져 놓인, 인간에게 제시되는 즐김의 대상이다. 이러한 의도를 시인은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

김민정 시인과 프랑시스 퐁주가 말하는 돌, 그 방식은 돌 만큼 많은 다양성에 해당될 테죠.
.
.
.

부활을 꿈꾸지만 불멸할 수 없다는 걸 아는 형태와 상태...

시인들이 말하는 돌보다 돌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해야 내 말도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에 갑자기 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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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5 14: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거서 2016-10-25 15: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약돌 하나로도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고, 다시 더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다니 감탄해 마지 않습니다! ^^

AgalmA 2016-10-25 15:29   좋아요 1 | URL
네. 퐁주 사물시들은 거의 단편소설 분량이죠^^; 충격에 충격을 주는 시들 가득해요. ˝물˝시도 엄청 좋아하는데 이웃에게 스트레스를 줄까봐 안 옮기겠습니다^^;;;

양철나무꾼 2016-10-25 15: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Agalma님, 제가 몹쓸 기억력을 가지고 있는 고로,
전에 언젠가 조약돌 애기를 했을때,
이 프랑시스 퐁주 소개해 주셨던 거 기억해요.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전 왜 퐁듀가 연상되는 것인지~--;

저의 `좋아요`는 프랑시스 퐁쥬를 향한 것이 아니라,
님의 이 페이퍼를 향한 것입니다.
거의 실시간인걸요, 이렇게 빠른 먼댓글이라니, `쫌` 멋진거 아녜요?
마음 같아서 백만개의 하트를 `뿅뿅~=3` 날리고 싶지만,
푼수는 이쯤에서 물러갑니다요~^^

AgalmA 2016-10-25 16:47   좋아요 1 | URL
퐁듀ㅎ 그 말 하시니 저는 듀퐁이..ㅎ;;
양철나무꾼님 뜸하게 나타나셔서 언제 대화 나눌지 몰라 제가 얼마나 급하게 먼댓글 썼는지 아세요ㅎ 그래서 생각 정리도 못하고 급하게 올려서 제 생각이 저 모양으로 뚝 끊김ㅋ;;
날 쌀쌀한데 건강 조심하시고 곧, 또^^/

cyrus 2016-10-25 19: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솔출판사, 청하출판사에 나온 시집들은 헌책방에 만나기 어려운 레어본입니다. 퐁쥬의 시가 어렵다고 해도 저 두 권의 시집을 만나면 살 겁니다. ^^

AgalmA 2016-10-25 19:04   좋아요 2 | URL
시에 워낙 관심이 많아서 저는 실시간 겟~해서 샀죠^^ 솔 출판사와 청하에서 나온 국내 시인, 세계 시인선은 정말 다 명작들이죠. 헌책방에서 발견하시면 무조건 사셔야 합니다!

ICE-9 2016-10-25 23: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아, 반갑네요. 저도 청하에서 나온 사물에 대한 고정관념 시집 가지고 있는데. 고향집 책장 한켠에서 지금도 조용히 세월의 먼지를 뒤집어쓰면서 있을텐데, 참으로 오랜만에 사진을 통해 보니 반가워서 이렇게 댓글 남기네요.
글도 잘 읽었습니다^^

AgalmA 2016-10-25 23:45   좋아요 1 | URL
어, 저도 반갑네요. 헤르메스님^^ 지금 보면 세계문제시인선집이라니 그 타이틀에 웃음이 나기도ㅎ;;...니체도 그렇고 청하에서 좋은 책 많이 나와서 많이들 가지고 계시죠. 실비아 플라스도 청하 시집으로 만나게 됐을 때 정말 좋았죠.
퐁주 시는 직접 타이핑해서 많이 가지고 있는데 길어서 정말 애먹었어요ㅎ; 하지만 이렇게 같이 추억 나누게 되어서 좋네요. 감사합니다^^

[그장소] 2016-11-30 16: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좋아라하는 책세상의 책들이 보인다는! ^^

AgalmA 2016-12-01 16:58   좋아요 1 | URL
예전엔 책세상 책 많이 봤는데, 요즘은 그때 퀄리티의 책들이 잘 안 나오는 듯해요?

[그장소] 2016-12-01 17:12   좋아요 1 | URL
아.. 신간 소식을 Agalma님 통해 보니, 작년엔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기억이 모락모락,
그래도 가져온 책은 얼마 안되었지만 .. 여기 책은 종이가 넘 맘에 들어요 . 손에 착 감기는 맛이있어서.. ^^
 
난도질당한 제목들

 

 

 

 

 

 

 

 

 

 

 

 

 

 

 

 

프란츠는 갑자기 이 대장정이 끝에 다다랐다는 인상을 받았다. 침묵의 구경꾼들은 유럽으로 좁아들었고, 대장정이 완수되는 공간은 지구 한복판에 있는 조그만 연단에 불과하게 되었다. 한때 연단 밑에 몰려들던 군중은 이미 오래전부터 외면한 터였고, 대장정은 관중이 없는 고독 속에서 계속되었던 것이다. 프란츠는 생각했다. 그렇다, 세상의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대장정은 계속되었지만, 그것은 신경질적이고 과민한 어떤 것으로 변해 버렸다. 어제는 미국의 베트남 점령에 반대하며, 오늘은 베트남의 캄보디아 점령에 반대하며, 어제는 이스라엘을 위해서, 오늘은 팔레스타인을 위해서, 어제는 쿠바를 위해, 내일은 쿠바를 반대하며, 항상 미국에 대항하며, 매번 학살에 반대하며, 또한 매번 다른 학살을 지지하면서 유럽은 행진을 계속했다. 하나의 사건도 빠뜨리지 않고 리듬을 따라가기 위해 그 발걸음은 더욱더 빨라졌고, 그래서 대장정은 빠른 발걸음으로 행진하는 바쁜 사람들의 행렬이 되었다. 마침내 무대는 더욱더 좁아져서 어느 날 면적 없는 한 점에 불과하게 된 것이다.

 

(중략)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런 구경거리를 제공하는 것 외에 다른 일도 할 수 있지 않은가? 이보다 좋은 다른 뭔가가 그들에게 남아 있을까?

프란츠의 생각이 옳다. 프라하에서 정치범의 사면을 위한 서명 캠페인을 벌였던 기자에 대해 나는 생각해 보았다. 그 사람은 이 캠페인이 정치범을 돕지 못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진정한 목표는 정치범의 석방이 아니라 아직도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있다. 그가 했던 것도 구경거리의 성격을 띠고 있다. 하지만 그에게는 다른 가능성이 없었다. 그에게는 행동과 구경거리 사이에서 선택할 권리가 없었다. 그에게는 한 가지 선택밖에 없었다: 구경거리를 제공하거나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 인간이 구경거리를 제공할 수밖에 없게 선고된 상황이 있게 마련이다. 침묵하는 권력(강 건너의 침묵하는 권력, 벽 속에 숨겨진 조용한 도청장치로 변신한 경찰)에 대항하는 그의 전투란 군대를 공격하는 연극단원의 전투인 것이다.

프란츠의 눈에 소르본 대학의 친구가 주먹을 치켜들고 강 건너의 침묵을 위협하는 모습이 들어왔다.




통역관은 세 번째로 메가폰에 대고 소리쳤다.

그에 대한 대답은 역시 침묵뿐이었고, 그것이 갑자기 프란츠의 고뇌를 광적인 분노로 바꾸어버렸다. 그는 태국과 캄보디다 사이의 다리로부터 몇 발짝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다리로 뛰어가 하늘을 향해 끔찍한 욕설을 퍼붓고는 요란한 총성 속에서 죽고 싶다는 엄청난 욕망에 사로잡혔다.

프란츠의 이러한 돌연한 욕망은 우리에게 뭔가를 기억나게 한다. 그렇다, 그것은 인간 존재의 극단들이 서로 가까워져 거의 닿을 지경이 되어 고상한 것과 천한 것, 천사와 파리, 신과 똥 사이에 더 이상 아무런 차이점이 없게 되는 꼴을 차마 보지 못하여 고압이 흐르는 철조망에 달려가 매달린, 스탈린의 아들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대장정의 영광이 행진하는 사람들의 코믹한 허영심으로 축소되고, 유럽 역사의 장대한 소란이 무한한 침묵 속으로 실종되어 역사와 침묵 간에 더 이상 아무런 차이점도 없게 되는 것을 프란츠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대장정이 똥보다 더 무겁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천칭에 자기 목숨까지도 기꺼이 올려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전혀 증명할 수 없다. 천칭의 한쪽 접시에는 똥이 있었고, 스탈린의 아들은 몸뚱이 전부를 다른 접시 위에 올려놓았지만 천칭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총을 맞고 죽는 대신 프란츠는 고개를 숙이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렬로 서서 버스로 돌아갔다.

 

 

 

 

*

ㅇ님의 '구경거리'에 대한 단상에 먼댓글로 쓴 글이었는데 비공개 처리하셔서 이 글도 이상한 구경거리가 되고 말았.....

이 글은 그냥 놔두기로 했다. '구경거리'로 시작해 구경거리로 끝나게 되는 글의 운명을 잠시 생각했다.

우리의 감정과 생각과 행동들을 따져 보면《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이 책 제목은 언제나 진리처럼 느껴진다.

ㅇ님을 짐작한 투사가 아니라 내 얘기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다시 책장에 꽂고 나는 다른 책으로 돌아간다. 디아나의 저주로 사슴으로 변한 악타이온이 자신의 사냥개에게 물어뜯기며 동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던 일화가 스쳐 지나갔다. 그는 길을 잃었다. 그것은 죄가 아니라 이유였다. 디아나의 목욕을 보게 된 건 그의 뜻이 아니라 뜻밖의 사건과의 조우였다. 이 일화는 원인과 결과가 정합적인 게 아닌 걸 알려준다.

우리의 곤란은 이 혼란 상태 때문이지 않을까. 모두가 잃음의 상태를 앓고 있다. 진정한 사실은 그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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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2016-10-23 09: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제가 잠든 사이에 이런 일이.... 제 불찰로 Agalma님의 글이 끈 떨어진 뒤웅박 신세가 됐었네요ㅠㅠ 어제 자기 전에 다시 읽어보니 이상한 문장이 너무 많아 아침에 수정하려고 비공개로 해놓은 것인데... 죄송합니다ㅠㅠ 지금은 수정해서 다시 공개해놓았어요^^;;

제가 조만간 꼭 읽고 말겠다고 벼르고 있는 작가 1순위가 쿤데라예요. 여태 한 권도 읽어보지 못해서.. 책은 계속 사서 꽂혀 있는데, 자꾸 읽는 책 수가 늘어서 12월 전에 읽지는 못할 것 같아요ㅠㅠ 그래도 언제나 마음 속엔 1순위로 남아있습니다 ㅎㅎ 다른 건 몰라도 이 책은 읽고 난 뒤에 꼭 리뷰를 쓰는 걸로...^^

AgalmA 2016-10-23 12:12   좋아요 1 | URL
저도 자고 일어나 상황을 알게 되었습니다ㅎ;;
그랬군요. 글을 다 쓰고 올렸는데, 아무님 글이 없...(@@)>...무슨 사정이 있어 비공개 처리를 한 것일 텐데 제가 괜히 이런 댓글을 남긴 바람에 아무님 입장도 이상하게 되어 버려서 저도 미안했어요^^;; 위에 원인과 결과와 혼란 얘기했다시피 상황이란 게 참 그래요... 아무님이 미안하실 일은 아닌 거 같아요^^;
많은 분들이 그렇듯이 아무님도 밀란 쿤데라 읽으시면 쏙 빠지실 거라 장담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