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꿔라, 문학하는 주체를

십중팔구 너희들은 고급독자가 될 뿐일거다 일갈했던 어느 교수님 생각을 종종 합니다. 
그걸 비웃던 누군가는 잘 나가고 못 나가고를 떠나 작가가 되고, 겁먹었던 누군가는 우울한 직장인이 되고 그랬지만 그건 예언은 아니었죠. 성과는 아쉽지만 모두 열심히 살았습니다.

* 사회라는 관점으로 봤을 때 문학은)
문학에게 혁명이란 사명을 덧씌우는 건 종교적인 데가 있어요. 
만병통치약(=해결사) 혹은 마지막 수송선으로 보는... 짐짓 이성적인 듯 문학의 대의를 논하며 비난하고 공격하는 자가 사실 가장 심하다는 게 아이러니.
그  저변엔 '구원'을 바라는 심리가 깔려 있어요. 문학 뿐이겠습니까. 정치학이든 경제학이든 과학이든 인간관계든.
자기계발서를 읽으면 성공의 길이 열릴 거 같은 심리도 '구원'을 바라는 현실적인 변형입니다.
자기계발서를 비웃지만 책은 늘 참고서처럼 이용되어 왔고 우린 이 심리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글을 쓰는 것도 구원을 바라는 심리가 깔려 있죠. 일단 나부터라도 구하고 싶고, 나를 만족시키고 싶은. '자기 치유'라는 말이 괜히 나왔겠습니까. 진리 추구니 역사적 사명이니 하는 거대 담론은 그 다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재미난 지점은 글쓰기가 사회와 시장이라는 메커니즘에 속하기 때문에 혁명이니 참여니 하는 요구들이 치고 들어온다는 거죠.
현실과 동떨어진 현학성과 지적 배출 같은 공허함을 왜 양산하느냐 하는 공격이. 
지금은 구닥다리 취급당하는 초현실주의가 당시엔 열광적인 환호를 받았던 건 흥미로운 일였죠. 
시대마다 요구하는 바가 약간씩 달라질 뿐였습니다. 무수한 사상의 흐름, 문예 사조들도 그 역학에서 나온 거라고 봐요. 
실존주의를 철학이라기보다 문학운동으로 평가하기도 하는 건 그래서고요.
출판되는 순간부터 글은 전적으로 작가의 것이 될 수 없죠. 나를 떠난 글은 내 것이 아니라는 말을 흔히 하듯이. 
나혼자 생각하고 쓰고 보고 끝낼 거면 그런 공격에 아랑곳하지 않고 써도 되죠. 
자기 죽고 나서 작품이 되든 화장실 휴지가 되든 상관 않는다면. 
전쟁통에 남의 집 화장실 휴지로 쓰이던 이상의 글이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건, 기적입니까, 행운입니까, 운명입니까. 아, 이 모든 추상적인 표현!
살아 남으면 이런 대우도 받는 거죠. 그래요.
카프카가 왜 자기 손으로 자기 작품을 처리하지 못했습니까. 일말의 소통을 바랐던 모든 사람, 작가들에게 저는 같은 인간으로서 연민을 가집니다. 
큰 테두리에서 보면 모든 인간은 종교적이죠. 무신론자도 무신을 믿는 거니까요.
결론적으로 저는 문학이 혁명이든 아니든 상관 않고 좋아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문학이 자유롭길 바랍니다. 내 추구와는 별개로 내가 그러고 싶듯.


* 개인 대 개인이라는 관점으로 봤을 때 문학은)
독자/작가 두 진영 다 공감을 바라지만 쌍방에게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 게 늘 딜레마입니다.
지금은 자본주의 시장이라는 거대 도매상까지 끼여 있으니 말예요. 
팔릴 거 같고 통할 거 같은 말만 하고 써라! 열라 머리 굴리는 작가들...아, 딱해라.
저는 오늘도 절판된 책을 여러 권 샀지요. 저는 독자이면서 구조자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책을 접할 때마다 합니다.


종말은 어떤 변화의 시작이 나타나기 전엔 말해지지 않죠. 그래서 저는 종말 소릴 들을 때 차라리 출발 신호로 독해합니다.
길게 늘인 과거와 미래 사이에 순간의 현재들을 어찌저찌 모아보고 말하기 바쁜 인간이 ˝종말˝을 말하는 건 오만같기도 하고요. 
"고급 독자˝ 소리에 비웃거나 겁먹었던 이들처럼 "종말"을 말할 때의 사정도 딱 그 짝인 듯.


(먼댓글) 꿈꿔라 문학하는 주체를 http://blog.aladin.co.kr/inkriver/818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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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통치약 2016-01-25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제말이 그렇다니까요?! 문학이란 이야기일뿐이고 허구로 지어낸 재미일뿐이지, 거기서 뭘 인간의 구원을 찾고 철학이 나오고 하냐고요 ㅋㅋㅋㅋ (문학비평가란 최고급 사기꾼이라고 생각하는 일인)

AgalmA 2016-01-26 01:36   좋아요 0 | URL
만병통치약 단어를 쓰면 만병통치약님이 나타나신다ㅋㅋ!
혼자 그러는 거야 누가 말리겠습니까마는, 어느 분야든 의미들 좀 과도하게 만들지 말았으면 합니다. 어차피 인간들이 다 만든 거잖아요~
결국은 막을 수 없겠죠. 그래왔듯이...

2016-01-25 2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25 23: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25 2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25 23: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26 01: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6-01-26 17:41   좋아요 1 | URL
사사키나 탕기님 글에 대한 반론이나 태클이 아님을 우선 밝힙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려는 것도 아닙니다. 그럴 능력도 없고요.

예, 종교적인 것도, 구원적인 것도 문학에서 분리할 수 없는 성질인 걸 압니다. 아니 느낀다고 하는 게 더 맞겠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강력한 글과 책이 성경인 것만 봐도 그렇죠. 경전들이 없었다면 종교가 이만큼 강력했을까요?

글에 대한 내 욕심, 문학에 대한 내 욕심으로 번민하던 날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제 치열함보다 덜해 보이는 글엔 분노하기도 했습니다. 꼴사납게도..

문학이 제 것으로서 나오는 게 아니라 문학의 힘이 제게서 나오길 바랍니다. 창조성,˝문학의 혁명성˝은 이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옥타비오 파스가 시인을 영매로 말한 게 이 지점이라고도 생각하고요.
그래서 모리스 블랑쇼나 바타유 등이 보는 사람이 지칠 정도로 끌고 나가던 사유의 경로를 경탄하며 바라보았습니다.
그 ˝혁명성˝은 외부를 위해 열려 있는 게 아닌 내부의 길인 거 같단 말이죠.

제가 말하고 싶었던 건 문학의 혁명적인 힘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현실을 변혁할 무엇으로 혁명을 끌어내야 한다는 목적성에 우려를 표한 겁니다. 사르트르와 블랑쇼가 대립한 지점이기도 하고.
그렇게 목적의 욕심에 얼룩져 만.들.어.지.는 글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언젠가 흔적님과의 대화가 생각나네요. 그러나 찾고자 하는 그 욕망과 노력에서 성숙하고 어떤 결과에 도달할 수도 있지 않느냐 하셨던. 사실 구도에 가깝죠. 저는 문학을 신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부처를 믿는 게 아니라 자신이 부처가 되어야 하듯이. 문학 너머에 도달하고 싶습니다. 가능하다면 이 모든 언어의 때들에서 자유롭고 싶습니다. 어찌 보면 제가 더 광신도일 지도.... 모리스 블랑쇼에게서 저는 그 치열함을 가장 잘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언어 앞에서 우린 구원보다 사실 좌절과 절망의 쓴맛을 더 느끼지만 그 속에서 행복해 합니다. 참 이상한 일이죠. 그리고 종교와도 닮은 경로...


문학은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이기도 하죠. 그래서 누군가에겐 안 봐도 그만인 하찮은 글쪼가리고, 누구에겐 무엇과도 바꾸기 싫은 보물이죠. 언제나 말하는 거지만 기운내세요. 문학과의 사랑에서 자신이 변절하거나 문학이 그를 끝없이 건져 올리거나 아니겠습니까.
문학의 죽음은 외부에서 오는 게 아니라 내부에서 오겠죠. 내가 죽으므로 나라는 외부의 총체가 허물어지듯이.

이 글을 쓰고 저는 또 얼마나 아픈지요...이럴 땐 제가 끔찍하게 싫어져요....

2016-01-26 17: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6-01-26 18:31   좋아요 1 | URL
혁명에 대해 외부/ 내부적 관점을 세심하게 구분해 말하지 않아 그 점이 오해와 상처를 드린 거 같다...지금 생각하면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런 구분을 한다면 제가 또 틀을 만드는 것이기도 해서....언어를 가지고 말을 한다는 건 참 어려워요...
탕기님과 님이 이해를 해주셔서 이 글에 대한 제 아픔은 좀 나아졌습니다.

하지만...문학에 대한 생각은 늘 아프죠. 상처의 덧남이죠. 언제나.

2016-01-27 1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27 17: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27 2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탕기 2016-01-26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galma님의 생각과 저도 비슷한데 누군가가 위에 `반론`이라고 말씀하신 모양입니다.
사실 저도 글에서 사사키와 동의하지 못하겠다는 뉘앙스를 계속 던졌고요. 어떻게 동의할까요;;

이 글을 읽고 흥미롭다고 생각했습니다.
코멘트 제목이야 <문학에게 뭘 바라는가>라고 했지만 agalma님이 분명 바라는 게 눈에 보이거든요.
[나의 글]이 [남의 글]이 되는 메커니즘은, 뭐 글 쓰는 분들이라면 다 아실 테고요.
제 생각에 사사키는 아마 그런 점을 혁명이라는 곳까지 끌고 가려는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질적이죠. 그 말에 수긍을 해야 할 것 같지만, 동의는 하지 못하는 정도? 가능성만 살짝? 사례가 있으니까요.
그렇지 않은 문학은 그렇지 않은 걸로 생각하고, 그래도 나머지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볼 수도 있고요.
사사키를 읽고 나서 요즘 심란합니다.

문학은 뭐다, 이렇게 딱 결정 짓는 건 오만이라 생각합니다.
문학은 그냥 문학이다, 문학은 혁명이다, 양쪽 다요. 스팩트럼이 얼마나 넓은데 말이죠.
뭔가 해보려는 것이든, 취향에 따라 읽는 것이든, 독서도 범위가 넓고요.

요즘 스베틀라나의 글을 읽으면서, 언제 써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합니다.
읽는 건 다를 수 있겠지만, 작가는 언제 뭘 써야 하는지, 쓸 수 없는지를 생각하니까요.
그래서 <체르노빌의 목소리>를 읽으면서, 아 내 글은 다 배설이구나, 이런 절망도 했어요...

단언하는 순간부터는 게임 끝이라는 건, 원리주의든 맹목이든 어떤 의미에서든 안타까운 사실이죠.
아, 어렵네요. ㅎㅎ
덕분에 이미 던져버린 글 한 번 더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

눈이 얼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추운 겨울인데 건강하게 지내세요!

AgalmA 2016-01-26 18:40   좋아요 0 | URL
사사키 글에 대해 반응이 극과 극이라...블랑쇼에 대한 평가도 그렇지만....도대체 왜 그럴까 흥미를 좀 가지긴 했는데 제 읽기 목록에 잘 들어가지지 않아서 답답한 채 늘 궁금해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 글을 통하는 거보다 제가 직접 보는 게 가장 좋겠죠.
탕기님의 읽기는 그런 분석이 세심해서 감사했습니다. 동의와 비동의의 접점도 잘 보여 주셨고요.

보편을 끌어내는 건 필요하기도 하지만 꼭 이 답이었어야 했나...보는 입장에선 늘 양갈래의 심정을 남기죠. 사람의 언어, 생각 회로는 이런 식이니...탕기님도 엣지재단 책들 많이 보셨으니 이 부분도 저랑 비슷한 심경이실 듯.

스베틀라나 <체르노빌의 목소리> ...읽다가 멈춘 상탠데, 탕기님 심정 조금 알 거 같아요. 제가 위에서 혁명에 대한 목적성ㅡ정치성에 거부감을 표했지만, 스베틀라나는 스스로 찾고 건져올린 정치성을 보여준다는 걸 문장을 읽으며 계속 느꼈습니다. 언젠가 하인리히 뵐을 처음 접했을 때랑 비슷한 감격.
이런 개별로서 지난하게 끌어올린 혁명성은 인정하지만, 사명을 놓고 그 틀에서 직조하는 혁명성을 저는 거부합니다. 그런데 참 미묘하기도 해요. 그의 의도와 다르게도 타인을 움직일 수 있다면 긍/부정을 떠나 성질로서만 보면 그 또한 혁명성을 가지니까...편협한 정치성으로만 판결될 수도 있지만 결과는 모르죠. 의미에 대한 평가는 늘 뒤에, 각자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니...
문학 자체의 혁명성과 외부적 혁명성을 명확히 가르지 않고 말하는 걸 양해해 주세요. 그것을 명확히 가르기가 저는 어려워서.

탕기님께 실례가 안 되었으면 했는데, 다행히 좋게 봐 주셔서 감사드려요. 어디서든 따뜻하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
 
서평이 뭡니까?

cyrus님이 보신 알라딘 운영 상황과 서평 의견이 제가 전반적으로 느끼던 점들과 유사해서 반가웠습니다. 좋은 서평에 대해 언급하신 알러디너에 대해서도요.

* [독자선정위원]에 대해서 몇 가지 본 게 있어 당부 차원에서 글 씁니다.
1. 독자 선정 위원회 이벤트 당첨 글에 신청자가 비밀글이 아닌 채 댓글 단 것을 목격
2. 서재에 독자선정위원이 되었다고 자랑하시는 분을 목격
그때 알라딘 게시판에는 공개적으로, 글 작성자에게는 비밀리에 각각 건의를 했습니다. 
비밀스러워야 하는 감독관 임무를 그리 떠벌리면, 그걸 노리는 사람들이 접근하는 건 인지상정 아니냐고요. 
이거저거 신경쓰는 거 귀찮아서 요즘은 어찌 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독자선정위원도 하나의 카르텔을 만들 수 있음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독자선정위원이 되는 것도 결국 적립금을 받으려는 자본주의 심리가 섞여 있으며, 자신이 선호하는 글에만 표를 주는 완장질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자신의 비밀스러운 직위로 인해 그만큼 자유로울 수 있으니까요. 부정적으로 흐를지 긍정적으로 흐를지는 그 사람, 그리고 그들의 선택에 따라 달라지겠죠. 이런 메커니즘은 국정원 댓글 부대도 동일. 사람이란 참 그래요...

독자선정위원이 모든 글을 살필 수 없는 한계도 있기에, 이를 파악한 글작성자들이 많은 사람들이 글을 잘 볼 수 있는 저녁 시간대 글을 올린다는 메커니즘은 또 어떤가요? 수많은 (좋아요) 속에 독자선정위원의 (좋아요)가 섞일 확률이 높을 테니까요. 화제의 서재글로 노출이 빨리 되기 위해 이웃을 최대한 늘리는 방도도 있을 겁니다. 관계 유지를 위해 좋아요도 남발하겠죠.
더 나아가서 이웃이 많은 파워작성자가 아니라면, 글 작성자가 누가 자신에게 좋아요를 주었는지 파악이 되는 상황에서 [이 달의 당선작]이 되면, 약삭빠른 사람은 독자선정위원으로 여겨지는 알라디너를 타겟 삼아 적극적으로 관심을 표할 테고, 서로 좋아요를 나누는 상황이 되겠죠. 이래서 제가 카르텔 얘기를 꺼낸 겁니다.
과연 제 억측이기만 할까요.
우리는 악의적이라고까지 할 수 없더라도 각자 이 시스템을 잘 이용하고 있습니다. 문제를 진짜 말하고 싶다면 자신에게 불리한 이런 건 살짝 피해서 좋은 얘기만 할 수는 없는 법이죠. 

이 글에 먼댓글 쓴 곰곰발님 글 따라가 보세요. 제 글이 수준미달이라 좋아요를 줄 수 없다는 평 좀 보시죠. 제 글의 수준을 떠나 저 행태가 완장질이 아닙니까. 그 눈 밖에 날까 무서워서 누가 제대로 말하겠습니까. 곰곰발님과 친분이 더 돈독하다면 당연히 눈치 보여서 저를 멀리 할 테죠. 이 문제를 단순히 제 피해의식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까?

전반적으로 제 글이 독자선정위원들께 매우 결례일 수도 있고 불쾌감을 줄 수도 있다는 거 압니다. 그리고 이 글로 제게 불이익이 있을 수도 있겠죠.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독자선정위원을 모독하거나 폄하하자는 게 아니라 이 자리를 빌어 서재를 이용하는 모두가 자신을 돌아 보자는 말을 하고 싶고, 앞으로 독자선정위원이 되실 분도 이를 잘 생각해 주셨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하는 뜻입니다.




* 서점이라는 시장과 관계된 [서평]에 관해서- 이상과 현실의 괴리
서평에서 객관의 중요성을 말하지만, 책 구매와 판매가 끼어드는 이상 그 좋음/객관성이란 것은 현실과 괴리가 있습니다.
현실은 어느 곳이든 매우 자본주의 시장화되어 있고 그것이 이성보다 다분히 감정으로 더많이 돌아가고 있다는 걸 지적하고 싶습니다.

(좋아요)는 1. 인맥의 교우도 있지만 2. 현재 내 감정과 지적 욕구를 그 글(서평이든 독후감이든)이 얼마나 충족시켜 주고 있는가 하는 내 감정 충족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좋아요) 안에 딸린 책 (구매)는, 내가 당신 책을 샀소! 알리는 인맥 관리용 선포가 없다면, 그 글의 객관적 훌륭함 때문이나 구매자의 필요 때문보다 다분히 구매자의 감정을 자극해서 판매가 되었다는 게 주요할 겁니다. 다른 많은 서평 중에 왜 그 서평으로 구매를 하게 됐나 각자 생각해봐도 알 일입니다. 충동 구매가 현재 이 소비시장을 가장 이끄는 원동력이죠. 감정마케팅이 그래서 날로 중요해지고 있죠. 

좀 더 펼쳐 생각해 볼까요.
객관 서평에 따른 구매와 감정 서평(독후감 이하)에 따른 구매가 있다고 나눠서 볼 때 후자가 더 판매가 잘 될 걸요. 이건 알라딘에서 설문조사를 안해도 저는 알겠습니다. 알라딘 당선작, 책이라도 나오게 되면 다른 많은 서평보다 그 글은 더 알려지고, 많은 사람들이 읽었기에 좋은 글이라는 평도 많아지고, 그렇게 그는 좋은 서평가와 작가 대열에 끼고, 역학이 착착 쌓이게 되는 겁니다. 사실 현실은 이런 상황이 더 많죠. 이름난 작가 책이 바로 베스트셀러가 되듯이. 
글을 어느 정도 써 본 이들은 이런 걸 모두 파악하고 있죠. 그의 양심에 따라 그 글의 상업성이 따라나올 테고요. 

또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한 번 좋아하게 된 작가 책을 꾸준히 사는 건 각각의 책이 훌륭해서 이뤄지는 객관적인 구매 효과일까요, 주관적 관심도와 선호로 인한 구매 효과일까요.
책 자체가 공부에 필요한 정보 차원도 있지만 심신수양, 취미, 선호 여러가지로 나뉘어지면서도 모이는 부분이 많습니다.
이렇듯 나누기 애매모호한 지점이 많은데, 주관을 배제한 객관을 최대한 살린 서평이 좋은 글이다? 
사람에 대해, 시장과 이 세계가 돌아가는 형국에 대해 많은 부분 놓치는 말입니다. 
사실은 서로 불편한 건 살짝 덮고 좋은 말만 하자는 취지도 있겠죠.


객관과 주관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을 얼마나 직시하며 솔직할 수 있느냐가 더 관건입니다.
마르크스 <공산당 선언>은 그가 현실을 객관적으로 봤기에 가능했다고만 볼 수 없는 주관적인 선언의 형태였습니다. 
선언은 주관적인 글에서 고도로 어렵고 위험한 형식입니다. 허점이 조금이라도 드러나면 주장과 글이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니까요. 
단순히 마르크스가 똑똑해서 가능했다 그리 생각하진 않으시겠죠?
<공산당 선언>은 인류가 존속하는 한 영원히 이어질 감명이 있으며, 계속 팔릴 것이라는 걸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우리의 확신은 과연 무엇에 기반하며 성장할 수 있는 것인지 또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됩니다. 
분명한 것은 단답형 답은 아닐 겁니다.



두서 없으나 일을 해야 해서;;; 이 정도로 갈무리합니다.  이 글 쓰느라 또 시간이ㅜㅜ;;;
나중에 더 덧붙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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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from 새빨간 활 2016-01-21 20:15 
    이 분 말에 의하면 신간평가단은 알량한 적립금에 눈이 먼 족속인 것 같다. 집단 이기주의에 대한 경고 같은데, 이 글을 읽은 신간평가단에 묻고 싶다. 서로, 다들 알고 지내십니까 ? 신간평가단이란 완장을 차시고 존나 횡포 부리시나요 ? 묻고 싶습니다. 신간평가단이신 동지 여러분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초딩 2016-01-21 16: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덮을 건 덮어두고 겸손할건 겸손해야할 것 같습니다. 라딘과 선정위원회요 ㅎㅎㅎ
인류의 무한한 발전을 위한 일도 대가 없이 일할순 없겠지만, 자신이 쏟아붓고 칠하는 (글로 사람들의 머리와 마음을 채색하는) 것에 대한 목적과 보상을 정확하게 인지해야할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을 모호하게 다 얻으려는 욕심이나, 목적이나 대상을 착각할 때 일을 망치기 쉽상인 것 같습니다 :-)
아 두서 없어요 초딩 글은 ㅋㅋㅋ

AgalmA 2016-01-21 18:09   좋아요 3 | URL
잘 말하고 계신데 끝에 가서 두서 없다 하심은 보호색이죠ㅎ?
모두가 사람이니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사실 이해 안 될 것도 없는 게 태반입니다.
맘 다스리기와 생각 세우기가 어려워 세상이 이런 것이지...매일 그런 생각입니다.


맥거핀 2016-01-21 16: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Cyrus님 글 아침에 읽었는데, 이미 많은 좋은 의견이 있어서 뭐 더 할 말이 없었습니다만..아직 여기는 댓글이 별로 없으니..^^;
말씀하신대로 일단 여기 글을 쓰는 이곳이 인터넷 서점의 판매 공간이라는 것을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할 듯 합니다. 일단 저부터도 왜 하고많은 곳을 놔두고 여기에 글을 쓰고 있나의 문제를 생각해봐야할 듯 합니다. 물론 인터넷에 어떤 책(영화도 마찬가지구요)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어떤 판구매의 문제와 별개가 아니겠습니다만....

AgalmA 2016-01-21 18:45   좋아요 3 | URL
맥거핀님 비판 의식을 발휘해 좋은 말씀 좀 해 주시지 왜 여기서 한담으로 끝내십니까^^; 그 맘 모르는 바도 아니지만요.
저도 처음엔 취미로 재미로 이곳에 터를 잡게 된 것인데, 이 공간 속에서 두루 살피다보니 현실과 다 겹치더군요. 알라딘이라는 나라에 사는 시민들처럼. 이곳에서도 현실에서와 마찬가지로 자기 입지와 주장을 우선시하고 있죠. 책이나 지식을 창과 방패로 삼아선 안될 일입니다.
이곳도 명백히 자본 시장이고 그 메커니즘은 배제한 논의는 반쪽자리죠.
추운데 건강 잘 살피십시오. 맥거핀님^^

2016-01-21 18: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21 18: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21 18: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21 18: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1-21 19: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적지 않은 글을 다 읽고, 그 중에 ‘이달의 선정작’을 고르는 게 쉽지 않은 일입니다. 활동 신청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선정작을 고르는 일이 남의 글을 평가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독자선정위원회 활동할 자신이 없습니다. ^^;;

예전에 ‘Thanks to 적립금’ 제도가 있었을 때, 정성 있게 쓴 ‘마이리뷰’에만 ‘Thanks to’를 눌러주었습니다. ‘마이리뷰’가 한 편도 없고, 그 대신 ‘마이페이퍼’가 있을 때, 그 ‘마이페이퍼’가 대충 썼는지 확인합니다. 글을 끝까지 읽어봅니다. 책 소개가 하나도 없는 ‘마이페이퍼’는 외면합니다. 인지도에 상관 없이 글쓴이의 수고가 느껴지는 글을 찾아서 ‘Thanks to’를 눌러줬습니다.


AgalmA 2016-01-21 19:34   좋아요 2 | URL
적립금이 탐나ㅎ 독자선정위원 신청해볼까 생각 잠깐 한 적 있는데, 제가 얼마나 타인에 대해, 수많은 글에 대해 객관과 관심을 쏟을 수 있을지 자신없어 바로 포기ㅎ;;
저도 되도록 책이나 정보 없는 페이퍼 쓰기는 지양하는 편입니다. 많고 많은 글 속에 그런 글까지 보게 만들진 말아야지 싶어서요. 제가 다른 분 글 좋아요를 누를 때도 이 방침은 대체로 고수하려 하고요. 무엇보다 좋은 글을 알리는 첨병 역할일 때가 기분좋죠^^

cyrus 2016-01-21 19:37   좋아요 3 | URL
올해는 책 이야기를 열심히 기록하고, 자신만의 생각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분의 글이 있으면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

AgalmA 2016-01-21 19: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니, 우키님 글이 어디로;;; 갔지ㅠ 우키님 이 글 보시면 그 댓글 다시 좀 올려 주시면?

암튼 내 댓글만 따로 남김..

작가들이 쓴 글쓰기 글보면, 사태를 얼마나 엄중하게 잘 볼 것이냐의 문제죠. 주관과 객관이 총동원되어야 할 문제인 것이죠.
그 치열한 고민이 잘 숙성되어야 좋은 글, 좋은 서평이 되는 거 같다 생각합니다. 글을 쓸 때 사실 나만큼 무서운 타인도 없죠. 날 무섭도록 까발리니까요ㅠㅋㅠ;;
우키님의 치열함이 님의 성숙에 분명 도움이 되시리라 생각합니다. 기운 잃지 마세요^^

우끼 2016-01-21 19:58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ㅎㅎ 글을 수정하다 보니 제 댓글이 Agalma 님 담벼락에 4개씩 올라갔거든요.. 이러다가 댓글도배를 하여 민폐를 끼치는게 아닌가 싶어 서둘러 지웠습니다 ㅠ 그 사이 답을 해주셨군요 ㅎㅎㅎ;;

AgalmA 2016-01-21 20:01   좋아요 2 | URL
글쓰는 사람을 충분히 배려하려면 댓글을 너무 빨리 달면 안 된다는 걸 종종 깜빡해요. 북플을 뜸하게 오기로 한 뒤로 있을 때 한꺼번에 답을 하자 맘이 좀 급해서 그랬던 거 같아요. 죄송합니다^^

우끼 2016-01-21 20:03   좋아요 2 | URL
아니에요 ㅎㅎ 사실 제가 글을 충분히 퇴고하고 올렸으면 이럴 일이 없었을텐데 ㅠㅠ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끼 2016-01-21 19:5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도 글을 쓰면서 항상 서평이냐 독후감이냐 문제가 맘에 걸려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때때로 리뷰를 쓸 때 누군가가 이 글을 볼 것이라 생각하고 쓰면, 자신을 감추기 급급하기도 했었습니다. 결국 이도 저도 아니게 되버린 듯한 글을 쓴 적도 있구요..이 때문인지 부담스러워서 자주 글을 올리지 못하고, `의무`가 부가되어야 글을 쓰니 몹쓸 습관이 들었습니다... 자신이 제외된 글은 쓰고 싶지 않은데, 사실 저를 위해서도 서평과 독후감이 결합된, 주관과 객관처럼 보이는 것들이 뒤섞인 내용이 필요합니다. 한없이 주관적이어서 저조차도 도대체 무슨 뜻으로 쓴 지 모르는 글은 문제가 되곤 해서, 어느 정도 책에 대한 내용은 필요한데..그렇다고 책에 관해서만 쓰면 저도 다시 보기 싫은 글이 되어버리니, 재미있는 글을 쓴다는 건 참 힘든 것 같습니다. 이런 불평은 제가 아직 조화로운 글쓰기, 삶에 핍진적이면서도 책의 세밀하고도 중추적인 부분을 잡아내는 글쓰기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는 거겠죠.
Agalma님께서 지적하신 것처럼 `순수한`글쓰기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각 상황에 맞게 최선을 다한 글쓰기는 하고 싶어요. 저에게 최선을 다하고, 글쓰기에 최선을 다하고, 독자에게 최선을 다한 글쓰기. 저는 막연하게, 그런 글쓰기가 상업적인 것과 연결되면 그 연결이 상업적인 것과 중립적인 거리를 가지리라 희망을 품어봅니다. 자본이니 뭐니 하는 것도, 사실 인간이 온기를 품고 사람을 대한다는 전제 하에서는 중립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수 없게 만드는 시스템은, 시스템이 만든 생각들은 수정해가야겠지만..

AgalmA 2016-01-21 20:15   좋아요 3 | URL
책은 지식을 배우는 딱딱한 장소만이 아닌 한없이 풍요로운 사유의 고장이죠. 그 속에서 나온 글들을 일기장이나 서랍에 보관하던 시대는 분명 아니죠. 시대 변화 속에 서평에 대한 개념 정립도 다시 되어가는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많은 것들이 오픈화되며 복잡해진 세계 속에서 우리는 얘기를 나누고 담론을 만드는 데 더 익숙해져야 할 겁니다.
분명한 건 솔직함과 최선의 자세가 가장 중요한 미덕 아닌가 합니다. 그것이 상업성이 최후까지 침범할 수 없는 보루라고도 생각하고요. 김수영의 시와 산문이 아무리 남루해질 정도로 인용되어도 절대 상업화 될 수 없는 것이 그 부분 때문이겠죠. :)

[그장소] 2016-01-21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ㅡ서평과 ㅡ독후감 ㅡ
페이퍼와 리뷰 ㅡ그것이 문제로다 ㅡ

오늘 이 뜨거운 현장을 놓칠뻔 했네.
객관이란게 사실 면면을 들여다 보면 대충 비슷한
색들이 얼렁뚱땅 뭉쳐있는 현상인데 현미경으로 아니 좀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 입자들은 각각 제 색들이 미묘하게 다르단 말이죠.크기며 모양이며 형태 색 각각
다른데 그걸 뭉뚱그려 객관이라 하는게 가끔 필요하니
그럴때가 다수의 의견이 필요하고 도출할 만한 의견에 수를 없에야할때 ㅡ즉 개체를 줄이기위함 ㅡ아닌지 ㅡ
그러니 다르게 읽히지 않으려는 발버둥 ㅡ과 그 다름에서도 살아남으려는 기이함의 독립전쟁은 투철하고
주관 ㅡ아...과연 다 다른 그것이 한곳에 있다고 그 속이 다 같을건가 ....객관은 어쩌면 없는지도 ㅡㅎㅎㅎ

잠시 머무는 객잔은 있어도 객관따위 욕망을 누른 것 뿐이라고..속하기 위해..ㅡ

AgalmA 2016-01-22 16:53   좋아요 1 | URL
너무도 지당한 말씀...그러나 참 그장소님다운 화법이라 쌓아올린 젠가 보듯 합니다. 하나를 뽑아서만 말하면 무너질 거 같아서^^

[그장소] 2016-01-22 16:57   좋아요 1 | URL
그럼 ㅡ무를 주세요~!!!걀걀걀~!!!^^
ㅋㅋㅋ읽어보니..뭘 저렇게 쌓았나..풉!^^
진짜..우르르 하겠는데??!!!

AgalmA 2016-01-22 17:04   좋아요 0 | URL
당신을 젠가 화법의 대가로 추대합니다아아아~~~
옷, 오늘 작명 괜찬타~~😚

감은빛 2016-01-31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우 공감하는 내용이어서 잘 읽었습니다.
저는 `객관적인` 이라는 단어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독자선정위원에 대한 지적도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시루스님의 글을 읽기 전에는 그런 것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만약 독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당선작을 선정한다면
알라딘이 여러가지 문제점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AgalmA 2016-01-31 17:2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감은빛님.
너무도 골치 아픈 문제라 더 생각도 하기 싫었는데....덕분에 오늘 또 생각 정리를 했습니다.
cyrus님 알라딘독자선정위원회 논의글에 마지막 댓글을 달았습니다.
저는 이 문제에 더 이상 관여 안할 생각입니다.
알라딘보다 저는 책에 더 관심을 가지기로 했거든요.
감은빛님이 고민하시는 것이 알라딘에도 부디 전달되길 바라며...
말씀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추운 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대칭성 - 현대물리학 이해의 핵심

제 직감에서 주절주절해 보면^^;...그 대칭성 때문에 "평행우주" 가설도 나왔겠구나 싶고..."공간과 시간의 성질을 같다"는 걸 쉽게 이해해 보면, 멀리 한 자리에서만 보면 지평선은 하나의 선이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면을 인식하게 돼  우리가 사물의 면면을 알게 되는 것과 연결해 볼 수 있습니다. 즉 우리가 이동하는 시간만큼 공간을 보게 되는 것. 이것은 4차원 방식의 관점일 테고, 시간이라는 1차원에 갇힌 인간은 아무리 이동해도 그에 종속된 3차원밖에 볼 수 없죠. 시간 차원을 넘어설 때 즉 이 직선적 시간차원에서 벗어날 때 11차원의 다른 공간을 볼 수 있을 듯. 타임머신이 시공간을 바꾼다는 설정은 지금 우리 생각의 한계인데, 물질성을 벗어나면 어떤 식일지.... 그래서 요즘 시간에 대한 고민이 참 많습니다. 늙음의 물리 현상이 아닌 차원적인... 늙고 병드는 게 어떻게 인식적인 문제인가 하겠지만 저는 많은 부분 인식 문제라고 봅니다.  시간 차원을 뛰어넘는 해탈의 경지는 그래서 말이 되는 것도 같고. 나이듦을 물리적 현실로 자꾸 치환시킬수록 인식도, 시공간도 협소해지죠. 상상력과 공감력 즉 생각 없이 사는 사람이 당장 눈 앞의 세계를 결정짓고 사는 걸 생각해 보세요.
양자물리학을 넘어설 때 인간의 생각과 차원은 대변환을 맞겠죠. 다윈과 프로이트, 튜링, 아인슈타인으로 인해 인식 전환을 맞았듯이.

어디까지나 제 생각 한계에서 하는 말이니 그저 그렇게도 생각하는구나 웃고 넘어가 주세요^^;;;
전문가가 아닌 선에서 말했다가 자칫 공격적인 논란이 생길까봐  친구공개ㅡㅅㅡ); 

* 북 다이제스터님 <대칭성-현대 물리학의 핵심> 먼댓글입니다.
http://blog.aladin.co.kr/713413104/8120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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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4 17: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6-01-04 18:10   좋아요 0 | URL
실수투성이 저는 이제 오타에도 놀라지 않고 얌전히 고칩죠. 네 ㅜㅜ;

cyrus 2016-01-04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에게는 너무 어려운 분야라서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모르겠어요. ㅎㅎㅎ

AgalmA 2016-01-04 18:11   좋아요 0 | URL
제가 잘못한 걸 까요ㅎ; 1차 책임은 북다이제스터님께ㅎㅎ

초딩 2016-01-04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새벽에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를 읽고 무상함이 느껴지고 거부할 수 없는 노화의 매정한 사실들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했지만, 무상함에 무상함을 더하니 나이를 먹는 것 자체에 더 무감각해지더라구요. `시간` 그 것을 인지할 때 그제서야 `시간`이 나에게 존재함을 발견하는 것 같아요 :-) 흠흠 그래서 다 잊고 `지금`을 살아가려합니다.

AgalmA 2016-01-04 18:26   좋아요 0 | URL
방금 초딩님 그 글 읽고 왔습니다. 독서 계획 레퍼런스 좋던데요/ ˝밑줄-책 속 사유노트-책 끝 레퍼런스 노트˝ ^^
해가 뜨고 지고, 배고프고 자고 싶고를 매일 겪는데, 시간 생각을 안 할 수가요^^; 확장의 차이일 뿐 무의식 중인 순간마다 하고 있죠 :)

2016-01-04 23: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04 23: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04 2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05 15: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05 19: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1. 피츠제럴드와 젤다의 사생활 이야기도 작품과 자주 비교 언급되지만, <위대한 개츠비>가 물질 만능주의 시대에 대한 비판적 작품이란 세간의 평은 사후적 왕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들이, 예술가들이 자신이 만들어내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모른다고 종종 말하는 것처럼 우리는 자신을, 시대를 폭로하는 내부 고발자이기도 하겠죠. 글이 쓰는 자의 어떤 (것/식) 반영이라는 전제를 생각할 때.
작가-소설 간극이 객관적이든 주관적이든 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고 봐요. 어쨌든 독자인 우리는 제 3자이며, 작가는 소설과의 대결 속에서 독자를 생각할 여유가 없죠. 끊임없이 선택과 결단을 내리며 진행해 나가야 하는 상황이니까요.
작가는 자신의 소설을 읽지 못하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블랑쇼의 말은 은유가 아니라 매우 사실적이라고 생각하며 동의합니다.
그래서 톰도, 데이지도, 개츠비도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피츠제럴드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하고요. 어디까지나 제 생각입니다~_~;

2. 피츠제럴드의 <겨울 꿈>이라는 단편이 있는데, 개츠비-데이지의 과거에 대한 프리뷰 같기도 하죠. 뭐랄까. 피츠제럴드는 이런 스토리의 원형을 계속 재현하고 싶어했다는 생각도 들었죠. 하루키가 단편을 장편으로 확장하며 구축하는 공통된 모티브를 보듯이. 그래서 저는 <위대한 개츠비>에서 시대의 통속성보다 작가 자신이 어떤 동인에서 움직이고 있는지 파악하고 있었을까가 궁금한 거죠.

통속 소설 관점에서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와 비교도 재미난 지점입니다. 통속성에 대해 그 작품은 파악하고 썼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 작품의 이전인 <위대한 개츠비>가 더 모던한 건 당시의 낭만성 때문일까, 작가의 개성 때문일까 가늠해보게 되기도... <무진기행>의 통속성과 모던함...그런 것들이 스쳐가며... 보들레르가 모더니티를 변함없을 현대성으로 본 건 정말 적확하다고도~
결국 저는 <위대한 개츠비>는 내용의 통속성보다 전체를 지휘하는 모던함에 더 방점을 두게 됩니다. 제 취향이겠죠 :)


에이바님 리뷰에 대한 댓글
: http://blog.aladin.co.kr/769383179/8024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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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5-12-11 1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표지도 마음에 듭니다^^

AgalmA 2015-12-11 12:47   좋아요 1 | URL
어떤 의미에서 삶은 참 애닯죠. 비슷한 것들은 서로 잘 모이고 어울리지만 반목하는 것도 기필코 있으며 공존하죠. 또한 그것들이 모여 전체의 조화를 보여주기도 하고...그래서 선과 악은 성질의 구분이지 완전한 이분법이 될 수 없는 것이죠. 바타유가 금기는 위반과 함께 성립한다고 했듯이.
나는 무엇을 모으고(생기게 하고) 무엇을 멀리하는가(버리려 하는가) 늘 관심을 기울입니다. 우리는 일종의 균형추, 잘만 한다면 고요롭기도 할 테지만 쉽게 광풍에 휩싸이기도 하고...

이런 말 해놓고,
즐거운 점심 시간 되세요~합니다. 하하))

북다이제스터 2015-12-11 21:07   좋아요 0 | URL
균형이란 것이 가능한지 균형이란 것이 과연 좋은 것인지 생각 듭니다^^

AgalmA 2015-12-12 02:12   좋아요 1 | URL
예전에 객관이라는 게 존재하겠느냐 물으셨던 거란 비슷하신데요.
http://blog.aladin.co.kr/durepos/7797497

제가 말씀드린 균형이란 상태적인 것이지
완벽함이라든지 획득을 확신하는 추구를 담고 있는 정의적인 뜻은 아니었습니다 :)

2015-12-11 2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11 2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11 2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12 2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12 19: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12 0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12 03: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12 0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12 03: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과학의 아름다움

스티븐 제이 굴드 <풀하우스>에서 야구 나오는 장이 제일 재미없긴 했습니다; 하지만 보편적인 경기도 아닌 걸 이론화한다고 따지는 리처드 도킨스도 참 여유없어 보입니다.
사람은 지리적 위치와 문화, 취향의 영향을 많이 받는 걸 감안하면, 이론에도 다분히 반영된다는 걸 감안해야죠. 그런 배려, 과학에는 없다! 이려나요.
스티븐 제이 굴드가 자신이 좋아하던 야구에서 보편성을 끄집어내는 것도 과학적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과학도 그런 상상력의 도약으로 많은 이론이 나온 분야 잖아요. 꿈에서 수식을 얻은 이론들도 꽤 되던데; 스티븐 제이 굴드는 그런 것 같다~가 아니라 수학적 계산을 도출하기도 했죠. 게다가 과학에서 모든 보편성을 포섭, 포괄하는 이론이 그리 많지도 않잖아요. 만유인력이나 상대성 이론 정도가 이견이 없으려나요. 리차드 도킨스 대로라면 과학자들이 자신이 채택한 범주에서 이론을 만드는 것 자체를 공격해야 할 듯. 반증이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리처드 도킨스의 스티븐 제이 굴드 야구론 공격은, 스티븐 제이 굴드가 주장한 ˝진화의 다양성˝이 반영된 이론의 다양성을 공격하는 모양새가 되었어요. 

아인슈타인이 양자물리학자 닐스 보어를 반박할 때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라고 했죠. 우주의 법칙은 우연에 지배될 수 없다는 생각이죠.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이론(아원자 세계, 전자의 세계에서는 전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알 수 없고, 전자는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이기 때문에 오직 확률만이 존재한다)에 아인슈타인의 인과율이 지배하는 필연의 세계는 다시 한 번 타격을 입죠. 리처드 도킨스는 <눈먼 시계공>에서 시계를 만든 창조자-신을 명백히 부정하였죠. 우연성에 있어선 리처드 도킨스나 스티븐 제이 굴드도 의견을 같이 한다고 보는데, 시시콜콜한 걸 따지는 건 어느 분야나 참...과학이니까 더 그래! 네, 네.

국지적이고 개인적인 것을 따지기보다 미국에서 테슬라가 묻히고 에디슨이 추앙받았던 이데올로기, 국가적 부조리 같은 걸 더 문제적으로 따져야 하는 거 아닌가 합니다. 글로벌 시대라고 해도 여전하죠. 외계인? 사람들은 푸하하 웃고 말지만, 이 사안이 미국 뿐만이 아닌 전 국가의 보안 문제...<외계지성체의 방문과 인류 종말의 문제에 관하여> 에서 이 문제를 보고 웃다가 문득 굳어졌다는-_-)


* 고양이라디오님 [리처드 도킨스 <과학의 즐거움> 리뷰(http://blog.aladin.co.kr/708700143/7909158)]에 대한 먼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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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6 22: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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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6 2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