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책과 e book을 병행해 읽는데, 재독, 삼독, 사독까지 하는 책은 대부분 e book이다. e book으로 읽으면 머릿속에 오래 기억되지 않아서 더 재독한다. 뇌과학자들이여, 이거 왜 이런 거요? 정재승 교수는 종이책과 e book 읽기의 물리적 차이는 증명된 바 없다고 했지만 그게 아닌 것 같은데...... 리뷰로 남겨도 몇 달 지나면 내가 이렇게 썼@@? 신기해하며 읽을 때가 많다.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처럼 기억과 망각에서도 망각의 힘이 더 센 걸 절대적으로 실감한다. 나는 무너지는 기억 광산에서 어떻게든 기록을 캐서 남기려는 광부. 우리의 육신은 필멸의 선고를 이미 받았으므로.

올해 너무 소설과 에세이에 치중해 읽은 게 아닐까 걱정했다. 이 원인에는 하루키의 공이 매우 큰데, 하루키의 장편소설과 단편소설, 에세이, 그에 관한 많은 에세이들, 그가 좋아한 작가들의 소설들을 고구마 줄기 끌어내듯 읽느라 앨리스의 즐겁고 끝을 알 수 없는 굴속에 떨어진 기분이었다. 이런 굴이 열릴까 봐 하루키 소설은 단단히 작정하고 읽기 시작한다. 그렇게 신나게 읽고 나니 2020년이 끝나가고 있다'ㅁ')"

정리를 해보니 소설과 에세이를 읽은 분량과 인문학·사회학·과학·경제경영·예술 분야를 읽은 분량과 비교하면 엇비슷(하게 보이려고 노력)해서 조금 안도했다. 곧바로 왜?라고 자문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도 없고 소설 나부랭이나 읽는다는 눈총과 편견을 자격지심으로 가져서 일까. 문학을 많이 읽으면 공감 능력이 발달한다는 둥의 점잖은 항변은 식상한 변명 같다. 되는 거 없는 세상! 읽고 싶은 대로 읽는 게 뭐 어때서!라고 반박할 배짱도 나는 없나. 책 자체를 가까이하지 않는 세상이잖아. 일기처럼 혼자만 읽고 음미한다면 일 년 내내 소설만 읽어도 무슨 상관이랴. 리뷰를 쓰고 웹에 올리면서 자기 검열과 틀이 다양하게 만들어졌다. 어떠한 손가락질이라도 맞받아치기 위해 더 열심히 읽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진짜 읽고 싶은 것과 읽어야 될 것들을 양편에 두고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떠든다는 소릴 듣고 싶지 않아 분야를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읽었다. 다행히 나는 호기심이 강한 사람이라 생소한 지식이면 뭐든 흥미가 생겼다. 모름지기 책쟁이라면 호기심과 노력은 반반이어야 한다. 호기심이 일지 않는다면 노력 엔진에 발동이 걸리지 않으니까. 하지만 어느 순간엔 뭘 위해서 이렇게 열심히 읽는지 의기소침해진다. 어니스트 베커는 『죽음의 부정』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유기체의 모든 기능을 작동케 하는 원동력이며, 이러한 실존적 역설과 삶 자체의 부조화가 사람을 괴롭게 한다고 말했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읽고 쓰는 쾌감은 비슷한 고통을 동반한다. 전쟁과 평화가 왜 쌍이겠나. 그것들은 반대의 쌍이 아니라 함께 움직이는 쌍이다. 이런 관계를 인과의 부등식으로 모두 설명할 수 없다.

천재 시인이었던 릴케는 『말테의 수기』에서, 어린 나이에 쓴 시는 보잘 것 없으며 시는 감정이 아니라 경험이기 때문에 한평생을 기다려 맨 마지막에 좋은 시 열 줄을 겨우 쓸 수 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시와 소설을 즐겨 썼고 작가들의 작가로 칭송되는 레이먼드 카버나 보르헤스가 말년에 남긴 짧은 시들은 우리가 인생을 바라보는 명암을 생각하게 한다.

「마지막 조각 글」 - 레이먼드 카버

그럼에도 너는

이 생에서 네가 얻고자 하는 것을 얻었는가?

 

그렇다.

 

무엇을 원했는가?

 

나 자신을 사랑받는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

이 지상에서 내가 사랑받는 존재라고 느끼는 것.

「후회」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나는 인간이 범할 수 있는

가장 나쁜 죄를 저질렀다. 나는

행복하지 못했다. 망각의 빙하가

내 몸뚱이를 끌고 가 무참하게 내동댕이쳤으면.

부모님은 위험하고도 아름다운 삶의

유희를 위해, 땅과, 물과, 공기와, 불을 위해

나를 낳으셨다.

나는 그분들의 기대를 저버렸다. 나는 행복하지 못했다.

그분들의 푸른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는 하찮은 것들을 교직하는 예술에

매달려 온통 정신을 쏟았다.

그분들은 내게 용기를 물려주셨지만 나는 용감하지 못했다.

불행한 사람의 그림자는 나를

떠나지 않고 언제나 내 곁에 머물러 있다.

어렵지 않은 시이지만 마냥 동의하기도 부정하기도 힘든 아포리즘이 담긴 시다. 인간이 모든 걸 경험하는 건 불가능하고, 경험하지 않은 걸 상상과 지식을 총동원해 알려 하고 표현하지 않는다면 누가 이 세상을 티끌만큼이라도 이해할 수 있으며 바꿀 수 있을까. 우리는 결론을 알고 있다. 이 세상의 모든 걸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은 없으며, 한 사람의 힘으로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1인분의 삶을 짊어진 인간. 어떤 능력자라도 자아를 벗어난 삶을 살 수 없다.

“중심이 여러 개 있으면서 둘레를 갖지 않는 원”(무라카미 하루키 『일인칭 단수』, 「크림」 중에서)은 아마 독서에도 해당될 것이다. 한해 많은 책을 읽고 또 읽었지만, 내가 다 읽지 못한 책과 맥락은 더 많다. 내가 중심이라고 말할 수 없다. 나는 유동하는 주체다. 말테 라우리츠 브리게처럼 아무것도 아닌 나는 읽고 또 읽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쓰고 또 쓴다. 나의 시간은 고양이나 겨울나무의 시간과 다르지 않고 우리는 각자 최선이다. 나는 사람이라서 부끄러움과 반성을 더 품고 가지만 앞으로 나아가려 하고 있다. 끊임없이.

 

"나는 지금 무슨 일이든지 시작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내가 보는 법을 배우는 이때에. 내 나이 벌써 스물여덟이지만, 아직까지 거의 아무것도 해놓은 일이 없다. 다시 말해 보자. 나는 카르파초에 대해 글을 한 편 썼지만 형편없었다. 어떤 오류를 모호한 수단으로 증명해 보이려는 내용으로 된 「결혼」이라는 희곡을 한 편 썼고, 시도 썼다. 아아, 어린 나이에 쓴 시는 별로 보잘 것이 없다. 시는 기다려야 한다. 한평생을, 그리고 될 수 있는 대로 오래 살아서 의미와 단맛을 모아야 한다. 그러고 나면, 맨 마지막에 좋은 시 겨우 열 줄을 쓸 수 있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시는,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감정이 아니다(감정은 이른 나이에도 충분히 갖는다). 그것은 경험이다. 시 한 줄을 쓰기 위해서는 많은 도시와 사람과 사물을 봐야 한다. 동물들을 알아야 한다. 새들이 어떻게 나는지 느낄 수 있어야 하고, 작은 꽃들이 아침에 피어날 때의 몸짓도 알아야 한다. 잘 모르는 지역의 길들, 예기치 못했던 만남, 그리고 오래전부터 다가오는 것이 보이던 이별들을 회상할 수 있어야 한다. 아직 미궁에 빠져 있는 어린 시절의 날들, 기쁘게 해주어도 (다른 아이라면 기뻐했을 텐데) 그것을 이해하지 못해 마음 상하게 해드렸던 부모를, 그리도 이상하게 시작하여 그토록 깊고 힘들게 변해 갔던 소아 질병들을, 조용하고 외진 방에서의 대낮과 바닷가의 아침을, 아니 바다 자체를, 바다들을, 높이 솨솨 소리를 내며 별들과 함께 날아가 버렸던 여행의 밤들을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그 모든 것을 생각할 수 있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어느 것 하나 똑같지 않은 수많은 사랑의 밤들에 대한 기억과, 진통 중인 산모의 외마디 비명과 상처가 아물어 가벼워진 몸으로 해쓱하게 잠든 산모에 대한 기억이 있어야 한다. 죽어 가는 사람 곁에도 있어 봐야 하고, 창문이 열려 이따금 덜컹거리는 방에서 죽은 사람 곁에 앉아 있어 봐야 한다. 그러나 추억이 있는 것만으로도 아직 충분하지 않다. 추억들이 많아지면 그것들을 잊을 수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추억들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큰 참을성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추억들 자체는 아직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들이 우리들 안에서 피가 될 때, 시선과 몸짓이 되고, 이름이 없어져 우리 자신과 구별할 수 없게 될 때, 그때 비로소 매우 드문 시간에 시의 첫 낱말이 그 한가운데서 일어나 바깥으로 나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모든 시들은 이와 다르게 생겨났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시가 아니다. 그리고 희곡을 썼을 때도, 나는 얼마나 잘못했던가. 서로를 힘들게 하는 두 사람의 운명을 이야기하기 위해 제삼자를 필요로 했으니, 나는 모방꾼이요, 바보가 아니었던가? 나는 얼마나 쉽게 함정에 빠졌던가. 나는 알았어야만 했다. 모든 사람의 인생과 문학에 등장하는 이 제삼자, 결코 존재한 일이 없는 이 제삼자의 유령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그래서 그를 무시해야만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 제삼자는 자신의 가장 심오한 비밀로부터 인간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애쓰는 자연이 내놓은 구실 가운데 하나다. 그것은 병풍에 불과하고, 드라마는 그 뒤에서 진행된다. 그것은 실제 갈등의 소리 없는 적막 속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나는 소음이다. 지금까지 모든 작가들에게는 문제가 되는 두 인물에 관해서만 말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던 게 아닌가 싶다. 제삼자는 바로 그렇게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다루기 쉬운 것이고, 누구나 제삼자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쓴 희곡 첫머리부터 제삼자를 등장시키고자 하는 초조감이 느껴진다. 그들은 제삼자를 기다리지 못한다. 그가 등장하자마자 모든 것이 풀린다. 하지만 그가 늦으면 얼마나 지루한가. 제삼자 없인 거의 아무 일도 일어날 수가 없다. 모든 것이 정지하고 정체해 하염없이 기다린다. 정말 이렇게 정체와 정지 상태가 계속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극작가 양반, 그리고 너, 인생을 아는 관객이여, 이 제삼자가 실종되기라도 한다면, 이 인기 있는 방탕아 또는 복제 열쇠처럼 모든 혼인 생활에 잘 들어맞는 건방진 젊은이가 사라져 버린다면 어쩌겠는가? 예컨대 악마가 그를 데리고 갔다면 어찌하겠는가? 그렇게 가정해 보자. 사람들은 극장 안에서 갑자기 인공적인 공허를 느낄 것이고, 마치 위험한 구멍이라도 되는 듯이 그 공허를 벽으로 둘러막을 것이다. 오직 위층 특별석 가장자리에서 날아오른 좀나방들만 의지할 곳 없는 텅 빈 공간을 어지럽게 날아다닐 것이다. 극작가들은 더 이상 그들의 별장에서 즐기지 못할 것이고, 모든 공공 감시인들이 극작가들을 위하여 극중 사건 자체였던,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그 제삼자를 찾으러 세상 구석구석을 돌아다닐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이 〈제삼자들〉이 아니라, 그 부부 두 사람이다. 그들에 대해서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할 말이 많을 텐데도, 아직까지 무엇 하나 이야기된 것이 없다. 비록 그 두 사람은 괴로워하고, 행동하며, 어찌할 줄을 모르고 있건만.

우스운 일이다. 나는 여기 작은 방에 앉아 있다. 나, 브리게는 스물여덟 살이 되었고, 아무도 나를 모른다. 나는 여기 앉아 있고,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생각을 시작했다. 파리의 흐린 오후 6층 방에 앉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사람들이 아직껏 어떤 실제적인 것과 중요한 것을 보지 못했고, 인식도 못했고,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 가능할까? 하고 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생각한다. 수천 년 동안이나 잘 보고, 깊이 생각하고, 기록할 시간이 있었는데도 사람들이 그 수천 년을, 마치 버터 빵과 사과 한 개를 먹는 학교 휴식 시간처럼 헛되이 흘려보냈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그렇다, 그럴 수 있다.

수많은 발명과 발전에도 불구하고, 문화와 종교와 철학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삶의 표면에만 머물 수 있었을까? 그렇더라도 전혀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닌 이 표면조차 믿을 수 없을 만큼 따분한 천으로 덮어씌워 그것이 마치 여름 휴가철의 거실 가구처럼 보이게 할 수 있었을까?

그렇다, 그럴 수 있다.

세계사 전체가 오해되었다는 것이 가능한가? 마치 어떤 낯선 사람이 죽어서 사람들이 그 주위에 둘러서 있을 때, 그 한 사람에 대해서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한곳으로 몰려간 사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사람들이 언제나 군중에 대해서만 말했기 때문에 과거가 잘못되었을 수 있는가?

그렇다, 그럴 수 있다.

자기가 태어나기도 전에 일어난 일을 만회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능할까? 누구나 모든 조상들로부터 태어났고,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을 테니, 다르게 알고 있는 사람들의 말에 넘어가면 안 된다는 것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상기시켜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렇다, 그럴 수 있다.

이 모든 사람들이 이제까지 결코 없었던 과거의 일을 아주 정확하게 아는 게 가능할까? 모든 현실들이 그들에게는 의미가 없어 그들의 삶이, 그 어느 것과도 연관되지 않고, 텅 빈 방 안의 시계처럼 흘러갈 수 있을까?

그렇다, 그럴 수 있다.

살아 있는 소녀들에 대해 사람들이 아무것도 모를 수 있을까? 사람들이 〈여인들〉, 〈아이들〉, 〈소년들〉이라고 말하면서, 이 낱말들이 오래전부터 더 이상 복수(複數)가 아닌 무수한 단수만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아무리 교육을 받았다고 해도) 모를 수 있을까?

그렇다, 그럴 수 있다.

〈신〉이라고 말하면서 자기들이 말하는 것이 서로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을까? 초등학생 둘을 보기만 해도 된다. 한 명이 칼 한 자루를 사고, 같은 날 다른 친구가 완전히 똑같이 생긴 칼을 산다. 일주일 후에 그들이 그 두 개의 칼을 서로 내보인다면, 그것들은 비슷한 데가 거의 없어진 상태일 것이다. 그렇게 칼들은 서로 다른 두 사람의 손에서 다르게 변해 버린 것이다, (물론, 한 학생의 어머니는 그걸 보고 말할 것이다, 너희들은 뭐든지 언제나 그렇게 금방 다 못쓰게 만들어야 하니, 라고.) 아, 그렇지. 사람이 신을 이용하지 않으면서도 그 신을 지니고 있을 수 있을까?

그렇다,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가능하다면, 그런 가능성의 빛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렇다면 세상없어도 무슨 일이 일어나야 한다. 누구든지 이와 같이 불안한 생각을 해본 사람이라면 지금까지 놓친 것 가운데 무엇인가를 시작해야 한다. 그가 그저 평범한 사람, 전혀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라 해도 말이다. 지금 아무도 없지 않은가. 이 젊고 하잘것없는 외국인, 브리게는 6층에 앉아서 글을 써야 할 것이다. 밤이나, 낮이나. 그렇다, 그는 쓰지 않으면 안 될 것이고, 그것이 마지막이 될 것이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말테의 수기』

 

 

 

 

 

 

 

 

 

 

♣ 완독한 책에 대해서

리뷰를 쓴 책도 많고 매달 독서기록으로 간단평과 밑줄 긋기를 남겨서 올해는 간단히 정리만 했다.

(1, 2, 3번까지만 순위. 나머지는 같은 저자인 책으로 묶거나 별점에 따른 분류)

 

 

[인문학 & 사회학]

1.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 ★★★★★

2. 마이클 샌델 『공정하다는 착각』 ★★★★★

3. 에리히 프롬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재독) ★★★★★

버트런드 러셀 『러셀 서양철학사』 ★★★★★

신영복 『강의』 ★★★★★

미셸 푸코 『비판이란 무엇인가? 자기 수양』(재독) ★★★★☆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재독) ★★★★

채사장 『지대넓얕 0』 ★★★★☆

채사장 『지대넓얕 1』 ★★★☆

채사장 『지대넓얕 2』 ★★★

김승섭 『우리 몸이 세계라면』 ★★★★

로버트 그린 『인간 본성의 법칙』(재독) ★★★★

말콤 글래드웰 『타인의 해석』(재독) ★★★★

다미 샤르프 『당신의 어린 시절이 울고 있다』 ★★★★

수전 팔루디 『다크룸』 ★★★★

안희경 외 『오늘부터의 세계』(재독) ★★★★

슬라보예 지젝 『용기의 정치학』 (재독) ★★★★

윌 스토 『이야기의 탄생』(사독) ★★★★

김지은 『김지은입니다』 ★★★★

존 맥피 『네 번째 원고』★★★★

고영범 『레이먼드 카버』(클래식 클라우드 13) ★★★★

조대호 『아리스토텔레스』(클래식 클라우드 9) ★★★☆

최은창 『가짜뉴스의 고고학』 ★★★☆

한병철 『폭력의 위상학』 ★★★☆

김정선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

폴 김, 김길홍, 나성섭, 함돈균 『교육의 미래, 컬처 엔지니어링』 ★★★☆

고성배  『한국 요괴 도감』 ★★★☆

윌 듀런트 『내가 왜 계속 살아야 합니까』 ★★★

레나 모제 『인간증발』 ★★★

김완 『죽은 자의 집 청소』 ★★★

스탠리 피시 『문장의 일』 ★★★

메이슨 커리 『예술하는 습관』 ★★★

 

 

 

 

 

 

 

 

 

 


 

 

 


 

 

 

 

 

 

 

 

 

 

 

 

 

 

 

 

 

 

 

 

 

 

 

 

 

[경제경영 & 자기계발]

1. 제러미 리프킨 『소유의 종말』 ★★★★★

2. 김난도 외 『트렌드 코리아 2021』 ★★★★☆

3.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행운에 속지 마라』 ★★★★☆

알렉산드리아 J. 래브넬 『공유경제는 공유하지 않는다』 ★★★★

김난도 『김난도의 트렌드 로드』 ★★★★

임홍택 『90년생이 온다』 (재독) ★★★☆

노성열 『AI 시대, 내 일의 내일』 ★★★☆

유발 하라리 외 『초예측』(재독) ★★★

유발 하라리 외 『초예측, 부의 미래』(재독) ★★★

토마스 C. 콜리 『습관이 답이다』 ★★★

댄 애리얼리 『루틴의 힘』 ★★★

이서윤, 홍주연 『더 해빙』 ★★

코르넬리아 토프 『침묵이라는 무기』 ★★

 

 

 

 

 

 

 

 

 

 

 

 

 

 

 

 

 

 

 

 

 

[과학]

 

1. 엘리에저 J. 스턴버그 『뇌가 지어낸 모든 세계』 (재독) ★★★★★

2. 올리버 색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재독) ★★★★★

3. 스티븐 호킹,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짧고 쉽게 쓴 ‘시간의 역사’』 ★★★★★

스티븐 핑커 외 『마음의 과학』 ★★★★★

짐 홀트 『아인슈타인이 괴델과 함께 걸을 때』 ★★★★★

리처드 파인만 『물리법칙의 특성』 ★★★★

안드레스 곰베로프 『어느 칠레 선생님의 물리학 산책』 ★★★★

수 프렌치 『딥스카이 원더스』 ★★★★

토마스 헤이거 『공기의 연금술』 ★★★★

랜들 먼로 『위험한 과학책』 ★★★★

엘든 테일러 『무엇이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는가』 ★★★☆

 

 

 

 

 

 

 

 

 

 

 

 

 

 

 

 

 

[소설]

1. 팀 오브라이언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 (재독) ★★★★★

2. 테드 창 『당신 인생의 이야기』(재독) ★★★★★

3. 레이먼드 챈들러 『기나긴 이별』 ★★★★★

나쓰메 소세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

다니엘 페나크 『몸의 일기』 ★★★★☆

켄 리우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재독) ★★★★☆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달걀과 닭』★★★★☆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삼독) ★★★★

무라카미 하루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합본』(재독) ★★★★

무라카미 하루키 『기사단장 죽이기』(1~2) ★★★★

무라카미 하루키 『1Q84』(1~3. 재독) ★★★☆

무라카미 하루키 『반딧불이』(재독) ★★★★

무라카미 하루키 『여자 없는 남자들』 ★★★☆

무라카미 하루키 『일인칭 단수』 ★★★☆

엠마뉘엘 카레르 『러시아 소설』 ★★★★

필립 k. 딕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

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재독) ★★★★

오스틴 라이트 『토니와 수잔』 ★★★★

리처드 브라우티건 『미국의 송어낚시』 ★★★★

한유주 『숨』 ★★★★

니콜 크라우스 『어두운 숲』 ★★★★

루시아 벌린 『내 인생은 열린 책』 ★★★★

이창래 『척하는 삶』 ★★★★

미야베 미유키 『눈물점』 ★★★★, 『흑백』 ★★★☆, 『피리술사』 ★★★, 『안주』 ★★★

애거사 크리스티 『오리엔트 특급 살인』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보르헤스의 상상동물 이야기』 ★★★★

미셸 우엘벡 『세로토닌』 ★★★★

미셸 우엘벡 『투쟁 영역의 확장』 (재독) ★★★☆

레이먼드 챈들러 『안녕 내 사랑』 ★★★☆

레이먼드 챈들러 『빅 슬립』 ★★★☆

윌리엄 트레버 『윌리엄 트레버』 ★★★☆

장 콕토 『앙팡 테리블』 ★★★☆

조너선 스위프트 『걸리버 여행기』 ★★★☆

윤이형 『붕대감기』 ★★★☆

은희경 『빛의 과거』 ★★★☆

김혜진 『9번의 일』 ★★★☆

안토니오 타부키 『페르난두 페소아의 마지막 사흘』(재독) ★★★

오라시오 키로가 『사랑 광기 그리고 죽음의 이야기』 ★★★

『2020 제11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 ★★★

요시모토 바나나 『N.P』 ★★★

《Axt 2020.3.4. 최은미》 ★★★

《Axt 2020.5.6 김미월》 ★★★

《Axt 2020.7.8. 정영목》 ★★★☆

《Axt 2020. 9.10 김숨》 ★★★☆

《Axt 2020.11.12 임솔아》 ★★★

(단편) 어슐러 K. 르 귄 「정복하지 않은 사람들」 ★★★

(단편) 정영문 「하품」(재독) ★★★★☆

(단편) 배수아 「철수」(재독) ★★★★☆

 

 


 

 

 

 

 

 

 

 


 

 























 

 

 

 

 

 

 

 

 


 


 

 

 

 

 

 

 

 

 

 

 

 

 

 

 

 

 

 

[시]

1. 안태운 『산책하는 사람에게』 ★★★★☆

2. 권박 『이해할 차례이다』 ★★★★

3. 조연호 『유고』★★★★

나희덕 『어두워진다는 것』 ★★★★

기혁 『모스크바예술극장의 기립 박수』 ★★★☆

임승유 『나는 겨울로 왔고 너는 여름에 있었다』 ★★★☆

조정권 『얼음들의 거주지』 (재독) ★★★☆

김이듬 『명랑하라 팜 파탈』 (재독) ★★★☆

이장욱 『동물입니다 무엇일까요』(재독) ★★★☆

류시화 엮음 『마음챙김의 시』 ★★★☆

김중 『거미는 이제 영영 돼지를 만나지 못한다』 (재독) ★★★

하재연 『라디오 데이즈』 (삼독) ★★★

허연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 ★★★

성동혁 『아네모네』 ★★★

베르톨트 브레히트 『검은 토요일에 부르는 노래』 ★★★

 

 

 

 

 

 

 

 

 

 

 

 

 

 

 

 

 

 

 

 

[에세이]

1. 조지 오웰 『나는 왜 쓰는가』 ★★★★★

2. 허수경 『가기 전에 쓰는 글들』 ★★★★☆

3.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끈이론』 ★★★★

움베르토 에코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

올리버 색스 『모든 것은 그 자리에』 ★★★☆

이성복 『불화하는 말들』 ★★★☆

양자오 『추리소설 읽는 법』 ★★★☆

찰스 부코스키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 ★★★☆

레이먼드 챈들러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 ★★★☆

장 그르니에 『어느 개의 죽음』(재독) ★★★☆

설동주 『을지로 수집』 ★★★☆

김영하 『오래 준비해온 대답』 ★★★☆

금정연 『담배와 영화』 ★★★☆

정지돈 『영화와 시』 ★★★☆

유희경  『반짝이는 밤의 낱말들』 ★★★☆

무라카미 하루키 『고양이를 버리다』(재독) ★★★☆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

유카와 유타카, 고야마 데쓰로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는 오후』 ★★★☆

오쓰카 에이지 『이야기론으로 읽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미야자키 하야오』 ★★★☆

이다혜 『아무튼, 스릴러』 ★★★☆

이지수 『아무튼, 하루키』 ★★★

나카무라 구니오 『하루키의 언어』 ★★★

박상영 『오늘밤은 굶고 자야지』 ★★

 

 

 

 

 

 

 

 

 

 

 


 

 

 

 

 

 

 

 

 

 

 

 

 

 

 

 

 

 

 

 

 

 

[예술]

1. 마르크-앙투안 마티외 『꿈의 포로 아크파크』(1~5권) ★★★★★

2. 김은성 『내 어머니 이야기』(1~4권. 재독) ★★★★

3. 앙토냉 아르토 『나는 고흐의 자연을 다시 본다 』 ★★★★

유성혜 『뭉크-노르웨이에서 만난 절규의 화가』 (클래식 클라우드 8) ★★★★

이정진 『이정진』 ★★★★

제프 다이어 『그러나 아름다운』 ★★★★

제프 다이어 『지속의 순간들』 ★★★★

마틴 게이퍼드 『현대 미술의 이단자들』(재독) ★★★☆

제임스 모트람 『TENET』 ★★★☆

슈테판 볼만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

 

 

 

 

 

 

 

 

 

 

 

 

 

 

 

 

 

 

 

♧ 완독하지 못한  체크리스트

 


 

 

 

 

 

 

 

 


 

 

 

 

 

 

 

 

 

 



 

 

 

 

 


 

 

 

 

 

 

 

 

 

 

 

 

 

 

 

 

※  올해 최고의 북커버는 망설임 없이 롤랑 바르트 『바르트의 편지들』 양장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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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0-12-30 20: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재독을 엄청하셨습니다. ㅎ 전 같은 책 다시 읽은 경험이 전혀 없어서요. ^^
각 분야 1, 2, 3 위는 꼭 읽어보고 싶습니다.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AgalmA 2020-12-30 22:19   좋아요 1 | URL
읽어야 할 책이 워낙 많으니까 다시 읽는 게 부담스럽긴 하죠. 리뷰쓰려고 다시 읽을 때가 많은데, 읽기만 하고 리뷰를 못 쓰고 지나가는 불상사도 많아 슬픕니다ㅠㅠ 리뷰 쓰는 게 점점 더 부담스러워서요.
북다이제스터 님은 자기만의 확실한 리스트가 있으실 거 같은데 참고가 되려나요ㅎ?
아무튼 1,2,3 순위에 저는 최선을 다했습니다ㅎㅎ
북다이제스터 님도 내년 건강히 순항해 나가시길/

겨울호랑이 2020-12-30 2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AgalmA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AgalmA 2020-12-30 21:28   좋아요 2 | URL
겨울호랑이 님이 읽으신 책보다 고양이 구출 작전이 저는 강렬히 기억에 남네요ㅋ^); 사람은 참 감정적인 것에 더 끌리는 듯ㅎㅎ;
새해 건강히 좋은 일 가득하시길 빕니다. 기력이 예전 같지 않아요. 그렇지 않습니까ㅜㅜ?

겨울호랑이 2020-12-30 21:27   좋아요 2 | URL
^^:) 저도 고양이 구출작전 전후로 거의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네요... 결말은 행복하게 끝났습니다만, 당시는 참 막막했던 것이 한치 앞을 모르는 우리의 삶과 비슷함을 느낍니다. 그리고, 우리는 조금씩 기력이.... ㅋㅋ

하나 2020-12-30 21: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아 이거 인쇄해가지고 한 부씩 끼워줘라 알라딘... 매달 그렇긴 했지만 이번 호는 진짜 유료로 팔아야 됩니다! 좋은 구경했으니까 나중에 따듯한 음료라도 대접하겠어요! 덕분에 잘 보고 갑니다~ 토니와 수잔 반갑네요! 저는 아갈마님 덕분에 팀 오브라이언, 안태운, 임승유를 2021년에 만나 볼 예정입니다. 어딘가에서 이런 책들을 읽어주시는게 저에게는 정말 큰 위안이 됩니다. 내년에도 잘 부탁드려요 ^^

AgalmA 2020-12-30 21:48   좋아요 1 | URL
매번 부끄럽고 아쉬운 게 많지만, 올해는 정말정말 귀찮았어요ㅠㅠ
하나 님의 적극적인 기대 때문에 노력했으니 이 페이퍼의 영광은 하나 님께 돌릴게요ㅎㅎ;
<토니와 수잔> 기대 안하고 읽었다가 너무 재밌어서 정신없이 읽었지 뭐예요@@!
오, 팀 오브라이언, 안태운, 임승유... 좋은 목록으로 뽑으셔서 안심입니다ㅎ 이게 뭐라고 책임 부담이 많이 느껴집니다ㅠㅠ; 귀한 돈 주고 살 사람한테 이게 뭐냐! 소릴 들을 순 없는 거 아니겠어요!
아무튼 올해 하나 님이 제게 많은 힘이 되어주셨답니다. 고마워요♡

북프리쿠키 2020-12-30 22: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갈마님 덕분에 눈호강하고 갑니다.
내년에도 호강 좀 시켜주세요^^;

AgalmA 2020-12-31 04:06   좋아요 0 | URL
북프리쿠키 님 서재 가서 저도 눈호강 자주 하는 걸요.
내년 독서 기록은 어떻게 하면 더 초간단이 될지 궁리를 해볼 일입니다😆

페넬로페 2020-12-30 22: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너무 환상적인 책의 세계에 온 것 같아요^^
감동입니다**

AgalmA 2020-12-31 04:07   좋아요 1 | URL
정리가 귀찮아서 그렇지 한눈에 모아보면 다들 책 트리 하나씩은 만드실 걸요^^

비연 2020-12-30 23: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AgalmA 2020-12-31 04:08   좋아요 0 | URL
정리의 보람이 느껴지는 호응 감사합니다ㅎ/

베텔게우스 2020-12-31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정적으로 읽는 모습이 멋지십니다. AgalmA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AgalmA 2020-12-31 18:06   좋아요 1 | URL
알라디너들은 다 열심히 읽는 분들이라 저도 늘 다른 분들께 그런 맘이 들어요.
베텔게우스 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챙겨서 인사 건네주셔서 감사합니다. 🙏

맥거핀 2021-01-08 1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ebook에 대해서 하신 말씀에 대해 공감합니다. 리더기로 보기도 하고, 사무실에서 책을 펴들기는 눈치 보여서 대신 짬이 생기면 PC로 보기도 하는데요. 이상하게도 영 눈에 들어오지를 않아요. 우리 인간이 어떤 ‘행위‘를 하고 그걸 어떤 의미로 만든다는 게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고는 합니다. 마찬가지로 영화를 봐도 있잖아요. 집에서 보는 영화는 이상하게 머리 속에 무엇인가를 ‘아주 많이‘ 덜 남겨요. 같은 영화인데도 영화관에 가서 불편한 자리를 감내하며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오는 그 ‘행위‘가 결국 의미로 돌아온다는 거죠. 집에서는 어떠한 애를 쓰고, 어떠한 장치의 도움을 받아도 그게 잘 되지를 않습니다. 이상해요.

AgalmA 2021-01-12 20:33   좋아요 0 | URL
공감해요^^
특히 영화 경우, 영화관에서 집중해서 보고 돌아오는 내내 그것을 복기하는 과정이 첨가되어 기억에 더 오래 남는 거 같아요.

보물찾기 2021-09-01 0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는 인간에게 기억력이 없어서 돌같은 사물을 세워놓고 기억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손에 잡히는 사물이 있을 때 더 잘 기억하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