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책을 받아 두근거리며 첫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불을 만난다.


"글이 있는 곳에 불은 꺼져 있고 신비가 있는 곳에 서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읽는 순간 이 문장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그러나 곧 미지에 빠졌다.
서사로 들어찬 곳엔 신비보다 소요가 더 가득한 법이다. 서사들의 성질이, 그걸 읽는 내가, 그렇게 만들기 때문에. 불이 꺼져 있다는 표현도 언어로 사태를 정지시킬 때의 부정성, 언어로 지정된 것들만 남고 여타의 것들을 잃는 상실에 대한 표현일 것이다. 문장을 오래 곱씹으며 가로등 아래 서 있었다. 사람들이 지나가고 차들이 지나가고 어떤 대화들이 내 곁을 쉼 없이 지나가는데, 그 순간 나는 이
문장들 속에 살아 있었다.
"우리가 언어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이해하는 일은 말들의 의미, 말들의 모든 모호함과 미묘함을 파악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오히려 세상과 왕국의 근접성과 유사성을 깨닫는 일이며, 하늘나라가 우리의 눈으로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세상과 너무 가깝고 비슷하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일이다."라는 아감벤의 말은,
"나는 언어를 통해 생각을 표현하는 동시에 스스로 모순을 드러내게 됩니다. 나의 생각은 항상 내가 사용하는 단어들에 미치지 않거나 넘어서고, 또 거리를 둔 채 물러서 있기 마련입니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언어는 표현에 장애가 된다고 할 수 있지만, 자기표현에 장애가 있다는 점 때문에 인간의 표현이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표현의 장애가 곧 표현의 수단이 됩니다. 죽음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지요."라고 말한 장켈레비치의 말과 얼마나 가깝고 비슷한가.


《불과글》, 《죽음에 대하여》 두 책 다 다시 사서 곱씹으며 읽어야 할 책으로 점점 좁혀지고 있다.
Tannhäuser - Silver Life 음악을 들으며, 이 모든 것들의 연결을 어떻게 (글로만?) 다이어리에 다 담을 수 있지 탄식했다.
Tannhäuser - Silver Life 동영상은 평범하지만 효과를 아주 잘 잡아낸 영상이다.
두 사람이 끝없이 걸어가며 보여주는 소멸, 이어지는 물결, 존재의 방향성, 세계의 순환성을 잘 표현해냈다. 음악만 들었을 때와는 아주 달랐다. 내가 읽고 있는 이 책들의 메시지와 너무 잘 어울렸다. 마침. 그렇다, 마침!
오랜만에 만난 슈게이징 음악 Tannhäuser - Silver Life에 이어 Slowdive - When the Sun hits가 플레이되었다. 낮에서 밤으로의 초대. 우리는 끝없이 이런 연결들을 만든다. 살아 있기 때문에. 움직이기 때문에.
내가 어디 있는지 계속 헷갈렸다. 여기가 어딘지 도무지. 나는 다음 순간의 나로 인도되는 것을 알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