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자비 덕인가, 오늘은 몸도 맘도 좀 편한하다. 날씨가 좀 짖궂어서 그렇지, 연휴의 막바지 저녁 무렵 차 한 잔 하면서 신간들을 찬찬히 살펴보기에는 딱 좋다. 부처님 오신 날 만큼은 마음을 깨끗이 비워야 하건만, 욕심을 비울길이 없어, 오늘은 양이 좀 많을 것 같다.

[평전]
로스 테릴,『마오쩌둥』, 이룸, 2008.04.
서강, 『양계초』, 이끌리오, 2008.04.

양계초와 마오쩌둥은 중국 근현대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인물들이다. 양계초는 19세기 말 서구열강의 침입 아래 중국 사회의 변혁을 꿈꾸었던 인물이다. 비슷한 시기 조선의 지식인들에게도 양계초의 그러한 사상의 영향은 매우 컸다. 마오쩌둥의 경우 중국 공산주의의 창건자라고 할만큼 그 역사적 영향력은 두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두 인물의 면면과 그 사상은 다르지만, 근현대를 잇는 중국의 두 거물의 생애와 사상을 살펴보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특히나 마오쩌둥 평전의 경우 "마르크스주의자나 공산주의 중국의 창건자로서만이 아닌 무정부주의, 다양한 중국적 전통, 파시즘, 인간적인 약점들 가운데서도 다른 사람보다 더욱 심했던 신경증, 욕망 등으로 얼룩진 복잡한 인물"로서 다각적으로 살피고 있다고 하니 마오쩌둥에 대해 우리가 잘 몰랐던 이면을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인문/출판]
한기호, 『책은 진화한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08.04.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의 소장 한기호 씨의 책이야기다. 책으로 먹고사는 사람으로서, 그간 책 출판 이야기들을 많이 엮어낸 사람이다. 이 책에서는 책이 진화한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다변화되는 사회 속에서, 특히 디지털화 되는 사회속에서 더이상 책은 그 옛날의 책이 아니다. 아니어야 하다. 변화되는 세상 속에서 책도 진화, 곧 변화되고 있다는 것인데, 그럴 듯 하다. 책은 어떻게 진화하고, 변화해야 할까? 그 물음에 답하는 책인듯 한다. 그래도, 무언가 변하지 않아야 할 것들이 있지는 않을까 한다. 책은 가만히 그대로인데, 우리만 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다만, 변하기 전의 내 모습을 책에서 찾고 싶은걸.

[사회과학]
유우종, 『여론조사의 비밀』, 궁리, 2008.04.

촘스키의 저서 『여론조작』은 그간의 여론조사라는 게 어떻게 입맛에 맞게 조작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조작'에 초점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제목을 달리하면 "여론조사의 모든 것" 쯤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새롭게 번성하는 조사는 새로운 신 ‘자본’, 즉 돈을 위해 봉사하는 조사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돈이 가는 곳을 예언해주는 조사, 그래서 그곳에 또 다른 돈이 가도록 인도하는 조사, 돈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려주는 것이 미래의 조사다."라는 대목이다.

[사회과학]
김성도, 『호모 모빌리쿠스』, 삼성경제연구소, 2008.04.

호모 모빌리쿠스? 말하자면 휴대폰 없이는 못사는 현대인을 지칭하는 신조어다. 그런데, 나는 모빌리쿠스일까 아닐까? 다시말하면 휴대폰 없이 살 수 있을까 없을까? 문자질도 제대로 못하는 인간이 무슨 모빌리쿠스일까 의문이지만, 그래도 휴대전화 없이 살기는 영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쩔수 없이 호모 모빌리쿠스가 되어버린 것 같다. 나는 그 인간종을 계급으로 나누자면 저 하층계급의 어느 구석진 부분에서 방황하고 있을 것이다. 아무튼 이 책은 이러한 사회적 현상을 사회과학적으로 분석하고 그 매커니즘을 찾고 있는 책으로서 흥미롭다.

 
[인물/음악]
홍호표, 『조용필의 노래, 맹자의 마음』, 동아일보사, 2008.05.

저자는 "2008년 2월 <조용필 노래의 맹자적 특성에 관한 연구>로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공연예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사는 강원대에서 영어교육을, 석사는 중앙대에서 신문방송을, 박사는 성균관대에서 공연예술을 전공한 다양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는 조용필의 노래에서 맹자의 마음을 보았단다. 그는 조용필을 일컬어 "슈퍼스타 조용필은 맹자의 ‘천인합일(天人合一)’ 정신을 노래하는 이 시대의 진정한 가왕(歌王)"이라고 칭한다. 어쨌건 대중음악 가수의 음악을 연구하고 분석하는 이런 시도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책이 동아일보에서 나왔다는 사실에 썩 믿음이 가지 않지만.

[사회과학]
김상배 편, 『인터넷 권력의 해부』, 한울, 2008.05.

최근 쇠고기 문제와 관련하여 인터넷의 문제도 부각되고 있는 모양이다. 한편에선 인터넷을 통한 괴담의 조장과 선동을 우려하고, 또다른 한편에서 인터넷을 통한 통제와 왜곡을 걱정한다. 유명 포털사이트에 대한 현 정권의 통제 시도 등의 일종의 음모론 등도 속속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것이 사실여하를 떠나서 이제 인터넷은 하나의 거대한 권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우리는 여러차례 그 권력의 힘을 각인하지 않았던가? 이 책은 그러한 권력을 해부하고 있다. "인터넷이 야기하는 정치적·사회적·문화적 변화를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정치학·사회학·언론정보학 분야의 학자들이 모여 작업한 산물이다. ‘인터넷 권력’이라는 화두를 던지며, 그 구성요소와 조직원리 및 메커니즘을 밝혀 정보사회의 제 측면을 해부한다." 이 책에서 제기하는 의문은 세가지다. 첫째, 인터넷의 권력은 어디서 나오나? 둘째, 인터넷 권력은 어떠한 형태를 가지고 어떻게 작동하는가? 섯째, 누가 인터넷 권력을 주도하는가? 이 세가지 물음에 답을 주고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 권력을 실체를 아는 이들에게 인터넷은 더욱 유용한 통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과학]
로버트 라이시, 『슈퍼자본주의』, 김영사, 2008.05.
앤드류 글린, 『고삐 풀린 자본주의』, 필맥, 2008.05.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는 더이상 자본주의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길이 없어 보인다. 자본주의는 점점 더 거대해져서 급기야 "슈퍼자본주의"의 초절정 위력을 갖게 된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고삐 풀린 자본주의"가 된다. 아무런 두려움, 거리낌 없이 설쳐대는 이 자본주의를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안에서 우리는 영영 헤어나올 수 없을까? 이 불학무식한 자본주의에 대한 맹신을 깨고, 그것이 가지는 문제들에 대해 직시하면서 비판하고 대안을 찾아가야, 우리는 이 거대한 악마적 힘에서 그나마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하여간 무서운 일이다.

[사회과학]
강준만, 『아웃사이더 콤플렉스』, 개마고원, 2008.04.

강준만 이 사람도 책에 대한 콤플렉스 같은 걸 가지고 있나보다. 책을 참 무식하게 몰아서 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 책 말고도 연이어 쏟아진 게 몇 권 더 있다. 그런데, 그렇게 쏟아내는 책들이 한결같이 흥미로운 제재들을 다루고 있다는 것 또한 놀랍다. 이 책이 관심을 끄는 것은 "노무현 정권기 총정리"격으로 전 대통령 노무현을 '아웃사이더 콤플렉스'를 가진 인물로 분석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웃사이더란 국외자, 열외자, 무리에서 소외된 자를 일컬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 정치판에선 인사이더 중의 인사이더 위치에 올랐으면서도, 늘 아웃사이더로서 ‘핍박받는 소수자’인 양 사고하고 행동하며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의 사회 발전과 정치 진보에 장애가 되는 그런 모습을 ‘아웃사이더 콤플렉스’로 명명해 서술한다." 이러한 아웃사이더 콤플렉스의 대표적 인물이 노무현이란다. 재미는 좀 있겠다.

[종교]
샤피크 케샤브지,『세계 종교 올림픽』, 궁리, 2008.05.

종교 올림픽이라, 세계의 여러 종교들이 모여서 자웅을 겨룬다는 발상의 이 책은, 그 발상 자체가 여간 흥미로운 것이 아니다. "그 누구도 감히 시도하지 못한 종교의 우월을 가리는 한판 승부! 세계 5대 종교와 무신론의 대표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런 발상이 온전히 책이 되기 위해서는 저자의 역량이 여간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한겨레 책 소개를 의지한다면, 이 저자는 세계 종교에 대한 해박한 지식의 소유자로서, 이 올림픽을 박진감 넘치게 소개하고 있다.

[인문/고전]
한길사 편집부, 『가자, 고전의 숲으로』, 한길사, 2008.05.

한길그레이트북스가 최근 4권이 출간되면서 100권을 채웠다. 이 책은 "한길그레이트북스 100권째를 내면서" 그간 출간된 책들을 돌아보는 의미의 "한길그레이트북스 100권 길라잡이"다. 그레이트북스라는 게 대단한 책, 그러니까 고전을 말하는 것이겠는데, 이게 달리 대단한 것이 아니라, 100권을 채웠다는 게 엄청나게 대단한 거다. 돈 안되는 책을 100권까지 내고 있다는 것은 요즘 세상에 어찌 제정신 박힌 사업가의 정신이겠는가? 경축할 만한 일이다.

 

 

 

 

위 4권이 이번에 출간되면서 한길그레이트북스 100권을 채우게 되었다. 참 안 읽히게 생긴 책들이다. 이런 책을 100권째 냈다는 것이 감사한 일일텐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200권, 300권 될 때까지 이 출판사가 안 망하는 거다. 그런데, 듣기로는 이 책들 출간되는데, 역자나 저자들 자비가 들어간다는 설이 있다. 정말인가? 그래선 안 될 것 같은데.

이와 관련해서 한겨레 지난 토요일 신문에 기사가 크게 실려서 옮겨온다.

‘고전의 숲’으로 가는 100개의 계단(고명섭 기자)
한길그레이트북스 100권 돌파…길라잡이 책 함께 펴내
동서양-시대·장르 총망라 15년 ‘인간정신의 원류 찾기’



출판사 한길사를 대표하는 고전 번역 시리즈 ‘한길그레이트북스’가 100권 출간 고지에 올랐다. 1996년 이 출판사 창립 20돌을 기념해 첫 권을 출간한 이래 12년 동안, 준비기간까지 합쳐 15년 동안 쉼없이 행군해 다다른 봉우리다.

헨리 지거리스트의 20세기 의학자 고전 <문명과 질병>(황상익 옮김), 루트비히 포이어바흐를 현대 유물론의 아버지로 등재시킨 대표작 <기독교의 본질>(강대석 옮김), 클로트 레비스트로스의 신화학 3부작 가운데 두 번째 권 <신화학2-꿀에서 재까지>(임봉길 옮김), 그리고 아서 단토의 예술철학 저서 <일상적인 것의 변용>(김혜련 옮김), 동시에 출간된 이 네 권이 등정의 마지막에 놓인 네 계단을 이루었다. 한길사는 그레이트북스 100권 출간을 기념해 그동안 나온 책들을 안내하는 길라잡이 책 <가자, 고전의 숲으로>를 함께 펴냈다. “나는 책을 통해서 세계를 알게 되었다”라는 장 폴 사르트르의 말을 제사로 삼은 이 책에는 시리즈를 이루는 책들 하나하나에 대한 옮긴이의 해설, 원저자 프로필, 핵심이 되는 본문 발췌문이 실렸다. 또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이광주 인제대 명예교수, 송재소 성균관대 교수가 이 시리즈의 의미를 짚는 글을 앞에 붙였다. ‘무엇이 고전이며, 왜 고전을 읽어야 하는가’를 이야기하는 글들이다.

김우창 교수는 “언어의 구조물 가운데 가장 포괄적인 정신을 느끼게 하는 것이 사람들이 고전이라고 부르는 저작들”이라며, 그런 저작들은 모든 것이 풍화하고 무너지고 폐허가 된 뒤에도 살아남아, 인간 정신이 뿌리박고 있는 세계를 보게 해준다고 말한다. 김 교수는 19세기 이래 서양의 도전에 맞서 자기를 세워야 했던 동양이든, 근대적 삶 자체가 야기한 문명의 위기 앞에 선 서양이든, 자신을 새롭게 세워야 하는 과제를 안은 우리 시대에 “서양의 고전과 동양의 고전은 두루 중요한 지표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광주 교수는 “‘고전’의 참뜻을 ‘제1급의’ 저자에 의해 저술된 ‘모범적인’ 저작으로 이해할 때, 그 고전에 공통된 특성은 그것이 쓰여진 시대나 지역을 넘어서 한결같이 인류의 영원불변한 문화유산이라는 사실”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동·서양 그리고 우리의 고전까지도 두루 안배하고, 특히 연대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20세기 명저 등을 장르의 구별 없이 배치한” 점을 들어 이 시리즈의 의미를 평가한다. 송재소 교수는 고전을 영원한 생명력을 지닌 책, 시대를 초월해 항상 현재성을 지닌 책이라고 규정한다. 송 교수는 “그런 의미에서 한길그레이트북스는 매마른 이 시대의 단비 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다”며 “책 선정에 약간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안심하고 읽어도 좋을 책들”이라고 말한다.




이 시리즈의 첫 번째 권으로 나왔던 앨프리드 노스 화이트헤드의 <관념의 모험>(오영환 옮김)은 첫 책으로서 상징성이 도드라지는 저작이다. 옮긴이는 말한다. “모험 정신에 찬 문명은 자유롭고, 활기차고, 창조적이다. 모험이 결여된 곳에 문학은 깊이를 잃고, 과학은 지엽 말단에 사로잡히고, 예술은 보잘것없는 사소한 구별에 급급하고, 종교는 독단적인 도그마로 타락하고 만다.” 이 책의 저자 화이트헤드는 자신의 지론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사상의 생명력은 모험에 있다. 이런 생각은 내가 평생을 두고 해온 말이다. 인생의 의미는 모험이다.” 그 사상의 모험을 거시적인 역사 시야에서 펼친 책이 <관념의 모험>이다. 심오한 관념이 인간성을 향상시켜왔음을 문명사적 차원에서 입증하는 이 ‘대담한 지적 모험’은 이후 이 시리즈가 전개될 양상을 예시해주는 것과도 같았다. ‘관념의 모험’이야말로 이 시리즈의 특성을 압축하는 말인 셈이다.

<관념의 모험>에 이어 14권까지 이 시리즈는 모두 20세기의 저작 가운데 고전의 지위에 오른 작품들로 채웠다. 고전이 ‘옛 책’만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구성이다. 100권 시리즈 가운데 가장 많은 책을 올린 저자는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다. 아렌트의 저작은 <인간의 조건>에서 시작해 <혁명론>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전체주의의 기원1·2>까지 모두 네 종, 다섯 권에 이른다.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의 책도 네 권이 포함됐다. <야생의 사고> <슬픈 열대> 그리고 <신화학1·2>가 그것들이다. 또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의 3부작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도 이 시리즈를 통해 나왔으며, 아날학파의 태두 마르크 블로크의 <역사를 위한 변명>과 <봉건사회1·2>도 여기서 한국 독자와 만났다. 그런가 하면 인도철학의 고전들도 이 시리즈를 장식했다. 라다크리슈난의 대작 <인도철학사>(전 4권)을 비롯해 <마누법전> <바가바드 기타> <우파니샤드> 같은 고전 중의 고전이 출간 목록에 올랐다. 동양과 서양의 균형을 유지한다는 기획 의도에 맞게 <춘추좌전>(전 3권), <순자> <한비자> <왕필의 노자주> <분서> 같은 중국 고전들이 번역됐으며, <삼국사기> <원본 삼국사기> <삼국유사> <성호사설> 같은 우리 고전들도 시리즈에 포함됐다. 특히 정약용의 <경세유표>가 모두 세 권으로 옮겨져 나온 것은 중요한 성과라 할 것이다.

한길사는 “책 쓰고, 책 만들고, 책 읽는 세 행위, 저자·출판인·독자라는 세 주체”가 함께할 때 고전이 고전으로서 제구실을 할 수 있다며, 독자가 응원하는 한 계속 이 시리즈를 불려 가겠다고 밝혔다. 100그루의 거목으로 이루어진 ‘고전의 숲’이 앞으로 더 무성해질 터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변기가 작품이 되는 ‘현대예술의 풍경’

〈일상적인 것의 변용〉
아서 단토 지음·김혜련 옮김/한길사·2만5000원


‘한길그레이트북스’ 100번째로 나온 <일상적인 것의 변용>은 1982년에 출간된 아서 단토의 저작이다. 단토는 현대 미국을 대표하는 철학자·미술비평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단토가 이 저작에서 의도하는 것은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예술철학의 고전적 주제를 재정의하는 것이다. 지은이가 논의를 펼 때 염두에 두는 것이 현대 예술의 풍경다. 현대 예술이란 고전 예술과 달리 예술과 비예술 사이의 경계가 너무도 흐릿하여, 과연 어떤 것이 예술인지, 예술이라면 왜 예술인지 설명하기가 지극히 어렵다는 것이 그가 예술 정의를 다시 시도하는 이유다. 평범한 관람객들이 현대 예술에 맞닥뜨릴 때 종종 느끼는 당혹감, ‘과연 이걸 예술이라고 할 수 있나’ 하는 그런 의혹에 하나의 답을 주는 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 당혹감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인 마르셀 뒤샹의 <샘>과 엔디 워홀의 <브릴로 상자>에서 시작하면, 이 책의 논리 속으로 들어가기 쉽다. 뒤샹의 작품은 남자 화장실에 달린 ‘소변기’를 뜯어내 거기에 ‘샘’이라고 써놓은 것이다. 기성품에 제목을 덧붙여 놓았을 뿐인데, 현대 미술사에 남는 작품이 됐다. 엔디 워홀의 작품은 한발 더 나아간다. 부엌 세제를 넣는 ‘브릴로 상자’를 쌓아올려 놓고 예술이라고 한 것이다. 이 상자 더미가 미술 작품이 된 것은 순전히 워홀이라는 유명 화가가 미술 전시장이라는 공간에 그것을 들여놓았다는 그 사실 때문이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따라나오는 질문이 ‘일상적인 것’(평범한 것)이 어떻게 예술 작품으로 ‘변용’되는가 하는 질문이다.

단토는 여기서 ‘창작자의 의도’를 작품의 한 근거로서 제시한다. 예술가가 제목을 달아 작품으로 전시함으로써 어떤 물리적 대상에 ‘예술의 지위’를 부여하며, 동시에 ‘의미론적 기능’도 부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술가의 주관적 의도나 의미가 언제나 통하는 것은 아니다. 그 주관적 의도가 객관적인 맥락 속에서 수용돼야 한다는 점을 단토는 강조한다. 그 ‘객관적 맥락’으로 지은이가 지목하는 것이 예술계·예술사·예술이론이다. 그런 장 안에서 이해되고 납득될 때, 변기와 같은 평범한 사물이 예술 작품으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샘>과 같은 작품은 그것을 수용할 장이 확보되지 않은 시대에는 그저 변기에 지나지 않는다. 워홀의 <브릴로 상자>도 <샘>이라는 미술사적 선례가 있었기 때문에 작품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객관적 장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어떤 주관적 해석의 장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해석’의 문제다. 해석이야말로 예술을 예술로 존재하게 해주는 요건이다. 사물적 대상이 해석을 통과해 비로소 존재론적으로 다른 지위, 곧 예술 작품이라는 지위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감상자마다 해석이 다르다면, 작품은 그때마다 달라진다고도 할 수 있다.

이런 논의를 통해 단토는 현대 예술을 이해할 방법론적 근거를 마련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현대 예술의 전망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그는 예술사가 사실상 종말을 고했다고 말한다. 현대의 예술이 자신의 본질을 탐구하는 예술 철학으로 변모하면서 마침내 작품은 사라지고 이론만 남았다는 것이다. <브릴로 상자>는 그 종말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개별 작품은 계속 창작되겠지만, 예술사적 의미는 이미 소진했다는 것이 단토의 결론이다.

고명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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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05-13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웹인간론은 관심없는 멜기님
호모모빌리쿠스는 관심이 있으시네요? (뒤끝 백만년 또나온다 ㅋㅋㅋ)

멜기세덱 2008-05-13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웹인간론? 그게 뭐죠? ㅋㅋㅋㅋ
모빌리쿠스에 관심이 있다기보단, 그게 사회과학적으로 어떻게 분석되고 있나, 뭐 그쪽에 흥미가 있겠네요...ㅎ.ㅎㅎ

심술 2008-05-13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아직까지 쎌폰 없이 사는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지 스스로 궁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