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 두 달 여만에 눈길주기다. 두 달 동안 새로나온 책들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내가 그 책들에 눈길주는 일을 (조금 소홀히 하긴 했지만) 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두 달 사이에 계절은 바뀌고 있고, 나는 하루 하루 쇠락해지고만 있는 것 같고, 그간 무심했던 내 눈길을 피해 요리조리 잘도 숨어 있던 책들이 한가득이다.
오랫만의 눈길주기에는 오늘 깔끔한 봄날씨 마냥 산뜻한 책들이 가득해서 기분 좋다.

[역사/인물]
KBS 한국사傳 제작팀,『한국사傳』, 한겨레출판, 2008.3.
KBS에서 방영된 역사 관련 프로그램이 책으로 나왔다. 그간 KBS에서 제작, 방영된 의미심장하고 흥미로운 프로그램들이 책으로 많이 나왔었고, 대단히 칭찬받을 만한 일들이었다고 생각된다. 이 책이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역사를 뒤흔든 개인들의 드라마 같은 이야기'라는 데에 있다. 그간의 역사 서술이 왕조의 역사, 전쟁의 역사에 치우친 것이었다면, 그것으로부터 소외된 역사적 개인, 민중의 이야기로 새로쓰여진 역사 서술이 요구되어지고 있는 지금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대단히 흥미롭다. 영조와 신숙주를 제외하고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이다. 가령 "임진왜란의 숨은 주역"이었다는 홍순언이라든지, 최근 소설화 되었던 리진의 이야기 등이 담겨있다. 이런 책을 흥미있게 탐독하는 것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소외 당했던 진정한 역사의 주인공들, 곧 개개인으로서의 역사적 민중들의 이야기들을 복원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 분명하다.





[고전소설]
남영로,『옥루몽 1~4』, 보리, 2008.1.
겨레고전문학선집 31권부터 34권까지를 "19세기 당대 최고의 작품"으로 꼽히는 옥루몽이 차지했다. 사실 보리에서 펴내는 겨레고전문학선집 시리즈에 무척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들이 정열적으로 펴내는 물량공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옥루몽 완역은 더욱 반갑다. 이 옥루몽은 19세기에 최고의 인기를 끌었던 듯 하다. 구운몽에서처럼 환몽구조를 가져오면서도 사랑이야기, 박진감 넘치는 대결 구도 등이 재미를 더한다. 옛 소설이 오늘날에도 재미나게 읽힐 수 있다면, 그 첫째가 이 책이 될지도 모르겠다.

[사회과학]
박경태,『소수자와 한국사회』, 후마니타스, 2008.2.
후마니타스에서 펴내는 민주주의 총서 7번째 책이다. "인종주의, 민족주의, 혈연주의적 시각에서 차별의 대상인 한국 사회의 소수자 문제를 비판적으로 정리"하고 있는 이 책이 민주주의 총서에 포함된 이유는 무엇일까? 바른 민주주의라면 소수자에 대한 소외와 공존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소수자 문제는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지만, 사실 해결된 것은 거의 없다. 저자 박경태가 풀어나가는 한국사회에 있어서의 소수자 문제에 대한 비판적 시각, 그리에 그에 대한 대안과 우리 사회의 방향을 함께 경청하고 싶다.

[소설/음악]
전지한,『누구나 일주일 안에 피아노 죽이게 치는 방법』, 에듀박스, 2008.2.
교본인 줄만 알았더니, 소설이라네. 예전에 피아노를 배우겠다고 했더니 부모님께 야단만 맞은 기억, 보충수업 빼먹고 두 달 간 피아노 배우러 다녔던 기억, 패달도 닿지 않는 작은 꼬마 녀석을 보고 피아노를 포기했던 좌절, 나는 이런 기억과 좌절 속에서 피아노에 대한 연민의 정이 가득하다. 언제가 꼭 피아노를 배우고 말 거라는 다짐을 해왔는데, 제목이 내 눈길을 정면으로 받아버렸다. 그런데, 소설이라고? 소설이면 어떻게 교본이면 어떠랴? 아무튼 이 조합은 특이하면서도 재밌을 것만 같고, 정말로 일주일 만에 피아노 쳐서 누군가를 죽일지도 모르겠다는 공포감이 밀려온다. "2002년 결성된 밴드 '피터팬컴플렉스'의 리더 전지한이 쓴 연애소설 겸 피아노 교본"이란다. '피터팬컴플렉스'가 뭐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여하간 연애소설이란다. 이 참에 연애소설 한 번 읽어보는 것도 이 산뜻한 봄맞이로는 나쁠 것 같지 않다. 그런데 내 로망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피아노를 연주하는 남자"가 되어 보는 것이다. 이 로망의 미래가 이 책에 그려져 있다고 하니, 피아노도 배우면서 확인해 보자.

[심리]
루보미르 라미,『우리는 왜 친구의 애인에게 끌리는가』, 브리즈, 2008.2.
이상도 하지, 제목이 딱 내 증상이다. 평소에 거들떠도 안 보던 여자애가 연애만 한다고 하면 왜 그리 예뻐보이는지, 나 원 참. 이런 얘기를 주위에 하면, 놀보심보라고들 한다. "남주긴 아깝다"고 생각하는 거라나, 그렇담 세상 모든 여자들이 다 내 여자라고 생각한다는 말인가? 아무튼 모르겠다. 이 책의 제목에 내가 속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책은 다소간 '금지된 사랑'에 대해 분석하고 있는 듯하다. 일종의 타부다. 이 책이 나의 이런 심리를 어떻게 분석하고 있는지도 궁금하고, 여기서 다루고 있는 '금지된 사랑'은 또 어떤 것들이 있는지 호기심도 발동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