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를 팔다 - 우상파괴자 히친스의 마더 테레사 비판
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 김정환 옮김 / 모멘토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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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삼한 시대에 '소도(蘇塗)'라는 곳이 있었다. 중고등학교 '국사' 시간이면 빠짐없이 등장하는 곳이다. 이곳은 말하자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곳이었다. 그러니 언제나 이곳은 신성한 곳, 성지(聖地)여야 했다. 그러다 보니 속세의 어떤 힘도 이곳을 범할 수 없었다. '신성불가침(神聖不可侵)'의 권역이 이 '소도'라는 곳이었다. 주지하듯이 '솟대'로 경계지어진 이곳에 죄인이 도망쳐 오면 누구도 그를 잡아갈 수 없었다. 역사 이래 이런 신성불가침의 권역들이 종종 존재했던 것 같다. 그것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절대적 권역을 쉽게 찾아보기는 힘들지만, 종교적으로 신성한 곳이라고 여겨지는 곳에는 속세의 권력이 침범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또한 이런 신성불가침의 위엄은 곧잘 역사적 위인들에 적용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그 대표적인 인물을 든다면,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등이 그러한 예이다. 우리 사회에서 세종이나 이순신을 함부로 비판하거나 트집을 잡는다면 거의 예외없이 무시무시한 댓글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그들의 공로가 사회적으로 충분히 인정되고 있지만, 그것이 그들에 대한 비판을 부정하게 만드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전 세계적으로 그런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마더 테레사(Agnes Gonxha Bojaxhiu, 1910~1997) 수녀를 들 수 있다. 테레사 수녀는 가톨릭 교도들 뿐만 아니라, 비기독교인에 이르기까지 존경과 찬사를 한몸에 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녀의 가난에 대한 봉사와 선교활동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온전히 실천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지고 있다. 그녀가 이끄는 사랑의 선교회(Missionaries of Charity)는 가난과 굶주림이 있는 세계 곳곳에 널리 퍼져 있으면서, 그들을 치료하고 보호하며 자비와 사랑을 베풀고 있다고 간주된다. 전 세계의 많은 이들이 그들의 종교적 신념을 불문하고 이 사랑의 선교회로 많고 적은 후원금을 보내오고 있다. 테레사 수녀가 그들의 후원금을 좋은 곳에 써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말이다.

그녀의 이런 공로를 높이사 1979년에 노벨평화상이 수여됐다. 2003년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복자반열에 오르고 이후 시성절차가 진행중이라는 데 아직 시성되어 성인의 반열에 올랐는지는 과문하여 잘 모르겠다. 그녀의 이런 공로와 사랑의 실천에 어느 하나 존경은 못할 망정 누가 감히 비판하겠는가? 함부로 나서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시성절차를 진행하면서 교황청에서는 '악마의 변호인'(시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며 검사 역할을 하는 증성관(證聖官))을 선임했다. 교황청이 선임한 '악마의 변호인'은 히친스였다. 몇 년 전 영미권 지식인 중 5위에 오른 이 뛰어난 저널리스트는 거침없이 이 '악마의 변호인'을 맡았다. 아마도 이 증성관 역할이 히친스에게 오기까지는 많은 이들의 정중한 고사를 거친 후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히친스를 증성관으로 선임한 교황청은 어쩌면 악수를 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더 테레사가 성인을 반열에 오르는 데 치명적 결격사유를 히친스가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책 『자비를 팔다』(원제 The Missionary Position)가 그것이다.

'The Missionary Position'이란 말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표면적 의미로는 '선교의 입장'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이 말이 가지는 다른 의미는 '선교사의 체위', 즉 섹스의 '정상 체위'를 뜻한다. 이 원제는 이 책의 영미권 출간 당시 "책 내용에 관한 논란과는 별도로 물의를 빚기도 했다." 그러나 이 원제가 보여주는 그 이중적 의미의 층위는 어쩌면 히친스가 비판하고 까발리는 마더 테레사라는 인물의 감추어진 이면들과의 그 이중성을 절묘히 비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표면적으로 보여지는 테레사 수녀의 봉사와 헌신의 그 이면에 있는 어떤 것, 그것이 바로 히친스가 지적하는 저급한 정상체위, 그녀의 선교의 입장이 된다고 말이다.

원제가 가지는 물의를 피하기 위해 한국어판의 제목은 '자비를 팔다'가 되었다. 이 한국어판 제목 또한 히친스가 제공하는 물의를 피하면서도, 그가 제시하고자 했던 그 이중성, 마더 테레사의 역설적 이중성을 적절히 담고 있는 고급한 제목이라고 생각된다. '자비'는 베풀어질 때 성립할 수 있는 특성을 가진다. 그것이 판매된다면 더 이상 그것은 자비가 아닐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역설적 제목 '자비를 팔다' 또한 히친스가 담고자 하는 마더 테레사의 이중 플레이를 유효하게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히친스가 비판하는 그녀의 봉사와 헌신적 활동 이면에 그 어떤 저급함이 있을까? 150여 쪽의 이 짧은 책자에서 히친스는 테레사 수녀와 그녀의 사랑의 선교회의 여러 활동들을 추적하고 자료를 제시하면서 그녀가 어떻게 가난한 자를 돕고 사랑해 왔는지를 추적한다. 그러나 그녀의 온화하고 자애로움이 묻어나는 몇 장의 사진들과 함께 그것이 어떻게 연출되고 어떤 배경 속에서 이루어진 것인지를 차분히 밝히고 있는 히친스의 지적을 읽는다면, 그녀의 그런 봉사와 헌신에 우리는 의문을 심하게 품게 된다.

이 책의 표지 사진으로 쓰인 80쪽과 81쪽 사이에 수록된 몇 장의 사진 중 첫 번째 사진을 보면, 어떤 가난한 이로 보이는 남자가 테레사 수녀의 손을 잡고 간절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지만, 테레사는 뭔가 차갑게 초탈한 듯 그를 외면하고 어느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콜카다의 선교회에서" 찍은 이 사진이 보여주는 것처럼 히친스는 그녀가 사실상 다른 목적으로 이 가난을 이용하고 세상에 팔아왔다고 말한다. 한 장을 넘기면 테레사 수녀가 "아이티에서 미셸 뒤발리에와 함께" 찍은 사진이 있다. 미셸 뒤발리에는 "아이티의 일인 독재자 장-클로드 뒤발리에"의 부인, 그러니까 아이티 대통령의 영부인이었다. 이 사진은 독재자 장-클로드 뒤발리에의 선전지인 「공격」 1981년 1월호에 실렸다.

   
 

  잡지를 펼치면, 둥글게 부푼 아이티 '제1시민'과 그의 유명한 신부 미셸 뒤발리에의 결혼기념일에 대한 길고 경애하는 글 옆에 커다란 사진이 있다. 사진 속의 미셸은 백인 및 크리올 엘리트의 지도자로서 태연하고 차분하고 우아한 모습이다. 팔찌를 찬 그녀의 팔을 다른 여인이 정답게 감쌌고, 이 여인은 존경과 복종으로 가득 찬 눈빛까지 바치고 있다. 사진 옆에 인용된 그녀의 말을 보면 자신의 아첨성 행동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낀 것이 분명하다. "대통령 영부인은 느끼시고, 아시며, 자신의 사랑을 말뿐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실체적인 행동으로써도 보여주고자 하시는 분입니다." 이 외침은 이어진 사회 페이지의 헤드라인에서도 메아리친다. "영부인님, 나라가 당신 필생의 사업으로 진동합니다."(19쪽)

  CBS 다큐멘커리 프로그램 「60분」이 방영한 이 필름에서 마더 테레사는 카메라를 향해 미소 지으며 미셸 뒤발리에에 대해, 살아오는 동안 많은 왕과 대통령들을 만났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국가의 우두머리와 이토록 친근한 경우는 처음 보았다. 내게는 아름다운 배움의 경험이었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그 밖의 은총에 대한 보답으로 마더 테레사는 아이티 국가훈장 레종 도뇌르를 받았다. 지배자 부부에게 찬사를 보내는 그녀의 단순한 증언은 국영 TV 방송에서 매일 밤 최소 일주일 동안 방영되었다.
  훈장을 받은 때부터, 아이티 국민이 장-클로드 및 미셸과 너무도 '친근한' 나머지 그 부부가 자기들의 짐가방을 국고 재산으로 채우고 프랑스 리비에라로 영영 도망치는 데 시간이 아슬아슬했을 정도였던 시기까지 마더 테레사가 이 필름에 대해 항의를 제기했다는 얘기는 알려진 바 없다.(20쪽)

 
   

그 옆에는 MSIA라는 이름을 지닌 광신집단의 지도자로서, "사기 행각은 가히 초서급"인 존-로저와 '존-로저 성실상'을 수상하고 1만 달러를 기부받은 테레사 수녀가 함께 찍은 사진이 있다. 이 사진은 "스튜디오에서 찍은 것이고, 콜카타의 가난한 이들은 나중에 덧붙"인 것이다. 한 장을 다시 넘기면 "1995년 6월, 새로 문을 연 북서 워싱턴 입양의 집에서 힐러리 클린턴과 함께" 찍은 사진이 있다. 몇 장을 더 넘겨 보면 "80년대 말 미국을 뒤흔든 저축대부조합 도산 사태 때 사기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찰스 키팅과 웃으면서 악수하고 있는 사진이 있다. 테레사 수녀는 그에게 100만 달러 이상의 후원금을 받았다. 이외의 정치적 거물들과 찍은 사진들이 다수 있다.

마더 테레사는 찰스 키팅이 사기죄로 기소되자, 재판의 담당 판사인 랜스 이토 판사에게 탄원서를 보낸다. 말하자면 찰스 키팅이 "주님의 빈자들에게 언제나 친절하고 관대했으며, 필요가 생길 때면 언제나 기꺼이 도울 태세였다는 점"에서 그를 선처해 달라는 것이다.(102~103쪽에는 마더 테레사의 편지 전문이 실려 있다.) 이 편지에 대해 "로스앤젤레스 지방 검사보로서 키팅 사건의 기소 담당자 중 하나였던 폴 털리"는 마더 테레사에게 답장을 보냈다. 키팅이 사기 친 "대부분은 재산이 많지 않고 대형 금융 거래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의 돈, 그러니까 키팅이 선심 쓴 100만 달러 이상의 기부금을 돌려줘야 하지 않겠냐고 테레사에게 답장을 보낸 것이다. 그러나 테레사가 죽을 때까지 어떤 답변도 보내오지 않았다.

이런 갖가지 사실들을 나열하면서 히친스는 마더 테레사의 이 이중생활을 폭로한다. 이쯤되면 악마의 변호인으로서 그의 역할은 성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더 테레사가 성인이 되는데 지장이 없다면 이상할 일이다. 마더 테레사는 순박하고 아무 것도 모르며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위해 아이티의 독재자 부인과 손을 잡고 온갖 미사여구를 곁들인 찬사를 보냈을까? 또한 가난한 자들을 사기쳐 번 돈으로 선심 쓴 키팅의 기부금으로 마더 테레사는 누구를 도왔을까? 우리가 마더 테레사는 속세를 떠난 고귀한 성인으로서 오로지 가난한 이들에게만 헌신하고 봉사한다고 생각하지만, 마더 테레사는 그 노구에도 불구하고 굵직굵직한 정치적 현안이 존재하는 장소에 어김없이, 절묘하리만치 교묘하게 등장한다고 히친스는 지적한다. 이런 그녀가 아이티의 독재자 부부의 실체를 몰랐을까? 키팅이 엄청난 사기를 치고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도, 아직도 그가 "주님의 빈자들에게 언제나 친절하고 관대했으며, 필요가 생길 때면 언제나 기꺼이 도울 태세"였다고 믿는 것일까?

마더 테레사는 얼마가 되는지도 모를 정도로 엄청난 기부금과 후원금을 끌어 모으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사랑의 선교회에 수용되어 있는 가난한 이들은 별반 그 생활이 나아지고 있지 않다. 그야말로 수용소에 다름 아니다. 그 막대한 돈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 책의 히친스의 고발에 따르면 간단한 수술이면 해결될 어린 아이의 병도 단지 방치될 뿐이고, 최소한의 기본 의료도 무참하게 제공만 된다. 주사기도 물로 대충 씻어낼 뿐 소독할 생각은 없다. 그런데 그녀는 지병을 치료하게 위해 세계 최고의 병원에 입원하여 장기간 치료를 받았다. 그 막대한 돈은 그렇게 쓰였고, 세계 곳곳에 사랑의 선교회란 이름의 수용소만 지어댈 뿐이었다. 아직도 스위스의 비밀 금고에 그녀가 모금한 어마어마한 돈이 꿈틀대고 있일지 모를 일이다.

히친스가 이렇게 신랄하게 고발하고 있는 마더 테레사의 'The Missionary Position'의 저급함은 바로 가난을 이용하고 위선적 자비를 팔아가면서 근본주의적 기독교를 전파하는 데만 혈안이 되었다는 것이다. 악마의 변호인 히친스는 바로 '근본주의 종교-사업가'로서의 테레사 수녀의 위선을 기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기소는 기각된 듯 보인다. 왜? 히친스가 악마를 대변하고 있기 때문일까? 주간지 「뉴욕 프레스」는 이 책에 대해 촌평하면서 다소 익살스럽게, "지옥이란 게 있다면, 히친스는 이 책 때문에 거기에 가게 될 터이다"라고 농을 친다. 이 책 때문만은 아니고, 아무튼 지옥이란 게 정말 있다면 무신론자이고 적극적인 반종교주의자인 히친스가 지옥에 가게 될 것은 뻔한 일이다. 다만, 그가 지옥에 갔을 때, 그곳에서 히친스를 마더 테레사가 반갑게 맞이하지 않을까? 히친스는 후기에서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그러므로 그녀의 성공은 겸손과 소박의 승리가 아니다. 그것은 인류의 미신적인 유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그리고 교활한 자와 한 가지 목적에 전념하는 자들이 소박하고 겸손한 자들을 착취하는 것에 기댄, 천년왕국 이야기의 또 다른 장이다.(1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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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03-05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주문해서 오늘 받았어요! 리뷰는 다 읽어보고 읽어야지 ㅎㅎ
은근 멜기님이 추천해준 거 이것저것 접하고 있는 ㅋㅋㅋ
(제가 좀 스폰지같아요 ㅎㅎㅎ)

순오기 2008-03-06 08: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종교단체나 성금이란 명목으로 방송매체에 얼굴을 휘날리며 후원하는 거부들이, 실은 가난한 종업원들의 임금을 착취하거나 혹은 비리로 받은 부정한 돈을 보낸다는 것 많은 이들이 알지만...마더 데레사에 대해선 맹신하는데, 이책은 그런 점을 잘 부각시켜줬군요. 일단은 추천하고 찜합니다!

김서늬 2008-03-17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모든 것은 어떤 위치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 보이죠.
진실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요즘같이 기술은 좋은 시대에 온갖 진짜같은 가짜, 가짜같은 진짜들이 판치는 세상에서는 대중이 어느 쪽에 서서 바라보게 할 것인가를 (나쁜 뜻으로는)조종하고, (좋은 뜻으로는)선도하는 역할의 책임을 맡은 것이 바로 글쟁이들이 아닐까요. 마더 테레사가 어떤 인물이었는지는 히친스도 테레사의 추종자들도 아무도 모르겠지요. 마더 테레사 본인밖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극단적으로 한쪽으로 치우친 위치에서는 오직 자신만의 판단을 따랐으면 좋겠습니다.

멜기세덱 2008-03-17 21:30   좋아요 1 | URL
저는 히친스가 우리들과 다른 위치에서 마더 테레사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지 우리는 보여주는 것만 보았다고 할까요? 히친스는 좀더 공을 들여 보여주지 않은 것들을 보면서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우리의 판단은 이것때문에 수정되어야 할 것처럼 생각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