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 부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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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세상엔 나쁜 놈들 투성이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사실 나부터 거기에 해당하는 것이겠지만, 변명하자면 내가 한 나쁜 짓들이 그렇게 우려할 만큼의 피해를 세상에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내 죄가 사해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나보다 더 나쁜 놈들이 주구장창 줄 서 있으니 상대적으로 난 천국문에 가까울 것이라는 일말의 위안이랄까? 보르헤스의 소설집 제목이 『불한당들의 세계사』다. 동명의 제목으로 권혁웅은 시를 썼다.

   
 

  1. 여해적(女海賊)

  면도칼을 씹어대던 주인집 작은 누나는 삼선교 칠공주 가운데 넷째였다 첫째와 셋째는 미아리 파와 영역 싸움을 하다 병원에 실려갔고 둘째는 같은 날 도망쳤다가 제명되었으며 다섯째는 덜컥 임신했고 여섯째는 가출해서 연락두절이었으며 일곱째는 개과천선했다 남은 건 너덜너덜해진 누나의 입 안뿐이었다

  2. 장밋빛 모퉁이의 남자

  이상필은 삼선문방구집 둘째 아들이다 늘 총천연색 크레파스를 갖고 다녔던 우리 반 친구다 그 친구 삶도 무지갯빛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반장이었지만 고등학교 때에는 삼선극장 뒤편 골목길에서 중학생들의 삥을 뜯고 다녔다 장밋빛으로 시작해서 검은빛으로 완성한 그림이었다

  3. 무례한 예절 선생

  빽바지를 입고 다니던 사촌형을 마지막으로 만난 곳은 경철서였다 젊은 녀석이 할 짓이 없어서 유부녀들을…… 순경들이 지나가며 조서를 철한 장부로 머리를 탕탕 내리치고 있었다 형은 고고에서 지루박까지 못 추는 게 없었지만, 순경 앞에서만큼은 맥을 못 추었다

  4. 잔혹한 구세주

  내가 다니던 교회의 담임목사님이 사임했다 안질이 심해서 그만둔다고 했는데, 사실은 밤에 찾아온 여집사님을 사택에서 맞아들인 게 문제였다고 한다 밤에도 정장 차림으로 잠자리에 든다고 생각한 분이 잠옷 바람으로 나왔으니 여집사님이 얼마나 두근거렸을까 그분 눈이 어두웠다는 것도 맞기는 맞는 말이다

  5. 황당무계한 사기꾼

  나주 아줌마가 가출한 것은 내가 고1때 일이다 외아들이 날마다 돈을 내놓으라고 부수고 때리고 발광을 해댔기 때문이다 나보다 여덟살이 많았던 형은 내 나이 때부터 포커에 미쳐 밑 빠진 독에 돈을 쏟아부었다 결국 형은 집문서까지 잡아먹고는 지금껏 을지로에서 서울역으로 풍찬노숙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6. 부정한 상인

  어머니는 피 같은 돈 800만원을 떼였다 돈암식당집 연희 엄마는 이웃사촌에서 사돈의 팔촌까지 돈을 빌려 남편 계좌에 넣고는 가뿐하게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어머니가 머리채를 잡고 재판정에 끌고 갔지만, 눈물 곳물 섞은 아줌마 한탄에 판사도 홀딱 넘어가고 말았다 연희 엄마는 지금도 연희와 아저씨와 잘 산다

- 권혁웅,「불한당들의 세계사」전문(『마징가 계보학』, 창비, 2005.)

 
   

재미있는 시다? 웃음이 나는 걸 보니 재미있는 시인 것도 같다. 그런데 읽고나면 씁쓸하다. 이 시에 등장하는 불한당들은 흔히 우리 주변의 인물들이다. '주인집 작은 누나'가 그렇고, '이상필'이 그렇고, '사촌형'이 그렇다. 건물마다 빨간 십자가 불빛만큼이나 '교회의 담임목사'도 흔하고, 어디 어디 '아줌마'도 그렇다. 우리는 모두 언제나 한 분의 '어머니'가 계시고, 그 어머니에겐 누구 '엄마'는 빼놓을 수 없는 친구다. 하여간에 이들 모두를 '불한당'이라고 하기에는 좀 얄궂다. 인생의 어두운 그늘들, 혹은 얄궂은 서민들의 인생사에 놓여진 험한 세상의 '폭력'이라고 할까. 그런데 이 시를 읽고 또한 불현듯 드는 것은 세상에 참 믿을 놈 없다는 아주 유명한 진리이다. 결국 세상은 불한당들 투성이다, 나를 포함해서.

다만 이들에게 면죄부를 주자면 "먹고 살다보니" 어쩔 수 없었다는 각박한 세상에 대한 책임 전가다. 이것 또한 일말의 근거는 있다. 문제는 "그래도 그렇지"다. 아무리 각박한 세상이라도 '그렇지', 어찌 인간의 탈을 쓰고 그런 못된 짓들을 하느냐고 핀잔을 주면, 이들이 그저 울부짖을 밖에 또 무어라 변명하겠는가? 그래서 이런 사람들에게 불한당이라고 하기에는 좀 미안한 마음이 많다. 그냥 '나쁜 놈' 혹은 놈들이 격에 맞겠다.

사실 내가 좀 쓸데없는 얘기를 한 것 같지만, '불한당' 혹은 '불한당들'이라고 할 때, 그 이름에 걸맞는 인간들(?)은 따로 있었다. '불한당(不汗黨)'이라고 하면 "떼를 지어 돌아다니며 재물을 마구 빼앗는 사람들의 무리" 또는 "남 괴롭히는 것을 일삼는 파렴치한 사람들의 무리"를 말하는데, 이게 개개 인간이 아닌 '무리'를 지칭한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그 사전적 의미에 200% 이상 부합하는 '것들'을 우리는 그렇게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진정한(?) 불한당들을 떠올려 본다면 김지하의 '오적(五賊)'이 대표적이겠다. 그런데, 우리가 시각을 좀 넓혀서 세계사적으로 오늘날의 불한당들을 떠올려 보자면 어떨까? 어떤 '것'들이 이 진정한 불한당들일까? 적어도 "황당무계한 사기꾼" 내지 "부정한 상인"이라고 보르헤스가 명명한 '불한당'에 해당될 '것'들이 있으니, 장하준에 따르면 "나쁜 사마리아인들", 곧 오늘날의 선진국입네 하는 '것'들이다. 장하준이 이들을 '나쁜 사마리아인'으로 지칭하지만, 이는 사마리아인들의 입장에서 볼 때, 기분 '몹시' 나쁜, 어쩌면 인종차별적 명명일 수 있다. '착한 사마리아인'이 버젓이 있는데 괜히 그 이미지에 손상을 가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우리말에 좋은 말이 있으니, 나는 이 '것'들을 '불한당'들이라고 하겠다.

이 것들이 왜 불한당들인가 하면, 명색이 선진국입네 하면서 좀 잘 살아보겠다는 나라들에게 지네들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고 구라를 치면서, 뒤로는 벼룩의 간에 심장에 피까지 쪽쪽 빨아자시고 있으니, 어찌 불한당이 아니겠는가? 오히려 '불한당'이란 표현이 부족한 감이 있다. 장하준은 『나쁜 사마리아인들』에서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형편없는 '성장' 기록은 당혹스러울 정도이다. 성장의 가속화 ― 필요하다면 불평등의 증대와 약간의 빈곤 증대라는 대가를 치르고라도 ― 는 신자유주의 개혁이 내건 목표였다. 우리는 부를 더 많이 나누어 가지려면 그 전에 먼저 '더 많은 부'를 창출해야 하며, 신자유주의야말로 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이야기를 되풀이해서 들어왔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정책의 결과 대부분의 국가에서 소득 불평등은 증대한 반면, 성장은 사실상 크게 둔화되었다.
  게다가 신자유주의가 풍미했던 기간에는 경제 불안정까지 급증했다. 세계는, 그 중에서도 개발도상국의 세계는 특히 1980년대 이후 더 큰 규모의 금융 위기를 보다 빈번하게 겪어 왔다. 다시 말해 신자유주의의 세계화는 경제 생활의 모든 전선 ― 성장, 평등, 안정 ― 에서 실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전례 없는 풍요를 가져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53~54쪽. 강조는 필자)
 
   

며 신자유주의를 무슨 '구원의 길'인 양 전면에 내세우면 거짓말을 일삼는 지금의 선진국들을 비판하고 있다. 자기네들이 가르쳐주는 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따라야만 지네들처럼 잘 살 수 있게되고, 지금까지 신자유주의에 따라 살아온 나라들은 죄다 잘 살게됐다고 김구라보다 더한 구라를 치고 있는데, 장하준에 따르면 이게 다 '뻥'이라는 소리다. 어떤 식으로 뻥을 치냐 하면,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외국인 투자를 규제하면 투자의 흐름이 줄어들고, 외국인 투자 규제를 완화하면 외국인 투자의 흐름이 증대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현실은 정반대이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관세율의 유지와) 외국인 투자에 대한 엄격한 규제에도 불구하고 ― 부분적으로는 바로 그런 규제 덕에 ― 19세기부터 1920년대까지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했던 경제였다. 이는 외국인 투자 규제가 경제의 성공 전망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일반적인 견해의 토대를 허무는 것이다.(149쪽.)  
   

이런 식이다. 장하준은 전작 『사다리 걷어차기』(부키, 2004.)에서 미국을 일컬어 "'근대 보호주의의 아버지'이자 철옹성"이라고 말한다. 또한 영국은 결코 "자유 무역과 자유방임 경제 국가"가 아니었음을 증명한다. 이런 '것'들이 이제와서 니네 보호주의 하지 말라고 하고, 갖은 규제들은 다 풀어야 하고, 그 허울 좋은 '자유' 나부랭이 내세워서 시장의 뜻에 따라 자유무역을 해야 된다고 '전도'한다. 오늘날 미국의 이 말씀은 로마 가톨릭 교황의 말씀에 버금가는 위세를 지닌다. 그러나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목소리만큼의 일말의 진정성은 없다.

이런 거짓말의 속내는 결국 이제 지들만 잘 살겠다는 도둑놈 심보다.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고 했지 아마. 지들이 필요할 때는 도와주는 척 하면서 이제는 그 필요성이 다했으니 이제 살이고 뼈고 다 발라놓고 피까지 빨아먹자는 심산이 이 신자유주의의 전도사 미국의 논리다. 이 논리가 얼마나 가식의 논리이고, 민주주의의 대표자임을 자청하는 미국 스스로에게도 배반의 논리인지는 이 신자유주의가 결코 민주적인 논리가 아님에서 알 수 있다. "민주주의는 '1인 1표'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고, 시장은 '1달러 1표'의 원리에 따라 움직인다." 결국 시장의 논리가 제일시 하는 신자유주의에 따르면,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더 큰 비중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이는 신자유주의가 민주주의와 그 "근본적인 차원에서 충돌"하는 지점이다. 신자유주의가 주창하는 대로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게 되면 부자들은 자신들의 욕구 가운데 가장 하찮은 요소들까지 실현할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목숨을 부지할 수 조차 없다". 결국 돈 없는 놈들, 가난한 나라들은 모두 "죽어라"다. 아 이 선진국들은 토 나올 것 같은 더러운 거짓말에 언제까지 속고만 있을 것인가?

그런데, 문제는 우리나라가 일면 이 신자유주의의 거짓말에 속아나 피해를 보는 입장이면서도, 이 신자유주의 패밀리의 쫄따구로 일선에서 개발도상국 이하 최빈국들에게 삥이나 뜯어보려고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놈의 대한민국이 조만간 '불한당'에 당당한 패밀리로 가입하더라도, 조폭에서 제일 먼저 잡혀가는 놈들이 쫄따구들인 걸 보면, 이 나라의 종말은 불을 보듯 뻔할 터이다. 조만간 그때가 오면 어쩜 미국 놈들의 감옥에서 동향의 한국인들을 만나 타향 설움을 정답게 나눌 것이다.

   
    나는 이의를 제기한다. 이는 수준이 비슷하지 않은 선수들이 벌이는 경쟁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경제 발전을 촉진하는 국제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기를 원한다면 우리 모두가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 선수들의 수준이 비슷하지 않은데 경기장이 평평하다면 결국 그 게임은 불공정한 것이 된다. 축구 경기를 하는 한쪽 편이 부라질 국가 대표팀이고, 상대편은 열한 살 먹은 내 딸 유나의 친구들로 짜여진 팀이라고 생각해 보라. 그렇다면 여자 아이들이 아래쪽을 향하여 내달리며 공격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만 공정하다. 이런 상황이라면 경기장을 평평하게 하기보다는 기울어지게 하는 것이 공정한 경쟁을 보장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기울어진 경기장을 볼 일이 없다. 경기장을 기울어지게 만든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브라질 국가 대표팀이 열한 살 먹은 여자아이들과 경기하는 것이 허용될 리가 없어서이다. (경기장이 기울어져 있든 아니든 간에) 대부분의 운동 경기에서는 수준이 비슷하지 않은 참가자들끼리 서로 경기를 치르는 것이 사실상 허용되지 않는다. 이런 경기는 불공정한 경기가 될 게 명백하기 때문이다.
  … 중략 …
  권투에서는 체급은 아주 세밀하게 구분된다. 예컨대 경량급의 경우 등급마다 1~1.5킬로그램 이내로 조정되어 있다. 이렇듯 몸무게가 2킬로그램 넘게 차이가 나는 사람들끼리 하는 권투 경기는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면서, 미국과 온두라스가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하는 것은 인정하라는 것인가?(330~31쪽. 강조 필자)
 
   

장하준의 '이의 제기'에는 자명한 논리와 객관적 자료와 명명백백한 역사가 100%의 타당성을 부여한다. 이런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읽다보면 신자유주의가 최고입네 하는 미국과 영국을 위시한 선진국들의 맹랑한 주장에 참 귀엽기까지 하다. 그런데 그런 어린아이 같은 주장에 놀아나는 우리나라는 또 뭐가 되는건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같은 사람들은 결국 권혁웅이 읊었던 그런 '불한당'이 되어 비극적 인생사로 점철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허무맹랑은 신자유주의의 온갖 유혹과 협박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대책을 세우기가 쉬운 일만은 아니다. 어린아이의 투정은 온갖 과자를 한아름 안고도 남겨진 과자들을 보며 한없이 울어대며 한사코 가게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는다. 그런 아이를 억지로 끌어 안고 가게 밖으로 나올 수는 있지만, 그것을 달래려면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린다. 어쩌면 하루 종일 울어재낄 수도 있는 노릇이다. 그런데, 그 아이의 몸집이 너무 크다면? 그 아이를 끌어 안고 나와야 할 어른들이 죽도 못먹고 삐쩍 말라 힘도 못쓰는 데다가, 그 몸집도 아이보다 수십배나 작다면? 이걸 어떻게 억지로 끌고 나오냐? 하여간 어려운 문제다.

장하준의 이 책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전작 『사다리 걷어차기』의 개정증보 내지 대중 보급판이랄까? 『사다리 걷어차기』가 학술서인 반면 이 책은 그것을 보다 대중적으로 풀어 설명한 책이다. 장하준의 쉽고 상세한 설명과 때론 소설같은 상상력과 에세이 같은 잔잔한 여운, 그리고 신랄한 비판과 적절한 비유가 종합적으로 녹아난다. 이걸 살려서 소설을 한 편 써도 좋을 듯 싶다. 그러나 장하준이 신자유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선진국들의 거짓말들, 그들의 거짓된 행동들, 불한당 같은 짓거리들을 고발하고 비판하고 있지만, 거기까지가 이 책은 장점이면서 한계가 아닐까 한다. 그 불학무식한 불한당들이 이 정도로 설득돼서, "이제는 착한 사마리아인이 돼야지"하고 개과천선을 바란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우리나라도 그 거대한 틈바구니에서 행보를 정하기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대세론을 따르자는 것은 분명 아니다. 대책을 간구하고 머리를 써야하고, 착한 사마리아인을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중간자적 입장에서 적절한 역할을 간구하는 방법을 장하준도 제시하고 있지만, 보다 적극적으로 그러한 행보를 찾아야 할 것이라고 판단된다. 그러나 여전히 남는 안타까움은 어디까지나 경제 성장과 개발의 논리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지구는 현재 포화상태다 더 개발하고 더 성장한다는 것은 어쩜 불가능할지 모른다. 경제 성장과 개발의 논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대안이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하준의 이 책은 매우 유의미하고 가치있다. 선진국들의 거짓 논리를 단호하게 고발하고 비판하고 있는 이 책은 가히 세계 경제사 '새로 쓰기' 혹은 '바로 쓰기'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이 책에 다른 이름을 부여하자면 나는 이 책을 "불한당들의 경제사"라고 명명할 것이다. 아 참 세상은 나쁜 놈들이 너무 많다. 나라부터 불한당이니 어쩌면 참 뻔한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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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1-29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기를 겁내고 있었는데, 멜기님의 설명(?)에 보고픈 맘이 생기네요~~~ ^^
이주의 리뷰 당선도 축하합니다!

2008-01-29 14: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늘빵 2008-01-29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멜기세덱님 축하해요. 이거 너무 잘 쓰니깐 자주 받잖아요. 저도 오랫만에 이름 올렸습니다.

이매지 2008-01-29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다리 걷어차기도 보고 싶었는데 왠지 어려울 것 같아서 미뤘어요.
근데 이 책은 대중적으로 설명한거라니.
으음. 일단은 보관함에 넣어둬야겠어요 ㅠ_ㅠ
멜기님 마이리뷰 축하드려요 :)

해적오리 2008-01-29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주의 마이리뷰 축하드려요. ^^
오널 보니 제가 아는 이름들이 주루루 올라있네요~
이 리뷰는 일단 찜~ 책은 보관함으로~ ^^

마노아 2008-01-30 0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주의 리뷰 당선이었군요. 아까 요 얘기한 거였는데 저만 못 알아들은 거였어요..;;;
오늘 만나서 반가웠구요. 얘기 많이 못해서 아쉬워요. 다음을 또 기약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