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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 신 없는 종교는 가능한가 ㅣ 고정관념 Q 11
리오넬 오바디아 지음, 양영란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산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들에 익숙해지는 과정이다. 『어린 왕자』의 '길들이기'도 일종의 익숙해-지기다. 어떤 것들과 관계를 맺고, 그것을 서로 길들여가고, 길들여지면서 우리는 익숙해진다. 그렇다면 익숙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익숙하다의 '익숙'은 한잣말이겠거니 하고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니, 해당되는 한자는 보이지 않는다. 순우리말인가 하니 또 그렇지만은 않은 듯 하다. 고어에 '닉숙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닉(다)'와 '숙(熟)'의 결합니다. 고어 '닉다'는 오늘날 '익다'로 쓴다. 熟도 대표 훈음이 '익을 숙'이다. 삶은 계란을 생각나게 한다. 물에 계란을 넣고 끓이면 계란의 흰자와 노른자가 서서이 '익어가는 것', 이것이 익숙해지는 가장 기본적 의미는 아닐까?
여기에서 더 나아가 오늘날에는 어떤 것에 능란하고 숙달된 상태, 눈에 익어 잘 아는 것, 혹은 가깝게 잘 아는 사이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우리는 이런 상태를 '(잘) 안다'라고 종종 표현한다. 자전거를 탈 줄 '안다'고 말하고, 서울 지리를 잘 '안다'고도 말한다. 그리고 나는 내 오랜 친구를 잘 '안다'. 그래서 익숙한 것은 잘 아는 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최종의 익숙한 상태란 없다. 더 익숙해지고, 더 잘 알 수 있는 상태가 분명 존재한다. 나는 자전거를 탈 줄 알지만, 나보다 더 자전거 잘 탈 줄 '아는' 사람이 존재할 것이 뻔하다. 그렇다면 익숙하다는 것은 익숙해지는 것이고 알아 가는 것이다. 진행형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문제는 우리가 이 '익숙한' 것, 혹은 그러한 상태가 진행형이어야 함을 종종 잊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종종 '너무' 또는 '아주'와 호응하는데, 이른바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는 듯 뻐기는 경우다. 내겐 너무나 익숙하기에 뒤도 볼 것 없이 너무나 자명하다. 여기서 나오는 것은 고정관념이고, 이것은 때론 편견과 차별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이런 익숙하고 자명한 것들에 의문부호를 붙여주어야 한다. 상식이라는 그 익숙하고 자명한 지식은 그래서 자주 부패하고 상하기 마련이다. 여기에 물음표를 달고 다닐 때 그것은 보다 유효한 지식으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잘 아는 것, 익숙한 것,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는 것들에 물음표를 붙이는 일은 생각보다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여기에 어떤 도움을 얻는다면 조금은 그런 수고를 덜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좋은 친구로서 웅진지식하우스에서 나온 <고정관념Q>시리즈는 제격일 수 있겠다. 현재 이 시리즈가 다루고 있는 것으로 '종교, 예수, 이슬람, 세계화, 이집트 문명'이 있고, 앞으로 다룰 것으로 '동성애, 왼손잡이, 피카소, 유대인, 팔레스타인, 석유' 등이 있다고 한다. "역사 · 문화 · 사회 · 예술 · 과학 · 건강 등 너른 분야에 걸친 깐깐한 문답은 상식의 틀을 께고 즐거운 지식을 찾을 수 있는 검색창이 되어줄 것"이라는 기획의도에 맞게 다양한 분야의 주제들을 다루고 있고, 다루려 하고 있다.
이중 나는 관심사항 중 하나인 『종교』를 읽었고, 『예수』를 현재 주문중이다. 이 책 『종교』는 그 주제의 무게와는 다르게 무척이나 가볍다. 그래서 빨리 읽힌다. 속독이 특기가 아닌 나같은 사람도 한 두 시간이면 너끈하게 읽어낼 수 있다. 그러면서도 다루고 있는 내용들은 그리 가볍지만은 않다. 예를 들면 이런 것말이다. "종교는 비이성적이다", "종교는 인간 소외의 근원이다", "신은 죽었다" 등. 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문장들인가? 이책의 각각의 소주제들만으로도 책 한 권씩은 충분히 뽑아내고도 남음이 있을 것들이다. 그래서일까? 다소간 이 책이 너무 거대한 것을 건드려서 이도저도 아닌 게 된 듯한 느낌, 말하자면 계륵(鷄肋)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이 책 『종교』는 우리가 흔히 종교에 대해 가지는 생각들, 그러니까 너무 뻔해서 익숙하다고 생각되는 종교에 대한 우리의 견해에 하나씩 친절히 물음표를 붙여놓는다. '모든 생물 중 인간만이 종교를 가진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한에서는 '그렇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할 뿐이다. 따라서 이 책은 방점을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한"에 찍혀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각각의 소주제들은 우리가 종교에 관해 익숙한 문장들이지만 여기에는 모두 물음표를 붙여놓고, 차분히, 그리고 가볍게, 그러면서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종교라는 그 자체는 인류역사와 함께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만큼 이렇게 가볍고 쉽게, 그러면서도 한 두 시간만에 후다닥 읽어낼 수 있을 정도로 다룬다고 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렇듯이 이 책은 그 불가능을 충분히 증명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 책은 그 가능한 만큼에서까지는 물음표를 던짐으로써 '고정관념'은 이렇게 의심하고 회의하라는 방법들을 시범보이고 있다. 그것은 그 나름으로 의의를 부여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쓸데없는 것, 불필요한 것은 아니고, 이것을 통해 보다 익숙해지는 과정의 선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괜히 부담을 갖지 않고도 이 주제 '종교'에 대해 한번 훑어보자고 한다면 이 책의 일독을 적극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