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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자로 이룬 문자혁명 훈민정음 ㅣ 나의 고전 읽기 9
김슬옹 지음, 신준식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07년 7월
평점 :
"世宗御製訓民正音" 『훈민정음 언해』에는 세종의 서문이 실려있다. '언해(諺解)'란 우리말로 풀었다는 얘기다. 즉, 『훈민정음 해례본』의 우리말 번역서가 바로 『훈민정음 언해』다. 한문으로 된『해례본』을 우리말로 풀긴 했지만 국한혼용으로 되어 있고, 한자에는 한글로 음을 표기했다. 『언해』의 한자음표기를 되는 대로 읽어보면 대략 "솅종엉졩훈민정음"(고어 표기를 여기서는 하기가 어렵다. '엉'의 첫 소리는 꼭지가 달린 이응(옛이응)이다. 즉, 음가가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오늘날 어떻게 발음할지는 의문이다. 그리고 '음'은 여린 이응으로 'ㅎ'에서 위의 한 획을 없앤 것이다. 'ㅇ'과 'ㅎ'의 중간 정도의 발음이지 싶다.)의 코맹맹이 소리가 된다. 그러나 이렇게 읽으면 "안된다."
이걸 바로 '동국정운식 한자음 표기'라고 하는데, 오늘날의 한자음대로라면 '세종어제훈민정음'이 된다. '동국정운식 한자음 표기'를 이상음을 추구했다. 그래서 초성, 중성, 종성을 모두 갖춰야만 했다. 그래서 '세, 어, 제'에 모두 'ㅇ'을 붙인 것이다. 이를 감안하고 읽어본다면 "셰종어졔' 쯤 되겠다. 오늘날 "세종어제훈민정음"인데, 이말은 "세종이 어제 훈민정음"을 만들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어제'를 빼고 이해하면 무난하다. 그런데, 문제는 세종이 '어제' 훈민정음을 만들었는지, 엊그제 만들었는지에 대한 별다른 관심이 없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현직의 국어교사들은 간혹 말한다. "10월 9일이 무슨 날이지?"라고 학생들에게 물으면, 많이들 잘 모른다고.
10월 9일은 '한글날'이다. 한글날이긴 한데, 한글을 만든 날은 아니고, 반포한 날이다. 북한은 1월 15일이 한글날이다.(조선글 기념일) 왜냐하면 이날이 기록상 한글(훈민정음)을 만든 날이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건 간에 우리가 기념하는 '한글날'이 언제인지 잘 모른다는 것은 좀 찝찝하다. 그 찝찝함의 근저에는 10월 9일이 휴일이 아니란 사실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 씁쓸하고 안타까운 것일까? 여하건간에 왜 한글날을 안 노는지 모르겠다. 하늘이 열린 날(開天) 만큼이나 백성의 눈이 열린 날도 중요할 듯 싶은데, 두 날을 다 놀면 한국 경제가 거꾸러질지 모른다는 우려는 짜증을 나게 한다. 오늘날의 국경일 혹은 기념일은 휴일이 아닌 이상에는 그나마 기억이라도 해주는 배려를 찾기는 힘들지 않은가?
세종이 훈민정음을 만든지 올해로 561년째다. 이 날을 기념한 것은 100년도 되지 않았다. 초기에는 '가갸'날이라고 불렀다. '가갸거겨고교구규'하던 것에서 앞 두 글자를 따다 붙은 것이다. 이게 몇 해 후 한글날로 바뀌어 오늘날에 이르렀다.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11월 초였는데, 이 책에 반포일이 9월 상순으로 되어 있어 오늘의 10월 9일이 된 것이다. 이렇게 이날 저날, 이 이름 저 이름으로 자주 바뀌었지만, 그것은 그만큼이나 이 한글날을 어지간히도 중요히 여겼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한글날을 놀았던 것이 아닌가?
여기서 "한글날엔 놀아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면서, 세종이 『훈민정음』을 만든 그 업적을 또한 칭송해야 하겠다. 흔히들 세종대왕께서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고 뛰어난 문자를 창제했다느니, 한글이 가장 과학적인 글자라고 치켜주면서 아주 그냥 별발광을 다하도록 요란이지만, 그 요란도 나름 의미는 있다. 나는 그 요란을 떨자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날만큼은 세종께 감사하고 싶다. 민중의 눈과 귀가 열린 날, 이 날 한글날은 어쩌면 개천절에 버금갈 소중한 날은 아닐까?
잡설이 길었다. 김슬옹의 이 책 『28자로 이룬 문자혁명 훈민정음』은 이것이 왜 소중하고 귀한 것인지를 잘 알려주고 있다. 훈민정음의 창제 목적과 의의, 창제 과정의 우여곡절과 비하인드 스토리, 훈민정음이 있기까지의 다양한 사람들의 노력들, 그리고 그에 대한 반발의 목소리, 나아가 훈민정음의 창제 원리에 대한 착실한 해설, 그리고 그것의 보급과 발전의 향로, 한글의 발전성까지를 작은 이 책에 꼼꼼히 담아두고 있다.
대강은 다들 아는 내용이 태반일테지만, 그 숨겨진 뒷얘기들과 보다 자세한 훈민정음 이야기를 듣는 것은 무척이나 재미를 더해준다. ㄱ에서 ㅋ이 나오고, ㄴ에서 ㄷ, ㅌ이, ㅅ에서 ㅈ, ㅊ이 나오는 이 무척이나 단순명료한 원리가 오늘날 디지털 매체에서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는 것은 대강 앎의 자세함을 더하게 해주기도 한다. 보다 이 책이 의미를 갖는 것은, 훈민정음에 담긴 다양한 창제 배경과 세종의 노고, 그리고 그의 비전을 보여준다는 것에 있다.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란 이름에 그 대부분이 담겨 있지 않은가? 백성을 생각하는 세종의 마음은 오늘날에도 배울 바가 농후하다. 다만 그것이 제왕적이라는 사실을 감안하고서 말이다.
이것이 가히 문자혁명을 이루었다고는 하지만, 세종은 훈민정음의 창제 이유 중 빠트릴 수 없는 것으로 당시의 혼란스럽던 한자음을 정리하고자 한 것을 들 수 있다. '바른 소리'란 이름에서 그것을 엿볼 수 있다. 누구는 모란이라고 읽고, 누구는 목단이라고 읽는 것은 혼란스럽다. 그것을 정리할 필요성을 절감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혁명이 가지고 있는 그 이전 것과의 단절의 성격을 이 훈민정음은 그리 달게 여기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그것은 세종이 직접 지은 『월인천강지곡』이라던가, 각종 언해본 들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즉, 지금까지 사용한 한문에서 한자를 가져오면서도 그것을 읽고 말하기 편하게 훈민정음을 덧쓰는 방법으로 조화를 추구하고자 한 세종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훈민정음이 과학적이고 우수하며, 뛰어난 문자라는 사실은 지금으로서는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민족주의같은 것으로 이어지는 것은 조심스럽게 우려된다. 저자가 탄식하듯이 서울대 권장도서에 『훈민정음 해례본』이 들었느니 마느니에 일희일비하는 것은 좀 우습기도 하다. 오늘날 우리가 이 고서를 굳이 읽은 필요는 없어 보인다. 다만, 우리가 쓰는 이 문자의 여러 특성과 장점들,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우여곡절의 배경들을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필요하지 싶다.
전세계 상용문자 중 그 창제자가 또렷이 알려진 유일한 문자, 문자 발전 단계상 현재까지 가장 진화된 것으로 인정되는 문자, 21세기 디지털시대에 그 적용력이 단연 돗보이는 문자, 바로 한글이라는 자부심은 가져도 무리될 것은 없겠다는 소리다. 달달달 한자 외우기에 허우적 되고 있었을지 모를 이땅의 수백만 학생들에게 그 공포에서 해방시켜 준 것만으로도 이들이 한글날을 기억해주어야 할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제3세계의 문자없는 나라에 한글을 전수하자는 주장들도 그리 곱게만은 들리지 않지만, 그렇다고 허무맹랑한 소리만도 아닐 것이다. 여하간 한글을 널리 전하는 것은 보람스런 일이다. 소리문자로서의 한글의 우수성은 입증된 상태이기도 하다. 그것이 문자없는 이들에게 쉽게 자기네 말을 적을 수 있게 할 수 있다면 무엇이 나쁘겠는가? 우리말을 쓰게 강요하는 것이 아닌한 말이다. 세종이 대왕인 이유가 비단 훈민정음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훈민정음 하나로도 충분하기도 하다. 그만큼 오늘날 우리를 편하게 쓰고 말하게 해 주지 않았는가? 그래, 그렇다면 다른 이들에게도 전하여 편하게 하다면 세종이 웃을 일이다.
뒤죽박죽 야밤의 리뷰를 빨리 정리하자. ①한글날 놀자. ②안 놀더라도 좀 기억하고 기념해야 되지 않겠나? 요즘 애들이 10월 9일은 한글날이라는 사실을 한 대 줘박아서라도 알게는 해야지 싶다. ③한글을 좀 널리 전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나름대로 귀한 일이다. ④한글이 세계최고니, 뭐니 하는 요란은 좀 자제할 필요가 있고, 한글에 대해 우리가 좀 관심을 가지고 알 필요도 있다. 자 이렇게 정리했으니, 이 책 『28자로 이룬 문자혁명 훈민정음』을 찬찬히 읽어보지 않겠는가? 어느새 12시가 넘어 561년 된 한글날이 되었다. 오늘만큼은 세종도 생각하고, 그가 '어제' 만들지 않고, 오래 전에 만든 훈민정음을 되돌아보자. 이 책은 오늘 읽히어 더욱 값지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