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의 23명의 한국인 피랍 사건도 벌써 열 하루째를 맞고 있다. 그 사이에 첫 피해자가 발생했다. 故 배형규 목사. 그의 피살 소식에 안타까워할 새도 없을 만큼 아직까지도 22명의 남은 피랍자들이 고통받고 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소천하신 故 배형규 목사의 순교에 삼가 명복을 빈다.


42살의 옆집 아저씨같은 푸근한 인상, 아이처럼 헤맑게 웃으며, 어떤 일에도 화내지 않을 거 같은 마음씨 좋은 삼촌같은 모습의 저 사진을 보며 그의 죽음이 더욱 안타까워할 뿐이다.
9살의 어여쁜 딸아이, 그리고 그의 사랑하는 아내. 그들은 아빠, 남편의 죽음에 한 없이 슬퍼할 수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남아 있는 피랍자들의 희생이 더 이상은 없어야 할 것을 애원했다.
그렇다. 우리는 아직 맘 놓고 슬퍼하거나 위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렇다고 의연할 수도 없고, 냉철히 비판할 수도 없다. 아직 위험에 처한 우리의 형제들이 있지 않은가? 무엇하나 해결되지 않은 지금의 상황에서, 고 배형규 목사의 죽음만이 존재할 따름이다.
그러나, 우리 너무 의연한 것이 아닌가? 한 생명이 그 귀한 목숨을 잃어버렸다. 그것만으로도 우린 충분히 슬프지 아니한가?
그들이 비판받는 이유가 죽어야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난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고통받는 아프간의 민중들을 위해 희생을 자처했다고. 그런 그들의 희생을 우린 존경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우리 사회 전체가 침울하고, 아직은 촉각을 곤두세워 남아 있는 피랍자들을 구명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고 배형규 목사의 죽음에 대해서 우린 너무 의연하고도 냉정한 것은 아닌가? 그들이 뭘 그리 잘못했을까?
고 김선일 씨의 피살에 온 국민이 추모의 물결을 일으켰던 것을 기억해보면, 고 배형규 목사의 죽음이 한 없이 초라해진다. 온 국민이 고 배형규 목사의 죽음을 애도하고, 22명의 남은 피랍자들이 속히 구명될 수 있도록하는 촛불시위 같은 것은 고사하고라도, 우리 사회가 작게나마 저마다 슬퍼하고 안타까워해야 하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적어도 알라디너들은, 그 죽음 하나에 누구보다도 슬퍼하고 함께 울어줄 줄 알았었는데...
* 고 배형규 목사의 죽음은 거룩한 순교였음을 한국의 기독교계는 인정하고 그 순교에 값하는 태도를 보여주어야 할 것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