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에떼 - 문화와 정치의 주변 풍경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단순한 진실은 없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진실은 드러난다고 하는데 이 말도 믿을 수 없다. 단정적인 어법이 가진 위험성을 감내하고서 이렇게 선언하는 사람들의 용기는 인정해야 한다. 그 진실에 한 발짝 다가서기 위한 노력과 시간은 전적으로 개인의 책임이다. 특히 일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수많은 소시민들의 경우 스스로 고개를 들고 사람과 사물을 관찰하고 분석하고 고민하지 않으면 고정관념과 좁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대화가 불가능한 사고 방식의 소유자가 되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 나이와 무관하게 화석처럼 굳어버린 생각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고종석의 새 책 <바리에떼>는 프랑스어로 다양하다는 말이다. 영어의 버라이어티가 주는 어감이나 이미지를 피하고 싶었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을 하면서도 책의 구성에는 시비를 걸어야겠다. 한 개인이 발표하는 글의 내용과 형식 그리고 매체는 얼마든지 ‘바리에떼’할 수 있지만 책으로 묶이고 보면 난삽하기까지 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문화와 정치의 주변 풍경’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지만 마지막에 시집의 서평이나 소설가의 산문집 뒤의 발문까지도 함께 묶여있으니 난감하기까지 하다. 독자더러 어쩌란 말이냐?

  시사 평론과 문화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은 고종석의 특징을 그대로 드러낸다. 기자, 시인, 소설가, 평론가에 이르기까지 고종석을 수식할 수 있는 말은 많다. 하지만 그가 엮어내는 글들이 적재적소에서 빛을 발하더라도 뭐든 함께 묶일 수 있다는 생각에는 고개를 저을 수 밖에 없다. 1부와 2부와 3부의 글들은 커다란 의미 영역을 구분하거나 생각의 틀과 관점을 바꿔 놓는 구분이 아니라 억지로 한 권의 책을 묶어 놓기 위한 분량 채우기같은 느낌이다. 기이한 느낌의 이 책은 한 권으로 묶기기엔 아무리 후하게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모국어의 속살>에서 보여준 감수성과 문학적 언어에 대한 화려한 수사는 이번 책에서 제외되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의 단상들이나 산문들이 내뿜는 향기와 탄탄한 문장들이 힘을 잃는 것은 아니다. 문학 계간지나 인물과 사상에 발표했던 글들이 묶여 제목처럼 다양성에서 우러나는 특별함을 독자에게 보여주지는 못한다. 글을 잘 쓰는 것과 책을 잘 쓰는 것은 구별되어야 한다. 여기 저기 발표했던 글들을 묶어 책을 낼 경우에는 특히 더 조심하고 편집에 유의하며 한 권의 책으로 빛나게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읽으라고 독자에게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특히 구체적인 정치 현안과 관련되 문제들은 시간이 흐르고 나면 김빠지 맥주같은 느낌을 준다. 당시의 상황과 느낌들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좋은 글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차분하고 이론적인 글보다는 시론에 맞춘 글들이 시간이 흐른 후에 묶였을 때는 읽는 독자 입장에서 감정 처리가 난감하다. 나만 그런가?

  한 시대의 진실과 한 세대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이 책을 평가절하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내용과 형식이 따로 국밥으로 놀아 답답하기까지 하다.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면 책으로 기억될 것들이 단편적인 고종석의 ‘글’로만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안타깝다.

진실은, 그것이 단순하든 복합적이든, 어딘가에 분명히 있겠지만, 사람들이 바로 그 속까지 도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 P. 55

  객쩍은 소리를 해봐야 그렇고 본문 내용 중에 ‘진실’에 관한 한 마디가 목에 걸려 적어 본다. 쉽지 않을 일을 쉽게 해 버리고 쉽게 말하는 사람들에 대한 경고로 들린다. 진실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단순하든 복합적이든 도달하는 것이 어렵다. 쉽게 결론 내리고 단정짓는 버릇은 건강에 해롭다. 거기 그 너머에 앉아 있는 너, 거울을 보라.


07040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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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4-02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번 훌륭한 서평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잘 읽고 갑니다.

프레이야 2007-04-02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야말로 바리에떼식 편집인가 보군요. 추천합니다.

sceptic 2007-04-03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antaclausly님 매번 덕담만 남기고 가시네요...^^

배혜경님...추천할만한 책은 아닙니다.

makee 2007-04-12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식님의 불편한 편집에 대해 깊이 공감 했어요.
2부 정치의 둘레편은 논리적 비판이 개인적으로 돋보였어요.

sceptic 2007-04-12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렇습니다. 2부에서 얻은 공감들을 다른 곳에서 많이 잃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