촘스키, 우리의 미래를 말하다
노암 촘스키 외 지음, 강주헌 옮김 / 황금나침반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가끔 뉴스나 언론에서 비리를 고발할 때 사용하는 말이 ‘사회 지도층 인사’라는 말이다. 그들은 누구에게 무엇을 지도했으며 누가 지도층으로 인정했을까?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지식인이라는 용어도 마찬가지다. 명확한 기준 없이 사용되는 이 사람들을 나는 개인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존경하고 받을 만한 지도층도 없고, 지식인도 거의 없다. 지식인은 단순히 지식의 양적 측면만을 고려해서 평가하지 않는다. 촘스키는 지식인을 이렇게 비아냥 거린다.

존경받는 지식인이 되면 뭐가 유리한 줄 아십니까? 무슨 말을 하더라도 증거를 제시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이른바 지식인이 쓴 글을 면밀히 읽고나서, 결론을 뒷받침해줄 만한 증거를 찾아보십시오. 증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P - 75

 나의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본 편견의 결과, 많이 배운 놈들은 대체적으로 훨씬 이기적이며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고 타인과 사회에 심각하고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언어학의 거목으로 일가를 이룬 학자 촘스키가 아니라 비판적 지식인, 행동하는 양심으로서 촘스키를 읽는다. 데이비드 바사미언이 인터뷰 한 내용을 정리한 책 <촘스키, 우리의 미래를 말하다>는 우리에게도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제국이 무엇을 꿈꾸는가에 대해서는 끊임없는 경고와 현실로 나타난 전쟁과 살상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래도 믿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대중의 생각을 조작하는 언론과 미디어의 프로파간다가 있기 때문이다. 누구의 잘못을 지적하자는 것은 책임을 떠넘기자는 문제가 아니다. 원인을 찾고 대안을 마련하고 현실을 바꿔나가자는 말이다. 촘스키는 이런 역할들을 오히려 국민들을 속이고 대중을 기만하는 효과적인 수법으로서 프로파간다에 주목한다. 얼마 전 국정 홍보처는 되고 농민들이 십시일반으로 제작한 한미 FTA 반대 광고는 안된다는 규정도 우습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한미 FTA는 우리에게 장밋빛 미래를 약속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촘스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라.

우리는 소극적으로 순종적인 추종자가 되라고 배웠습니다. 이런 관습의 틀을 깨지 않는 한 우리는 프로파간다의 피해자가 되기 십상입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관습의 틀을 깨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P - 43

 그러나 아무리 외쳐도 소극적이고 순종적인 추종자에서 벗어나는 일은 쉽지 않다. 관습의 틀을 깨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늘상 프로파간다의 피해자로 살아간다. 우리 모두가 그 피해자고 알게 모르게 익숙해져 가고 골치 아픈 문제는 생각하기 싫어지고 당장 눈앞의 이익이나 이해득실을 계산하고 나에게 미칠 결과만을 고려한다. 모든 인간은 이기적이기 때문에 이런 습성을 탓할 수는 없다. 다만 주변을 생각하고 조금 넓고 깊게 그리고 멀리 생각해 보면 답은 그렇게 쉽게 나오지 않는다. 단순한 문제가 아닌데 단순하게 결론을 내리거나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은 바로 촘스키의 말처럼 프로파간다의 피해자가 되는 지름길이다.

 우리 모두가 피해자가 되는 지름길은 패권주의를 인정하고 기득권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미국은 이라크를 침략한 후에도 세계 경찰국가임을 자임하고 있다. 그들이 지목한 테러 지원 국가나 악의 축들은 정말 나쁜 나라들일까? 진정한 불량국가 미국의 모습을 들여다보면 된다. 역사에서 망각만큼 무서운 것도 없다.

 선의의 정책을 내세운 이라크 침공은 결국 베트남보다 훨씬 더 큰 경제적 손실과 단기간의 인명을 살상하는 참혹한 결과를 가져왔다. 물론 이 순간도 여전히 진행형인 전쟁이며 우리의 손으로 뽑은 국회의원들은 우리의 동생과 아들들을 지원군으로 파병했다. 그래도 여전히 국내에선 찬성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적지 않다. 무엇이 문제일까.

 민주주의과 교육은 말로만 하는 것도 아니고 수업시간에 교과서를 가지고 하는 것도 아니다. 생활 속에서 관습과 고정 관념의 틀을 깨는 일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촘스키가 어렵지 않다고 얘기했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결론에서 촘스키는 ‘새로운 세계는 가능하다’고 말한다. 세계 사회 포럼의 슬로건에 박수를 보낸다. 당연하다. 이대로 지구를 폭파할 수는 없는 일이다. 미래에 대한 부정적이고 암울한 전망이 예상되더라도 우리는 밝은 세상을 갈망한다. 아니 습관적으로 미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산다. 희망은 누가 주는 것도 아니며 저절로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누가 우리에게 이런 희망과 미래를 절대로 만들어 주지 않는다. 대체적으로 현실에 비쳐진 미래는 비극적이며 인간을 믿을만한 존재가 아니다. 미래는 결국 내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내가 만들어가는 미래, 지나치게 낙관적이거나 거창한 말이 아니라 작은 생각의 변화와 행동의 시작이 미래를 만든다. 촘스키가 아니라 동네 아저씨의 말 속에도 진리는 담겨 있다. 다만 그것을 깨닫고 실천하는 문제는 산을 옮기는 것보다 더 어려울 뿐이다.


070124-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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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7-01-24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소극적이고 순종적인 추종자가 대개는 '가치중립적' '합리적' '불편부당한' 이런 단어들로 포장하지요.때로는 '관념'이나 '예술'에 의탁해서 자신을 세상과 분리하기도 합니다..... 알지 못하는 것은 무능과 게으름이고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아직 앎이 내것이 되지 못한 것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sceptic 2007-01-24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능과 게으름보다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 더 두렵습니다. 알고 실천하는 삶이 어렵지만은 않을 것 같은데 어렵습니다. 조금씩, 한 걸음씩 내디뎌봐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