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고등학교 문예반 시절 1년 선배 형은 신의 존재에 대해 괴로워했다. 신학 대학에 입학 한 후에는 만나지 못했지만 그 형의 고민의 일단에 ‘기아’ 문제가 포함되어 있었다. 세상에 신이 존재한다면 배불러 죽는 사람과 굶어죽는 사람이 공존하는 세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오래 전 기억이지만, 신의 존재와 무관한 이야기지만, 21세기가 되어서도 세상에 태어나 굶어서 죽어가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장 지글러는 유엔 식량 특별 조사관이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는 실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쓴 굶주림에 관한 보고서이다. 2005년 유엔식량농업기구의 보고서에 따르면 10세 미만의 아이들이 5초에 1명 꼴로 굶어죽고, 3분에 1명 꼴로 비타민A 부족으로 실명하고 있다. 전 세계 인구의 7분의 1에 해당하는 8억 5천만 명이 극단적인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다는 이 보고서를 믿고 싶지 않았다. 한 해 음식 쓰레기 처리 비용이 얼만지 아느냐고 아우성 치는 이야기들은 머나먼 행성의 이야기로 들린다. 한 쪽에서는 영양의 과잉 공급으로 비만과 웰빙 바람이 불고, 한 쪽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이 넘쳐난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세상은 원래 그런거라고?

  저자인 지글러의 아들 카림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형식으로 쓰여진 이 책은 J. 네루가 감옥에서 딸에게 <세계사 편력>을 썼듯이 친절하고 자상하게 자신의 아들에게 세상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진실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해준다. 실증적이고 구체적인 사례와 경험들이 녹아 있는 아버지의 설명은 아들에게 설득력있게 다가가기에 충분하다. 내 배가 부르니 그런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이기적인 태도나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도 힘든 세상에서 쓸데없는 분야로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저자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도저히 외면하거나 남의 이야기로 치부할 수 없게 된다.

  전 인류의 20배쯤 되는 사람들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지구의 농업 생산력을 가지고도 8억 5천만 명이 굶주리고 있다는 현실이 놀랍다기보다 황당하기까지하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현실의 원인이다. 장 지글러가 이 책을 쓴 목적도 여기에 있다. 이 원인들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과 구체적인 대안까지 제시하지 못했지만 행동하는 지성으로 자신의 경험과 직접 체험을 통해 분명하게 제기하는 문제점에 대해 남의 집 불구경하듯 했던 사람들은 할 말이 없어진다. 특히, 신자유주의와 세계화가 결합되어 80년대 이후 맹위를 떨치고 있는 현상들에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선진국의 식민주의에 뿌리를 둔 역사적인 이유와 거대자본을 통해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곡물 회사, 네슬레를 비롯한 다국적 기업의 횡포 등 구조적이고 복합적인 원인들이 혼재하기 때문에 이것이다라고 콕 찝어내기는 어렵다. 하지만 단순히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이나 이타심의 부족이라는 감상적인 접근으로 해결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사람들의 동정심에 호소하고 십시일반으로 모은 기부금을 통해 그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은 지나치게 문제를 단순화시킬 위험이 있다.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책의 결정 과정과 농산물에 대한 견해 차이, 유엔이 가지고 있는 제3세계 ‘기아’에 대한 관심과 정책들에 따라 해결방법은 여러 가지로 접근할 수 있다.

  2000년과 2005년의 통계를 비교했을 때 거의 변화가 없다는 사람들의 관심과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비난과 원망에 가까운 이유뿐만 아니라 미흡한 대책 마련과 구조적인 모순과 문제점들에 대한 접근 방식이나 노력이 부족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많은 이야기들이 그의 아들 ‘카림’에게 제대로 이해되었다면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공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책장을 넘기다가 울컥하고 목이 메여 한동안 하늘을 보았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낄 줄 아는 유일한 생명체인 인간의 의식 변화에 희망이 있다. - P. 23

인간은 다른 사람이 처한 고통에 함께 아파할 수 있는 유일한 생물이다. - P. 170

  저자가 이 글을 쓴 목적은 이 한 줄 때문이리라. 그러나 누군가에게 신이 있느냐고 묻기 전에 ‘타인의 고통’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유일한 생물이 인간일까 하는 회의를 품게 된다. 그렇다는 믿음과 희망만이 전제되어야 우리에게 미래가 존재한다. 어떤 미래를 꿈꾸느냐 하는 것도 물론 바로 여기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우리의 태도와 의식의 변화에서 출발하겠지만. 이 따스한 햇볕 아래 굶어 죽어가는 어린 아이들을 상상해 본다.


070404-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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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from 風林火山 : 승부사의 이야기 2007-11-18 22:06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갈라파고스 2007년 11월 도서목록에 있는 책으로 2007년 11월 8일 읽은 책이다. 관심분야의 책들 위주로 읽다가 알라딘 리뷰 선발 대회 때문에 선택하게 된 책인데, 이런 책을 읽을 수록 점점 내 관심분야가 달라져감을 느낀다. 총평 물질적 풍요로움이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이기에 이 책에서 언급하는 "기아의 진실"은 가히 충격적이다. 막연하게 못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