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개조론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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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를 쓰려고 제목을 치다가 오타가 났다. ‘대한민국 개좆론’이라고. 무의식적인 손가락의 실수지만 키보드를 두드리다 혼자 웃고 말았다. 우연한 오타가 그런대로 말이 된다. 육두문자가 저절로 튀어나올 정도로 대다수의 정치인들을 혐오한다. 모두 꼴보기 싫다는 단무지형 정치 혐오증에 가까운 증상은 대한민국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병이 아닌가 싶다. 일천한 민주주의 역사를 바탕으로 고도 압축 성장을 하느라 좌충우돌 하고 있는 우리 나라의 모습은 위태롭기만 하다. 하지만 우수한 민족성 덕분인지 난파의 위기를 견뎌내며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간다고 믿고 싶다. 아니 그렇다.

  이런 믿음조차 없다면 대한민국에 살 수 없다. 현재의 정치 상황에 대한 오호의 감정을 넘어 냉정한 판단력과 비판 능력을 갖고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사람들도 있고 지금 이대로의 대한민국을 만끽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들만의 리그와 독주가 계속될 경우 과연 이대로 좋은가? 당신들에게 묻고 싶어진다. 당신들은 대한민국의 1%쯤 되는 사람들인가? 아니면 20% 되는 사람들일까?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유시민의 <대한민국 개조론>은 정치인으로서 나름대로 힘겹게 또 갖은 방법으로 욕을 먹어가며 버텨내고 있는 유시민의 모습은 안쓰럽다. 개인적인 감정을 넘어서 우리나라 정치풍토에서 신념과 지조라는 말을 꺼내기도 우습지만 그걸 지켜내려는 몇 안 되는 정치인이라고 나는 판단한다. 그가 보수이든 진보이든 우리가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정치적 신념에 대한 ‘진정성’이다. 정치인은 누구나 말을 바꿀 수 있고 생각이 달라져서 정치적 행보가 달라질 수도 있다. 그래도 올바른 정신이 박힌 유권자라면 그의 진정성을 보고 판단한다. 수많은 변절자로 낙인찍힌 정치가에게 면죄부를 주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유시민의 말과 행동들에 대한 지지 표현도 아니다. 다만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타인의 이야기에 귀기울여 본적이 몇 번이나 있나 돌아보았다.

  그렇게 옳은 얘기를 저렇게 싸가지 없게 말할 수 있느냐고 비아냥거리던 동료 의원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유시민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싸가지 없어도 좋다. 나는 내 갈 길을 가자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태도와 방법을 수정해 보자고 생각했을까 궁금하다. 복건복지부 장관을 지내면서 그가 무슨 일을 저질렀고 무슨 일을 하려고 했는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보면 된다. <대한민국 개조론>은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일하는 동안의 비망록이며 대국민 보고서이며 참았던 억울함에 대한 변명이다.

  그의 말이 다 옳지는 않다. 독자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먼저 그의 진정성이다. 언제든 정치를 그만 둘 각오를 하고 누구보다도 국민여러분에게 욕먹을 각오를 하고 토해내는 그의 육성은 한 번쯤 귀기울여 들을만하다. 한나라당 지지자든 민노당 지지자든 노빠든 상관없다. 옳은 이야기에 대해서 냉정하게 들어보고 차갑게 비판할 수 있는 독자들에게는 알아두고 들어보아야 할 만한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다.

  올해는 대선 정국이 어떤 드라마나 영화보다도 흥미롭게 혹은 잔혹하게 또는 가장 혐오스럽게 펼쳐질 예정이고 이미 서막이 올랐다. 절치부심 한나라당이나 길거리에서 지갑을 주었던 열린우리당이나 여전히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민노당이나 귀를 막고 눈을 가리고 달리는 기호지세의 형국이다. 유시민이 어떤 역할을 하든 정치인으로서 어떤 행보를 하는 것과는 무관하게 대한민국의 전직 보건복지부 장관의 자격으로 말하는 그의 이야기는 들어 보아야 한다.

  이 책에서 유시민은 국민여러분을 왕으로 자신은 신하로 비유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음으로 당연한 주장이고 정치인들이 투표가 끝나기 전날까지만 내세우는 말이기도 하다. 임금이고 왕인 국민에게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아뢰는 말에 거짓이나 사심이 담겨 있다면 누가 그의 말을 듣겠는가. 자신을 과대 포장하거나 자신의 정치적 선전물로 활용하기 위한 책이라면 독자들이 먼저 눈치 챌 것이다.

“대한민국은 밖으로는 세계화 시대의 선진통상국가로 나간다. 선진통상국가로 성공하기 위해 안으로는 사회투자국가를 건설한다.” - P. 33

  이 한마디가  이 책 전체를 요약한다. 선진통상국가와 사회투자국가라는 양 날개로 힘차게 날아오르는 대한민국을 상상하는 유시민을 상상한다. 나머지 각론에 대해서는 책의 내용에 관한 개인적인 판단과 객관적 자료와 검증이 필요한 것들이기 때문에 보다 엄밀한 분석과 국민들의 동의와 정치권의 야합이 필요하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남에게 미룰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내가 움직이지 않고 실천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으면서 뭔가 바뀌기를 바라지만 않는다면 강 건너 불 보듯 할 수도 있겠다. 사학법은 거꾸로 돌아가고 국보법은 여전히 존재하며 연금개혁은 서로 못 본체 한 지 너무도 오래되어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국민들께도 말씀드립니다. 자기 머리로 생각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왕이 왕 노릇을 못하고 누군가의 수렴청정을 받게 됩니다. - P. 122

  조중동의 기사가 자신의 생각이고 한겨레의 칼럼이 내 이야기가 되어 논쟁한다고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패배주의! 누구의 수렴청정인지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국민들에 대한 발칙한 경고와 불만이 은근히 드러나지만 사실이다. 빌헬름 라이히는 그것이 궁금해서 <파시즘의 대중심리>를 썼다.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믿는 수많은 노동 계급은 어찌하여 조선일보의 주장을 자신의 머리로 착각하는 것일까.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와 지도자의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주권자인 국민의 수준입니다. 대한민국 정치의 수준은 곧 국민의 수준이라는 말씀입니다. 남명 조식 선생처럼, 저도 정치적 사망을 각오하고 이 말씀을 드립니다. - P. 262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으리라’는 굴원의 <어부사>로 시작한 이 책은 남명 조식 선생의 ‘단성소’를 되새기며 끝맺는다. 너무 먼 얘기가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나의 문제라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유시민의 이야기는 정치적 투정도 언론에 대한 불만도 국민에 대한 객기도 아니다. 그래서 참고 들을만했다.

070723-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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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7-24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줄을 읽으며 웃다 셋째줄에서 단무지형을 '단순무지형'으로 읽었어요.
그런데 단무지형은 뭔가요?
거꾸로 읽는 세계사가 집에 있지만 안 읽었는데
한번 실망하면 더이상 기회를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겠지요.

sceptic 2007-07-24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무지는...단순무식지랄..의 준말이라고 알고 있는데...아닌가요?ㅋㅋ
그책도 읽을 만한데요...

kdh6390 2007-07-24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이글 제 블로그에 올리면 안될 지 문의 드립니다. 제 블로그는 아래랍니다.

http://www.mediamob.co.kr/BACH2138/blog.aspx

sceptic 2007-07-24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관없는데요...^^...예전에 어떤 사람처럼 별것도 아닌걸 가져다 리포트 장사하는 사이트에서 파시지만 않는다면...ㅋㅋ...농담입니다...

kdh6390 2007-07-25 0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식의힘님 고맙습니다. 저도 님과 같은 고민을 한 적이 많습니다. 님의 글은 pdf파일로 올려 보겠습니다. 블로그관리자에게 복사방지기능을 달아 돌라고 해도 반영이 안되어서 제 블로그에 실린 다른 분에 대해서도 미안한 점이 많습니다.^^ 그러고 보니 여기 알라딘에 서평쓰시는 분들 글이 장난이 아니더군요. 재삼 고맙다는 말씀드립니다.

BACH2138드림~~~~~~~~~~

sceptic 2007-07-26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넘 신경쓰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