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을 꿈꾼 시대 - 육성으로 듣는 열정의 20세기
장석준 지음 / 살림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혁명은 시대를 넘어 영원한 미래의 희망이 되어 버렸다. 혁명과 희망을 동의어로 생각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커다란 축복이거나 지독한 불행이다. 어느 시대를 살아가든지 경계선에서 서성거리는 사람보다 양 극단에 선 사람들이 훨씬 많다. 파시즘이 처음 등장했던 20세기 초반에도 그들을 교묘하게 이용하려다 오히려 뒤통수를 맞은 경우를 생각해 본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그 신념을 지키기 위해 앞장 섰던 수많은 사람들이 바보였을까?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러시아 국민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2천 5백만이 희생됐고, 폴란드의 경우, 전체 인구 5분의 1일 죽었다. 그래서 20세기를 야만의 시대라고 부르는 것일까?

  <혁명을 꿈꾼 시대>라는 장석준의 책은 20세기에 대한 회고록이다. ‘육성으로 듣는 열정의 20세기’라는 부제가 설명해 주듯이 헬렌 켈러에서부터 우고 차베스에 이르기까지 20세기를 뜨겁게, 온몸으로 살았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결정적인 순간에 그들의 신념과 열정을 담아냈던 연설들만을 모았다. 그 모든 순간들이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갔는지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이 책에 거론된 사람들의 삶은 책 제목처럼 일상에서 ‘혁명’을 꿈꾸었다. 꿈을 현실로 옮길 수 있다는 의지와 신념은 그 연설을 들었던 사람들에게 숙연한 감동을 안겨주거나 거센 비난과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여러 등장인물이 등장하는 책의 한계는 깊이의 문제다. 23명이 등장하는 책에서 각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보겠다는 욕심은 버려야 한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이 책의 의도는 21세기의 관점에서 바라본 20세기이다. 책의 내용은 여섯 개의 주제로 20세기를 설명하고 있다. ‘전쟁, 자본주의, 제국주의, 인종주의, 파시즘, 남성중심 사회, 자본의 세계화를 넘어서’가 그것이다. 각 장마다 대표적인 인물들에 대한 설명이 붙어있고 그들의 인상적인 연설을 옮겨 놓았다. 이런 구성은 산만해지거나 백화점식 나열에 불과할 위험을 내포한다. 편집 의도가 좋다고 해서 괜찮은 책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책 한 권에 여러명을 소개하는 책은 주의깊게 살펴보아야 실망하지 않는다. 그런면에서 이 책은 의심없이 선택할 만하다.

  책에서 기대하는 면이 독자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이 책에서 가장 후한 점수를 준 부분이 각 장 앞부분에 덧붙혀 놓은 ‘20세기’와 ‘21세기’의 대화부분이다. ‘시간’은 쉽게 정의되지 않는다. 의인화한 두 명의 인물이 대화를 나눈다. 21세기가 선배인 20세기를 찾아가 세기가 바뀌면서 최근 7년간 벌어진 굵직한 사건들을 전해주면 조언을 구한다. 그리고 꼭 100년간의 시간인 20세기에 대해 선배에게 한 수 지도를 받는다. 과거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 자들은 반드시 과거를 반복한다는 묵시적 전언을 읽어낼 수 있다.

  특정한 인물의 사상과 생애를 탐구하고자 하는 목적이 아니라면 사상사에 관한 책은 연구 목적이 아니라면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 선뜻 손이 가지도 않고 읽으면서도 많은 부담을 느낀다. 단순한 호기심과 정리되지 않은 머릿속을 위해서 책장을 넘기다가 한 숨을 쉴 때가 있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만만치 않은 공력을 들여 한 세기를 정리하려는 작업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저자 장석준은 시대를 통찰할 수 있는 주제를 중심으로 사회사적 측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요 인물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연설을 옮겨 놓으면서 적절하고도 설득력있게 사건과 시대를 분석하고 있다.

  ‘20세기’라고 하는 가상의 인물을 통해 자신의 시대를 스스로 정리하고 조망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알기 쉽게 접근하기 위해 21세기와 대화를 나누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21세기는 묻고 20세기는 답한다. 독자들의 궁금증을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적절한 분량과 명쾌하고 정확하게 핵심을 짚어 나간다. 지난 세기를 알고 싶다는 이 책 한 권을 조용히 권할 만하다.

  다만 앞서 지적한대로 깊이와 넓이는 독자가 이 책 이후에 채워나가야 할 부분이다. 하나의 실마리가 되어 호기심을 증폭시키거나 관련 분야에 대한 방향과 목적이 결정된다면 한 권의 책이 할 수 있는 역할로는 충분하고도 훌륭하다고 볼 수 있다.

  20세기는 과연 혁명의 세기였을까? 그렇다면 21세기는 어떤 시대가 될 것인가? 두 세기에 걸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길을 묻는다. 저자는 그 길의 방향과 목적지를 제시하지는 못한다. 그것을 책을 통해 독자들이 직접 고민해 보아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 지금, 여기의 문제가 과거의 연장이고 우리의 미래가 된다. 그것은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인류가 발전시켜온 역사이며 그늘이고 희망이며 아쉬움이고 절망이며 그리움이다.

혁명이야말로 끊임없는 혁명이 필요하고, 혁신을 주장하는 세력이야말로 혁신되어야한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닫는 것이 오직 20세기 초의 사회주의자들에게만 해당되는 불운이겠는가. - P. 79

  지나 간 시간에 대한 반성보다도 미래를 향한 희망과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한 궁금증이 앞선다. 그 궁금증을 우리는 20세기에게 묻는다. 그 길에 대해 20세기의 토니 벤은 이렇게 말한다.

“다음 세기에 사람들은 경쟁이 아니라 협력을 원할 것이다. 자립적인 경제 체제를 갖춘 세계 여러 나라들이 서로 협력할 것이다. 이번 세기에 우리가 항상 전쟁을 계획했던 것처럼 이제는 평화를 계획하길 바랄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운명을 스스로 민주적으로 통제하려 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이번 세기가 다음 세기에 전해야 할 참된 교훈이다.” - P. 409


070615-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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