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1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들이 알고 있는 대부분은 우리들이 학교 밖에서 학습한 것이다. 학교 아동은 교사가 없더라도, 아니 오히려 때때로 교사가 있을 때라도 대부분의 학습을 자력으로 행하는 것이다. 대단히 비극적인 일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전혀 학교에 다니지 않았는데도 결국 학교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을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 이반 일리히, 학교없는 사회 : P.58

  근대적 의미의 학교는 제국주의의 근대 시민 양성을 목적으로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국민학교는 일본 제국주의의 국가 이념을 충실하게 이행할 수 있는 국민을 교육하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국가 이데올로기를 어린 시절부터 학습하고 질서와 규율을 명분으로 고분고분하고 말 잘 듣는 국민을 양성한다. 해방이후에도 교육의 근간과 뿌리는 여전하다. 군사 정권시절에는 권력의 하수인 역할을 충실하게 해냈다. 심지어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국민윤리’를 가르치기 시작한다. 아직도 중학생이 되면 ‘도덕’을 배운다.

"학교는 중요한 진실을 회피한다" - 노암 촘스키, 강주헌 옮김, <실패한 교육과 거짓말>, 2001, P. 38) 학교는 국가가 승인하고 인정하는 것을 진리라고 주입한다. 김상봉, 도덕교육의 파시즘 :  P. 69

  아직도 학교에서는 두발을 단속한다. 제각각 다른 머리의 길이가 옷깃을 닿지 않아야 한다는 애매한 규정이나 여학생의 머리 길이 제한 등은 이미 2005년에 국가인권위원에서 학생들의 행복추구권을 박탈하고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취지의 권고를 교육부에 전달했다. 하지만 아침마다 벌어지는 지각과 두발 단속의 학교 현장을 가만히 들여다 봐야 한다. 교육과정에도 없는 애국조회가 아직도 시행되는 수많은 학교를 보자. 그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수많은 교장과 교사와 학생과 학부모들의 생각을 들어보자.

  올바른 가치관의 함양과 민주시민으로서의 질서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학교에서는 과연 주어지는가? 학교 교육은 이대로 좋은가? 대안 없는 비판이나 한숨 섞인 푸념이 아니다. 온몸으로 실천하며 공교육의 방법과 제도를 비판하고 대안을 찾아 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작년에 나온 고미숙의 <나비와 전사>에서 나는 단 한 줄을 가슴에 새겼다.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이 한 마디를 부제로 달고 <호모 쿵푸스>가 나왔다. 공부하는 인간이란다. 많은 학생들이 가장 싫어할 만한 책의 제목을 달고 나왔으나 이 땅의 모든 학생과 학부모와 교사들에게 강제로 읽히고 싶은 책이다.

  어떤 책이든 한 사람의 독자로서 한 권의 책을 읽고 가슴으로 받아들이거나 머리로 생각하는 장면이 다 다를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가슴으로 읽었다. 무덥던 어느 날, 혼자 앉아 밥을 퍼먹으며 책장을 넘기다 울컥했다. 눈물이 날 뻔했다. 지금까지 무엇을 바라 살아왔던가하는 자책과 이 땅의 교육 현실을 꼬집는 고미숙의 이야기는 날선 칼날이 아니라 은근한 손길로 구석구석을 쓰다듬으며 아픈 곳을 콕콕 찔러댄다. 그리고 조용히 묻는다. 너 왜사니?

  ‘이념이란 선언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표현되어야 한다.’는 그녀의 한 마디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숙제로 남아 있다.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무엇이 제대로 된 공부인가? 장정일의 ‘공부’를 비롯해서 최근에 불고 있는 ‘공부’ 열풍에 대해 진지하게 돌아보자. 과연 왜 공부를 해야 하며, 무엇이 공부이며, 공부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이 책에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필요하고도 충분한 저자 나름의 진단과 해석과 대안들을 실천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수유동 시절의 ‘연구공간 너머’에서 지금의 남산 시절까지 그녀가 겪은 시간들과 공부 방법들을 단순하게 개인적 차원의 주장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정규 교육 과정이나 공교육의 제도권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공부에 대한 열망과 또 다른 방식의 삶이 우리에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책이다. 저자의 말은 현실에서 비롯되었고 실천적 대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가치관의 혼란이나 사회의 지향점에 대한 반성적 성찰들은 각 분야에서 다양한 방법과 시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고미숙은 이 책에서 ‘교육’ 그리고 ‘공부’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이반 일리히의 <학교 없는 사회>는 파괴적이고 반문명적인 선전선동이 아니다. 현재의 공교육이 보여주는 문제점들을 정확히 짚어내며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학교’라는 제도 자체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보여준다. 고미숙은 이 책을 인용하며 현실적 대안이 공교육의 폐지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힘겹게 그녀가 살아내고 있는, 온몸으로 공부하는 과정을 통해 진정한 교육이나 삶은 어떤 것이며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묻고 있다.

  현실적 대안들을 구체화하기에는 역부족이지만 적어도 우리가 걸어가야 할 지향점을 제시하고 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반론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현실과 부딪히는 많은 문제점들 그리고 교육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까지 이 책을 읽는 사람마다 수많은 문제제기를 할 수도 있다. 아니, 그래야 한다. 그래서 모두가 문제를 인식하고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삶에 대한 철학적 물음과 연계되어 있고 사회 구성원들의 생활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단 하나의 답을 제시할 수는 없다. 다만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다는 인식을 하고 있으면서도 이대로 그냥 갈 수는 없지 않은가?

콩도르세는 이렇게 말했다. “교육의 목적은 현 제도의 추종자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제도를 비판하고 개선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다.” - P. 66

  우리가 제대로 교육받았다면 제도를 비판하고 개선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그 능력을 극대화하는 방법으로 고미숙은 책을 말한다. 독서를 뛰어넘는 방법은 없다. 특히 ‘고전’을 암송하며 문리를 터득하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진정한 공부방법에 대해 말한다.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책장을 덮었다.

  “삶의 주인이 될 것인가, 자본의 노예가 될 것인가?”라고 묻는 그녀의 질문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한 동안 누구에게나 한 권의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한다면 나는 서슴없이 이 책을 추천하겠다. 분량도 많지 않고 내용도 어렵지 않으니 누구에게나 가볍고 편안하게 읽힐 것이다.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교육과 독서와 가장 많은 공감했던 이 책을 자신있게 권할 것이다. 삶은 끊임없는 혁명의 과정이며 우주와 생의 신비를 깨닫고 구조적이고 근원적인 소외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여기에 있다고 나는 믿는다.

혁명이란 무엇인가? 억압과 소외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억압에 저항하고 소외를 극복하기 위한 투쟁, 그것이 곧 혁명이다. 그것은 어디로부터 시작하는가? 공부로부터 시작한다. 인생과 우주에 대한 원대한 비전을 탐구하는 공부. 이 공부를 통해 삶을 통찰하는 힘이 생길 때 비로소 존재의 근원적 소외를 극복할 수 있다. 그리고 소외되지 않은 자만이 구조적 억압에 맞서 싸울 수 있다. - P. 199

070603-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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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호모 쿵푸스 실사판] 공부는 셀프!
    from 그린비출판사 2011-03-30 17:07 
    ─ 공부의 달인 고미숙에게 다른 십대 김해완이 배운 것 공부의 달인 고미숙 선생님. 몸으로 하는 공부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적절한 계기(혹은 압력?)를 주시곤 한다.공부가 취미이자 특기이고(말이 되나 싶죠잉?), ‘달인’을 호로 쓰시는(공부의 달인, 사랑과 연애의 달인♡, 돈의 달인!) 고미숙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공부해서 남 주자”고. 그리고 또 말씀하셨다.“근대적 지식은 가시적이고 합리적인 세계만을 앎의 영역으로 국한함으로써 가장 ...
 
 
비로그인 2007-06-04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부로부터 시작한다......에 저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sceptic 2007-06-04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교 다닐때는 그렇게도 지긋지긋하더니...이제 진짜 공부를 좀 해보려고 마음 먹어 봅니다...

2007-06-04 2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sceptic 2007-06-05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좋은글 읽으러 가겠습니다. 그리고 저 범생이와 아주~~~~거리가 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