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며칠 전 신문기사에서 군부대 이전 반대시위 도중 퍼포먼스로 어린 돼지를 능지처참하는 기사가 실렸다. 알라딘에서 지인의 페이퍼에서 그 사진을 보다가 돼지의 눈빛이 너무 안타까워서 사진을 오래 보고 있을 수 없었다. 오직 안타까운 마음 뿐이었다. 그런 어리석은 행위를 계획한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군부대 이전으로 인한 자신들의 경제적 피해와 그로 인한 무언가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잡았을 것이다. 그것을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그것을 표출하는 행위까지 그들은 성숙하지 못했다. 군부대도 사람들로 이루어진 조직이고 그것이 빠져나가서 생기는 경제적 손실이 지위와 계층에 따라 크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따라서 이로 인한 불안은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었을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표출하는 방식에서 그들은 여리고 가엾은 한 생명을 재미삼아 거두어들였다. 비록 가축의 운명으로 인간의 굶주림을 위해 희생되어야 하는 운명의 돼지였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거두어야 하며 생명을 거둘 때 최소한의 예의와 감사하는 마음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 식용으로 생명을 앗는 자의 도리일진대 이렇듯 무식하면서도 맹목적으로 표출된 어리석은 행위의 이면에 그들의 불안이 얼마나 크게 작용했었던가를 짐작케 한다. 사람은 누구나 그 뿌리가 같은 불안을 갖고 산다. 때로는 그 불안이 자신의 생명을 앗을 정도로 크기도 하고 때로는 작고 미세하여 그것을 제대로 알아차리기도 전에 소멸해 버리는 불안에 이르기까지 그것은 하나의 근원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따라서 자칫 그 기사를 읽고 그들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으로 불타서 그들을 마음으로 이미 죽여버렸다면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된 우리들도 크게 그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다.

  우리도 죽음에 대한 불안으로 뭇생명을 해치며 삶을 연장한다. 그리고 우리도 삶의 극한 상황에서는 죽음과 생명의 안전에 대한 불안으로 인한 비이성적인 행동을 한다. 다만 그것의 정도를 가늠하는 사회적인 상황의 악화 정도와 우리들이 마음으로 수용하는 정도의 차이에 따라 마음에서 일어나는 심각함이 달라질 뿐이다. 보통은 말한다. 불안을 극복하는 여러 가지 대안들은 그것이 기독교적인 신념이든 철학이든 예술이든 아니면 부르주아적 삶에 대한 대안적인 모델로서의 보헤미안적인 삶이든, 그것은 지위의 위계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준으로 그 위계를 다시 쓰려고 했을 뿐이라고. 그러니 그것이 가치가 되고 선악이 되고 시비가 되면 그것은 그 가치와 선악과 시비에 의해 새로이 위계가 생기는 것일 뿐이라는 얘기가 된다.

  물론 사회적인 일에 사회적인 기준과 선악과 시비가 없을 수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선악과 시비와 가치가 생기는 마음의 그 자리에 분노와 화가 자리잡느냐 아니면 자비와 사랑과 깨어있음이 자리잡느냐 하는 것이다. 그것이 사회적인 선악을 너머 우리 삶의 성숙이 요구하는 태도이다. 세상은 겉모습만으로는 어떤 것이 옳다 그르다 할 수 없는 미묘하고 복잡한 인과가 존재한다. 독재에 반대하는 집회에 참여했다고 해서 그 모든 참여자들의 마음이 순결하고 진정성에 가득찬 것이 아니다. 그래도 그 집회가 사회적으로는 필요하다고 하면 할 말이 없다. 맞는 말이니까. 하지만 나의 삶으로 그 마음으로 돌아오면 비록 집회에 참석하지 못하더라도 세상의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해 좋은 마음 내는 그 자리가 더욱 중요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이 책은 '불안'에 대한 원인과 해답을 보통이 내렸다. 인간의 역사를 통사적으로 적절한 사건과 문학 작품 예술 작품을 통해서 인간성에 내재한 불안의 사회적 심리적 원인과 해답에 대해 너무나도 일상적이면서도 특별한 서술로서, 늘 보통이 그러하듯, 우리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나는 왜 보통이 진정한 불안의 정체와 그 뿌리를 파헤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왜냐하면 결국은 불안은 한 개인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이고 그 마음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은 사회적인 상상력이며 이론에 불과한 헛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은 나는 그래서 더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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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7-05-27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의 말씀이 다 옳다해도 분노할 상황에는 분노하고 욕도 해줘야 합니다.
그 부분만큼은 동의 하기 어려운게 분노 대신에 대체할 대안을 알지 못하기 때문.
성철스님은 성철스님이고, 다혈질 파란여우는 여우니까요^^
근데, 보통씨 책은 예전에 좀 읽었는데 우째 이 책은 안 읽고 있는지 몰라요.
달팽이님이 읽고 불안하다고 하시니 읽지 말아야 하나...ㅋ

달팽이 2007-05-27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 혹 이 책 안가지고 계시면 제가 한 권 보내드리면 안될까요?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하든 당신의 선량한 마음과 삶의 진정성을 달팽이는
믿어요.
근데 벌써 갖고 계신 건가요?

사마천 2007-05-28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 이 책 괜찮습니다. 저도 같이 권해드릴께요.
달팽이님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저도 한번 써보려고 준비 중입니다. ^^

달팽이 2007-05-28 0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사마천님.
그대의 생각도 듣고 싶군요.

비로그인 2007-05-28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돼지.. 가련한 돼지의 죽음.
일본인도 아니고 중국인도 아닌 내가 속한 한국인에 의해 저질러진 참혹한 만행.
저는 소름이 끼쳤답니다.
언제부터 한국 사람들의 심성이 저토록 끔찍한 일을 '무감각'하게 저지를 수 있을
만큼 잔인하고 누추해졌는지.. 저는 자괴감을 느낍니다.
저를 포함한 한국의 많이 배운 자들의 책임일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달팽이님. 저는 큰 충격을 받았답니다.


달팽이 2007-05-28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한사님.
세상 어느 민족 어느 국가의 사람이건..
인간이 가진 가능성과 선악의 정도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영역과 한계에 뻗어있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한사님처럼 인생의 폭과 깊이가 넓은 분이 그래도 받은 그 충격과 소름은
우리가 발딛고 살고 있는 우리 사회에 대한 애정과 사랑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입니다.
세상엔 왜 그리도 슬픈 일이 많은 것인지..
세상엔 왜 그리도 자괴감이 드는 일이 많은 것인지..
문득 하늘을 쳐다보고 싶어집니다.

혜덕화 2007-05-28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피터 싱어 교수와 도올의 대담 기사가 생각나는군요. 인간의 목숨이나 동물의 목숨이나 소중하기는 마찬가지인데, 어린 아기 돼지가 군부대 이전에 어떤 영향을 끼쳤다고 저런 잔인한 짓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람인 것이 부끄러운 일이 한둘이 아니네요.

짱꿀라 2007-05-28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 오랫만에 들어와 리뷰 읽습니다. 알랭 드 보통씨의 작품은 익히 알려져 있듯이 그의 문체는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줍니다.

달팽이 2007-05-30 0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덕화님/하지만 사람으로 태어나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공부할 수 있으니까요.
산타님/동감입니다. 새로운 생활에 또 적응하시느라 생활의 불편이 많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