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웃을 사랑하라


바리세인들이 물었다.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 

세금을 내야 합니까? 내지 말아야 합니까?” 

예수는 그들의 위선을 알고 말하였다.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신의 것은 신께 돌려드려라”_<마르코, 12:13-17>



코로나 바이러스로 가장 크게 욕을 먹는 집단은 기독교단체들이다. 구체적으로 소규모 종교조직들이 온상이 되고 있다. 그동안 대유행의 진원지에는 항상 그들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비난을 했지만 나는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참고로 나는 무신론자다. 종교의 자유는 그들에게는 목숨과 같으며 예배를 거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그러나 같은 일이 거듭되면서 나 또한 분노하게 되었다. 대체 사람의 생명보다 더 중요한 종교가 있을 수 있는가?


사도 바울도 이 문제로 고민했다. 유대인인 그는 기독교인들을 탄압하는데 앞장섰던 인물이다. 예수를 체포하러 가기까지 했다. 결국 예수를 만나고 극적인 반전을 맞게 된다. 그의 행적은 성경 로마서에 잘 기록되어 있다. 대다수 신자는 그의 개종에 더 관심을 갖고 귀감으로 삼지만 사실 로마서의 핵심내용은 올바른 신자에 대한 것이다. 곧 어떻게 하면 예수를 잘 섬길 수 있느냐이다. 그는 신도 잘 받들어야 하지만 국가의 권위에도 복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얼핏 보면 매우 이상해보이지만 이 주장은 당대의 기존 종교들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사회와 담쌓고 교주를 따르면서 이상적인 공동체를 이루려는 헛된 망상이 스스로는 물론이고 주변을 병들게 한다는 것이다. 단 조건이 있다. 국가의 권위가 신이 정해준 것만큼 합법적이어야 한다. 요컨대 타당한 이유라면 신께는 물론 국가에도 충성해야 한다. 신종 바이러스는 이 기준에 적확하다.


예수는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했다.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과 애정을 쌓지 못하면서 신을 섬기면 안 된다는 뜻이다. 그동안 주류 혹은 이단을 불문하고 기독교 관련 기관에서 나온 확진자들은 이 원칙을 위배했다. 반성하고 거듭나지 않는다면 한국 기독교는 더 이상 이 땅에서 설 자리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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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다이어트 


넌 뭐가 되고 싶니? 라는 말을 들을 나이는 지났다. 아무리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데는 다 때가 있다. 만약 이 규칙을 어긴다면 바로 뉴스감이다. 예를 들어 90살 노인이 대학에 들어간다거나 혹은 자동차 면허를 처음 딴다든지. 사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이들은 극히 드물다. 대부분은 상황에 맞춰 살아가고 그렇게 맡은 일을 천직처럼 여긴다. 전혀 나쁜 일이 아니다. 하고 싶은 걸 반드시 해야만 한다는 사회적 압박이 낳은 헛소리다. 


그러나 설령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하기 싫은 건 귀신같이 찾아내는 게 사람의 속성이다. 단지 게을러서가 아니다. 누구나 뭔가 나와 맞지 않는다는 신호는 직감적으로 깨닫게 된다. 나도 그렇다. 남들이 원하는 대로 무난히 성장한 편이지만 대학에 다닐 때부터 왠지 내게 맞지 않는 옷이라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그런 굴레에서 벗어나기까지 꽤 오래 세월이 흘렀다. 생계를 위해, 가족의 눈치로, 남의 눈 때문에, 사회적 처신을 위해 참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 너무 의지가 부족한 게 아닌가라는 자책도 했다. 다른 사람들은 다 견디는데 너만 왜? 유독.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힘들었고, 그들 또한 나를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결심했다. 하고 싶은 일을 찾기보다 하기 싫은 걸 하지 말자. 쉬웠다. 문제는 실천.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고 하기 싫은 일을 하나씩 지워나갔다.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먼 길을 처음부터 무리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 나는 막상 하고 싶은 일은 거의 없다. 순간순간 떠오를 뿐이다. 하기 싫은 건 여전히 많다. 다행이라면 과거에 비해 상당히 줄었고 계속 진행 중이다. 언젠가 마음의 다이어트가 완성될 그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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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모든 기억이 생생하다. 그중에서도 죽음은 늘 일 순위를 차지한다. 오죽하면 스티븐 킹은 아예 소설 제목을 <시체The Body>로 지었겠는가? 열두 살 아이들이 발견한 사체는 평생 그들의 삶을 지배할 것 같았다. 그만큼 큰 충격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 많은 일들이 무뎌지게 마련이다.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세월이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남는 건 후회와 회환뿐이다. 그 결과 젊었을 때는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생각도 떠올린다. 죽고 나서 나는 어떻게 기억될까? 사실 죽으면 그만이지만 어떤 형태로든 흔적은 남기 마련이다. 위인까지는 아니더라도 좋은 추억으로만 기억되기를 바라는 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현실은? 해는 또다시 떠오르고 길은 막히고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떠들며 하루를 보낼 것이다.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다. 악플보다 무플이 두려운 것처럼. 그럼에도 망상에 젖는 이유는 살아있음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매순간 잘살고 있는지 끊임없이 물어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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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죗값


사람은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 세월호 사건 당시 살아남은 학생이 거의 없을 것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제발 돌아와 달라고 간절히 염원한다. 때로는 이 믿음은 살아남은 자들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눈앞에서 뻔히 잘못되고 있는데도 고치거나 바로잡지 않고 그저 바라만 보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우리는 똑똑히 목격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이런 일이 일어났다. 부동산이 주인공이다. 집을 가지고 있거나 세들어 살고 있거나와 상관없이 모두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 도리어 정부가 그렇게 박살내고 싶어 하는 투기꾼들만 더욱 신이 났다. 


대체 어떤 속사정이 있었던 것일까? 이럴 땐 숫자를 들여다봐야 한다. 아무리 왜곡된 해석이 가능할지라도 날 것을 감출 수는 없다. 2016년 4월과 2021년 1월 기준으로 세 곳의 부동산을 살펴보았다. 참고로 이 시기를 정한 이유는 문 정부 취임 직전과 이후를 비교해보기위해서다. 집은 서울에서 가장 비싼 지역인 압구정동과 비교적 싼 곳으로 알려진 봉천동, 그리고 이른바 경기도의 대장주라고 할 수 있는 과천시의 아파트먼트를 선정했다. 규모는 32평으로 중산층이 가장 선호하는 평형으로 골랐다. 가격은 실거래가를 기준으로 했다. 2016년에는 압구정이 12.9억, 과천이 10.4억, 봉천동이 4.5억 원이었다. 입주시기의 차이는 있지만 지역의 특성을 적절히 반영한 가격이다, 참고로 2년 전인 2014년에는 압구정이 10,7억, 과천이 8.2억, 봉천동이 4.15억 원이었다. 2년 동안 물가 상승률 수준정도만 올랐을 뿐이다. 압구정과 과천의 갭도 2억 원대로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렇다면 2021년 1월은? 압구정은 25.9억, 과천은 15,9억, 봉천동은 8.3억 원이다. 가격 상승도 놀랍지만 갭이 어마어마하게 벌어졌다. 압구정과 과천의 갭은 2억 원대에서 10억 원으로 껑충 뛰었다. 만약 2016년에 대출을 받아 과천을 팔고 압구정을 갔다면 차액으로만 10억 원을 벌었다는 소리다. 


문재인이 들어서기 전 부동산은 큰 문제가 없었다. 강북에 뉴타운이 개발되고 소외지역의 전통명문고들을 특목고를 지정하여 수요를 분산시켰기 때문이다. 또한 부동산 소유정책을 꾸준히 펼침으로써 역설적으로 전세난도 안정이 되었다. 다주택자가 본인 소유 집 외에 다른 집을 싸게 내놓았다. 은행대출도 원활해 집 마련에 대한 부담도 덜했다. 


이처럼 잘 운영되던 부동산 시장을 교란시킨 주범이 바로 문재인 정부다. 마치 멀쩡한 기계를 문제가 있다고 두들겨 아예 망가트린 격이다. 집 소유자를 투기꾼으로 몰고 세입자를 위한다면서 가격통제를 해서 쫓아내고 수요가 가장 많은 서울의 재건축재개발을 그야말로 꽁꽁 묶어 두어 희소성을 더욱 키웠다. 차라리 모르면 가만히 있으면 될텐데 선무당이 사람잡는다고 두더기 잡기식으로 정책을 남발한 결과 전 국토는 투기장으로 변했다. 각종 세금 때리기로 똘똘한 한 채 열풍이 불었고 돌고 돌아 다시 강남이 가장 비싼 동네가 되고 말았다. 이 난리를 잠재우기 위해서는 우선 리더에게 책임을 묻고 자리에서 물러나 응당한 죗값을 받도록 해야 하는데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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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raldine McEwan(1932~2015)


미스* 마플에 다시 빠져 있다. 그가 등장한 소설은 물론 드라마까지 섭렵하고 있다. 아가사 크리스티가 창조한 여러 탐정들 중에서도 마플에 끝리는 이유는 뭘까? 으뜸 비결은 의외성이다. 도저히 탐정에 어울리지 않을 듯싶은 인물이 척척박사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사건 초기에는 경찰들에게 푸대접을 받지만 결국 문제를 해결해내고 만다.


탐정의 원형은 출발부터 정해졌다. 흔히 코난 도일이 시초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에드가 앨런 포우다. 포우는 뒤팡이라는 매력적인 인물을 내세워 미스터리한 사건을 풀어낸다. 화자 겸 조수도 늘 함께 한다. 이 스타일은 훗날 셜록 홈즈와 왓슨으로까지 이어진다. 미스 마플도 마찬가지다. 이런 저런 조력자들의 도움을 받는다. 재미있는 건 그 방식이 수다라는 사실이다. 곧 얼핏 보면 별 일 아닌 이야기들을 듣고 퍼즐을 맞추어 나간다. 평론가들은 마플이야말로 아가사의 분신이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사건의 배경이 주로 고즈넉한 시골의 대저택이다. 크리스티가 자란 환경과 흡사하다. 게다가 나이 든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건 늙어서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은 자신을 빼다 박았다.


덧붙이는 말 


미스 마플 드라마는 시즌 6까지 제작되었다. 1,2,3는 제랄딘 매큐언이 4,5,6는 줄리아 맥킨지가 주인공으로 출연했다. 줄리아는 전형적인 영국 귀족부인 이미지인데 반해 재랄딘은 말괄량이 소녀가 그대로 나이 들어 할머니가 된 듯한 느낌을 준다. 기호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게는 매큐언의 연기가 인상적으로 남아있다. 조곤조곤하면서도 때로는 과감하게 그리고 뚯밖에 눈물을 쏟아내는 모습에 심쿵했다. 2015년 82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 영미권 국가에서 결혼하지 않은 여성을 미스로 칭하는 것은 오랜 전통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성평등에 위반된다는 이유로 쓰지 않고 있다. 대신 미즈라는 말로 통일하고 있다. 아가사 크리스티가 붙인 원래 명칭이라 그대로 사용한다. 




사진 출처 :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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