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미투운동이 거세다. 이번엔 운동선수와 연예인이다. 어렸을 적 이런 저런 괴롭힘을 당한 자들이 가해자를 대상으로 폭로전에 나선 것이다. 그 중에는 진실도 있고 거짓도 존재한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건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진 양상이다. 곧 을들이 더 이상 참지 않는다. 사실 폭로가 연이어 일어나는 건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아무리 중범죄라도 공소시효가 지난 이상 벌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창 떠들썩했던 배우 성추행 사건들을 보라. 거론된 인물들 가운데 감옥에 간 사람은 거의 드물다. 물론 명백한 범죄에 해당하고 공소기한이 남아 있는 경우는 예외다. 곧 죄를 묻지는 못하지만 도덕적 책임을 따지겠다는 뜻이다. 


시실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스타들에게는 법적 단죄보다 더 무서운 게 바로 평판이다, 사람들이 보기 싫어지는 순간 바로 퇴출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진짜 피해자들에게 이런 저런 오퍼가 들어갔을 가능성도 있다. 눈 감는 대가로 뭔가를 건네는. 설령 그런 제안이 없었더라도 본인에게 득되는 건 아무 것도 없는데. 도리어 본인의 피해가 드러남으로써 쓸데없는 구설수에 오를 수도 있는데. 그럼에도 역 소송에도 불구하고 증명을 하기 어려운데도 법정에 세울 수 없음에도 이들이 나서는 이유는, 다시 말해 눈앞의 이익을 포기하고 복수를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단 한마다의 사과 말을 듣기 위해서? 글쎄, 인간은 미스터리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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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바라보는 하늘 끝, 과연 그 곳에는 무엇이 있길래 


아찔하게 높고, 아득하게 먼  


막장이라는 단어는 드라마와 결합하여 화려하게 부활했다. 처음에는 그러지 못했다. 말도 안 되는 스토리로 감정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장모가 사위에게 김치 포대기로 싸대기를 날리거나 복수에 불타는 여인이 볼에 볼펜으로 점하나 찍고 불사신처럼 살아 돌아오는 식이었다. 뻔히 보이는 수작에 왜 사람들은 환호하는가? 현실이 아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 저건 판타지야. 우리의 어두운 속마음을 대변해주는. 


펜트하우스는 이 공식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시청자들은 사자우리에 던져진 등장인물들의 치고받는 싸움을 보며 같이 흥분하고 울고 웃고 떠들어댄다. 저 놈을 당장 죽여라, 저 년을 어서 불구덩이에 파묻어라. 모든 의문의 열쇠를 가진 여인의 죽음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 펜트하우스가 새로운 시즌으로 돌아왔다. 역시나 초반부터 스케일은 더욱 커졌으며 내용은 더욱 흥미진진해졌다. 전 편이 계급간 싸움이었다면 이번 편은 대등하게 올라선 가진 자들끼리의 투쟁이라 한층 업그레이드되었다. 과연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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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의 발달은 인간의 숨은 본성도 일깨운다. 비대면이 그것이다. 사실 사람들이 서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건 매우 소모적인 행동이다. 특히 처음 대하는 경우엔 두려움까지 생긴다. 머릿속으로 온갖 경우의 수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주 오랜 옛날에는 낯선 이들을 접할 상황이 극히 드물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산업화 이후 대중사회가 본격적으로 막을 열면서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익명의 사람들과 마주쳐야 한다. 그럴 때마다 얼굴을 꾸미고 목소리고 다듬고 행동까지 신경을 쓰며 지낸다.


그러나 인터넷의 확산은 이런 우려를 단숨에 날려버렸다. 게다가 때마침 팬더믹까지 덮쳤다. 무인으로 거의 모든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인터넷 쇼핑은 대표적인 예이다. 클릭만 하면 주문 완료. 물건도 집 앞으로 바로 온다. 딱히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필요도 없다. 문제가 발생해도 문자로 내용을 주고받으면 그만이다. 자, 이제 드디어 진정한 유토피아 세상이 열렸구나, 라고 선언하고 싶지만. 설 전에 온라인 쇼핑을 했다. 연휴기간을 고려해 배송과정이 어느 정도 걸릴 거라고 짐작은 했지만 주문 후 열흘이 넘어도 소식이 없자 걱정이 되었다. 홈피에 들어가 보니 출고는 했는데 배송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동서울터미널에서 꼼짝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루 이틀 더 참아보자고 기다렸는데 소용이 없었다. 장장 이십일이 지났는데. 게다가 먹을거리라 제대로 보관되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웠다. 


어쩔 수 없이 문자를 보냈더니 쇼핑몰과 택배회사가 서로 책임을 미루며 핑퐁게임을 했다. 이 과정에서 전화통화는 일체 없었다. 속상했다. 별 거 아니라면 별 게 아니지만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질질 끄는 게 짜증스러웠다. 결국 어찌어찌 환불을 받아 드디어 끝났구나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는데 웬걸 다음날 택배사에서 또 문자가 왔다. 해당 물건을 반품해 가겠다는 것이다. 아니 이미 반품처리가 끝났는데 이게 뭔. 관련 내용을 답장을 보냈더니 확인이 안 된단다. 결국 최후의 칼을 빼들었다. 전화를 걸어 상황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진작 통화를 했더라면 이런 골치 아픈 일도 없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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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라면서 맞지 않았다. 그 누구에게도. 돌이켜보니 어마어마한 행운이었다. 물론 어머니나 선생님이 회초리나 매로 종아리나 손바닥을 때린 적은 있지만 감당할만한 체벌이었다. 이 기록이 깨진 건 엉뚱하게 재수학원에서였다. 내가 공부하던 곳은 특이하게 담임제도가 있었다. 그 날도 수업이 다 끝나고 종례 비슷한 것을 했는데 난데없이 나를 불러내 뺨을 갈겨댔다. 그 때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울면서 집까지 걸어갔다. 버스로 40분 이상 걸리는 거리를. 창피하지도 않았다. 그저 억울할뿐이었다. 다음날 그 선생을 찾아갔다. 그는 자신이 말을 하는데 떠들어서 혼을 냈다고 했다. 황당했다. 시끄럽게 군 건 다른 아이였다. 나는 평소에도 말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 행동이다. 나는 왜 그랬을까? 타임머신이 있다면 돌아가서 그 때의 나에게 물어보고 싶다. “너 대체 왜 그랬니?” 결국 나는 학원을 그만두었다. 가해자는 고개를 세우고 떳떳하게 살아가고 피해자는 숙인 채 도망갔다.


배구계가 뒤숭숭하다. 이다영의 에스엔에스가 쏘아올린 신호탄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그 중에는 현역 남자 배구 선수도 있다. 국가대표 코치로 있던 이성열에게 죽일듯이 맞은 박철우 선수다. 그는 10여 년이 지난 일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성열이 대수롭지 않게 지난 이야기를 추억하듯이 내뱉은 인터뷰를 보고 그야말로 피가 가꾸로 솟았다. “나는 지금도 그를 보고 싶지 않다.”


누군가를 때려 본 경험이 없어 양심의 가책을 받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맞아본 나는 생생하게 기억한다. 아프고 창피하고 억울하고 슬프고 숨고 싶고 사라지고 싶어진다. 아직도 그 날의 나를 떠올리면 그 개자식을 왜 내가 그냥 두고 심지어 용서를 빌었는지 스스로를 죽여 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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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특이한 나라다. 아직도 여왕이 있고 귀족들이 존재한다. 일부 다른 국가들도 비슷한 사례가 많지만 누리는 권력은 비할 바가 못 된다. 아무리 정치 간섭을 배제한다고 해도 그건 말뿐 실제로는 여전히 막강함 힘을 발휘한다. 스캔들이 잦은 것도 그만큼 파워가 있다는 반증이다. 특이한 건 대다수 국민들이 이 체제를 따르고 있다. 심지어 사랑하고 존경한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청교도 혁명 영향도 있다. 


1649년 크롬웰이 이끄는 시민군은 찰스 1세를 처형하고 공화정을 수립하였다. 부패한 왕정에 신물이 났던 백성들은 환호했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갈망도 컸다, 그러나 크롬웰은 스스로를 호국경이라 칭하며 입법, 사법, 행정, 군사 등 모든 권한을 거머쥐었다. 이른바 독재자가 된 것이다. 일시적인 혼란기라면 이해가 갈 법도 하다. 문제는 일반 국민들의 사생활까지 간섭했다. 곧 문란하다고 생각되는 모든 행위를 금지시켰다. 여기에는 술을 마시거나 춤을 추는 것까지 포함되었다. 청교도 기준에 어긋나는 행동 일체를 적폐로 몬 것이다. 영국인들은 왕정을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그 때가 더 살기 좋았어. 결국 청교도 혁명은 1660년 막을 내렸다. 불과 정권을 잡은 지 10년을 갓 넘긴 시기였다. 


영국은 다시 왕정으로 돌아갔다. 그 모습은 과거와는 달랐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왕당파와 의회파는 서로간의 합의를 거쳐 권력을 나누어 가졌다. 이 형태는 아직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아마 앞으로도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그만큼 공포정치의 폐해가 심했다는 말이다. 4백 년이 훌쩍 지났는데. 만약 크롬웰이 나라를 잘 이끌어갔다면 우리에게 익숙한 영국은 아마 먼 옛날 유물로나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굳이 청교도 혁명을 주제로 글을 쓰는 이유는 현재 우리나라 상황과 흡사해서다. 정직하게 말해 운동권 세력이 정권을 잡는 건 비상시국에서나 가능하다. 마치 군인이 쿠데타를 일으키는 것과 마찬가지다. 여기에는 보수 세력의 책임도 크다. 기득권과 결탁하여 오랫동안 큰 이득을 누려온 업보다. 그 결과 상식적이고 건전한 진보의 싹이 죽었고, 모두 지하로 내려갔다. 이들은 저항정신이 무기였기에 제대로 된 집권 경험이 없었다. 


한국에서 운동권이 본격적으로 정권을 잡은 건 노무현 때였다. 그의 집권 5년은 내내 혼란스러웠다. 지지자인 내가 보기에도 그랬다. 이후 이명박과 박근혜가 연거푸 대통령이 되면서 퇴행적 보수가 득세하였다. 만약 그 때 물갈이를 하고 합리적인 보수집단이 정치를 이끌어갔다면 촛불시위도 없었을 것이고 문재인의 등장도 어려웠을 것이다. 문재인은 준비가 안 된 대통령이었다. 구태 보수에 등 돌린 시민들의 열망을 안고 리더 자리에 올랐을 뿐이다. 완장을 찼다면 그게 걸맞은 일을 하든지 아니면 조금씩 보완하면 되었을 텐데. 그래도 사람들은 더 좋아했을 것이다. 전 정권에 워낙 실망한 상황이라. 본인이 부족하면 능력 있고 양심적인 사람들을 주변에 배치하면 되었을 텐데 그마저도 외면했다. 그나마 있던 몇몇 소수의 사람들도 욕보이고 쫓아내기 급급했다. 실패한 사례도 있지만. 이유는 알아서 판단하시라. 


대신 이왕 획득한 권력 마음껏 휘둘러보자하며 내달리기 시작했다. 마치 크롬웰처럼.  국민들을 상대로 기합주는 정책을 케이 방역 운운하며 자화자찬한다. 이미 물건너간 소리다. 불행한 건 민주당이 재집권을 하느냐 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진보정권에 넌덜머리가 난 사람들이다. 무능하고 싸가지 없음으로 대표되는. 과연 보수는 이 틈을 노리고 준비를 잘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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