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는 변함없이 사람들을 기분 나쁘게 한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이유는 회피심리 때문이다. 곧 각박한 현실을 잠시나마 잊고 싶어서다. 장르와 상관없이 판타지를 경험하기 위해서다. 연하 꽃미남들이 번갈아가며 쫓아오고 절세미녀가 한번만 만나달라고 애걸복걸한다. 안다. 그것이 거짓임을. 천만년 동안 늘 사랑을 추구하는 주인공이 세상에는 없다. 홍상수는 반대지점에 서있다. 구질구질한 일상을 극대화하여 보여준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대사는 미묘하게 어긋하고 자신의 누추함을 감추려는 듯 같은 말을 하고 또 한다. <도망친 여자>도 예외가 아니다. 남편과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하는데 어딘가 이상한 감희. 선배와 친구 집을 전전하며 그들의 하소연을 들어주는데. 이사 온 사람이 집을 찾아와 고양이 밥을 준다고 시비를 걸고, 딱 하룻밤 함께 잠 어린 남자가 징징대고, 자신의 애인을 빼앗아간 여자와 함께 사과를 먹는다. 지금 우리 사회 어느 곳에서나 벌어질 듯 한 일들인데 왠지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자신의 치부를 들킨 것 같아 뜨끔하다. 홍상수는 변함없이 사람들을 기분 나쁘게 한다. 그게 그의 장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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맜있어 맛있어 쥐구멍이 있다면 들어가고 싶구나


<귀멸의 칼날>을 보고 왔다. 정확하게 말하면 극장판이다. 이른바 일본 애니 덕후들은 티브이 시리즈를 다 봐야지만 비로소 이해가 가능하다고 하지만 정직하게 말해 큰 상관은 없다. 물론 세세한 설정이나 줄거리를 따라가는 맛은 좀 덜하겠지만. 악귀들을 쫒기 위해 무한열차에 올라탄 귀살대의 탄지로, 젠이츠. 이노스케. 최강 염주 렌코쿠를 만나 한껏 기대에 부풀지만 알고 보니 기차 자체가 혈귀였다. 귀살대와 혈귀는 목숨을 건 혈투를 벌이게 되는데. 압권은 역시 싸움신이다. 애니메이션을 굳이 영화관에서 관람해야 하는 이유를 증명하고도 남는다. 가히 디즈니에 대적할만한 유일한 강자답다. 


그러나 내용은 딱히?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전형적인 일본영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우선 욱일기 논쟁이 있다. 탄지로의 귀걸이 문양이 문제가 되자 해외 상영관에서는 다른 모양으로 바꾸었다. 그럼에도 굳이 욱일기를 내세운 건 제국주의 일본에 대한 향수를 반영한 것이다. 곧 귀살대를 한창 뻗어나가던 시절의 일본에 빗대고 있다. 자살 미화도 여전하다. 아무리 꿈속이지만 스스로를 계속 죽여야만 현실에서 깨어날 수 있다는 가정도 해괴하다. 주군의 뜻이라면 목숨 바쳐 충성해야 마땅한 사무라이 정신도 곳곳에 배어있다. 재미있게 보고 나서 과도한 해석이라고 한다면 유규무언이지만 렌코쿠의 말처럼 맜있어 맛있어 하지만 쥐구멍이 있다면 들어가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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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나 때문에 여신강림을 보는 일인


여신강림을 의리로 보고 있다. 소재는 뻔하고 연기도 오글거린다. 화장으로 추녀에서 미녀로 변신하여 꽃미남들의 구애를 받는다는 설정 자체가 어이없다. 그럼에도 한 회도 빠지지 않고 챙기는 이유는 차은우 때문이다. 이른바 얼굴천재로 불리는 그의 시크하면서도 도도한 연기에 왠지 끌려서다. 사실 차은우는 배우는 아니다. 아이돌로 데뷔하여 예능에 간간이 출연하다가 돌연 드라마에 출연했다. 다 얼굴 덕이다, 라고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첫 출연작인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을 보면 편견이 사라진다. 마치 차은우를 위해 만든 것처럼 찰떡궁합이다. 다른 점은 상대가 화장이 아닌 성형으로 변신한 여성이다. 극중 역할도 대학생이라 여신강림의 고등학생보다 훨씬 현실적이다. 무엇보다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이 여신강림보다 백배쯤 더 재미있는 이유는 시나리오와 여성 주인공인 임수향의 몫이 크다. 주연 뿐만이 아니라 조연들도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한다. 예를 들어 임수향을 곤경에 빠트리는 조우리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손에 땀을 주게 된다. 반면 여신강림은 남녀주인공을 제외하고는 갈등다운 갈등 자체가 없다. 그저 두 주연을 돋보이게 하는 배경쯤으로 치부된다. 그나마 돋보이는 건 처음엔 조력자였다가 악역으로 돌변하는 박유나다. 스카이캐슬에서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그가 이번엔 제대로 칼을 꺼내들었다. 공교롭게도 내 아니디는 강남미인에도 출연했는데 극 중 비중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사진 출처 : 엑스포츠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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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다면 당장 영화 소울을 보시라


당신은 인생을 살 준비가 되었는가?


태어난 김에 살아간다는 사람이 있다. 솔직히 대부분이 그렇지 않나? 이런 부류는 남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만의 세상에 갇혀 살 것 같지만 아니다. 얼핏 보면 멀쩡해 보인다. 큰 불만 없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적성보다는 점수에 맞춰 대학에 들어가고 토익 점수를 따고 직장에 들어간다. 남들도 한다는 주식도 기웃거리고 열심히 청약도 부어 내 집 마련을 노린다. 문제는 조그마한 충격에도 쉽게 흔들린다. 이를 테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고 직장을 잃거나 조기퇴직이라도 하면 어쩔 줄을 모른다. 온실바깥으로 손만 내밀어도 화들짝 놀라는 셈이다.


조는 연주자를 꿈꾼다. 정식 학교 선생으로 임명되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그러나 한 때 제자였던 드러머가 연주 제안을 하면서 일생일대의 기회를 맞는다. 리허설까지 훌륭하게 마쳐 이제 남은 건 화려한 데뷔뿐인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만.


영화 소울은 인사이드 아웃을 연상시킨다. 다른 점이라면 관점이 아이에서 어른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자신을 옭아매었던 인생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는 조바심은 다시 한 번 기회를 받으면서 서서히 바뀌어간다. 삶의 목표는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 기뻐할 줄 아는 마음이라는 걸.


소울은 어른을 위한 동화다. 보는 사람에 따라 지나치게 추상적인 대사들 때문에 살짝 졸릴 수 있다. 상관없다. 깜빡 눈을 감더라도 자유로운 재즈선율에 저절로 귀를 기울이게 될 테니까. 디즈니가 뭔가 새로운 걸 하자고 했을 때 과연 무엇일까 궁금했는데 정답은 재즈였다. 꽤 성공적인 선택이었다.


덧붙이는 말 


당초 코로나 19로 개봉이 불투명했다. 디즈니 플러스라는 오티티로 공개할 예정이었으나 한국에서는 연장 끝에 극장에서 볼 수 있었다. 혹시 몰라 바로 첫날 보았다. 이 영화를 조그마한 티브이화면으로 봐야만 하는 이들은 불행아들이다. 무조건 큰 스크린으로 감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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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중 나이브스 아웃의 뜻으로 맞는 것은?

1) 칼을 뽑아들다

2) 상황을 험악하게 만들다

3) 누군가를 노려 비난의 대상으로 만들다

4) 다 해당한다  


기깔나게 재미있습니다. 지적으로.


추리 영화는 두 번 보기 어렵다. 누가 범인인지 알고 나면 맥이 빠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외도 있다. 보면 볼수록 더욱 재미있는 경우도 있다. 중요한 건 살해자가 아니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과정이다. 나이브스 아웃이 그렇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있다. 그의 주변에 자식들과 친척들이 몰려 빨대를 꽂아대는데. 유일한 예외는 나이든 그를 돌보는 간병인과 하녀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만 죽으면서 막장 드라마가 시작된다. 과연 누가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게 될까? 다들 머리를 굴리며 자신이야말로 진정한 효자 효녀였다고 떠벌이지만 결과는 뜻밖에도. 더 이상 이야기하면 스포일러가 되니 직접 영화를 보시길. 


사실 이 영화는 아가사 크리스타에게 바치는 헌사다. 밀실 살인과 관계자들을 죄다 모아놓고 범인은 바로 너라고 밝히는 김전일 스토리의 원형이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트럼프 시대에 대한 조롱이라고도 하는데 내 생각에는 정치적 지향과 상관없이 재미있다. 그것도 기깔나게. 그리고 지적으로. 


사진 출처 : Knives Out — David Schlesinger (dbschlesing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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