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나리. 흔하디 흔한 한국의 채소가 세계적으로 알려지다.
윤여정*의 재발견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학교는 늘 어수선했다. 학생들이 수시로 전학을 오고가며 옮겼기 때문이다. 그 중에는 아주 멀리 미국으로 이민을 가는 경우도 있었다. 그 당시만 해도 아메리카는 꿈의 땅이었다. 이런 마음을 아는지 머나먼 미국에 가서도 학교로 편지나 우편엽서를 보내오는 아이들도 있었다. 자랑하고 싶었겠지. 그러나 나이가 들어 생각해보니 마냥 행복하지 만은 않았던 듯싶다. 정직하게 말해 한국에서 번듯한 직장을 가진 가장이 왜 회사까지 관두고 온가족을 이끌고 말도 안 통하는 남의 나라에 가겠는가? 뭔가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미나리는 한국 이민자의 삶을 다룬 영화다. 미국에서는 때 아닌 국적논란까지 있었지만 보고 난 소감은 누가 뭐래도 미국 영화다. 단지 한국말이 대사의 절반의 넘었기 때문에 미국 처지에서 외국영화로 분류하는 건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도리어 이민자의 나라라는 정체성을 새삼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매우 미국적이다.
영화 자체로만 보면 정직하게 말해 조금 지루하다. 등장인물이 제한되어 있고 장소도 크게 변화가 없다. 아칸소의 이동주택에 정착한 한국계 미국인 가족. 부부는 의견 차이 때문에 다툼이 잦고 아들은 심장에 문제가 있다. 외할머니가 합류하면서 집으로와 같은 코믹감동으로 흐르다 갑작스런 반전을 맞는다. 더 이상은 스포에 해당하니 이쯤에서 그만.
그럴 만도 하다. 이 영화는 독립영화다. 곧 큰돈을 지원받지 못했다. 선덴스 영화제 출품작이라는 타이틀을 보라. 그러나 미국에서 크게 화제가 되고 골든 글로브에서 외국어영화상까지 받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아마도 아카데미 영화제에서도 뭔가 큰 일이 일어날 것 같은데. 단지 한국계 감독과 배우들이 출연해서 국뽕에 취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윤여정을 새로 발견한 놀라움과 기쁨이 컸다. 아주 오래된 배우이고 예능에도 간간이 출연한다는 것 외에는 다른 정보가 없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윤여정은 놀라운 연기력을 뽐낸다. 특히 초반 능청스럽고 천연덕스러운 할머니로 나올 때도 좋았지만 아프고 나서 보여주는 죽음의 문턱에 선 모습으로 나올 때는 정말 경이로울 정도였다. 감독의 성향인지 모르겠지만 종교적 색채가 가미되면서 말하기 어려운 아우라를 뿜어낸다. 실제로 아이의 심장을 낫게 하는 대가로 할머니가 대신 병에 걸린 것은 아닐까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앗, 이건 정말 스포일러인데. 아무튼 윤여정은 상복이 터졌다. 만약 그가 아카데미에서까지 수상을 하게 된다면 와우 정말 대단한 사건이 될 것임이 틀림없다.
* 미나리는 좋은 영화임에 틀림없으나 미국에서의 때아닌 논쟁으로 씁쓸함도 안겨주고 있다. 골든글로브 후보에서 외국어영화로 분류된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이 영화에 출연한 어떤 배우도 후보로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심지어 이미 다른 영화제에서 수많은 상을 수상한 윤여정조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