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그래미상의 최대 관심은 비티에스의 수상여부였다. 적어도 아미와 우리나라에서는. 결과는 불발. 이런 저런 말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냉정하게 말해 주는 사람 마음이다. 곧 투표권을 가진 미국 음반 제작사들의 취향이 반영된 결론이다. 다만 빌보드 1위를 차지한 점과 세계적인 인기를 고려하여 라이브 스테이지를 마련한 점은 고무적이다. 그것도 순서를 바꿔가며 맨 마지막 피날레에. 


만약 비티에스의 기세가 계속 이어진다면 언젠가 그래미도 두 손을 들 것이다. 그 때는 피처링이나 퍼포먼스와 같은 기타 상이 아니라 이른바 메인 상인 올해의 노래나 앨범으로 정상에 우뚝 설 것이다. 실제로 실력이면 실력, 인기면 인기 뭐 하나 빠질 것 없던 테일러 스위프트도 상을 받지 못해 한동안 마음고생을 했다. 그러나 한번 탑에 오르고 나니 대중적 인기가 다소 떨어져도 계속 본상을 받고 있다. 물론 올해도 어김없이. 


우리에게 더 기쁜 소식은 리처드 용재 오닐이다. 물론 그의 국적이 미국이며 한국말을 거의 못하지만 이런 불리함(?)을 뛰어넘는 게 바로 비올라 실력이다. 비올라는 오랫동안 푸대접을 받은 악기다. 심지어 바이올린에 실패한 이들이 택하는 대체악기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다. 실제로 엘리엇 가드너도 이 과정을 거쳤다. 결국 그의 최종 목적지는 지휘였다. 그의 수상은 비올라의 위상을 높였다는 점에서도 큰 성과다. 그렇다면 리처드가 받은 수상 항목은 무엇일까? 정확하게는 베스트 클래시컬 인스트루멘털 솔로다. 놀라운 점은 세 번째 도전 끝에 받은 성과였다. 곧 그래미는 일종의 공로상 성격이 강하다. 한번 반짝 성공해서는 자격이 없는 셈이다. 노벨상도 마찬가지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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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이 아니라면서 언론자유를 외치다니


비판과 부정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때 이후로 줄곧. 그러나 이 둘 사이의 경계가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비판을 오래하다보면 부정적이 되기 마련이다. 평소 즐겨보던 유튜브 채널이 있었다. 일본 뉴스 방송을 번역하여 보여주는데 늘 그들의 속내를 비꼬곤 했다. 예를 들어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받자 그 의미보다 한국의 지하방을 소개하는 것에 혀를 차는 식이다. 제 눈의 티는 보지 못하고 항상 한국을 깎아내리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일본 방송 태도에 나 또한 화가 났다. 문제는 한두 번이 아니라 매번 그런 뉴스들만 접하다보니 슬슬 짜증이 났다. 내가 즐겨 보는 야후재팬의 한국 소식과는 사뭇 논조가 달랐기 때문이다. 게다가 저작권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도 의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정식 항의가 들어오자 그 후부터는 방송 전체를 내보내지 못하고 부분 편집으로 대체하고 있다. 


한 때 김어준의 라디오방송을 즐겨 듣곤 했다. 거리낌 없이 썰을 푸는 맛에 중독되어서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자 집권 세력을 수호하는 방패막이로 돌변했다. 항상 까기만 하던 사람이 이제는 방어만 한다. 그것도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들만 골라 내세우면서. 개인 유튜브 방송이라면 그나마 이해가 가지만 서울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프로그램에서까지 그런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 두 경우는 언론의 기본 기능을 망각한 탈선이다. 어느 한쪽 편을 드는 게 아니라 사실에 근거해 비평을 가해야 한다는. 물론 그들 스스로가 자신이 언론인이 아니라고 여긴다면 할 말은 없지만. 그러나 실제로는 언론자유라는 미명아래 편향된 말을 하고 있지 않는가?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다. 언론인이 아니라면서 언론자유를 외치니 말이다. 그렇다면 그런 말은 자기들 끼리나 해라, 공공장소에서 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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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루와 강아지 "오레오"의 모습.


개와 고양이 모두 키워보았다. 내 자발적인 의사는 아니었다.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아주 어렸을 적 사진을 보면 내 곁에 큰 개가 있었다. 아마도 방범용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다. 나 때만 해도 애완용 혹은 반려 목적이 아니었다. 고양이는 우연한 기회에 만났다. 군대 가기 직전 집에 들어왔는데, 그 경로는 미스터리다. 그전까지만 해도 선입견이 커서 무서워했는데, 애드가 알란 포의 검은 고양이가 큰 역할을 했다, 막상 같이 있다보니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거의 매일 끼고 살았는데 일병 휴가를 나와 보니 사라졌다. 백일 휴가 때까지도 있었는데. 자세한 내막은 묻지 못했다.


어머니와 함께 살던 강아지가 원래 주인에게 돌아갔다. 친척집에서 아이가 입시라 잠시 맡겨둔다고 했던 게 근 3년이 지났다. 그 정도 되면 입양된 거나 마찬가진데 돌연 다시 가져갔다. 괘씸하고 화가 났다. 나 또한 이 주일에 한번 정도씩 돌보았는데. 있을 때는 몰랐는데 빈 공간이 이렇게 큰지 몰랐다. 마치 눈앞에 있는 듯 착각에 빠지고 강아지 발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어머니는 오죽하겠는가? 아홉 살이 된 노견을 먹이고 씻기고 산책시키고 곁에 두고 지냈는데.


전화로 안부를 물으면 개 이야기는 되도록 피하신다. 아주 가끔 개가 없어서 더 좋다. 냄새도 안 나고 털도 안 날리고. 물론 진심이 아니다. 원래 개주인에게 이야기를 해볼까도 했지만 괜히 딴소리가 나올까봐 참고 있다. 그래, 또 키우면 되지. 알아보니 꽤 다양한 방법이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유기견들이다. 개 키우는 집이 늘어나니 당연히 버려지는 개도 많겠지라고 짐작은 했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오죽하면 사지 말고 입양하자는 운동이 벌어지겠는가? 


나도 처음에는 개를 어디서 사와야 하는 줄 알았는데 보호센터에 가면 무료로 강아지를 분양받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건강에 이상이 있을까 우려도 있지만 입양견은 모두 진단을 받은 상태이니 걱정할 건 없다. 도리어 문제는 개를 데려가 키우다 또 버리지 않을까라는 우려다. 이른바 피양이다. 사실 개들도 늙고 병든다. 한창 귀여울 때는 예뻐하다가 나이가 들면 귀찮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고. 따라서 개를 키울 때는 반드시 책임이 따라야 한다.


조만간 센터에 방문할 생각이다. 일차적으로는 어머니를 위한 반려견 찾기지만 상황이 맞으면 내가 데려올 수도 있다. 물론 현실적인 여건은 만만치 않다. 아파트먼트라는 제한적 상황, 좁은 공간, 시간 내기의 어려움, 건강 챙기기나 비용 등등, 그러나 아이들의 눈으로 보면 이런 우려는 한낮 핑계에 불과하다. 한 생명이 주는 함께 살아가는 정서적 유대감은 다른 무엇과도 비교 불가능하니까.


덧붙이는 말


프로야구단의 한 외국인 코치가 자동차 사고로 다친 개를 구한 사연이 화제다. 그의 마음 씀씀이가 기특하다. 때마침 반려견을 찾던 과정이라 더욱 마음이 쓰인다.


외국인 프로야구 코치가 살린 '기적의 강아지'

기아 타이거즈 앤서니 르루, 죽어가던 강아지 구조... 하루 만에 수술비 7천달러 펀딩 성공


http://star.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27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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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보다 예금? 복리와 금리의 마술을 아신다면


주식 열풍이다. 사실 처음은 아니다. 내가 대학 다닐 때도 주식을 안 하면 바보취급을 받았다. 실제로 경영학과 다니는 친구와 아르바이트로 백만 원을 모아 할까라는 생각도 했다. 실현은 하지 못했지만. 그 결과 내 수중에는 단 하나의 주식도 없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부터라도 해야 할까? 누군가는 코로나가 딱 터졌을 때 들어가야지, 지금은 이미 정점을 지나 물렸다라고 말하고, 다른 이는 아니다. 이제 막 시작이다. 더욱 더 성장할 것이다. 흔히 주식은 일확천금을 노릴 수 있는 기회라거나 반면 쪽박의 지름길이라는 엇갈린 평을 하는게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


헷갈릴 때는 계산을 해보면 된다. 이른바 세계적인 고수들이 말하길 주식의 수익률이 10에서 20퍼센트면 매우 높다고 본다. 천퍼센트 운운하는 말은 죄다 과장됐다는 말이다. '에게'라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은행예금금리가 1퍼센트인 것을 보면 하늘과 땅차이다. 예를 들어 1억의 여유자금이 있다고 치자. 주식을 하면 최대 2천만 원의 수익을 올리지만 예금은 고작 백만 원이다. 물론 주식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원금 손실이라는 리스크다. 오래 묻어두면 된다고 하지만 그 사이에 상장 폐기되는 일도 생긴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같은 우량주는 상관없다고 하지만 최근 1년을 제외하고 두 주가는 이전 10년 동안은 제자리를 맴돌았다. 곧 거의 수익이 나지 않았다. 물론 기간을 늘려보면 우상향한 것은 맞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장기적인 관점이다. 


여기서 잠깐 주식을 왜 하려고 하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그 돈을 벌어 뭐하게? 곧 돈을 벌려고만 하지 말고 쓸 곳을 먼저 고민하라. 얼마의 돈이 필요한지 고려하라는 말이다. 우리는 흔히 부자가 되면 마냥 행복할 것 같지만 막상 그 돈을 쓰라고 하면 주저한다. 돈의 크기와 행복이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노후에 쓰일 생활비나 병원비, 혹은 취미생활을 할 오디오 장비 등으로 목적이 뚜렷해지면 상황이 달라진다. 이른바 예산항목이 나온다. 잘 모르겠다면 인터넷 기사 등을 찾아보면 된다.


통계에 따르면 50대 이상 여성의 경우 일인당 병원치료비는 약 9090만 원, 남자는 7030만원이었다. 여자가 더 많은 이유는 남자가 더 일찍 죽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1억 원 정도를 병원비로 고려하면 된다. 곧 1억 원을 만들기 위한 재테크를 해야 한다. 흔히 보험에 가입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차라리 목돈이 있다면 그게 유리하다. 보험이 내 병 치료에 딱 맞게 지원된다는 보장이 없다.


자, 그러면 1억 원을 만들기 위해 어떤 방법이 가장 좋을까? 먼저 떠올리는 건 저축이다. 기간을 10년으로 가정하면 월 8십3만 원가량을 모아야 한다. 나름 부담되는 금액임이 틀림없지만 이 정도 돈을 보험료로 내는 가정이라면 생각을 달리 할 법하다. 어차피 쓰는 돈인데 한쪽은 목돈으로 1억이 생기지만 다른 쪽은 경우에 따라 휴지가 될 수도 있다. 물론 들인 보험금보다 더 큰 혜택을 받을 수도 있지만 그건 순전히 운이다. 그것도 매우 크게 아파하면 받을 수 있는 나쁜 운.


전자가 더 좋은 이유는 또 있다. 금리와 복리의 마술이다. 은행에 돈을 넣으면 당연히 이자가 붙는다. 비록 소액일지라도. 어느 정도 돈이 모이면 정기예금으로 전환도 가능하다. 1년 단위로 갱신하면 시드 머니는 계속 커진다. 예를 들어 1억을 예금으로 돌리고 금리가 1퍼센트라면 첫 해는 1억 백만 원이지만 그 다음해는 그 돈에 다시 1퍼센트가 붙으니 1억 2백만 원에서 어느 정도 돈이 더 생긴다. 이 정도면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더라도 꽤 큰 금액이다. 이런 식으로 10년을 하면 극단적으로 제로금리라도 원금 1억원은 보장된다. 일종의 강제저축이 되는 셈이다. 돈을 쓰지 않는 것만으로도 이득이다.


나도 그렇게 하고 있다. 목돈은 무조건 정기예금으로 돌려 금리에 상관없이 매년 갱신한다. 그 사이에 또 매달 정기적금을 든다. 10만원으로 시작해 지금은 20만원으로 올렸다. 올해 6월 만기인데 그 후에는 30만원으로 올릴 계획이다. 물론 그렇게 만든 목돈은 정기예금 만기에 맞춰 다시 덧붙인다. 이런 식으로 지금까지 거의 원금의 10퍼센트 이상 수익이 생겼다. 그리 큰 액수가 아닐지 모르지만 하루 종일 주식시세표만 바라보며 눈이 벌게지는 고생을 마다하고도 수익은커녕 마이너스로 돌아온 사람들에 비하면 좋은 성적 아닌가 싶다. 때 되면 꼬박꼬박 은행에서 연락이 오니 그리 큰 수고도 아니고, 실질적인 혜택도 보고 있다. 


비과세나 세제혜택뿐만 아니라 목돈이 필요할 때 요긴하게 쓸 수 있게 되었다. 치과치료비가 그 예다. 앞니가 부러져 내친 김에 제대로 종합검진을 받고 대대적으로 치료를 받으려고 하는데 병원말로는 약 천 만원 가량이 든다. 매우 큰돈이다. 그러나 목돈이 있으니 이럴 때 쓰라고 모아둔 것 기분 좋게 내자라는 마음이다. 만약 예금을 하지 않고 주식을 했더라면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리 올랐다고 하더라도 지금 빼면 손해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밤잠을 못 잤을 테니까. 물론 예금이든 주식이든 개인의 판단이고 선택이다. 다만 종자돈을 주식에 묻어두고 한 십년 잠자고 일어나면 벼락부자가 될 일은 현실에서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만은 명심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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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물건 모으는 걸 좋아한다


번역은 우리말답게, 가 내 철칙이었다. 아무리 작가 특유의 뉘앙스가 있더라도 그건 자국 언어에 한정된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내 생각이 바뀌고 있다. 특별한 계기가 있지는 않았다. 자연스레 직독직해가 낫다고 여기게 되었다. 설령 어설프게 보일지라도 원작자의 의견을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를 읽으면서도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I like to save things.


깜짝 놀랐다. 번역본을 먼저 접했기에 나름대로 원래 문장은 어떨지 상상했는데 결과는 뜻밖이었다. 참고로 우리말로 옮긴 글은 다음과 같다.


나는 물건을 잘 못 버린다.


얼핏 보면 비슷한 뜻 같지만 소설 전체를 읽어보면 완전히 다른 의미다. 곧 물건 모르기를 좋아하는 것과 잘 못 버린다는 단순히 긍정과 부정으로 구분되는 게 아니라 상반된 느낌을 전달한다. 남들에게는 하찮은 것 같지만 주인공에게는 소중하다는. 바로 이어지는 다음 문장이 바로 증명한다.


Of all the things I save, I guess you could say my love letters are most prized possession.


직역해보자,


내가 모아온 모든 것들 가운데, 내가 짐작하기로 당신들은 내 연애편지들이 가장 소중한 소유물이라고 말 할 것이다.


번역가는 이렇게 옮겼다.


그 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걸 꼽으라면 아마 연애편지가 될 것이다.


후자가 훨씬 깔끔하다. 우리 독자들에게 가독성도 좋다. 그러나 작가의 의도는 완전히 빠져있다. 우선 내가 모아온 모든 것들이 배제되었다. 버리지 못하는 쓸데없는 잡동사니가 아니라 고이고이 모아왔다가 중요한 열쇠인데. 또한 연애편지는 내가 뽑은 게 아니라 다른 모든 이들도 같은 생각일 것이라는 추측성 문장의 의미도 퇴색되었다. 곧 나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연애편지를 귀하게 여길 것이라는 메시지가 쏙 빠졌다. 이 문장은 앞으로의 글이 연애편지를 중심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중요한 암시가 담겨있다.


물론 직접번역만이 정답은 아니다. 영어를 그대로 해석하면 어색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럼에도 작가가 어떤 의도를 글을 썼는지가 우선이다. 설령 이상하게 느껴지더라도 핵심은 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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