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의 발달은 인간의 숨은 본성도 일깨운다. 비대면이 그것이다. 사실 사람들이 서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건 매우 소모적인 행동이다. 특히 처음 대하는 경우엔 두려움까지 생긴다. 머릿속으로 온갖 경우의 수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주 오랜 옛날에는 낯선 이들을 접할 상황이 극히 드물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산업화 이후 대중사회가 본격적으로 막을 열면서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익명의 사람들과 마주쳐야 한다. 그럴 때마다 얼굴을 꾸미고 목소리고 다듬고 행동까지 신경을 쓰며 지낸다.


그러나 인터넷의 확산은 이런 우려를 단숨에 날려버렸다. 게다가 때마침 팬더믹까지 덮쳤다. 무인으로 거의 모든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인터넷 쇼핑은 대표적인 예이다. 클릭만 하면 주문 완료. 물건도 집 앞으로 바로 온다. 딱히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필요도 없다. 문제가 발생해도 문자로 내용을 주고받으면 그만이다. 자, 이제 드디어 진정한 유토피아 세상이 열렸구나, 라고 선언하고 싶지만. 설 전에 온라인 쇼핑을 했다. 연휴기간을 고려해 배송과정이 어느 정도 걸릴 거라고 짐작은 했지만 주문 후 열흘이 넘어도 소식이 없자 걱정이 되었다. 홈피에 들어가 보니 출고는 했는데 배송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동서울터미널에서 꼼짝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루 이틀 더 참아보자고 기다렸는데 소용이 없었다. 장장 이십일이 지났는데. 게다가 먹을거리라 제대로 보관되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웠다. 


어쩔 수 없이 문자를 보냈더니 쇼핑몰과 택배회사가 서로 책임을 미루며 핑퐁게임을 했다. 이 과정에서 전화통화는 일체 없었다. 속상했다. 별 거 아니라면 별 게 아니지만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질질 끄는 게 짜증스러웠다. 결국 어찌어찌 환불을 받아 드디어 끝났구나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는데 웬걸 다음날 택배사에서 또 문자가 왔다. 해당 물건을 반품해 가겠다는 것이다. 아니 이미 반품처리가 끝났는데 이게 뭔. 관련 내용을 답장을 보냈더니 확인이 안 된단다. 결국 최후의 칼을 빼들었다. 전화를 걸어 상황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진작 통화를 했더라면 이런 골치 아픈 일도 없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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