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라면서 맞지 않았다. 그 누구에게도. 돌이켜보니 어마어마한 행운이었다. 물론 어머니나 선생님이 회초리나 매로 종아리나 손바닥을 때린 적은 있지만 감당할만한 체벌이었다. 이 기록이 깨진 건 엉뚱하게 재수학원에서였다. 내가 공부하던 곳은 특이하게 담임제도가 있었다. 그 날도 수업이 다 끝나고 종례 비슷한 것을 했는데 난데없이 나를 불러내 뺨을 갈겨댔다. 그 때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울면서 집까지 걸어갔다. 버스로 40분 이상 걸리는 거리를. 창피하지도 않았다. 그저 억울할뿐이었다. 다음날 그 선생을 찾아갔다. 그는 자신이 말을 하는데 떠들어서 혼을 냈다고 했다. 황당했다. 시끄럽게 군 건 다른 아이였다. 나는 평소에도 말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 행동이다. 나는 왜 그랬을까? 타임머신이 있다면 돌아가서 그 때의 나에게 물어보고 싶다. “너 대체 왜 그랬니?” 결국 나는 학원을 그만두었다. 가해자는 고개를 세우고 떳떳하게 살아가고 피해자는 숙인 채 도망갔다.


배구계가 뒤숭숭하다. 이다영의 에스엔에스가 쏘아올린 신호탄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그 중에는 현역 남자 배구 선수도 있다. 국가대표 코치로 있던 이성열에게 죽일듯이 맞은 박철우 선수다. 그는 10여 년이 지난 일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성열이 대수롭지 않게 지난 이야기를 추억하듯이 내뱉은 인터뷰를 보고 그야말로 피가 가꾸로 솟았다. “나는 지금도 그를 보고 싶지 않다.”


누군가를 때려 본 경험이 없어 양심의 가책을 받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맞아본 나는 생생하게 기억한다. 아프고 창피하고 억울하고 슬프고 숨고 싶고 사라지고 싶어진다. 아직도 그 날의 나를 떠올리면 그 개자식을 왜 내가 그냥 두고 심지어 용서를 빌었는지 스스로를 죽여 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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