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잘 하기까지 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음식을 만들어 이웃과 나누는 데서 기쁨을 얻고, 실제로 '건강한' 사회를 위해 요리를 하는 사람도 있다. 그에 비해 내가 이따금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는 이유는 단순하다. 1) 좋아하는 음식을 양껏 먹기 위해서. 2) 각별히 좋아하는 재료를 듬뿍 넣어 (역시 양껏) 먹기 위해서. 끝.   

예를 들어 (나는 이런 예 들기가 진짜로 너무 정말 굉장히 좋다) 샤브샤브는 식당에서 먹을 때마다 고기가 너무 적었고, 고기를 건져 먹을 때마다 일행의 눈치를 봐야 했으며, 고기를 추가주문 하려면 누군가의 '칼국수도 먹어야 되는데 많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들어야 했다(참고로 내 머릿속의 샤브샤브에는 칼국수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동네 정육점에서 샤브샤브 고기를 사다가 친구들을 불러 집에서 먹는 순간, 이제 다시는 식당에서 그 값에 샤브샤브를 먹을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건 전체 양과 부분 재료 양을 모두 만족시킨 경우다. 그밖에 음, 꽁치를 실컷 먹기 위해 김치찌개를 내 식대로 끓인다거나 양파 반 고기 반인 닭볶음(꿈의 요리죠)을 위해 앞치마를 두른다거나 하는 식. 이렇다 보니 척 보기에도 만들기가 어렵겠다거나 한두 번 시도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다면 별로 주저하지 않고 결론을 내린다. "이건 사서 먹자." 이 리스트에는 잡채 만두 동그랑땡 등이 있는데, 오늘 여기에 메뉴가 하나 추가 됐다. 바로 고로케다. '크로켓'으로 대체될 수 없는 바로 그 고로케.  

껍질 벗긴 감자를 삶고 으깨고 양파와 멸치를 볶고(양파와 가루 멸치가 듬뿍 들어간 고로케를 만들자는 것이 오늘의 목표였어요) 온 부엌을 밀가루 천지를 만들면서 마음을 다하고 성의를 다하고 나중에는 거의 애원하는 심정으로 요리에 임했으나 결과는 대실패. 결과물에 대해 자세히 언술하려니 가슴이 미어진다. 그런데 맛있는 고로케는 어디서 사 먹어야 되나? 양파와 멸치는 아니더라도, 어린시절 시장통 도나스 가게에서 아저씨가 튀겨 내주던 뜨겁고 느끼하고 고소한 고로케(천 원에 몇 개 이렇게 팔았지요)는 아니더라도 괜찮다. 프랜차이즈 빵집의 낱개 비닐 포장된 '크로켓'은 먹을 수 없다. 어쩌면 오늘의 충격으로 고로케와 영영 작별할지도. 맛있는 고로케 가게를 알고 계신 시민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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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9-07-06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하하하 네꼬님 당근 안먹어요? 흥. 저 파 안먹는다고 그렇게 놀리시더니 당근을 안먹어요? 흐흐흐흐흐 아 놀리고 싶은 마음 한가득.....이지만 슬프게도 당근은 저도 안먹어요 ㅎ

네꼬 2009-07-06 00:21   좋아요 0 | URL
하하하;; 아아.. 그, 그랬죠, 제가. 하하.. 맞아요, 제가 웬디님 파 안 먹는다고 하하.. 맞아요, 그랬죠;; (심지어 문자까지 보내지 않았던가? 이런 날이 올 줄 모르고.) 땀을 한 바가지 흘렸는데 뒤늦게 당근을 안 드신단 고백을!!! 동지! 덥석 ㅎㅎ 아, 뭐, 전 당근을 전혀 안 먹는 건 아니고, 뭐, 안 먹을 수 있으면 안 먹겠다는 거 정도... (뭐냐)

-
얼떨결에 답글 달고 생각해보니, 아니 웬디양님아, 핵심을 파악해야지! 핵심이 당근이 아니잖아요! (화끈)

바람돌이 2009-07-06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리때문에 심장상한 사람 여기도 있어요. ㅠ.ㅠ
어제 저의 야심찬 닭볶음, 오늘 저의 야심찬 콩,호두, 잣조림... 재료값 장난 아니었고 제가 보기에 전혀 실패작 아닌 훌륭한 요리였음에도 우리집 식구 누구도 좋아하지 않아 맘에 상척 팍팍... 제가 다 먹었어요. ㅠ.ㅠ
고로케는 어디서 맛난거 파는지는 저는 모르므로 통과입니다. ㅠ.ㅠ

네꼬 2009-07-06 00:12   좋아요 0 | URL
하하 바람돌이님, 그러셨어요? '제가 보기에 전혀 실패작 아닌 훌륭한 요리'라는 대목이 심금을 울립니다. 하하하 근데 왜 웃죠? 저는 닭볶음할 때 콩 호두 잣 이런 거 하나도 안 넣었어요. 양념장(고추장 마늘듬뿍 고춧가루 간장 고추 매화수)에다 닭과 아주 커다란 양파! 저도 거의 제가 다 먹었어요. 하하.
고로케 가게 패스하지 마세요, 울어도 소용없음. 전 어떡하라구요ㅠㅠ

이매지 2009-07-06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동 가츠라의 고로케가 제입에는 괜찮았는데
네코님께도 맞을지 모르겠네요^^;;
근데 가격이 좀 비싸긴 해요-_-

비쥬얼(?) 참고하세요~
http://totheno1.egloos.com/1605788

네꼬 2009-07-06 00:14   좋아요 0 | URL
아아. 비쥬얼 보고 기절 @_@ 먹어봐야겠어요. 이매지님 고맙습니다. 아아 페이퍼 올린 보람이 있군요! (댓글 추천!)

하이드 2009-07-06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대의 공간이라는 술집의 모둠 고로케 안주 짱짱!

네꼬 2009-07-06 00:16   좋아요 0 | URL
오, '홍대 공간 고로케'로 검색해봤어요. 이매지님 추천 고로케보다 조금 비싸지만, 사케랑 먹으면 좋겠군요! @_@ 고맙습니다~

순오기 2009-07-06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나도 고로케는 안 만들어봤어요. 그럼 다른 건 다 해봤다는 말이냐? ㅋㅋ
오늘 잔치국수 했는데 우리 애인이 두 그릇이나 먹었다는~
고로케 비주얼 저도 보러 갈래요~~~ 다음에 네꼬님 만나면 우리 같이 먹으러 갈까요.^^

네꼬 2009-07-06 09:26   좋아요 0 | URL
저 비주얼 보셨어요? 무지 맛있게 생겼는데. 잔치국수도 좋지요. 음, 그러고 보니 페이퍼도 댓글도 또 음식 이야기로... :) 네네 다음에 먹으러 가요. ^^

프레이야 2009-07-06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아예 만들어볼 생각도 안 해본 사람요! ㅎㅎ
심장 안 상하려고 안 할까요?^^

네꼬 2009-07-06 09:26   좋아요 0 | URL
하하. 제가 맛있는 집 발견하면 꼭 신고할게요. 아아 그럼 부산을 가야 되는 건가!

무스탕 2009-07-06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아침밥을 먹으면서 김치찌개를 먹는데 뭔가 이상한거에요. 가만히 보니 참치를 안넣었더라구요. 몇 끼째 먹었는데 그걸 마지막 먹을때 눈치채다니.. -_-
허구헌날 하는 음식도 실패를 하는데 고로케 실패정도는 암것도 아니죠 :)

네꼬 2009-07-06 09:28   좋아요 0 | URL
세상에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어요? *_* 김치찌개는 참치든 꽁치든 돼지고기든 뭔가가 들어가야 비로소 김치찌개가 된다구요. 무스탕님, 너무해. (울면서 뛰쳐나간다.)

네, 평소에 겨우 밥이나 해 먹는 제가 고로케가 가당키나.. 훌쩍. 맛있는 고로케 가게나 찾아볼래요.

무해한모리군 2009-07-06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로케!! 대단~
네꼬님 어묵은 만들어 봤는데 쉽더라구요.
함해보세요 ^^
아 일본에서 먹었던 금상고로케가 그립군요 --;;

네꼬 2009-07-06 09:29   좋아요 0 | URL
'나물이' 책만 보면 사실 음식점도 차릴 수 있을 것 같잖아요. 그래서 시도해봤죠. 아침에 생각해보니 그럴 게 아니라 재시도를 할까, 음, 진짜 요리사들도 맘에 드는 레시피를 발견할 때까지 시행착오가 있게 마련이라니까.. 음, 이러다 나는 고로케 전문 요리사가 되는 거....? 여기까지만 할게요.

어묵이라니! 레시피를 알려주세요!!!

무해한모리군 2009-07-06 11:35   좋아요 0 | URL
나물이네 사이트에서 생존전략에 어묵을 쳐보세요~~
이건 정말 쉬운듯 ^^

네꼬 2009-07-07 15:52   좋아요 0 | URL
그렇게 웃음을 머금고 추천하시니, 저도 도전해보겠...어요?

마늘빵 2009-07-06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쿠, 네꼬님에겐 또치님이 있잖아욧!

네꼬 2009-07-06 09:30   좋아요 0 | URL
그렇다고 또치님을 먹을 순 없잖아요. (응? 이건 아닌가?)

보석 2009-07-06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로케라니;; 그런 고난이도의 음식은 도전도 안 합니다!
근데 샤브샤브는 집에서 해 먹는 게 훨씬 싸고 양도 많고 맛있죠.^^

네꼬 2009-07-07 15:54   좋아요 0 | URL
보석님, '도전'이라면 샥스핀도 할 수 있는 거죠, 뭐. =_=
샤브샤브는 정말정말정말정말 집에서 해 먹을 만한 음식인 것 같아요.
어휴 그때 우린 다섯이서 십오인 분도 넘게 먹은 것 같아요.

또치 2009-07-06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 회사 근처 '길모퉁이 칠리차차'의 고로케 끝내줌 >.<
단호박 고로케, 옥수수 고로케, 감자 고로케 3종이 있어용!

또치 2009-07-06 10:06   좋아요 0 | URL
아, 그리고 난 기름 처리가 난감해서 집에선 튀김 잘 안함 ^^

치니 2009-07-06 11:14   좋아요 0 | URL
앗, 저도 여기 추천할려구 그랬는데! 저희 집은 이 집에서 딱 3분 거리.
크크크 부러우시죵? 네꼬님.
그렇다면, 또치님 회사는 저희집에서 약 5분 거리겠군요!

무해한모리군 2009-07-06 11:36   좋아요 0 | URL
메모메모 맛나것다 ^^

네꼬 2009-07-07 15:56   좋아요 0 | URL
또치님, 사오셈. ㅎㅎ 네, 튀김은 참 그런 것 같아요. 그래도 맛있는 걸 어떡해요. ㅠㅠ

치니님. 네네네 부럽습니다 네네네 (거의 화를 내는 수준) 흥, 그래서 또치님이랑 둘이서 드시겠단 건가요, 설마? (그러기만 그래 보세요.)

FTA반대휘모리님, 저 페이퍼 올리기 잘한 것 같아요. 흐흣.

토토랑 2009-07-06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츠라.. 고로케도 괜찮고.. 고기감자도 맛있어요..
가지조림도~~ 요리들이 쪼금 쪼금씩이라
사케 차갑게 달라고 해서, 차가운 사케랑 >.< 따스한 고로케랑 아우 맛나겠다

네꼬 2009-07-07 15:57   좋아요 0 | URL
오오오 가츠라에 두 표. 고기감자라니, 이름만 들어도 눈이 ♡_♡ 이렇게 되는군요. 심지어 가지 조림. (어이쿠.) 게다가 사케! (난 몰라) 다들 모여서 같이 갈까요?

쟈니 2009-07-06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저두 학교앞 감자고로게 무지 좋아했는데. 저는 홍대 근처의 튀김집에서 고로게를 먹은기억이 나요. 홍대 정문에서 극동방송국 쪽으로 가는 방향에 튀김집이 있었는데, 거기 이름이가물가물. 제가 같이갔던 친구한테 물어볼께요.
(참고로 저는 모든 국물의 맛을 똑같이 내는 재주가 있다고... 친구들이 그래요T T)

네꼬 2009-07-07 15:59   좋아요 0 | URL
자자 그런 정보를 공유하고자 쓴 페이펍니다. 학교앞 고로케 가게 약도 플리즈. 그리고 쟈니님, 홍대 정문에서 극동 방송국까지 제가 샅샅이 조사도 해보게지만, 이름도 꼭 알아오세요. (이젠 막 내몬다.) 근데 모든 국물 맛 똑같이 내면... 좋은 거 아녜요? 남의 집 맛있는 거랑 똑같이 내면 되잖아요. (써놓고 보니 어째 이상.) 하여간 문제는 '친구들이' 그런다는 거. 나는 괜찮은데.. ㅠㅠ

BRINY 2009-07-06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로케는 프랜차이즈 빵집이 아니라, 동네 빵집 게 맛난 게 사실이더라구요. 동네에 개인이 하는 빵집을 개척해 보심이 어떨까요?

네꼬 2009-07-07 15:59   좋아요 0 | URL
옳소! 세상에는 이래서 동네 빵집이 필요하다구요. 돌려달라, 동네 빵집!

Mephistopheles 2009-07-06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동네 길거리에 리어카 아저씨가 튀겨주는 터프한 고로케도 가격대 성능비 좋아용~~
(우리동네가 어디있는지는 비밀~~)

네꼬 2009-07-07 15:59   좋아요 0 | URL
어휴 메피님, 제일 중요한 얘길 안 해주시면 어떡해요? =3=3=3 (이건 메피님 잡으러 달려가는 모양)

2009-07-07 16: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09 17: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초롬너구리 2009-07-08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제가 아는 건 강남신세계지하에...쿨럭.

네꼬 2009-07-09 17:46   좋아요 0 | URL
곳곳의 고로케 은신처들이 드러나고 있군요. 어쩐지 너구리님이 물어다 주신 정보는 의미가 남다른 듯. ㅎㅎ

쟈니 2009-07-08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짜잔, 찾았습니다.

홍대에서 극동방송국 가기 바로 전 10미터 전에 천하라는 곳이 있습니다.
(검색해보니 아래와 같이 감상평이 있네요
http://blog.naver.com/peace326?Redirect=Log&logNo=120069372586
http://blog.naver.com/odoldodol96?Redirect=Log&logNo=52565472 )

전화 : 02-325-9642 | 주소 : 서울 마포구 상수동 86-35
그리고 메뉴판에서의 지도
http://www.menupan.com/Restaurant/Onepage.asp?acode=J103075

(글구, 저는 콩나물국을 끓이든 감자국을 끓이든 다 밍숭 맹숭하게 맛이 없게 끓여서 친구들이 제가 만든 국물맛이 없대요 T T)

네꼬 2009-07-09 17:49   좋아요 0 | URL
아아 어질 어질 @_@ 고로케 사진만 봐도 배고파 현기증이 날 판에, 너무 많은 것을...(쓰러짐.)

쟈니님! 친절한 쟈니님! 다정하신 쟈니님! 섬세한 쟈니님! 자상한 쟈니님!
고로케를 먹고 싶은 고양이를 위해 이렇게 친절을 베풀어주시는데
까짓 국물 맛이 뭐 중요하겠습니까! (세상엔 '엄마는 @선생'도 있고, 다시다도 있고 미원도 있어요. 우리 용기를 잃지 말아요!)

도넛공주 2009-07-09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 전 좀 이해가 안가는데요...(또 시비다)
동네빵집과 시장통에서 파는 '고로케'는 빵안에 야채등등을 넣어서 튀기는 거고
(빵에 대해 예민한 도넛공주),
네꼬님이 만들고자 시도하셨던건 빵없이 감자 등등을 뭉쳐서 튀기는 그것 아닌가요?
그리워하시는것이 전자라면 제가 100개라도 만들어드릴 수 있습니다만.

네꼬 2009-07-09 17:51   좋아요 0 | URL
어? 진짜 그러네. 그렇긴 하네요.

그런데 제가 시도한 건 감자를 감자랑 양파랑 멸치를 으깨 튀긴 게 맞았고요,
기왕에 사 먹는다면, 이걸 아주 잘 만든 거 아니면
빵 안에 감자 등을 넣어 튀긴 옛날식 고로케라는 거예요.
그리고 공주님이 100개를 만드신다면 장르 불문하고 맛있게 먹을게요. ㅎㅎㅎ
 

나는 원래 꿈을 아주 많이 꾼다. 그것도 아주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실제 생활의 연장선에서. 그래서 꿈 속에서 평소에 먹고 싶었던 걸 먹기도 하고, 여행도 간다. 까맣게 잊고 있던 약속이 꿈에서 생각 난 덕에 난처한 상황을 피한 적도 있다. 이렇다 보니 부끄럽게도 어떨 땐 아침에 일어나서 그게 꿈 속의 일이었는지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헷갈릴 때도 많다. 부끄럽지만 이 나이에도 그렇다. 그런 게 너무 피곤해서 한약을 지어 먹은 적도 있다.  

재밌는 일도 많지만(사실 먹고 싶은 걸 꿈에서 먹는 건 참 흥미롭고 경제적인 일이다)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그중 제일 힘든 건, 실연 뒤에 헤어진 애인을 꿈에서 만날 때다. 언젠가는 매정하게 날 버리고 간 남자가 꿈에 나타나 가만히 내 볼을 만졌는데, 울면서 깨서는 일어나 앉아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 꿈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날 찾아온다는 게 참 난감하다.  

지난밤, 꿈 속에서 나는 TV 뉴스를 보고 있었다. 노짱이 비밀리에 가망없는 치료를 받다가 극적으로 깨어나 건강을 어느정도 회복했다는 속보가 나왔다. TV에 비친 그의 얼굴은 조금 수척했고 상처도 나 있었지만 말도 하고 걷기도 하고 심지어 카메라를 향해 손을 들어 보이기도 했다. 그는 멋쩍게 웃었다. 봉화마을 그의 집 대문 앞이었다. 그의 죽음에 슬퍼하던 그 많은 사람들이 머쓱해했다. 앵커도 그런 눈치였다. 나도 물론 그랬다. 어휴, 슬퍼하던 사람들은 참 이거, 잘 된 일이긴 한데 그것 참, 서로 얼굴 보기 무안하게 됐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말할 수 없이 기뻤다.  

차마 말로 다 할 수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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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 2009-06-24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꿈은 원하는 것을 보여주는 창구지요.
네꼬님, 토닥토닥.

네꼬 2009-06-25 00:04   좋아요 0 | URL
늦은 밤에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어요.
오늘 밤은 별 꿈 안 꾸면 좋겠어요. 보석님, 안녕히 주무세요.

프레이야 2009-06-24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요새 꿈을 안 꿔요. 별로 좋은 현상은 아닌건가요? ㅎㅎ
노짱이 나왔군요... 꾸욱!

네꼬 2009-06-25 00:05   좋아요 0 | URL
저도 꿈 좀 안 꾸고 맘 편히 자고 깨면 좋겠어요.
제가 은근 예민한 것 같아요;;;

2009-06-24 2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25 0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09-06-24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최근에 꾸었던 노짱 꿈들은 다 서글픈 것들이었어요. 네꼬님 꿈 이야기에 눈물이 나요. 우리 모두 토닥토닥이에요...

네꼬 2009-06-25 00:08   좋아요 0 | URL
저도 이따금 꾸긴 했지만 어제 꿈은 참 진짜 같았어요. 깨어서는 얼마나 마음이 황량했는지 몰라요. 이렇게 함께 울어줄 친구들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06-25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엔 극과 극이 있나봐요..
전 잠을 너무 깊게 자서 거의 거의 꿈을 안꿔요..
도닥도닥

네꼬 2009-06-25 00:10   좋아요 0 | URL
휘모리님, 깊은 잠이 늘 평안하시길 빌어요. 우리 잘 자고 잘 지내기로 합시다. 이 주책맞은 꿈 일기에 도닥여주셔서 정말로 고맙습니다.

순오기 2009-06-25 0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의 꿈이 현실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ㅜㅜ
오늘 똑똑한 고양이라는 책을 보면서 네꼬님을 생각했어요.
그런데 사람이 생각하는 '똑똑한 고양이'와 냥이들이 생각하는 것과 차이가 있어요.^^
사진 리뷰로 올려볼게요.

네꼬 2009-07-05 22:12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제가 답이 너무 늦었지요. 죄송합니다. ;;
그 먼 댓글도 지금 곧 보러 갈게요. (똑똑의 반대라서 제가 생각나신 건 아니지요? 땀 뻘뻘)

도넛공주 2009-06-25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눈물난다.........

네꼬 2009-07-05 22:12   좋아요 0 | URL
공주님, 그나저나 그 일은...? 잘하고 있죠?

쟈니 2009-06-29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고, 저두 눈물납니다... 시간이 지나도 보고싶은 맘이 가시질 않네요..

네꼬 2009-07-05 22:13   좋아요 0 | URL
이쯤 되면 잠잠해질 만도 한데. 지금도 양치질하다 말도 문득, 길 걷다 문득 그렇게 떠올라요. 앞으로도 참.. .
 

다시 말하기도 새삼스러운 사실이지만 나는 남달리 끈기가 없다. 두 권 이상으로 이어지는 소설을 읽은 것은 손으로 꼽을 수 있고(사실은 딱 두 번), 열심히 챙겨 본다 하더라도 드라마를 마지막 회까지 본 것도 꼽을 정도다(아마 두세 번?). 하지만 나도 사람이라 새로운 이야기에는 언제나 끌린다. 그런 이유로 나는 소설의 첫 문장과 드라마의 첫 회를 아주 좋아한다. 이 이야기를 앞으로 얼만큼 좋아할지는 대체로 여기서 판가름 난다.  

무얼 읽어야 할지 무얼 써야 될지 몰라 거실만 서성대던 얼마 전 주말, 케이블 티비에서 '선덕여왕'의 한 장면을 보았다. 그게 하필 인구에 회자되는 (얼굴에 피가 튄) 고현정 씨의 "사람은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씬. 나는 그만 깜짝 놀라서, 하나티비로 이 드라마의 1,2회를 연달아 보았다. 진흥대제(이순재 분)가 미실(고현정 분)을 아끼고, 그런데 자신이 죽을 때는 미실에게 암살자를 보내고, 그런데 그 암살자가 사실은 미실의 정부이고, 미실은 왕의 유서를 조작하고, 이어 황후 자리를 노리고 낳은 아이를 "미안하다 아가야, 나는 이제 니가 필요 없다" 하고 차갑게 버리고, 왕이 바뀌고 또 바뀌고, 미실은 황후를 죽이려 하고, 황후는 기어이 살아 돌아오고, 국선 문노(꺅! 정호빈 분)는 머리 아프게 멋있고, 문노는 싸움도 잘 하고, 문노는 계속 멋있고, 왕은 두 아이와 아내와 자신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딸 하나를 궁 밖으로 버리고, 미실은 눈 앞에서 놓친 물증 때문에 쌍둥이 사건은 심증으로만 묻어둔 채 짜증이 나고, 하여간 숨 돌릴 틈 없이 전개되는 이야기에 단박에 매료되었다. 물론 때로 논리적이지 않은 장면 연결도 있고, "어출쌍생이면 성골남진이라"와 "북두의 별이 여덟이 되는 날..." 과 같은 요상한 말은 살짝 신경질이 날 만큼 자주 나왔지만(진짜예요;;; ), 그런 건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 이 얼마만에 보는 박력 넘치는 서두란 말이냐.  

 


사진이 마땅치 않아서... 그냥 공익을 위해 승호군(김춘추 역)의 제작발표회 사진을;;;




이 드라마의 미덕은 여러 가지가 있겠다. 고현정 씨의 연기는 '잘 돌아왔어요, 우리에게!' 하고 안아주고 싶을 정도고, 여인들의 옷은 한결같이 아름답다. '어미' 또는 '부인'의 마음을 얻기 위해 부자(父子)가 모여 공모하는 장면이라든가, 덕만(어린 선덕여왕)이가 '아빠는 필요없고 하여튼 엄마는 내가 지킨다'고 다짐하는 장면처럼 그간 사극 속의 체증을 날려주는 장면도 좋다. 덕만이가 엄마(라고 믿는 양엄마)를 잃은 날, 덕만이의 쌍둥이 언니 천명공주 역시 사랑하는 남편을 잃고 같은 시각 울고 있는 설정도, 꿈과 현실을 절묘하게 연결하는 편집도, '사막에선 눈물을 아껴야 한다'는 말이 '사막에선 눈물이 빨리 마른다'는 말로 발전(!)해가는 것도 좋다. 하지만 무엇보다 좋은 것은 사막에서의 고된 유년기를 끝낸 덕만이가 신라에 돌아온 이유가 '아버지를 찾아서'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 알아내기 위해서' 라는 것이다. 세상에 무슨 드라마를 이렇게 잘 쓴담!   

*

진흥대제가 "전쟁은 용감한 신하가 있으면 되고, 결정은 현명한 신하가 하면 되고, 왕은 사람을 잘 두면 된다"(정확한 인용은 아니에요)고 할 때, 덕만이가 중국의 제후에게 "백성의 말을 들을 시간이 없는 자는 황제가 될 시간도 없다"고 일갈할 때, 특히 미실이 정적을 죽인 다음 그의 빈소를 찾아 조문한 뒤 유족을 꼭 끌어안고 협박할 때, 생각했다, 참 지독한 반복이구나. 오늘 방송분 현재 '선덕여왕'의 주요인물들은 열다섯 안팎의 나이로 십대를 보내고 있었다. 숲 속에서 수련을 한다, 사막을 건넌다, 절벽을 오른다, 화살을 맞는다, 실종된다, 돌아온다, 하면서 나쁜 놈들에 맞서 신라를 구하겠다고 죽도록 고생하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애들에게 못할 짓 시킨다. 예고편을 보니 이젠 시골 출신의 어린 김유신이 천명공주를 따라 서라벌에 입성해 '서울 귀족' 화랑들의 텃세에 부딪히기까지 할 모양이다. 김유신의 무리에는 화랑으로 분한 덕만이도 있다. 이렇다 보니 앞으로 내가 과연 이 드라마의 하이라이트를 배겨낼 수 있을지, 마지막회까지 울지 않고 잘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얘들아, 부디 잘 자라라. 드라마 안에서라도, 아무도 아프지 말고 죽지도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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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9-06-16 0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지요? 속도감이 있어서 더 몰입이 잘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네꼬님, 저는 요새 '자명고'에 꽂혔어요. 시청률이 안습인지라 보고 있다는 사람을 아직 아무도 못 만났지만, 주연 배우들이 좀 약한 감도 있지만, 드라마가 개연성을 아주 잘 살렸어요. 고대 배경의 사극이라고 해서 무리한 설정 넣지 않고 논리적으로, 인과관계가 맞아 떨어지도록 딱딱 배분을 했는데 감탄을 하고 있답니다. 또 제가 너무 좋아했던 서울 1945의 정성희 작가 대본이기도 하구요.^^
시청률 때문에 조기종영 할까 봐 조마조마해요.
아, 그런데 이 밤중에 읽으면서 기분 좋은 페이퍼가 연달아 있었어요. 쥬드님, 다락방님, 네꼬님 만세!

네꼬 2009-06-16 12:55   좋아요 0 | URL
맞아요, 속도감. 아주 휙휙 지나가지요. '자명고'가 있었군요! 저는 정려원이 연기가 어쩐지 조마조마해서 그 드라마는 볼 생각을 안 하고 있었네요. "서울 1945"가 썩 괜찮았다는 이야기는 여기저기서 들었어요. 시청자가 조기종영 때문에 조마조마해야 하는 세상이라니! 끙.

아 저도 간밤에 주드님 다락님 페이퍼 읽느라고 늦게 잤어요. ㅎㅎ 허긴, 댓글 단 시각을 보니 마노아님도... 안 졸려요?

프레이야 2009-06-16 0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끈기라면 자신 없어요.
이 드라마 안 봤는데 보고 싶어져요.
승호군이 김춘추로 나와요?

네꼬 2009-06-16 12:56   좋아요 0 | URL
승호군이 승호군이 승호군이 김춘추로 나온다고 해요. 아마 초반엔 좀 까칠(?)한 캐릭터인 것 같은데, 기대가 큽니다. 프레이야님, 같이 보고 수다 떨어요. (^^)

다락방 2009-06-16 0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나는 네꼬님의 이런 문장들이 좋아요. '문노는 계속 멋있고' --> 이런 문장 말예요.
게다가 '아무도 아프지 말고 죽지도 말고' 는 또 어떻구!!

네꼬님.
전 네꼬님이 정말로 좋아요! 주먹을 꼭 쥐고 두 눈 부릅뜨고 얘기하는거에요. 진짜 좋아요!!

네꼬 2009-06-16 12:58   좋아요 0 | URL
하하. 그런 건 사실 다락님의 전용문장이죠. 뭐랄까, 진심이 뚝뚝 묻어다는 문장이랄까? 다락님이 이렇게 힘주어 얘기하지 않아도 나 좋아하는 줄 아니까 자자 주먹 풀고 눈 풀고.. (흥, 언제는 브론테님이 좋다며! 어제 다 봤다구!- 화르르 질투 화신 네꼬)

조선인 2009-06-16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좋은 공익이에요. 부릅

네꼬 2009-06-16 12:58   좋아요 0 | URL
부릅 2
아.. 아무리 찾아봐도 마땅한 사진이... 그냥 우리 좋기라도 하자고... ㅎㅎ (뭔지 아시죠?)

무스탕 2009-06-16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승호군은 커갈수록 누님들의 기대치에 어긋남이 없네요.. ☆.☆
아직 김춘추가 등장하지 않았지요? 어제 김유신은 나오던데 곧 나오겠군요. 기대기대중..

네꼬 2009-06-16 13:00   좋아요 0 | URL
현재 스코어 김춘추는 얼마 전 태어난 아기입니다. (상반신 맨몸이 안쓰러운 성장기 김유신은 15세 쯤?) 일단 승호군이 등장할 때까지 재미나게 보고, 승호군이 나오면.... 또 재미나게 보고 그러면 되겠어요.

치니 2009-06-16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현정씨가 유리를 치면서 음악 비슷한 걸 만들 때가 제일 웃겼구요 ㅋㅋㅋ
사극을 원래 잘 안보는 편이라 띄엄띄엄 보긴 했지만, 속도감과 여성들에 대한 강한 묘사는 눈여겨 볼 만 했어요.

네꼬 2009-06-16 13:39   좋아요 0 | URL
하하하 맞아요 그 장면은 뭐랄까 손발이 좀 간질간질했지요. 그래도 그나마 고현정씨가 했으니 그정도 아니었을까요? 사실 정부가 미실의 발을 씻겨주는 장면도 어떻게 보면 민망하지만 고현정씨 포스로 화면을 장악하지 않았나 싶어요. 하여간 재미난 드라마.

노이에자이트 2009-06-16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승호가 여기에도 나오는군요.요즘 광고에서 이연희와 사오정같은 대답을 주고 받는 장면이 귀엽던데...

네꼬 2009-06-17 09:05   좋아요 0 | URL
아, 통신회사 광고를 말씀하시는군요. 전 그 시리즈(?)의 광고 중 한 편에서 승호가 춤을 얼마나 못 추는지.. 저쯤 되면 시키지 말아야지, 애를 그냥... 안타까웠어요. -_-;

2009-06-17 14: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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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1 17: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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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7 14: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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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1 17: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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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9-06-18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어제 무지 졸렸는데, 야자감독과 야자 감독 사이의 귀중한 저녁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날이었는데, 선덕여왕 하는 날인 줄 알고 10시 넘게 버티다가, 어라? 왜 안하지?한 거 아닙니까.

네꼬 2009-06-21 17:51   좋아요 0 | URL
BRINY님 안녕하세요? 하하 저도 그럴 때 되게 많아요. 약속도 안 잡고 막 부랴부랴 집에 와서 시간 딱 보고 앉았는데 기다리는 프로그램은 다른 날 하고... ㅎㅎ 선덕여왕의 경우는, '나의 월요병을 날려주는 프로그램'으로 외우고 있어효. 하하. 동지 만나서 반가워요. 덥석!

쟈니 2009-06-20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저는 선덕여왕때문에 월,화는 가능한 약속을 안잡습니다. 고현정씨는 MBC에서 계속 멋지게 나와줘서 정말 고마운 맘이 듭니다. 선덕여왕에는 어찌 이리 출연진들도 다들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주르륵 나오는지 ^^

네꼬 2009-06-21 17:54   좋아요 0 | URL
그렇죠 그렇죠 저도 그래요. 고현정씨는 반갑고 고맙고 그래요. (게다가 여전히 얼마나 예쁜지!) 아아 내일부터 이요원씨가 본격 등장할 텐데 어쩐지 제가 다 걱정이에요. 사실 여태 이요원씨의 연기를 주의깊게 본 적이 없어서 말이죠. 그리고 얼핏 예고편을 보니 어리고 여리고 귀엽던 김유신이 갑자기 너무 늙은 것 같....(엄태웅씨 미안).. 천명공주어 어쩐지 지금이 더... ㅠㅠ 그래도 우리 믿어보아요. 두근두근 내일이에요!

2009-06-22 17: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24 17: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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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4 21: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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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4 13: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24 17: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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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 뜨거운 기억, 6월민주항쟁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그때 나는 초등학생이었고, 친구 생일 선물을 사려고 나왔다가 그 일을 맞닥뜨렸다. 살다 살다 그렇게 매운 냄새는 처음이었다. 코가 뜯겨져 나가는 것 같았고 목에는 불이 붙은 것 같았다. 눈물이 계속 나왔다. 매워서인지 숨이 막혀서인지 무서워서인지, 토할 것만 같았다. 어차피 눈을 뜬다 해도 앞이 잘 보이지 않았을 거다. 나와 내 친구는 무작정 어른들을 따라 뛰었다. 한 무리의 어른들이 맞은편에서 똑같이 이쪽으로 뛰어 왔다. 그쪽 아저씨 한 분이 외쳤다. "이쪽에도 전경들이 있습니다! 돌아서 가야 돼요!" 누군가 또 외쳤다. "이쪽으로 가면 골목이 나와요!" 나는 예정보다 한나절이나 늦게 겨우 집에 들어왔다. 잔뜩 쫄아 있었는데 엄마는 나를 혼내는 대신 찬 물로 얼굴을 계속 씻게 하고는 내가 쪼그리고 앉아 세수하는 걸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87년 5월이었다. 나는 명동에서 효창동까지 걸어(혹은 쫓겨) 온 시위대에 휩쓸렸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명동성당에서 나오는 길에 철거민을 보면서 우리집이 길바닥에 나앉게 될까봐 겁에 질리고, 명동 입구의 버스 정류장에서 현기증 나도록 많은 사람들에 부대낀 것도 같은 해의 일이겠다. 1987년.

그게 가까이에서 최루탄이 터졌기 때문이라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 그보다 더 나중에, 천천히, 87년 6월에 대해 학교에서 TV에서 책에서 술자리에서 들어 알게 되면서 나는 이따금 그때 일을 떠올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때 초등학생이었으니 얼마나 다행이야. 나처럼 의지가 약하고 겁 많고 참을성 없는 사람이 그때 대학생이었다면, 아아 얼마나 인생이 고달팠을까. 나서지도 모른척하지도 못하고 쩔쩔 매다가 결국은 모른척했을 거야, 분명. 그리고 괴로워했겠지. 정말 다행이야. 그 시간이 그쯤에서 나를 비껴가서. 나는 나의 그런 행운에 진심으로 고마워하면서 좋은 시민으로 살려고 노력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이건 어디까지나 내가 시간이 단선적으로 흐른다고, 역사에는 (진보 또는 발전하는 쪽으로) 방향성이 있다고 믿던 때의 이야기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어느정도 이루어졌고 이제 세부적인 것만 천천히 고쳐가면 된다고. 이명박을 욕하고 민주당의 무능(이것보다 더한 말은 없나?)에 고개를 흔들면서도 '민주화의 흐름'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었다고 손쉽게 믿었던 것이다. 그래서 썬글라스 낀 보수들의 집회를 희화화하고 이명박의 외모를 혐오하면서, 그래도 시간은 우리 편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이제 안다. 내가 그렇게 무시했던 그들 역시 시간은 자신들의 편이라고 생각하고 지난 10년을 가열차게 싸워왔다는 걸. 오히려 '흐름'은 돌이킬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 열심히 궐기하고 열심히 규탄하고 열심히 가스통을 들었다는 걸. 또 그들은 역사가 거꾸로 갈 수도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저토록 사력을 다해 광장을 닫는 것이라는 걸 이제 안다. 나는 또 안다. 세상에 정말 공짜는 없다는 걸. 비껴간 게 비껴간 게 아니었다는 걸.

만화 『100℃-뜨거운 기억, 6월 민주항쟁』은 내가 '비껴간 역사'라고 여겨온 그해 6월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한다. 애초에 6월민주항쟁계승사업회에서 의뢰를 받아 중고등학생을 위한 교재로 만들어진 만화로, 그 역할에 맞게 이 항쟁에서 꼭 기억해둬야 할 일들도 짚고 만화다운 재미와 극적인 요소도 확보하고 있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 아무것도 아닌 걸 위해 수많은 사람들-역사 교과서에 등장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 지금의 우리처럼 터무니없이 약하고 겁 많고 평범한 사람들-이 피와 땀을 흘렸고 제 삶의 기회를 포기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지키는 것이 생각보다 무척 어려운 일이고 우리의 민주주의가 안심할 정도로 튼튼하지도 않으며 끊임없이 강화하고 보완하려는 노력 없이는 어느날 사람 좋아 보이는 도둑놈에 의해 순식간에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는 얘기까지 하고 싶었다(이런 얘기는 이 작품이 인터넷에 발표됨과 동시에 집권한 현 정부에 의해 충분히, 현장체험을 곁들여 잘 교육되고 있는 중이다). -「작가의 말」에서

내 또래의 작가는 '직접적 기억'도 아는 바도 없는 상태에서 공부하고 취재하고 고민하면서 이 만화를 그렸다. 그날의 모자이크를 완성한 평범한 학생들, 어머니들, 회사원들의 이야기는 그간 많이 보아온 영화나 소설 속의 그것처럼 비장하지도 신파로 흐르지도 않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나게 한다. 그것은 사실 슬프게도, 전경이 늘어선 87년 거리의 풍경이 오늘날과 별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는 침착하게 '빨갱이'에 대한 오랜 혐오와 공포로부터 그날의 '축제'를 지나 전사들이 얻어낸 '그것 없이는 꿈꿀 수 없는 약하면서도 소중한 그런 백지' 에 이르기까지를 사람 냄새가 훅 끼치는 만화로 그려냈다. 그러면서도 자기답게 "독립투사들도 술 마실 땐 만담하고 그랬을 거야" 하는 식의 블랙유머를 잊지 않는다. 책 뒤에는 이른바 본격 민주주의 학습만화인 "그래서 어쩌자고?"가 실려있다. 무릇 민주화는 가슴에서 시작하되 머리도 함께 가야 하는 것. 이한 씨의 강의 교안을 토대로 내용이 꽤 빡빡한 민주주의의 기초를 꼼꼼하게 따져보는 학습만화다. 다수결, 여론조사, 사실명제와 당위명제의 위험한 연결 등 한번쯤 머리로 정리해두어야 할 개념들을 정리해주었다. 심지어 이 부록 만화의 결론은 '짬을 내서 공부해라' 다. 놀기만도 바쁜 세상, 학교 졸업한 게 언젠데 공부라니 내 팔자야 소리가 절로 난다.  

모르면 모를까, 참혹한 실패를 경험케 한 그 길을 다시 걸어야 한다는 건 슬프고 두려운 일이다. 그래도 조금 좋은 소식은 만화가 최규석이 우리와 같은 시대에 산다는 것이다. 조금 더 좋은 소식은 그가 지금 광장에 서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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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하, 살다보니 이런 재미있는 일도 있군요
    from 음... 2009-06-19 15:49 
  2. 똑똑한 고양이, 기준이 달라요
    from 엄마는 독서중 2009-06-26 18:42 
    알라딘에는 똑똑하고 사랑스런 고양이 '네꼬'님이 있답니다. 이번에 최규석 만화 100도씨로 이주의 마이리뷰를 먹었지요. 올리는 글마다 서재인들의 환호를 받는 사랑스런 고양이 네꼬님과 이 책 주인공 냐옹이 중 누가 더 똑똑한지 평가해보세요.^^  이 책은 '똑똑함'의 기준에 따라 엄청나게 달라진 고양이를 보여주는데, 보는 재미도 있고 생각거리가 많은 그림책입니다. 과연 똑똑함의 기준을 고양이에 맞춰야 할지 사
 
 
노이에자이트 2009-06-10 0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현정부가 들어설 때는 아무리 한나라당이라도 군사독재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 했는데...역시 민정당에 뿌리가 있는 당이 집권하니 무섭네요.사람 두둘기고 죽여본 적이 있는 당이라서 무시무시하군요.

네꼬 2009-06-10 09:14   좋아요 0 | URL
노자님, 정말 그래요. 아무리 한나라당이라도 이제 그렇게는 못하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정말 그냥 무시하고 말 일이 아니었다는 걸 뒤늦게 체감해요.

마노아 2009-06-10 0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슬프고 감동적인 리뷰가, 또 이렇게 멋들어진 제목과 함께 나온다는 것에 기뻐해야 하나 슬퍼해야 하나 잠시 난감했어요. 정말,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것을 온 몸으로 느끼게 하는 요즘이에요. 내가 기억하는 87년의 모습은 지하철 입구마다 주욱 늘어선 전경들의 검은 실루엣이고, 저 사람들 곁에는 가지 말라며, 나보다 세살 많은 언니가 주의주는 장면이에요. 지금 생각해 보니, 그런 기억도 참 서글프네요.

네꼬 2009-06-10 09:18   좋아요 0 | URL
엄마와 명동성당에서 나와 시위대와 맞닥뜨린 적이 있어요. 차도를 막고 무언가 외치는 어른들을 엄마와 함께 바라보았던 기억이 나요. 신기한 것은 살면서 딱히 그 기억을 끄집어낼 일이 없었다는 거죠. 이번 6월을 맞으면서 내게 그런 기억이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고도 서글퍼요. 그래도 우리 함께 가봐요. 아, 이렇게 말하니까 또 슬퍼지는구나! (조만간 제가 다시 웃겨 드릴게요!)

2009-06-10 0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10 09: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10 1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11 13: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09-06-10 0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최규석씨한테 직접 사인받았어요. 제가 엊그제 만나고 온 페이퍼 올렸는데 보셨나요? 이미지 사진이 바로 100도씨 사인이거든요.
오늘 6.10항쟁 기념일이라 비가 오면 안되는데~
그는 참 정직한 거 같아요~ 같은 하늘을 이고 산다는 게 고맙죠!

네꼬 2009-06-10 09:24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그 페이퍼 보았어요. (추천도 한 걸요!)
정직한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것은 참 든든하고 좋은 일이에요. 저도 누군가에게 그런 친구였으면 좋겠...(그런데 전 거짓말을 너무 잘해서. ㅠㅠ)

프레이야 2009-06-10 0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동의 리뷰에요,네꼬님^^
이 책 저도 담아가요~
사람좋아보이지도않는도둑놈이 있다요.

네꼬 2009-06-10 09:27   좋아요 0 | URL
"사람좋아보이지도않는도둑놈"에 저는 완전 공감. 저도 그런 생각 하지 않았겠어요! 외모가 전부는 아니지만 외모도 중요한 건 사실이에요. (네, 저는 그런 고양이에요. -_-)

다락방 2009-06-10 0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규석을 직접 만난적도 없으면서 최규석이 고마워요. 그리고 그가 앞으로 더 좋은 책을 만드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으니 저도 이 책을 읽고 여기저기 선물도 하고 그럴거에요. 읽기도 전에 이 책이 얼마나 좋은 책일지 짐작이 되거든요. 이렇게 좋은 리뷰가 나쁜책에서 나올리가 없잖아요. 마음을 담아 추천을 누르고 가요, 네꼬님.

네꼬 2009-06-10 09:26   좋아요 0 | URL
우리 친구 다락님아.(와락.) 다락님을 보면 책을 쓰고 만든다는 것과 읽는다는 것의 관계가 어때야 하는지 알게 돼요. 세상 독자들이 다 다락님만 같으면 뜻있는 작가들은 얼마나 신이 날까요. 저는 바로 그런 다락님이 고맙고 배우고 싶어요. 그러고 보면 나도 쫌 괜찮은 고양이일지 몰라. 이렇은 친구 옆에 나쁜 친구가 있을 리 없잖아. (응? 이건 아닌가?)

무스탕 2009-06-10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 대한 광고는 여기저기서 많이 봤지만 네꼬님의 글만큼 나를 움직인 광고(혹은 리뷰)는 없었어요.
네꼬님의 가슴에서 일어나 머리로 전해져 손끝으로 살아난 멋진 리뷰..
가슴 뭉클과 눈물 찔끔이에요 ^^

84~86년을 청량리에서 고등학생으로 지냈고, 87년부터는 마포에서 직장생활을 한 저는 최루탄 냄새를 어지간한 대학생들 만큼이나 맡고 자랐죠..;;;
정말 처음 노출됐을땐 죽는줄 알았었어요.. ㅠ.ㅠ

네꼬 2009-06-10 09:30   좋아요 0 | URL
열심히 광고를 해야 될 책이라고 생각했어요. 중고등학생들에게는 한 권씩 나눠줘야 된다고도 생각했어요. 전 같았으면 나라에서 그런 일 좀 안 하나 기대했을 텐데... 사실 이 책이 출간된 것 자체가 시기상으론 아슬아슬하지요. 지금 정권하에서라면 쉽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러고 보면, 민주화라는 큰 틀이 있어야 시민 재교육도 가능한 거였는데... 생각할 수록 한숨만 나요.

최루탄에 노출 됐을 때 정말 말 그대로 "죽는 줄" 알았어요. 그런 걸 장복하신 선배들께 이제와 심심한 경의를;;;

치니 2009-06-10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집 중학생에게도 보여주겠습니다.
87년에 저는 대학교 2학년이었죠. 수업은 거의 안했고 최루탄은 거의 매일 끼고 살았어요.
그런 저도 이렇게는 안 될 줄 알았어요. 작년 촛불 시위 할 때만 해도, 초기엔 이제 시위가 축제 같아서 참 보기 좋구나, 다들 그랬잖아요.

그런데 이 리뷰 마지막에 거의 다 이르러서야 이 훌륭한 글이 네꼬님이 직접 쓴 거라는 걸 알았다는 거 , 그러니까 저는 작가가 쓴 걸 베껴주신 걸로 알았다는 거, 이거 꼭 말하고 가렵니다. ^-^

네꼬 2009-06-11 13:22   좋아요 0 | URL
아, 그래요 치니님. 하린 군에게 보여주면 좋겠어요! 최규석의 말마따나 우리 민주주의가 안심해도 좋을 만큼 그렇게 안전하지 않다는 걸, 이제부터라도 모두 되새기면서 살아야겠어요. 정말 우리 작년까지만 해도...

으응? 그런 칭찬(맞죠?)은 정말 감사. 그런데 아주아주 부끄러워요;;;

마늘빵 2009-06-10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동감동, 순오기님이 이 책을 나로 하여금 장바구니에 집어넣게하셨다면, 네꼬님은 결제 버튼을 누르게 해줬어요. 두 분의 확실한 홍보(?)로 '배송준비중'입니다. 곧.

전 87년에 대해선 별로 기억이 없고, 남들 다 아는 역사 지식도 별로 없어요. 공부해야겠어요. 역사 공부. 마노아님한테 강의 들어야하려나. ^^

네꼬 2009-06-11 13:24   좋아요 0 | URL
아프님이 읽은 이 책은 어떨지도 궁금해요. 뭐, 아프님은 다 아는 얘기일 텐데, 하시는 일에 어떤 영감을 줄지도 모르겠어요, 그러고 보니.

최규석의 왕 팬 순오기님의 애정 가득(!) 페이퍼에 비하겠어요? ^^

도넛공주 2009-06-10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글쎄 이렇게 될줄 알았다니까! 그떄 당시 내게 왜 그리 비관적이냐고 했던 사람들 다 나오라고 하고 싶어요.정말.

네꼬 2009-06-11 13:24   좋아요 0 | URL
흐윽. 저 여기 나왔어요. 정말 이제 어떡해. 우리 열심히 공부하고 살아요.

2009-06-10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정말 감동적인 리뷰입니다. 흑. <100도씨>!

네꼬 2009-06-11 13:25   좋아요 0 | URL
콩님, 안녕하세요? 저도 흑. "백도씨"라고 읽어야 강렬한데, 숫자로 써 있는 이미지는 요 맛이 덜 나지요. 백도씨. 지금은 99도! 띠지의 말이 참 좋아요.

쟈니 2009-06-10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담백하면서도 감동적인 리뷰!

저도 87년도가 중학생이어서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서울이 아닌 지방 도시에서도 항쟁이 있었고, 학교 가면 세상이 어찌될것인가에 대해 친구들과 이야기 하기도 했어요. 최루탄 냄새도 바람따라 실려오던 그시절이 기억나네요. 오늘이 그날이군요... 광장의 야당 의원들은 끌려나왔다고 하니 걱정이네요..

네꼬 2009-06-11 13:28   좋아요 0 | URL
쟈니님 고맙습니다. (하앗, 쟈니님은 당시의 중학생님이셨군요!) 사실 저는 저에게 이런 기억이 있다는 것조차 그동안 생각 못하고 살았어요. 그동안은, 떠올릴 일이 없었던 거지요.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사실이 생각나 놀랍고 슬펐습니다. 어제는 동료들과 광장에 다녀왔어요. 유월답지 않게 스산하고 추운 광장에.

mong 2009-06-10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았어요 알았어
얼른 주문할게요
부관함에만 담아둔건 또 어찌 알고 이렇게 좋은 리뷰를...
(땡투 했으니 한번 째려봐줘도 되겠지 ㅡㅡ+)

네꼬 2009-06-11 13:29   좋아요 0 | URL
몽님 몽님 몽님 기다렸어요.
"알았어요 알았어"를 어떤 목소리로 하실지 알 것만 같아요. 얼마든지 째려봐도 좋으니까 이 책 꼭 읽어주세요. 골고루 째려보실 수 있도록 좌향좌 우향우 뒤로 돌아 할게요.

kimji 2009-06-10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추천을 한 번만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아쉽습니다.
인터넷으로 실시간 뉴스를 뒤적이면서, 심난해 하는 밤입니다. 이 도시는 비마저 오시구요. 누군가의 손을 잡고 싶은 밤이기도 하고, 내가 그 누군가가 되었음 하는 밤이기도 합니다.
좋은 리뷰, 고마워요.
(그 해,였던가, 언저리였던가. 국립대학 근처의 공원에 글짓기 대회가 있었어요. 저는 그때 동시를 썼더랬죠. 기억나지 않지만, 기억할 수 없지만, 아마, 제대로 쓰지 못하고 귀가했더랬죠. 그건 눈과 코가 너무 매워서. 이상하게 자꾸 눈물이 나와서. 도통 집중할 수 없어서. 그게 억울해서 집에 돌아와 더 많이 울었더랬죠. 입선,이었던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던가. 6학년 때였던가, 그 무렵이었을 겁니다. 그게... 그 해 였던 거예요... )

네꼬 2009-06-11 13:32   좋아요 0 | URL
kimji 님, 에 그런 칭찬을. (확 창피.)
며칠째 불면의 밤이 계속 되어요. 술을 마셔도 마시지 않아도 새벽까지 깨어있는 날이 많지요. 평소같았으면 "어서어서 마음을 추스르고 주어진 일을..." 이라고 얘기했을 거예요. 그러나 요즘은, 슬픔이 찾아오면 지나가도록 내버려두라던 조동진의 어느 노래가 무슨 뜻인지 겨우 알 것도 같아요.

다락방 2009-06-12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아,네꼬님아.
제가 이 책 아직 두번밖에 땡스투 못했지만 앞으로 더 할테니 부자될 각오하삼! 불끈!!

네꼬 2009-06-15 09:22   좋아요 0 | URL
이상하게 걸을 때마다 기우뚱, 주머니가 무겁더라고. 그게 다 다락님 덕분이었구나. 모아서 고기 사줄게요. (진짜로!)

웽스북스 2009-06-13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의 리뷰에 참 마음이 막막하고 먹먹해져요-
이 책 앞에서는 다들 그런 마음일 수밖에 없나봐요

작년에 웹으로 다 보고, 올해 다시 샀는데
어제 홀랑 가지고 나가 교수님 드려버렸어요- ㅋㅋ
이번엔 네꼬님께 땡스투하고 사야지. 흐흐.

네꼬 2009-06-15 09:23   좋아요 0 | URL
이 책은 참 사람 마음 먹먹하게 해요. 부지런한 웬디양님, 맞아 미리 봤을 것 같았어요. (^^) 자자, 여기 돈 모아 고기 먹일 사람 또 있네. 셋이 먹읍시다. 3인분이면 되겠어요? (1인당)

프레이야 2009-06-19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 리뷰 당선 축하합니당~~

네꼬 2009-06-21 17:55   좋아요 0 | URL
아이고 이게 무슨 부끄러운 일인지. -_-; 고맙습니다 프레이야님. 음, 부끄럽고, 좋고, 음, 어딘가 슬픈 일인 듯해요. =_=

마노아 2009-06-20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당선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진심이 뚝뚝 느껴지는 걸요. 네꼬님 축하해요~

네꼬 2009-06-21 17:56   좋아요 0 | URL
전 문자메시지 보내려고 '나의 계정'에 들어갔다가 적립금이 갑자기 많아져 있는 걸 보고 어? 이게 무슨 일? 했지 뭐예요. 마노아님 고맙습니다;;;

순오기 2009-06-25 0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수리뷰 먹었어요~~ 먹을 줄 알았어요~ ㅋㅋ
이런 멋진 리뷰를 알아주는 알라딘도 사랑해요.^^

네꼬 2009-07-06 00:17   좋아요 0 | URL
에고, 이거 참 쑥스러워서..

다락방 2009-06-25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하하하하하

내친구야, 내친구.
이주의 마이리뷰 당선자가 내 친구라구!! 움화화화화화홧 ^^v

네꼬 2009-07-06 00:17   좋아요 0 | URL
다락님 하하하하하하 목소리가 들리잖아요!!! 하하.
자자 손잡고 빙글빙글합시다. 고기 쏠게요! (응?)
 

그의 실패가 한 이상주의자의 실패를 넘어서 실낱 같던 희망의 절멸로 느껴진다, 고 누군가 쓴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가 '이상주의자'였다는 사실을 이제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운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에게 저금통을 보낼 때도, 그가 (대통령도 아니고) 대통령 후보가 되었을 때도 나는 그게 '이상'인 줄을 몰랐다. 되어가고 있었고 이제 되었다고 생각했으니까. 우리 편이 대통령이 되었으니까 이제 맡겨두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대통령까지 만들어줬는데 왜 이상한 결정들을 하고 있는지, 왜 자꾸 책 잡힐 말실수를 하는지, 왜 프로답지 못한지, 참다 참다 이제 나도 돌아선다, 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런 게 다 '이상'의 일부인 걸 몰랐던 것이다. 한번도 이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뼈를 산산조각내는 죽음으로 실패를 증명하고서야 우리가 오랫동안 꿈을 꾸었던 것임을, 그 모든 것들이 이상이었음을 알게 된 것이었다.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는 그의 나약함에 짜증이 났다. 그리고 연민이 생겼다. 그 다음 그런 내가 환멸스러웠다. 공허했다. 그리고 천천히 슬퍼지다가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내 슬픔의 이유를 몰라 그 슬픔도 어찌하지 못했다. 그러다 나를 무너뜨린 말이 '이상주의자'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울기 시작했다.우린 실패했어. 이럴 줄 알았으면 그를 뽑지도 않았을 텐데. 이루지 못한 꿈으로 아껴두고 좋아하고 안타까워하고 가끔 한계를 지적하면서, 계속 꿈만 꾸면서, 계속 공모만 하면서, 계속 한탄만 하면서, 꿈만은 그냥 둘 걸 그랬어. 우리 꿈은 죽어버린 거야. 우리가 졌어. 우리가 망쳤어. 가장 행복했던 때를 가장 지워버리고 싶을 때의 고통. '그의 한계가 우리의 한계였다'는 누군가의 문장에는 눈이 있었다. 그 눈이 내 눈을 똑바로 보았다. 나는 달아날 곳이 없었다.  

며칠간 슬픔에 익숙해지고 이제 이성이 돌아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어제, 시청 앞으로 갔다. 어쩌면 나의 슬픔은 어떤 상징에 대한 것. 덤덤하게 일단락을 짓자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또 알았다. 대한문 앞에서 누군가 나눠준 근조 리본, 그걸 받아 들고 덜덜 떠는 내 손은 상징이 아니었다. 그때 탄핵 반대를 외칠 때, 나는 근조 리본 따위를 달기 위해 같은 장소에 오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기어이 한 번 더 울고 나서야 그 리본을 달았다. 전경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근조 리본을 다는 모욕을 견디면서, 나는 그 많은 사람들의 거대하고 복잡하고 잡스러운 슬픔에 대해서 생각했다.

슬픔은 의견이 아니라 감정이다. 감정은 이성적이지 않다. 눈물은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다. 나는 아직도 내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 믿기지 않는 사실을 언제쯤 어떤 식으로 정리할 수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금방 툭툭 털고는 까맣게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다만 내일은 회사 동료들과 연차를 내고 영결식에 가기로 했다. 모이는 사람들은 각자 다른 이유로 휴가를 냈을 것이다. 뙤약볕 아래 제 신체를 고통스럽게 하면서 일말의 책무감을 덜어내려는 얄팍한 자기 위안일지 모른다. 후회일지도, 후회하는 척일지도 모른다. 순수한 안쓰러움일지 모른다. 일생일대의 작별일지도, 분위기를 탄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려나 우린 각자 다른 이유로 울 것이다. 옆 동료는 고사하고, 자기가 우는 이유도 모르면서 울게 되겠지. 그렇게 어리석게 울기 위해서 우리는 죽은 이를 추모하러 간다. 이렇게 여럿이 함께 어리석은 것은 참 위험한 일. 위험하게 울기 위해 우리는 추모를 하러 간다. 이성적이지도 일관되지도 못한 어리석은 이들끼리 모여 그저 울기 위해서. 뜨겁게 울기 위해서.   

   

 

  

 

 

*슬프거나 담담하거나, 아프거나 씁쓸하거나, 어색하거나 몹시 불편하거나, 모두 다른 마음인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누군가는 감정과 이성을 현명하게 구별할 수 있을 테고, 누군가는 감정의 과잉을 통제하지 못해 몸부림을 치겠지요. 며칠만이라도 그런 마음을 우리 서로 내버려두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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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9-05-28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의 절대적인 지지자가 아닌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슬퍼하고, 분노하는 건, 누군가 말하지 않아도 분명히 알 수 있어요. 평소에 지지하지 않던 사람들이 저마다 각기 슬픈 감정을 드러내는 건, 전혀 불편하지 않아요. 그걸 불편하게 생각하는 게 더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개개인이 다수가 된다고 해서 잘못된 건 아니에요. 각자가 슬퍼하도록, 자기 마음을 추스릴 수 있도록 내버려두었으면 좋겠어요.

2009-05-28 23: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paviana 2009-05-29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전히 혼자서 뉴스를 뒤적이면 눈물이 나요.아직도 이렇게 왈칵 할 수 있다는게, 나란 사람이 그렇다는게 놀라워요.

가시장미 2009-05-29 0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공감'합니다. 새벽에 깊은 잠을 이루지 못 하고 뒤척이다가 결국 이 글을 읽게 되었네요. 저에게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 타인의 '슬픔'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 참 다행스럽게 여겨지는 순간입니다.

그래도 우린 아직 잃지 않은 게 있다고. 지는 싸움일지라도 싸울 수 있었다는 것. 그것이 단지 '진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제 자신에게 속삭여봅니다.

저도 내일 가고 싶은데, 요즘 뒤집고 기려고 애쓰는 현호때문에 쉽지 않을 것 같네요.-_ㅠ 조심히 잘 다녀오시길 바랄께요.

2009-05-29 05: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5-29 06: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09-05-29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이상해요, 네꼬님.

저는 네꼬님이 위에 쓰신것처럼 그것이 이상인지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조차도 없었고 또 많은 분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그분을 '유일하게 좋아하는 정치인'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없었어요.

그런데,
마음이 아팠어요.
그런데,
슬펐어요.


오늘 아침엔 밥을 먹다가 뉴스에서 그분의 살아생전 모습들이 보여지는데 그만, 울컥, 했어요. 그러면서 내가 왜이러지? 했어요. 가슴이 아팠어요. 그런데 아직도 제가 왜 이러는지 잘 모르겠네요.

네꼬님.
잘 다녀오세요.


그리고 잘 모르는 저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리스 2009-05-29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꾸욱 누릅니다.


나비80 2009-05-29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마음에 와닿는 글입니다. 노무현의 죽음과 관련해 최근 몇몇 알라딘 유명 블로거들의 표현과 반응에 상당히 머리가 아프던 차였습니다. 설득할 힘도 납득할 여유도 없어 저 역시 이곳에 그와 관련된 글을 쓰는데 주저하고 있었습니다. 네꼬님의 글을 읽으니 일종의 정리가 좀 되는 것 같습니다. 노무현의 죽음이 가져올 반향 혹은 움직임은 이번 주말부터가 본격적이 될 듯합니다. 추이를 지켜보며 저 역시 유의미한 변화의 현장에 직접 가있길 희망하고 있습니다.

쟈니 2009-05-30 0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이 시기, 그저, 서로 위로하며 함께 울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것이 큰 위안이었어요.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시청 앞에서 함께하며 눈물짓는 순간.. 우리는 서로의 슬픔을 이해하는 사람으로 함께 그 자리에 있는 거겠죠...

도넛공주 2009-05-30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난 왜 그리 '그분은 결벽증이 있으셨다'는 그말이 자꾸 맴돌죠.생각할게 너무 많아서...
대체 이 세상은 뭘 결벽이라고 하는거야!

네꼬 2009-06-10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함께들 울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며칠 동안 제 서재에서조차 서성거렸어요. 우리 다들 강건하게 만나요. 이따금 같이 울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