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성을 타진하는 한국SF는 SF평론가 박상준님이 2003년 GE메디칼 시스템 코리아에 쓴 글입니다.

pic

중국과 일본을 거쳐 유입된 SF싹
우리나라에 서양 SF가 도입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19세기말 동북아시아의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당시 중국과 일본은 우리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국제적 열강이었으며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자연스럽게 이들이 일종의 필터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래서 서양에서 태동한 ‘과학소설’, 즉 SF가 우리나라에 유입된 과정도 모두 중국어나 일본어로 번역된 텍스트를 다시 중역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국내에 소개된 최초의 SF는 주울 베르느의 <해저여행기담(해저2만리)>와 <철세계>로 알려지고 있는데(1907-1908년), 둘 다 원서에서 직접 번역된 것이 아니며 내용도 번역이 아닌 번안으로서 등장인물과 사물의 명칭 등이 당시 우리 실정에 맞게 완전히 뜯어고쳐져 있다. 또한, 1912년에는 김교제의 <비행선>이라는 작품도 나왔으나 이 소설은 원작이 무엇인지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 그뒤로는 1920년대에 주울 베르느의 <월세계 여행>과 카렐 차펙의 <인조인간(R.U.R.)>이 국내에 번역 소개된 기록이 있다. <인조인간>은 ‘로봇(robot)'이라는 말을 최초로 탄생시킨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소설이 아닌 희곡이다. 유념할만한 사실은 이 작품들을 끝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더 이상 번역된 해외 SF작품들을 찾아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제시대 중반기 이후의 지적 환경을 유추해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즉, 당시 한반도에서는 학교에서 더 이상 한국어가 아닌 일본어가 ‘국어’ 과목으로 행세했고 따라서 1930년대 이후의 지식인 청년들은 우리말이 아닌 일본어로 읽고 쓰는 일에 익숙해졌던 것이다. 당연히 더 이상 외국 책들을 한국어로 번역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며 대부분의 해외 문학작품들은 일본어판으로 읽혀졌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오늘날 생존해 있는 원로 작가들의 증언을 통해서도 입증이 되는 바이다.
한국 최초의 창작SF는?
우리나라의 SF문학사와 관련해서 아직 명백하게 규명되지 않은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과연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 SF는 누구의 어느 작품인가?’ 하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1900년에 오시카와 슈로우가 쓴 <해저군함>이, 그리고 중국은 1904년에 한 문학잡지에 발표된 <달 식민지 이야기>라는 작품이 각각 최초의 SF로 일컬어지고 있지만,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관련된 학문적 연구가 사실상 전무한 실정이라서 이에 대한 언급도 찾아보기가 힘들다. 다만 필자가 보기에는 1929년에 김동인이 발표한 단편소설 가 일단 최초의 창작 SF로 유력한 후보작이다. 어떤 과학자가 사람의 배설물을 대체식량으로 활용하고자 연구한다는 내용이 전개되며, 대중들의 차가운 반응 때문에 의기소침한 주인공이 휴식을 취하러 시골에 갔다가 겪은 일을 통해서 일종의 자기모순적 반전을 시도한다. 과학자는 시골집에서 보신탕을 대접받지만, 그 개가 그날 오전에 자신이 목격했던 것임을 알고는 역겨움에 수저를 들지 못한다. 그 개는 길에서 배설물을 먹고 있었던 것이다.
(출처:www.gehealthcare.com/krko/webzine/2003_fourth/human05.html)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ext

현실을 섬뜩하게 반영하는 SF
정자세포는 물론이요, 체세포를 이용해서도 인간복제가 가능해진 시대에 첨단 유전공학은 어디까지 다다르게 될까? 자칫하면 유전공학의 급속한 발달은 인간 사회와 가족제도에 대한 기존의 도덕율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을지 모른다. 이와 관련하여 폴란드의 의사출신 과학소설가 스타니스와프 렘은 다음과 같이 흥미로우면서도 곤혹스러운 상황을 가정해본 바 있다.
삼백년 전에 이미 죽었지만 생식세포가 냉동보관 되어 있는 존이라는 사내가 있다. 그 세포들을 이용해 수태한 여인은 피터를 낳는다. 엄연히 존은 피터의 아버지인 셈이다. 만약 존이 죽으면서 생식세포는 커녕 단 하나의 체세포도 남기지 않았다고 가정해보자. 대신 존은 자신의 아이를 갖고 싶어하는 여성이 나타날 경우에 대비해 유전공학자에게 다음과 같은 유지를 남겨놓았다.
그 여성이 낳은 아이는 누가 봐도 존을 빼닮아야 하며, 다른 어떤 남자의 정충도 쓰면 안된다. 오로지 그 여성의 난자를 가지고 처녀생식(또는 단성 생식)만 가능하다. 따라서 유전공학자는 유전자를 조율해서 피터가 존을 쏙 빼닮게 태어나도록 발생학적인 단계에서부터 관리해야 한다. (이 때 존의 사진이나 생전에 녹음해논 존의 목소리를 참고하는 것은 가능하다.) 이 때 유전학자는 존이 태어날 아이에게서 기대하는 모든 특징들을 해당 여인의 염색체 속에 ‘조각해 넣어야’ 한다. 그렇다면 ‘존은 피터의 아버지인가 아닌가?’
이정도 되면 ‘맞다’ 또는 ‘아니다’ 식으로 명쾌하게 답하기가 불가능해진다. 어떤 면에서는 존은 사실상 아버지지만 다른 면에서 보면 그렇지 않다. 경험론에만 호소해서는 명쾌한 답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정의는 본질적으로 유전공학자 뿐만 아니라 존, 피터의 어머니 그리고 피터 모두가 살아있는 사회의 문화적 기준에 의해 내려질 것이다.
더욱이 만약 유전공학자가 어떤 의도이건 간에, 그 아이의 유전형질의 45%를 유언한 대로 하지 않고 전혀 다르게 구성한다면 어떻게 될까? 피터는 해당 문화권의 기준에서 보더라도 존의 자식이라고 할 수도 없고 딱히 아니라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조만간 부분적으로만 아버지가 되는 것이 가능한 상황들이 생길지 모른다. 이러한 문제를 묘사한 작품이 오늘날에는 환타지지만, 삼사십 년 뒤면 정말로 실감날 것이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자식 간의 인위적으로 가공된 이같은 혈족관계는 그때가서는 지금과 같은 허구가 아니라 진실이 될 것이다. 오늘날의 부자관계는 유전공학이 실현되는 시대와는 다를 것이다.주3 이 얼마나 소름끼치는 예언인가! 이 글은 1980년대 중반 발표되었는데, 작가 스타니스와프 렘은 당시 불과 삼사십 년 뒤면 자신의 가정이 현실화되리라고 내다보았으며 그러한 예상은 현실과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2002년말 미국에서는 외계인을 신으로 추앙하는 종교단체 라엘리언 산하의 인간복제기업 클로네이드가 법적 규제를 무릅쓰고 복제인간 아기를 출생시켰다고 공표함으로서 인간 유전자의 무분별한 조작에 반대하는 사회 일반의 여론을 들쑤셔 놓았다. 그 진위 여부를 떠나서 이 사건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바야흐로 실정법을 동원해서까지 인간복제를 막아야 할 정도로 기술이 앞서가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마 새로운 밀레니엄에 태어난 우리의 아들 딸들이 어른이 될 때 쯤에는 렘의 말마따나 결혼하지 않고 단지 처녀생식만으로 자식을 얻는 날이 오지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그 사회에서 가족에 대한 가치관과 도덕은 어떻게 변모할까?

SF보다 더 SF적인 현실
SF보다 더 SF적인 현실은 비단 과학의 첨단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SF에서나 꿈꾸어 보았을 만한 문명의 이기를 일상 생활 속에서 훨씬 더 자주 접하게 된다. 모바일폰으로 영화를 보고 카메라를 찍고 CD 음질의 음악을 듣는 판이니 SF 컨텐츠가 그려내는 미래의 파노라마가 오히려 밋밋해 보일 지경 아닌가. 전국민의 반수 이상이 인터넷을 이용하고 디지털 위성방송의 채널 수가 190 개를 넘어서며, 한 가정에서 CDMA 방식 핸드폰을 2대 이상 쓰고 있는 21세기 초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바라보면 지금까지 출간된 SF 소설들 가운데 상당수가 미래에 대한 상상화이기는 커녕 오히려 현 시점에서 씌어진 리얼리즘 소설처럼 생각될 지경이다. 오죽하면 미국의 과학소설 작가 로벗 실버벅이 일찍이 70년대 중반에 대체 자신이 지금 SF가 그려낸 미래 속에서 살고 있는지 아니면 진짜 현실 속에 살고 있는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라고 푸념을 했을까. 이처럼 현실과 SF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함께 질주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점차 SF에 대한 호기심과 매력을 떨쳐내기가 어려워진다.
미국 SF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휴고 건즈백(Hugo Gernsback)이 장편소설 에서 컬러 TV와 비디오 전화 그리고 원격 화상회의가 등장하는 27세기의 모험담을 발표한 해가 1929년이다. 그러나 2003년의 우리들은 이러한 과학문명의 이기(利機)를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온 나머지 SF적인 비전을 현실과는 동떨어진 별개의 별천지인 양 오해하기 쉽다. 하루에도 수백번씩 어제의 SF 세계와 만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SF란 하루하루 변하면서 쏜살같이 달리고 있는 과학이란 열차에 타고 있는 인간을 순간포착해서 카메라로 찍은 다음 인간학적인 해석을 덧붙여 놓은 해설판이다. 그래서 과학소설은 꿈인 동시에 현실이다. 요즘 SF가 대중문화의 강력한 아이콘으로 등장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보다도 SF 자체가 꿈을 주면서도 현실에서 계속 확인할 수 있는 공명 현상을 지속적으로 일으켜 오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출처:www.gehealthcare.com/krko/webzine/2003_fourth/human04.html)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왜 우리는 SF에 빠져드는가는 SF평론가 고장원님이 2003년 GE메디칼 시스템 코리아에 쓴 글입니다.

pic

SF영향력을 보여주는 두가지 사례
1998년 11월 25일, 미국의 게이랙시언들(the Gaylaxians)주1이 당시 개봉을 앞두고 있던 <스타 트렉 Star Trek> 극장판 시리즈 ‘봉기Insurrection’편의 관람 보이코트를 벌인 적이 있다. 여기서 ‘게이랙시언’이란 SF를 즐기는 게이와 레즈비언을 지칭하며, 은하 (Galaxy)에 빗대 만들어진 조어다. 미국의 동성애자들은 왜 이런 일을 벌였을까? 그들 자신이 누구보다도 열렬한 SF 매니아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들이 내세운 명분은 명쾌했다. <스타 트랙>은 60년대 TV 시리즈를 거쳐 70년대 후반부터는 꾸준히 극장판 시리즈로 제작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 대중적 인기로 인해 이 영화를 추종하는 오타쿠 그룹인 일명 ‘트레키’들이 미 전역에 생겨났고 최근에서는 할리우드가 <갤럭시 퀘스트>라는 패러디 영화까지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미국의 동성애자들이 <스타 트렉>에 주목한 것은 단지 지명도 때문만은 아니었다. <스타 트렉>은 단순히 외계를 탐험하는 신비한 모험담에 그치지 않는다. 이 작품에는 스토리 전개상 유전적으로 특이한 인간들과 각양각색의 외계인들이 무수히 등장한다. 문제는 아무리 괴상망칙한 외계인이 설치고 돌아다니는 설정이어도 정작 인간 동성애자는 단 한 명도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에 게이와 레즈비언들이 불만을 품었던 것이다. 일견 신기해 보이지만, 이 사건은 SF 컨텐츠가 얼마나 우리 삶 속에 깊숙히 들어와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일깨워 주는 하나의 본보기이다. 동성애자들은 SF적 설정을 통해 미래에도 게이와 레즈비언이 존재할 것이며, 나아가서는 지금보다 더 사회적으로 용인될 것이라는 주장을 담고 싶었던 것이다.
SF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텔레비전 광고로까지 확장된다. 미국의 대형서점 체인 보더스(Borders)의 광고가 좋은 예다. 여기서는 도서관에서 시끄럽게 전화하여 주위에 피해를 주는 몰상식한 사람을 한 트레키가 ‘스타 트랙 백과사전’에서 보고 배운 대로 스포크식 지압으로 까무러치게 만든다.(스포크는 <스타 트렉> 오리지널 시리즈의 주요 캐릭터로 인간과 외계인의 혼혈이다.)

SF의 매력은 어디서 오는가
18세기 초엽 여류 작가 메리 쉘리의 <프랑켄슈타인>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현대 SF가 밀레니엄을 넘어선 시점에서 소설은 물론이고 재패니메이션과 할리우드의 킬러 컨텐츠로 툭하면 차출되고 있다. SF의 이러한 매력은 어디서 연유한 것일까? 다시 말해 SF는 어떻게 해서 거의 200살에 가까운 나이를 먹으면서 영향력 있는 하위문화 텍스트로 성장해올 수 있었던 것일까?
필자는 그 원인을 두 가지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첫번째 원인은 본질적인 차원으로, SF가 다름아닌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즉 SF는 이미 과학적으로 입증되었거나 아직 입증되지는 않았지만 과학적으로 그럴듯해 보이는 근거를 디딤돌 삼아 미래에 대한 예기치 못한 놀라움(희망에서 공포에 이르는)을 불러일으켜 대중의 상상력을 극한까지 끌어 올려 준다는 점에서 무척 매력적이다. 16세기에 발간된 노스트라다무스의 <여러 세기 Centuries>와 조선시대에 유행한 정감록 같은 예언서들은 바로 이같은 대중의 강렬한 소망이 빚어낸 결과물이라 보아도 과언이 아니리라. 미국의 인기 과학소설가 로벗 실버벅은 과학소설 작가들이 달성하고자 하는 주요 목표가 바로 독자들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즉 작가들의 욕심은 경이로운 것들에 대한 기적이나 마술같은 비젼을 선보임으로서 독자들을 경악하게 하고 그 결과 즐거움을 만끽하게 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유사한 맥락에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로도 유명한 <2001년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원작자 아서 C. 클라크는 문명이 극도로 발달한 사회의 과학기술은 우리 눈에 마술로 밖에 여겨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두번째 원인은 사회 현상적인 차원으로, 오늘날 현대 산업사회의 삶이 허구의 SF보다 더 SF같은 느낌을 줄 정도로 급속하게 변모해왔기 때문이다. 지칠줄 모르고 끊임없이 전진해온 현대 과학은 SF가 예견한 전망 가운데 상당수를 이미 실현시켜 사실상 과학소설과 현실 사이의 경계선을 흐려놓고 있다. 일례로 몇 년 전, 미국 토머스 제퍼슨 대학의 재미 한국인 과학자 윤경근은 ‘유전자 수리’를 통해 흰 쥐를 검은 쥐로 만드는데 성공한 바 있다. 흰 쥐가 생기는 이유는 피부 색깔을 변화시키는 색소인자인 멜라닌 생산 효소를 만드는 유전자에 결함이 생긴 탓인데, 그 유전자 변이를 고쳐주면 다시 멜라닌이 만들어져 흰 쥐가 검은 쥐로 변하게 된다. 이처럼 변이된 유전자를 정상 유전자로 고치는 기술은 좀 더 보완을 거쳐 사람들의 각종 유전성 질환을 치료하는데 이용될 전망이다.
(출처:www.gehealthcare.com/krko/webzine/2003_fourth/human04.html)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ext

1980년대 사이버펑크
70년대는 아이디어의 고갈과 장르 판타지--상업화된 환상소설--의 팽창으로 인해 SF의 실험 정신이 위축되어 있었던 시기였고, 그 연장선상에 있던 1980년대 초의 상황은 60년대 초의 그것과 놀랄만큼 닮아 있었다. 폭주라고 밖에는 형용할 길이 없는 테크놀러지의 급격한 발달은 인류 역사상 일찍이 유례를 볼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변화가 다가오고 있음을 예고하고 있었고, 변화의 문학을 자처하는 ‘과학소설’ 또한 새로운 방법론을 갈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이크로프로세서의 보급에 의한 PC 혁명이 몇년 후 현실로 다가왔을 때, 윌리엄 깁슨과 브루스 스털링을 위시한 젊은 작가들은 이런 시대상황에 걸맞는 SF상(像)을 재정립하기 위해 상호 연대를 모색하고 있었다. 초기에는 미국 전역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각종 SF 컨벤션이 접촉의 장을 제공해주었지만, 뉴웨이브의 유산인 창작 워크샵 및 컴퓨터 네트워크를 이용한 의견 교환이 활성화되면서 이들의 활동은 점점 뚜렷한 방향성을 획득하기에 이르렀다. 사이버펑크(Cyberpunk)는 이런 과정을 통해 탄생했다.
사이버펑크 SF는 1984년 윌리엄 깁슨의 장편 ‘뉴로맨서(Neuromancer)’의 출간에 의해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그의 처녀 장편이자 사이버스페이스(Cyberspace) 3부작의 1부에 해당하는 이 작품은 주요 SF상인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비롯, 최우수 신인에게 주어지는 P. K. 딕 기념상 등을 석권했고, SF계 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사이버스페이스와 사이버펑크라는 단어를 회자시켰다. 80년대의 SF를 주도했던 사이버펑크 운동은 바로 이 장편에서 시작되서 이 장편으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이버펑크는 사이버네틱스와 무질서, 혼란를 뜻하는 펑크를 결합한 조어이며, 컴퓨터 공학, 인공지능, 유전 공학, 전자 공학 등이 비약적으로 발달한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한 일련의 SF 소설을 가리킨다. 사이버스페이스란 전세계의 수천만의 컴퓨터가 결합된 인공적 우주를 의미하고, 깁슨의 주인공들은 매트릭스 시뮬레이터(Matrix Simulator)라는 일종의 변환 장치를 통해 각종 데이터가 기하학적 도형으로 시각화된 가상 현실내로 몰입(jack in)한다. 개개의 아이디어 자체는 특별히 새롭다고 할 수 없지만, 아이디어와 현실 사회를 결합하는 수법의 참신함과, 현란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파격적 문체의 매력은 깁슨을 거장의 대열로 끌어올렸다. 원래 깁슨의 작풍을 묘사하기 위해 쓰여졌던 사이버펑크란 용어가 SF의 하위 장르가 되고, 나아가서는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까지 발전하는 데는 5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할리우드의 경우에는 <매트릭스>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10여 년이 더 걸렸다.) LDG가 지향했지만 결코 성공시키지는 못했던 ‘SF의 생활화’를 사이버펑크 운동이 완전히 이루었다면 과장이 되겠지만, 사이버펑크가 뉴웨이브에 필적하는 80년대 SF의 경향이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1990년 하드SF 르네상스
21세기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1990년대의 SF를 규정하는 키워드는 하드 SF이다. 저명한 앤솔러지스트이자 평론가인 데이빗 G. 하트웰이 ‘혁명’으로까지 지칭하고 있는 기술주의적 SF의 부활은 멀게는 70년대에 데뷔한 과학자 출신 작가들의 꾸준한 작품활동이 결실을 맺은 결과이기도 하고, 가깝게는 80년대 사이버펑크 운동의 기반을 이룬 정보 및 생명공학의 눈부신 발달이 우리의 일상생활을 지배할 정도로까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특히 1980년대에 영국 잡지 『인터존』 등을 통해 데뷔한 후 본격적으로 작가 활동을 개시하고, 1990년대 들어 전문 작가로 변신한 영연방의 작가들--영국의 폴 J. 맥컬리, 이언 맥클라우드, 스티븐 박스터, 에릭 브라운,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의 그렉 이건--의 작품은 기존의 하드 SF 개념을 일신하고도 남을 만한 파괴력을 내포하고 있었다.
현대 SF의 최첨단에 위치하고 있는 이들이야말로 완료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으로 현대 SF를 규정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작가 그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한글로 읽을 수 있는 1990년대의 하드 SF소설은 아직 극소수에 불과하므로, SF팬들을 위해서도 체계적인 소개가 절실한 시점에 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출처:www.gehealthcare.com/krko/webzine/2003_fourth/human03.html)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1960년대 뉴웨이브
황금시대를 구가하던 영어권, 특히 미국의 SF는 1960년대에 심각한 매너리즘의 늪에 빠졌다. 그 원인의 일단은 본래 학제적인 융합 장르로서 발전해 왔던 SF를 무리하게 규격화하려는 시도에 있었다. 고정 독자층의 확보를 원하는 편집자들은 인기작가들에게 틀에 박힌 아이디어 스토리를 양산할 것을 암암리에 강요했고, 독자들은 그 결과를 외면했던 것이다. 한편 영국에서는 60년대 초반부터 신예 작가이자 SF 전문지인 <뉴월즈>지의 편집장이었던 마이클 무어콕을 중심으로 이른바 뉴웨이브 운동이 시작되고 있었다. 뉴웨이브는 우주공간으로 대표되는 ‘외우주(外宇宙)’에 치중하던 과거의 작풍에서 벗어나 인간의 내면을 의미하는 ‘내우주(內宇宙)’로 눈을 돌리자는 주장이었다. 이 운동의 주창자인 동시에 최대의 이론가였던 작가 J. G. 발라드의 말에 따르면 내우주란 ‘외부의 현실과 내부의 정신이 만나고, 융합되는 장소’를 가리킨다. 발라드의 정의가 무엇을 의미했든 간에, 이 운동의 이면에 흐르고 있던 것은 문학성의 강화였다. 뉴웨이브 작가들은 심리학과 기호학으로 대표되는 인문 과학적 주제를 도입했고, 그 결과 주제 전달 매체로서의 세련된 스타일이 강조되었다. 뉴웨이브 운동은 황금시대가 끝나고 매너리즘에 빠진 정체 1960년대의 장르SF가 문학적으로 자각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고, 1950년대의 올드웨이브와 1980년대의 사이버펑크 운동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로저 젤라즈니(1937-1995)는 미국 뉴웨이브가 낳은 최고의 스타 작가이며, 이지적이고 세련된 문체, 이국적이며 현학적인 아이디어, 신화와 SF의 결합 등으로 잘 알려져 있다. 특히 탁월한 스토리텔링을 바탕으로 신화적 비전과 SF 특유의 사고(思考) 실험을 융합시킨 화려한 작풍은 후세의 작가들에게까지 깊고 넓은 영향을 끼쳤다.

1970년대 라이프스타일SF
전위적인 실험성이 강했던 뉴웨이브는 60년대 말 결국 장르 내부로 통합되는 형태로 소멸했다. 그러나 뉴웨이브가 야기한 충격은 더 확대되고 일반화된 형태로 70년대의 SF에 반영되었으며, 특히 히피 문화를 위시한 각종 서브컬처로 상징되는 60년대의 동시대(同時代) 감각은 70년대 SF의 주류였던 ‘노동절 그룹(Labor Day Group; LDG)’에 의해 계승되었다.
LDG란 미국의 노동절--9월의 첫째 월요일--에 수여되는 미국 SF계의 최대 행사인 휴고상의 후보에 자주 올랐던 젊은 작가들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기성 작가의 대열에 낀 뉴웨이브파가 70년대의 감성적인 SF 작가들을 비판하기 위해 만들어낸 용어이기는 하지만, 일명 라이프스타일(생활양식) SF라고도 불리는 이들 작품의 공통점을 표현하기 위해 자주 쓰인다. 여기서 말하는 생활양식이란 등장인물의 생활양식인 동시에 작가와 독자의 그것을 아우르며, TV 드라마나 영화 등을 통해 미국 대중문화의 한 요소로서 완전히 자리잡은 SF의 위상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키워드이다. 우주선, 초광속 항행, 양자역학, 인류의 파멸, 평행 우주, 시간여행 등 기호화된 SF적 요소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이들에게 첨단 과학기술은 더 이상 경이로움이나 내면화의 대상이 아니었고, TV나 인공위성처럼 ‘언제나 그곳에 있었던’ 환경의 일부에 불과했다.
그 환경과 상호 작용하는 인간의 위상을 각양각색의 시점을 통해 묘사한 것이 LDG이다. 70년대 SF의 또 하나의 특징은 장르의 구획화(Compartmentalization)이다. 장르의 규격화 및 분화를 의미하는 이 현상은 과거 뉴웨이브가 내포했던 자기부정성에 대한 상업주의적 반작용이라고도 할 수 있다. 황금시대에 확립되었던 SF의 각종 테마는 이 시기에 각종 하위 장르의 형태로 재편성되었고, 출판사들은 이 차별화 전략에 의해 고정 독자층의 확보할 수 있었다. 이 시점에서 많은 SF 작가들이 좀더 자유로운 창작 분위기를 찾아 인접 장르인 판타지로 빠져나갔고, 결과적으로 80년대에 환상문학이 크게 번영하는 계기가 되었다. 전통적 SF나 뉴웨이브 어느 쪽의 대의에도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했던 이 경향에 대한 반발로 과학적 리얼리티를 중시하는 하드 SF가 재출현한 것은 SF팬들에게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하드 SF는 캠벨 스쿨의 문화적인 한계를 그대로 이어받고 있었고, 문학적 인프라가 취약했던 탓에 결국 새로운 하위 장르로서의 토대를 다지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출처:www.gehealthcare.com/krko/webzine/2003_fourth/human05.html)

SF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