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뉴웨이브
황금시대를 구가하던 영어권, 특히 미국의 SF는 1960년대에 심각한 매너리즘의 늪에 빠졌다. 그 원인의 일단은 본래 학제적인 융합 장르로서 발전해 왔던 SF를 무리하게 규격화하려는 시도에 있었다. 고정 독자층의 확보를 원하는 편집자들은 인기작가들에게 틀에 박힌 아이디어 스토리를 양산할 것을 암암리에 강요했고, 독자들은 그 결과를 외면했던 것이다. 한편 영국에서는 60년대 초반부터 신예 작가이자 SF 전문지인 <뉴월즈>지의 편집장이었던 마이클 무어콕을 중심으로 이른바 뉴웨이브 운동이 시작되고 있었다. 뉴웨이브는 우주공간으로 대표되는 ‘외우주(外宇宙)’에 치중하던 과거의 작풍에서 벗어나 인간의 내면을 의미하는 ‘내우주(內宇宙)’로 눈을 돌리자는 주장이었다. 이 운동의 주창자인 동시에 최대의 이론가였던 작가 J. G. 발라드의 말에 따르면 내우주란 ‘외부의 현실과 내부의 정신이 만나고, 융합되는 장소’를 가리킨다. 발라드의 정의가 무엇을 의미했든 간에, 이 운동의 이면에 흐르고 있던 것은 문학성의 강화였다. 뉴웨이브 작가들은 심리학과 기호학으로 대표되는 인문 과학적 주제를 도입했고, 그 결과 주제 전달 매체로서의 세련된 스타일이 강조되었다. 뉴웨이브 운동은 황금시대가 끝나고 매너리즘에 빠진 정체 1960년대의 장르SF가 문학적으로 자각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고, 1950년대의 올드웨이브와 1980년대의 사이버펑크 운동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로저 젤라즈니(1937-1995)는 미국 뉴웨이브가 낳은 최고의 스타 작가이며, 이지적이고 세련된 문체, 이국적이며 현학적인 아이디어, 신화와 SF의 결합 등으로 잘 알려져 있다. 특히 탁월한 스토리텔링을 바탕으로 신화적 비전과 SF 특유의 사고(思考) 실험을 융합시킨 화려한 작풍은 후세의 작가들에게까지 깊고 넓은 영향을 끼쳤다.

1970년대 라이프스타일SF
전위적인 실험성이 강했던 뉴웨이브는 60년대 말 결국 장르 내부로 통합되는 형태로 소멸했다. 그러나 뉴웨이브가 야기한 충격은 더 확대되고 일반화된 형태로 70년대의 SF에 반영되었으며, 특히 히피 문화를 위시한 각종 서브컬처로 상징되는 60년대의 동시대(同時代) 감각은 70년대 SF의 주류였던 ‘노동절 그룹(Labor Day Group; LDG)’에 의해 계승되었다.
LDG란 미국의 노동절--9월의 첫째 월요일--에 수여되는 미국 SF계의 최대 행사인 휴고상의 후보에 자주 올랐던 젊은 작가들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기성 작가의 대열에 낀 뉴웨이브파가 70년대의 감성적인 SF 작가들을 비판하기 위해 만들어낸 용어이기는 하지만, 일명 라이프스타일(생활양식) SF라고도 불리는 이들 작품의 공통점을 표현하기 위해 자주 쓰인다. 여기서 말하는 생활양식이란 등장인물의 생활양식인 동시에 작가와 독자의 그것을 아우르며, TV 드라마나 영화 등을 통해 미국 대중문화의 한 요소로서 완전히 자리잡은 SF의 위상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키워드이다. 우주선, 초광속 항행, 양자역학, 인류의 파멸, 평행 우주, 시간여행 등 기호화된 SF적 요소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이들에게 첨단 과학기술은 더 이상 경이로움이나 내면화의 대상이 아니었고, TV나 인공위성처럼 ‘언제나 그곳에 있었던’ 환경의 일부에 불과했다.
그 환경과 상호 작용하는 인간의 위상을 각양각색의 시점을 통해 묘사한 것이 LDG이다. 70년대 SF의 또 하나의 특징은 장르의 구획화(Compartmentalization)이다. 장르의 규격화 및 분화를 의미하는 이 현상은 과거 뉴웨이브가 내포했던 자기부정성에 대한 상업주의적 반작용이라고도 할 수 있다. 황금시대에 확립되었던 SF의 각종 테마는 이 시기에 각종 하위 장르의 형태로 재편성되었고, 출판사들은 이 차별화 전략에 의해 고정 독자층의 확보할 수 있었다. 이 시점에서 많은 SF 작가들이 좀더 자유로운 창작 분위기를 찾아 인접 장르인 판타지로 빠져나갔고, 결과적으로 80년대에 환상문학이 크게 번영하는 계기가 되었다. 전통적 SF나 뉴웨이브 어느 쪽의 대의에도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했던 이 경향에 대한 반발로 과학적 리얼리티를 중시하는 하드 SF가 재출현한 것은 SF팬들에게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하드 SF는 캠벨 스쿨의 문화적인 한계를 그대로 이어받고 있었고, 문학적 인프라가 취약했던 탓에 결국 새로운 하위 장르로서의 토대를 다지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출처:www.gehealthcare.com/krko/webzine/2003_fourth/human0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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