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인형’에서 ‘로봇’으로
‘로봇(robot)’이라는 말이 세상에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920년에 체코의 극작가 카렐 차펙이 발표한 희곡 <로섬의 만능 로봇 (R.U.R.:Rossum's Universal Robot)>에서입니다. 이 단어는 원래 체코어로 ‘법정노동(法定勞動)’을 뜻하는 ‘robota’ 라는 말에서 끌어 온 것이지요. 세계적인 작가이며 노벨상 후보로도 몇 차례 올랐던 차펙의 이 희곡은 일찍이 1925년에 한국어로도 번역되었습니다. 당시 시인이자 소설가로 활동했던 박영희가 <개벽>지에 ‘인조노동자’라는 제목으로 네 번에 걸쳐 연재했지요.
그러나 로봇이라는 말이 탄생하기 이전부터 ‘자동인형(automata)’등의 이름으로 로봇의 개념은 이미 널리 확산되어 있었습니다. 시계제조업자가 정교한 기술로 만든 움직이는 인형 등이 오래 전부터 만들어져왔고, 특히 19세기 막바지부터는 광범위한 대중적 인기를 끌어 모으게 된 영화의 영향력도 커졌습니다. 일반적으로 세계 최초의 영화는 1895년에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가 만들었다고 전해지는데, 그로부터 불과 2년 뒤에 로봇을 등장시킨 영화 <어릿광대와 꼭두각시>가 프랑스의 멜리에스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그 뒤로 비슷한 작품들이 많이 발표되고, 또 SF소설의 소재로도 수없이 채택되어, 차펙이 로봇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만들어 낸 1920년대에는 이미 로봇이 낯선 개념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로봇이라는 말은 얼마 지나지 않아 널리 퍼지게 됩니다.
인격을 지닌 로봇
한동안 로봇은 SF 안에서 ‘프랑켄슈타인’ 같은 괴물이나 기분 나쁘게 인간을 닮은 자동인형, 또는 창조주인 인간의 지위를 위협하는 일하는 기계 정도로만 다루어져 일반적인 인식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938년에 미국의 SF작가 레스터 델 레이는 <사랑스러운 헬렌>이라는 단편소설을 SF잡지에 발표하면서 로봇에도 나름대로의 ‘인격’을 부여하게 됩니다. 이 작품에서는 인간과 똑같은 지성과 감정을 지닌 여성 로봇이 등장하여 인간과 사랑을 나눕니다.
로봇에게 고유의 인격을 부여한 최초의 SF소설인 이 작품에 이어, 다음해인 1939년에는 역시 미국의 SF작가 엔도 바인더가 다른 SF잡지에 <아담 링크>(사진 오른쪽)라는 로봇 시리즈물을 연재하기 시작합니다. 살인누명을 뒤집어 쓴 로봇이 우여곡절 끝에 혐의를 벗고, 뜻을 함께하는 소수의 사람들과 함께 일반 대중들이 로봇에 대해 가지고 있는 무조건적인 적대감을 없애기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입니다. 이 작품은 그 뒤 아시모프를 비롯한 많은 SF작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습니다.
로봇공학의 3원칙
흔히 ‘로봇공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SF작가 아이작 아시모프가 그 유명한 ‘로봇공학의 3원칙’을 창안해 낸 것은 1940년 경, 유명한 SF편집자였던 존 캠벨과 작품 구상을 토론하는 과정에서였습니다. 로봇의 윤리헌장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 내용은 다음과 같지요.
제 1 법칙 :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 되며, 위험에 처해 있는 인간을 방관해서도 안 된다.
제 2 법칙 :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반드시 복종해야만 한다. 단, 제 1 법칙에 거스를 경우는 예외이다.
제 3 법칙 : 로봇은 자기 자신을 보호해야만 한다. 단, 제 1 법칙과 제 2 법칙에 거스를 경우는 예외이다.
오늘날 이 원칙은 단순히 SF의 영역을 넘어서서 로봇(인공지능)공학자들까지 진지하게 연구할 정도입니다. 그전까지 SF에나 등장하는 신비스런 차원에 머물렀던 로봇은 로봇공학의 3원칙에 의해 비로소 엄밀한 공학적 고려의 대상물로 자립성을 획득한 것이지요. 물론 현재의 과학기술로는 아직 3원칙을 스스로 지킬 수 있을 만큼 뛰어난 인공두뇌를 만들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실용화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일본의 한 SF독자모임에선 로봇공학의 3원칙이 오늘날 이미 정착되었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그들에 따르면 로봇공학의 3원칙은 넓은 의미에서 다음과 같은 ‘가전제품의 3원칙’이라고 합니다.
제 1 법칙 : 위험하지 않아야 한다.
제 2 법칙 : 사용하기 쉬워야 한다.
제 3 법칙 : 튼튼하고 수명이 길어야 한다.
실제로 위 법칙들은 로봇공학의 3원칙과 대응하는 적절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오늘날 가전제품을 만드는 제조회사들이 제품 개발 시에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원칙들이기도 한 만큼, 어떤 의미에서 아시모프의 로봇공학의 3원칙은 이미 구현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