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나이를 먹었다는 걸 알게 된 건. 아마 여러가지 작은 이벤트들로 아 나이를 먹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겠지만... 오늘 아침. 집에서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잠깐 사이, 옆의 거울 속에 비친, 내 뺨에 '아직도' 남아 있는 베개자국 만큼 절렬하게 다가오는 것이 있겠나 싶다. 이제 정말 피부에 탄력성이라는 건 남아 나지 않은 건가.

 

이눔의 탄력성을 회복하려면 우째야 하나...를 잠시 생각했는데, 흠. 방법이 그닥 없구나 에잇. 그만 생각하자. 그러고는 그냥 버스에 올라타 자버렸다. 잠도... 예전엔 좀 무리해도 5시간 정도 자면 거뜬 해졌는데 요즘엔 초저녁부터 곯아떨어지기 일쑤이고 다음날 출근하는 버스에서도 머리를 창에 부딪히며 자주어야 하루를 제대로 살아갈 수 있으니. 이것도 나이를 먹었다는 증거겠지.

 

어제 그제 회사에서 지독하게 굴었다. 너무나 화가 났고 너무나 어이가 없었고 그래서 휴가 다녀온 가뿐한 마음은 바로 날려버려졌고. 그리고 어제 마무리가 되었으나 그런 마무리는 진정 상처다. 도대체 사람들 마음 속에 머리 속에 무슨 생각인 거냐. 이게 말이 되냐. 를 두고 어제 그제 내내 속이 아플 정도로 배신감과 실망감에 휩싸여 있었다.

 

피부에는 탄력성이 떨어지고 자도자도 피곤이 풀리지 않는 것도 맞지만, 나이가 들었다고 내가 이제 '연륜'이라는 게 쌓였구나 를 느끼는 가장 정점은 오늘 아침의 기분 같은 거다. 어제 그제 그렇게 화를 내고 버럭 거렸지만, 오늘 아침 출근하는 마음은... 그래 세상 별 거 있니. 그러려니 하자. 이래 봐야 나만 손해지. 그냥 차분하게 지내자구. 라는 자기위로가 담뿍 먹힌 상태라는 거다. 어렸을 때는 이런 일이 있을 때 술 퍼먹고 몇날 며칠을 뿌루퉁하게 지내고 사람들을 미워하고 그랬던 것 같은데 말이다. 아마도 풀리지 않는 피부와 피곤처럼, 에너지가 이젠 모자라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낮아진 에너지 준위가 내 일상을 평화롭게 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냥 버티며 지내보자 라는 마음도 먹게 해주고. 나이 먹는 게 늘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느껴본다. 물론 나이 먹는 건 기본적으로는 쓸쓸하고 슬픈 일인 듯 하지만.

 

커피 한잔에 오늘을 시작해본다. 그래. 이런 시기에는 그저 자기안에 침잠하는 게 최고 아니겠는가. 책을 읽고 나를 돌아보고 후일을 도모하는 게 제일이다. 날뛰고 해봐야 흐름을 거스르기 힘들 때는 몸을 내맡기고 마음의 열을 한껏 내려 지내는 것이 방법이고 말이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은 이거다. 경주 갈 때 가볍게 읽으려고 들고 갔다가 없는 시간에 <Axt> 읽느라 펴보지도 못하고 고이 도로 가지고 올라왔었던 책이다. 이제 읽어야지 하고 펴들었던 게 일요일 밤이었는데, 어제 그제 펄펄 뛰느라 마음이 진정이 안되어 아직 몇 장 못 읽었다. 이번 주말 되기 전에 쭈욱 한번 읽어봐야겠다.

 

 

 

 

 

 

 

 

 

 

오늘자 네이버 이영미 칼럼에 야구인 조계현 KIA 코치의 이야기가 실렸다.

 

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380&aid=0000000909

 

많은 이야기들이 실렸지만 말미에 중국 도연명 시인의 글을 인용한 게 마음에 와닿는다.

 

悟已往之不諫(오이왕지불간): 이미 지난 일은 탓해야 소용없다

知來者之可追(지래자지가추): 앞으로 바른 길을 좇는 것이 옳다

 

고마운 글귀다. 마음에 새겨두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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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6-08-25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에,,,
귀거래사를 외우려고 낑낑거리던 때가 생각납니다.
저런 구절도 있었던가 싶습니다. ㅎㅎㅎ

비연 2016-08-25 10:59   좋아요 0 | URL
저도 오늘 첨 보는...^^;;;;; 근데 상황이 상황이어서 그런지 마음에 콕 박히네요~

cyrus 2016-08-25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가 들면 새벽 일찍 눈이 떠집니다. 일찍 자도 일찍 일어나는 패턴에 나이 먹어서 기력이 떨어진 몸이 쉽게 피곤해지고... ㅠㅠ

비연 2016-08-25 12:53   좋아요 0 | URL
흠... 전 일찍 자도 늦게 일어나는...ㅜ 기력이 딸려 몸이 침대에서 안 떨어진다는...
근데 cyrus님은 저보다는 한참 젊으실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카스피 2016-08-26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전 새벽 3시쯤 자서 아침 7시 반에 일어나는데 역시나 오전에는 졸립더군요^^;;;

비연 2016-08-29 08:15   좋아요 0 | URL
새벽 3시! 우왕... 전 11시쯤부터 꾸벅꾸벅이에요. 야행성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이드니 이젠 야행성이고 뭐고 없이 그냥 졸려요...ㅡㅡ;;;
 

 

나는 회사에 오면 가장 먼저 들어오는 사이트가... 회사 메일이 아니라 알라딘이다. 흠. 딱히 책을 사겠다는 건 아니고 (아시는 아시겠지만 한달에 두번만 구입한다고 작심한 지... 일년? 비교적 잘 지키고 있다) 페이퍼도 쓰고 리뷰도 쓰고 신간도 보고.. 그렇게 커피 한잔에 일이십분 잘 누린 후 일을 시작하는 게 나의 일상이다 이거다. 회사에 오자마자, 일 스타트! 이거 넘 낭만이 없잖아...

 

오늘은 심지어 휴가를 마치고 와서, 8월의 하반기에 돌입했기 때문에 책구매에 들어갔다. 어제부로 추진하던 일이 나가리가 되었고 그래서 오늘 나는 아침에 매우 한가했다. 쩝. 그러다가 누군가와 회사 메신저로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이얘기 저얘기 하다가 책을 샀다는 얘기를 했다.

 

"헉. 회사에서 쇼핑몰에 들어갔어요?"

"흠? 아니. 쇼핑몰이 아니라 알라딘. 서점이야."

"그게 책 쇼핑몰 이잖아욧!"

 

아 그런가? 난 알라딘을 한번도 쇼핑몰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냥 알라딘은 내게 있어 놀이터? 뭐 그런 개념으로 책을 산다는 것에 촛점이 맞춰져 있지 않았던 것 같다. 그걸 오늘 처음 알았다. 그러니까 그 사람 말대로 알라딘은 옷이나 가방을 파는 곳과 마찬가지로 '책'을 파는 곳이 맞았다. 나는 여기에서 늘 책을 사니까. 이럴 수가. 그렇구나. 멍...

 

그러면서 회사 사람은 계속 궁시렁거린다. 로그를 다 검색할 수 있기 때문에 맘만 먹으면 당신의 로그를 다 뒤질 수 있고 회사에서 그런 거에 들어가서 시간을 소요한다는 것이 나타나면 무슨 짓을 당할 지 모른다는 둥, 이거이거 이런 각박한 시기에 살아남는 법을 알려줘야 하겠다는 둥, 자기는 네이버에도 접속하지 않으며 지도와 사전만 따로 빼내서 들어간다는 둥.... 아. 그래야 하는 거구나. 그러고보니 업무시간에 알라딘에 들어와있는 게 그런 의미일 수도 있겠구나. 멍...

 

그래서 항상 켜놓고 있던 알라딘을 오늘은 끄고 일에 관련된 내용만 띄워놓기 시작했다. 바로 오늘부터 말이다. 그러다가, 점심을 먹고 왔고 양치질을 했고 화장을 고쳤고... 그러고나니 알라딘이 궁금해졌다. 어차피 버린 몸. 그냥 들어가? 라는 생각이 뇌에서 스치기도 전에 손이 먼저 즐겨찾기의 알라딘 사이트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이건 지독한 습관이다.

 

아뭏든, 그런 얘기까지 들었으니 회사에 와서 알라딘 '쇼핑'을 하는 것만큼은 피해야겠다 싶다. 책은 옷이나 가방 등의 대상과는 다르다고 생각한 나에게도 어폐가 있는 거였다. 다 쇼핑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건데 말이다.

 

어쨌든, 난 오늘도 책을 여러권 사버렸다. 이따가 무통장입금을 하고 나면 이번 주 중으로 도착은 하겠지 라고 생각하니... 룰루. 기뻐진다. 회사에서 로그를 검색한다고 해도 할 수 없지 뭐. 집에 가면 늦고 그래서 노트북 켜는 게 힘겹고 그래서 알라딘 들어올 시기를 놓치곤 하니, 대낮에 회사에서 들어가는 것이 가장 편하다 이 말씀이다. 흠.. 그래도 조금은 자중해야지 라며 소심성 발휘.

 

*

 

오며 가며 [Axt]를 읽다보니 우리나라 요즘 작가들의 이름이 귀와 눈에 자꾸 꽂히게 된다. 지난 번에도 말했지만, 정유정이라는 작가에 대한 새삼스러운 흥미도 이 연유인 것이고. 그래서 이번에는, 뜻하지 않게 우리나라 작가들의 책을 몇 권 구입하게 되었다. 문득, 집 책장에 우리나라 어떤 작가들의 책이 꽂혀 있나 하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소설이나 에세이 위주로 말이다)... 박완서, 박민규, 공지영, 박경리, 김원일, 이문구, 류시화, 이문열, 김연수, 신경숙, 조정래, 최명희, 최인호, 김훈... 생각보다 꽤 많은 작가들의 책이 곳곳에 꽂혀 있었다. 최근 작가들의 책을 읽지 않았다 뿐이지, 그래도 나름 챙겨보고 있었구나 싶다.

 

이번에 산 것들은...

 

 

 

 

 

 

 

 

 

 

 

 

 

 

 

 

 

 

 

 

 

정유정 작품 중에는 <7년의 밤> 낙점. 영화로도 만들어진다고 해서 일단 먼저 보기로.

이응준이라는 작가는 이번에 정말 [Axt]를 보고 처음 접햇는데 쓰는 스타일이 내 마음에 들어서 이름을 따로 기억해두고 작품을 찾아보았다. 이 책... 드라마로 만들어졌던 거 아닌가.. 라는 기억이 있는데 어쨌든 가장 대표작 같아서 일단 낙점.

이병률의 산문집은 워낙 호평이라 진작부터 사기로 했던 것이기는 하지만, 이번에 낙점.

 

그리고, [릿터 Littor]도 창간호를 샀다.

 

 

문예지가 갑자기 부흥하고 있는 시점에서 하나 정도는 정기 구독을 하려고 한다. [Axt]가 가격대도 좋고 내용도 좋은 것 같아서 마음이 끌리기는 하는데, 이왕 정기 구독할 거, 좀 다른 것들도 경험해보고 정해야지 싶어서 [릿터]도 냉큼. [미스테리아]는 일단 보류하기로 했다. 문예지를... 좀더 순수문학 쪽에 가까운 것으로 읽고 싶다는 난데없는(!) 소망 때문이라면 이유가 될라나. (뭥미..=.=;;)

 

 

 

 

 

 

 

 

 

그리고, 또 산 책들. 내가 이거 몇 권 사고 관둘 자가 아니지..ㅜ

 

 

무조건 <사피엔스>는 도착하자마자 볼 것이다. 이 책에 대한 호평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고, 나 또한 흥미가 있어서이다. <독서의 역사>는... 책에 관련한 책들 워낙 다 사대니.. 나중에 한꺼번에 읽을까? 라는 마음에 쌓이기만 하고 있다.

 

 

 

 

 

 

 

 

 

서점 관련한 책들도 그저 다 사고 있다. 아직 못 읽은 책들이... 책장에 그대로.. 있지만, <시바타 신..>은 다들 좋다고 좋다고 해서 안 살 수가 없었다고.. .비겁한 변명을 늘어놓아 본다. 멕베스순경 시리즈의 3번째 편인 <외지인의 죽음>.. 이거 뭐 읽기 시작했으니 내친 김에 다 읽어버렷! 하는 마음으로 버튼 꾸욱.

 

 

 

 

 

 

 

 

*

 

 

누군가들은 이야기한다. 이렇게 계속 책을 사면 다 읽냐. 시간이 많은가 보다 책을 이리 사서 읽어 대고... 전혀 그렇지 않다. 일단 다 못 읽는다. 이걸 어느 세월에 다 읽겠는가. 아직도 못 읽고 사두기만 한 책들이 집에 하나가득이다. 하지만 그래도 산다. 왜? 그냥 취미라고 해두자. 책사는 게 취미. 나는 옷에도 액세서리에도 가방에도 별로 관심이 없다. 그렇다고 피부관리를 받는다거나 마사지를 정기적으로 받는다거나 하는 것도 없다. (그래서 늘 우중충인 것은... 별도로 하고) 그런 데에 쓸 돈을 책에 쓸 뿐이고. 그게 취미일 뿐이고. 또 내가 사두면 우리 엄마나 올케가 가져가서 읽기도 하니까 그냥 내 책장이 책대여소 비스므레한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또.. 알라딘 전체적으로 볼 때 내가 그렇게 책을 많이 사는가? 는 아닌 것도 같고.

 

그리고, 사실 시간이 많아서 책을 보는 건 아니다. 알라디너들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활자중독 비슷한 게 있어서 책이 보이지 않으면 좀 불안해진다. 그래서 늘 책을 가지고 다니고 5분 10분 틈내서 보는 것 뿐이다. 지하철, 버스, 혹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순간, 공연이나 영화를 기다릴 때 등등등의 짜투리 시간. 그리고 자기 전 한두시간을 꼭 읽고 자는 것... 이 정도다. 요즘은 체력이 떨어져서 자기 전에 책 읽다가 몇 번 얼굴로 떨어뜨려서 압사당할 뻔 한 적도 더러 있다는 건, 슬픈 일이기도 하고.

 

자기 전 책 보는 습관은 온전한 나의 것이 아니고... 엄마가 그렇게 하시는 걸 늘 봐서 그냥 그게 당연한 걸로 생각되는 것 같다. 우리 엄마는 70대이신데도 여전히 자기 전에 반드시 책을 보다 주무신다. 요즘 무슨 책을 읽으시냐고? 무려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 사실 내가 이 책을 처음 읽은 게 고등학교 때인가 그랬는데 엄마가 추천해줘서 읽었더랬다. 나는 우리 엄마의 이 습관을 정말 사랑한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내 몸에 배여버린 엄마로부터의 습관을 또한 사랑한다.

 

아. 회사 로그에 장시간이 남겠다. 이제 그만...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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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아빠 2016-08-23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랑 비슷하시네요. 할일 없으면 맨날 알라딘 기웃거리는데

비연 2016-08-23 16:54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부자아빠님. 이게 알라디너들 공통사항 일 것 같아요...^^

부자아빠 2016-08-23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전에 책 산건 받았어요. 오늘도 좋은 하루

비연 2016-08-23 16:57   좋아요 0 | URL
부자아빠님, 좋은 하루 되세요~^^

부자아빠 2016-08-23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즐독 하세요

비연 2016-08-23 22:40   좋아요 0 | URL
네엡~^^

yureka01 2016-08-23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고 책 쇼핑몰은 또 처음 듣네요....
책 안읽는 사람은 서점은 상점이라 할 수도 있겠다 싶긴해요....ㄷㄷㄷㄷ
하기야 상점이나 서점이나 둘다 점은 점이었으니까요....

바람으로는 책에서 만큼은 좀 너그러워지는 세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책은 다른 제품과 달리 좀 특별취급받았으면 하구요 ㅎ

비연 2016-08-23 22:40   좋아요 1 | URL
저두요 유레카님~ 책쇼핑몰이라니... 안 어울리는 말 아닌가 싶은 거에요. 역시 제 마음 알아주는 분들은 알라디너들뿐!

cyrus 2016-08-24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알라딘 블로그를 알려주지 않아요. 알려줘봤자 읽을 사람이 없을 것 같고, 글 왜 쓰느냐고 쓸데없이 물어볼까봐 안 알려줘요. ^^

비연 2016-08-24 14:55   좋아요 0 | URL
저도 알라딘 블로그 안 알려줘요 ㅎㅎ 회사 얘기도 가끔 나오고 지인들 얘기도 가끔 하는데 보면 좀 그렇기도 하고. 제 주변에 책 보러 들어오는 사람이 많지도 않구요.

Sira 2016-08-29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매일 컴퓨터 켜면 하는 일이 알라딘 들어와서 신간 뭐있나, 새로운 굿즈는 뭐가 있나 보는게 일과랍니다. 어머님이 정말 멋지세요! 저도 늘 책을 끼고 사는데 남편은 볼 때마다 책읽는 선비는 가난한 법이라며 타박하고, 엄마의 이런 점을 닮았으면 하는 딸애는 죽어라고 책을 안 읽습니다.

비연 2016-08-30 00:22   좋아요 0 | URL
앗 저랑 비슷한 라이프스타일을!^^ 책읽는 선비라니 ㅎㅎ 남편분이 재미나신 듯~ 딸애는 지금은 그래도 크면 엄마를 닮지 않을까요~?
 

나는 요 네스뵈를 참말로 좋아한다. 그리고 그가 쓰는 해리 홀레 시리즈의 해리 홀레도 좋아한다. 그래서 관련 책이 나오는 족족, 바로바로 사서 집에 일단 쟁여 두어야 마음이 놓이는 편이다. 이것도 병이라면 병인데 어쨌거나 누구에게나 그런 작가, 그런 책이 있는 거니까.

 

그런데, 해리 홀레 시리즈를 보면 볼수록 자꾸 괴로와져서 야단났다. 이번 작품도 그렇다. 제목부터가 <바퀴벌레>. 선듯 손이 안 가는 제목 아닌가 말이다. 이 책을 만약 서점에서 샀다면 제목을 누가 볼까봐 가렸지 않을까 라고 문득 생각해 보았다. 물론, 나는 알라딘에서 구매했으니까 그럴 필요는 없었지만서도.

 

휴가의 첫날. 이 책을 벗한다는 즐거움에 마음이 설레기까지 했었는데 말이다. 아. 읽는 동안 내내 괴로왔다. 방콕이란 분위기가 주는 압박감도 있었고. 여행지로서의 방콕은 매력만점의 도시임에 반해, 뭔가 사건사고와 엮이면 그지없이 어둡고 끔찍해진다. 다양한 인간군상. 다양한 죽음의 방법. 그에 따르는 다양한 범죄의 양태. 다양한 타락의 모습... 역시나 이 책에서도 그랬다.

 

해리 홀레의 여동생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낯모르는 인간에게 성폭행을 당해야 했고, 어쩌다 날아간 방콕에서도 맞부딪히는 건 소아성애... 으. 글자를 따라 읽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그리고 바퀴벌레에 대한 비유들. 읽는데 밥맛이 막 떨어지려고 하는 걸 간신히... 눌...렀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이 책 읽으면서 밥 몇 끼는 굶어야 했다. 꾸웩.

 

그리고 해리 홀레는 역시나 사건을 '해결'한다기보다는 사건을 확대 재생산한 끝에 치열한 몸싸움, 아니 몸싸움이 아니라 상대에게 찔리고 베이고 잘리고 눌리고... 하는 몸에 대한 강력한 학대를 당한 이후에야 상대를 '무찌른다'. 아무리 봐도 해리 홀레가 사건을 하나씩 거쳐갈 때마다 그 몸이 남아난 게 심히 의아할 정도이다. 인간의 몸이 그렇게 당하고도 정상적인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까. 머리도 여러번 세게 얻어맞거나 바닥에 패대기쳐지고, 높은 곳에서 몸일 떨어지는 것은 부지기수이고, 칼로 쑤욱 찔리는 건 더 흔해빠진 일인지라, 해리 홀레의 몸은 아마 넝마가 되었을 것이다 라고 짐작해본다. 이 사람, 좀비? 프랑켄슈타인? 뭐 이런 거 아니야? 라는 생각이 들 정도.

 

게다가 해리 홀레가 가까이 하거나 해리 홀레에게 호감을 가지는 사람 - 특히 여성 - 은 언제나 거의 대부분 책이 끝나기 전에 하늘나라로 임하신다. 그러니까 해리 홀레가 지나가는 길은 시체의 더미가 깔리게 되고 그리고 나서 범인이라고 잡으면 이 넘을 아주 요절을 내 버리는 게 또 홀레 아저씨다 이거다. 괜찮은 거니, 해리 홀레? ㅜㅜ

 

그래서 이 책 <바퀴벌레>를 다 읽기까지 상당히 괴로왔음을 고백한다. 전혀 즐겁지 않았고 전혀 통쾌하지 않았다. 그냥 좀 메슥거렸고 많이 불쾌했다. 아직 시리즈는 계속 되고 있고 <바퀴벌레>는 심지어 해리 홀레 시리즈의 두번째인가 작품이다. 이미 진도가 많이 나간 시리즈는, 내용은 갈수록 잔인해지고 해리 홀레는 점점 마초스러워지고 살덩이와 핏덩이가 난무하는 장면이 더욱 흔해지고 있다. 이젠 겁이 날 정도.

 

요 네스뵈님. 이제 해리 홀레 그만 괴롭히면 안될까요. 꽃길은 아니라도 그냥 정상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가게는 두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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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여행 레시피 - 우리나라 구석구석 즐거운 소도시 여행 Happy Travel 5
강희은 지음 / 즐거운상상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경주여행을 준비하면서 많은 참고가 된 책이다. 지역별로 가보아야 할 곳들이 잘 정리되어 있고 맛집들도 꽤 정돈이 잘되어 있다. 여행책의 느낌을 너무 주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정보는 다 있어서 좋았다. 아쉬운 점은, 경주 전체 지도가 없어서 전체적인 구도를 잡기가 어려웠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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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그런 책이 있다. 읽다 보면 차분해지고 묵상하는 기분이 드는 듯한 느낌을 주는 책. 주변의 소음이 잦아지고 내 속으로 침잠하게 하는 책. 특별히 나에게 잠언이라고 똑부러지게 말하고 있지는 않으나 글을 따라 가노라면 내게 잠언으로 다가오는 책.

 

이 책이, 그런 책 중의 하나였다.

 

어두운 글일까봐 걱정했다. 읽다 보니 밝은 글은 아니었다. 어머니가 사랑하지 않는, 혹은 시기하는 딸. 그래서 생겼던 불화. 미움. 상처. 그리고 불쑥 다가온 건강상의 이상. 어머니의 알츠하이머병. 단어 하나하나 더듬어 보면 아, 답답해서 머리가 아파져온다.

 

하지만, 그렇다, 이 책는 '하지만' 이라는 반전이 어울리는 책인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많은 인연과 우연들이, 어머니의 병이, 뜻하지 않은 여행이, 심지어 나의 병이, 그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함과 치유함을 이끌어내고 있다. 이제 모든 게 끝! 이라고 비명을 지를 정도의 통쾌한 마무리가 아니라, 그렇게 그렇게 사노라면 그렇게 그렇게 잊혀지고 묻혀지고 이해되고... 그런 느낌을 주는, 여운이 있는 마무리였다.

 

선 사상의 스승인 순류 스즈키 로시도 영혼의 수련에 관해 비슷한 말을 했다. "일단 어느 정도 수련을 하고 나면, 급격히 남다른 성과를 내는 건 불가능함을 깨닫게 된다. 아주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도 늘 조금씩만 나아진다. 젖을 걸 알고 소나기 속으로 뛰어드는 것과는 다르다. 안개 안에 있으면 몸이 젖어가는 줄을 모르지만, 계속 그렇게 걷다 보면 조금씩 조금씩 젖어 드는 것이다." (p260)

 

이 글들을 읽어나가는 것은, 이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조금씩 조금씩 작가의 마음으로 들어가는 동시에 내 마음으로 들어가는 느낌. 그래서 작가에게 동감하는 동안 나 자신도 어느 새 이입되어 치유되는 느낌. 마치 수련을 하듯이.

 

친절, 동정, 너그러움 같은 것은 마치 순전히 감정의 미덕인 것처럼 이야기되곤 한다. 하지만 그것들은 무엇보다도 상상력의 미덕이다. 우리는 누군가 다친 것을 보면 그를 안쓰럽게 여긴다. 누군가가 모욕을 당했거나 아주 지쳐 있는 것을 보아도 마찬가지이다. 당신의 감각이 전하는 정보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그것을 해석하고 나면 비로소 그 정보가 당신에게 생생하게 전해진다. 직접 목격하지 않은 어떤 사태,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어떤 괴로움을 상상하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고민하기도 한다. (p284-285)

 

어쩌면. 다른 사람의 마음에 이입되어 자신의 범위를 확장하는 것(p286), 그렇게 상상하여 도약하는 것, 그런 것이 우리가 느끼는 '감정' 인 것인지도. 그렇게 타인과의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인지도. 그게 인간이 할 수 있는 감정의 교류라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고대 그리스어 '시그노미'라는 단어가 있다. '이해하다, 공감하다, 용서하다, 봐주다'라는 뜻을 모두 담고 있는 이 단어는 생각과 느낌을 구분하지 않는다. 이 단어는 이해가 용서 혹은 대상 자체의 출발점이라고 제안한다. 이 단어의 범위는 이해를 위해 감정이입이 필요하고, 감정이입에 이르기 위해 이해가 필요하며, 감정이입은 또한 용서임을, 이 모든 것은 서로서로를 도우며, 함께 이루어지는 것임을 암시한다. 어쩌면 그것들은 처음부터 따로 있는 것이 아닐 지도 모른다. 영어에서는 '이해하다(understanding)'가 그런 식으로 사용되며, 용서를 구하는 마음이 종종 이해를 먼저 구하기도 한다. 물론 이런 태도가 변명의 남발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말이다. (p341)

 

작가의 어머니, 그리 단단하고 딸에게 매정했던 어머니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후 딸에게 의지하게 된다. 옅어져 가는 기억들 속에서 과거를 버리고 현재만을 바라보며 자신에게 있는 것들에 가끔은 충만함을 느끼게 되는 어머니. 기억이 사라지고, 기력이 쇠해지고, 살아 있음 또한 흐려져가는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작가는 어머니의 과거를 이해하게 되고 그렇게 용서라는 감정과 조우하게 된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주는 고통은 쉽사리 극복되기 힘든 것이고 기억에서 사라지게 되는 것은 더더운 아닌 까닭에, 그냥 현재의 나로서 어머니의 기억이 희미해져가는 것에 발맞추어 나의 힘듦도 함께 스러져가도록 둘 뿐이지만.

 

많은 구절들이 마음에 와닿았었다. 살구와 이야기라는 단어로 시작된 글들은 어머니와 병과 아이슬란드와 릴케와 울프와 체 게바라와 남편과 아이의 죽은몸을 먹어야 했던 어느 에스키모 여인의 이야기 등으로 넓게 스며들어가고 그렇게 돌아다니던 마음은 마침내 치유라는 하나의 단어로 수렴하게 된다. 그 과정이, 참 고요하면서도 절박하면서도 ... 아름답다 싶었다.

 

 

몰랐었는데, 리베카 솔닛의 작품들이 여러 권 번역되어 국내에 소개되어 있었다. 이런. 다른 책들도 몇 권 더 읽어봐야겠다. 내 취향에 잘 들어맞는 글을 쓰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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