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그런 책이 있다. 읽다 보면 차분해지고 묵상하는 기분이 드는 듯한 느낌을 주는 책. 주변의 소음이 잦아지고 내 속으로 침잠하게 하는 책. 특별히 나에게 잠언이라고 똑부러지게 말하고 있지는 않으나 글을 따라 가노라면 내게 잠언으로 다가오는 책.
이 책이, 그런 책 중의 하나였다.
어두운 글일까봐 걱정했다. 읽다 보니 밝은 글은 아니었다. 어머니가 사랑하지 않는, 혹은 시기하는 딸. 그래서 생겼던 불화. 미움. 상처. 그리고 불쑥 다가온 건강상의 이상. 어머니의 알츠하이머병. 단어 하나하나 더듬어 보면 아, 답답해서 머리가 아파져온다.
하지만, 그렇다, 이 책는 '하지만' 이라는 반전이 어울리는 책인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많은 인연과 우연들이, 어머니의 병이, 뜻하지 않은 여행이, 심지어 나의 병이, 그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함과 치유함을 이끌어내고 있다. 이제 모든 게 끝! 이라고 비명을 지를 정도의 통쾌한 마무리가 아니라, 그렇게 그렇게 사노라면 그렇게 그렇게 잊혀지고 묻혀지고 이해되고... 그런 느낌을 주는, 여운이 있는 마무리였다.
선 사상의 스승인 순류 스즈키 로시도 영혼의 수련에 관해 비슷한 말을 했다. "일단 어느 정도 수련을 하고 나면, 급격히 남다른 성과를 내는 건 불가능함을 깨닫게 된다. 아주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도 늘 조금씩만 나아진다. 젖을 걸 알고 소나기 속으로 뛰어드는 것과는 다르다. 안개 안에 있으면 몸이 젖어가는 줄을 모르지만, 계속 그렇게 걷다 보면 조금씩 조금씩 젖어 드는 것이다." (p260)
이 글들을 읽어나가는 것은, 이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조금씩 조금씩 작가의 마음으로 들어가는 동시에 내 마음으로 들어가는 느낌. 그래서 작가에게 동감하는 동안 나 자신도 어느 새 이입되어 치유되는 느낌. 마치 수련을 하듯이.
친절, 동정, 너그러움 같은 것은 마치 순전히 감정의 미덕인 것처럼 이야기되곤 한다. 하지만 그것들은 무엇보다도 상상력의 미덕이다. 우리는 누군가 다친 것을 보면 그를 안쓰럽게 여긴다. 누군가가 모욕을 당했거나 아주 지쳐 있는 것을 보아도 마찬가지이다. 당신의 감각이 전하는 정보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그것을 해석하고 나면 비로소 그 정보가 당신에게 생생하게 전해진다. 직접 목격하지 않은 어떤 사태,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어떤 괴로움을 상상하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고민하기도 한다. (p284-285)
어쩌면. 다른 사람의 마음에 이입되어 자신의 범위를 확장하는 것(p286), 그렇게 상상하여 도약하는 것, 그런 것이 우리가 느끼는 '감정' 인 것인지도. 그렇게 타인과의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인지도. 그게 인간이 할 수 있는 감정의 교류라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고대 그리스어 '시그노미'라는 단어가 있다. '이해하다, 공감하다, 용서하다, 봐주다'라는 뜻을 모두 담고 있는 이 단어는 생각과 느낌을 구분하지 않는다. 이 단어는 이해가 용서 혹은 대상 자체의 출발점이라고 제안한다. 이 단어의 범위는 이해를 위해 감정이입이 필요하고, 감정이입에 이르기 위해 이해가 필요하며, 감정이입은 또한 용서임을, 이 모든 것은 서로서로를 도우며, 함께 이루어지는 것임을 암시한다. 어쩌면 그것들은 처음부터 따로 있는 것이 아닐 지도 모른다. 영어에서는 '이해하다(understanding)'가 그런 식으로 사용되며, 용서를 구하는 마음이 종종 이해를 먼저 구하기도 한다. 물론 이런 태도가 변명의 남발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말이다. (p341)
작가의 어머니, 그리 단단하고 딸에게 매정했던 어머니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후 딸에게 의지하게 된다. 옅어져 가는 기억들 속에서 과거를 버리고 현재만을 바라보며 자신에게 있는 것들에 가끔은 충만함을 느끼게 되는 어머니. 기억이 사라지고, 기력이 쇠해지고, 살아 있음 또한 흐려져가는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작가는 어머니의 과거를 이해하게 되고 그렇게 용서라는 감정과 조우하게 된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주는 고통은 쉽사리 극복되기 힘든 것이고 기억에서 사라지게 되는 것은 더더운 아닌 까닭에, 그냥 현재의 나로서 어머니의 기억이 희미해져가는 것에 발맞추어 나의 힘듦도 함께 스러져가도록 둘 뿐이지만.
많은 구절들이 마음에 와닿았었다. 살구와 이야기라는 단어로 시작된 글들은 어머니와 병과 아이슬란드와 릴케와 울프와 체 게바라와 남편과 아이의 죽은몸을 먹어야 했던 어느 에스키모 여인의 이야기 등으로 넓게 스며들어가고 그렇게 돌아다니던 마음은 마침내 치유라는 하나의 단어로 수렴하게 된다. 그 과정이, 참 고요하면서도 절박하면서도 ... 아름답다 싶었다.
몰랐었는데, 리베카 솔닛의 작품들이 여러 권 번역되어 국내에 소개되어 있었다. 이런. 다른 책들도 몇 권 더 읽어봐야겠다. 내 취향에 잘 들어맞는 글을 쓰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